시대를 역행한 센티멘털리즘의 인기 푸치니의 [라 보엠]은 베리스모 시대의 낭만주의 오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오페라가 토리노 왕립극장에서 초연된
1896년은 이탈리아 베리스모(verismo) 오페라의 시대(1890-1910년까지 대략 20년 간)였죠. 실제 현실과 다를 바 없는 적나라한 현실을 오페라 무대 위에 펼쳐 보이려 했던 베리스모 오페라의 음악은 현실을 미화하지 않고 격정, 절망, 분노 등의 감정을 날 것 그대로 표현했습니다.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나 레온카발로 [팔리아치]가 베리스모 오페라의 대표작이죠. 그러나 푸치니는 동시대 작곡가이면서도 구시대의 유려하고 센티멘털한 낭만주의적 멜로디로 청중을 매혹했습니다. 원작 [보헤미안 삶의 정경]은 상당히 객관적이고 사실주의적인 작품입니다. 원작의 에필로그에서 남자들은 헤어진 또는
세상을 떠난 여자들을 잊고 사회적 성공을 거둔 뒤 자신들의 가난했던 젊은 날을 추억하죠. 레온카발로가 이 소재로 먼저 [라 보엠]의 작곡을 시작했으나, 작곡이 1년 늦어지는 바람에 푸치니에게 뒤지고 말았습니다. 1897년 베네치아 라 페니체 극장에서 초연한 레온카발로의 작품은 푸치니보다 원작에 충실했고 음악적인 면에서도 더 현대적이고 드라마틱하다며 평론가들에게 큰 찬사를 받았지만, 푸치니 같은 아름답고 서정적인 멜로디가 부족해 관객들에게 차츰 인기를 잃어 갔습니다.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 테너 라몬 바르가스가 열연을 펼친 2008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공연 실황은 19세기
파리의 다락방을 사실주의적으로 재현한 제피렐리 프로덕션의 연장입니다. 제피렐리의 이 낡은 [라 보엠] 무대는 수십 년간 관객의 사랑을 받아왔는데요, 다른 많은 오페라 작품에서는 획기적인 신연출들이 인기를 끌고 있지만 [라 보엠] 만큼은 이 구식 연출이 여전히 대세입니다. 오페라 속 미미는 사랑하다가 병들어 죽기 때문에 그저 순진무구한 청순가련형의 여주인공으로 인식 되지만, 그것은 자신의 이상형에 여주인공을 맞춘 푸치니의 시도였습니다 . 사실 뮈르제의 원작 캐릭터를 참고한다면 미미는 상당히 적극적이고 도발적이며 세상 경험이 있는 여주인공으로 창조되어야 합니다. 로돌포와 헤어진 뒤 추운 스튜디오에서 누드모델로 일하는 등 생계를 위해 갖은 고생을 하며, 돈 있는 남자들을 상대로 매춘을 하기도 하니까요. 최근의 연출은 이런 점을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