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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을 사랑하는 대전사람들의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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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산행후기쓰기 스크랩 알프스 산행후기
쌍칼 추천 0 조회 208 07.09.04 18:02 댓글 5
게시글 본문내용

 참고로 이글은 같이 같던 충남청양정산고 선생님이신 김재웅님의 후기를 편집없이 올린글입니다.

 

go Alps!

(가자 알프스로!)

 

충남산악연맹 김재웅



7월 20일  (첫걸음 : 인천-홍콩-취리히)

 

  며칠 전부터 주룩주룩 내리던 장대비가 살짝 그친 사이로 반가운 햇살이 고개를 내민다. 일년 전부터 기획해서 12명으로 출발했던 알프스 등반대가 우여곡절 끝에 5명으로 확정되어 장도에 오른다. 처음에 등반대를 조직했던 락클라이밍 동문들이 사정상 대거 빠지고, 무릎수술 일정 때문에 클라이머 산장 ‘홍현’님이 부득이 참석을 못하게 되었다. 아침부터 나와서 짐 포장과 차량수송을 돕는 홍현님의 모습에서 참된 산사람의 모범을 본다. 함께 하지 못함이 못내 아쉽다.

  

 

등사대모(등산을 사랑하는 대전 사람들의 모임), 한돌산악회 등의 모임과 관련된 5명대원이 모두 모였다. 원정대장에 2년 전 알프스 등반경험이 있는 염기현, 등반대장에 김재웅, 장비․식량 및 총무에 최명락님, 촬영에 허민행님, 기록․의무에 황인태님 모두 밝은 얼굴로 만년동 허민행님의 오피스텔에서 짐을 정리하고 항공기 오버차지가 발생하지 않도록 적절히 짐을 배분하였다.

  몇 번의 사전훈련과 모임으로 모두 안면이 있어 편안한 마음으로 청국장으로 점심을 마치고 대전 정부청사 앞에서 인천공항 행 리무진 버스에 올랐다. 기현과 대둔산의 “아름다운 동행” 릿지를 비롯해 이런 저런 산 얘기를 하다가 떠나기 전날의 설레임으로 설친 잠을 보충하고 나니 버스는 벌써 공항입구의 간석지사이를 지나고 있다. 5시 20분경 공항에 도착하여 수속을 밟는데, 짐이 걱정이다. 1인당 20kg이 한계인데 평균 23kg정도 나간다. 대한항공은 융통성을 발휘에 통과시켰는데 홍콩-취리히 구간을 잘 통과할 수 있으려나 걱정이 앞선다.

  홍콩행 KE607편을 기다리는데 늦게 온 승객을 기다리다 1시간 늦게 출발하였다. 전화위복인가, 홍콩에 도착하니 출발시간을 놓친 취리히 행 스위스 항공에서 마중나와 우리 팀을 비행기로 안내하고 얼떨결에 짐무게도 별다른 시비 없이 무사통과다.


7월 21일  (제네바를 거쳐 샤모니로 가다)


  13시간의 지루한 비행 끝에 현지 시각 6시 30분 취리히 공항에 도착하니 잠을 설쳐서 머리가 띵하고 얼떨떨하다. 공항 내 지하철로 환승구역(Transfer AB)로 이동하여 안내데스크에서 Gate번호를 물으니 9시에 다시 오란다. 9시 10분 보딩, 9시 45분 출발 제네바 행 LX2804를 기다리며 스위스 항공기를 배경으로 사진도 한 장 찍어보고 …

  제네바공항에 도착해 수화물을 찾는데 카고백 하나가 영 나오지 않는다.

  말은 잘 안통하고 손짓발짓으로 카고백의 행방을 찾아 사무실에서 한참을 실갱이하고 있는데,  ‘알펜로즈’ 조문행님이 우리가 영 안 나오자 공항 안으로 찾으러 들어왔다. 말이 통하니 일단은 안심! 알아보니 그 카고백은 우리보다 먼저 다른 비행기 편으로 와서 화물칸에서 혼자 돌아다니고 있어서 주인이 안 찾아가는 화물이라 가져다 창고에 보관중이라나,,,

이런 엉터리 공항행정이 있나, 쯧. 알고 보니 이런 일이 종종 있다한다.

  제네바(스위스)에서 국경 넘어 프랑스 샤모니로 달린다.

평원 지대를 한참을 가다보니 거대한 석회암벽 산을 좌우로 보이며 상쾌한 산바람이 불어 우리 일행을 가볍게 들뜨게 한다. 산기슭에 점점히 박힌 통나무집들이 목초지와 어우러져 멋스런 한 폭의 그림이 된다.

  숙소인 알펜로즈(지트-여행자숙소(guest house)~민박 내지 산장개념의 숙소))에 도착해 짐을 대충 정리하고 라면으로 점심을 해결한다.  알펜로즈의 주방장으로 일하는 조성주님과 그의 처 남연씨와 함께 샤모니 구경도하고 장비구입도 하러 시내로 가는데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들더니 한 줄금 소나기가 지나간다.  빙하 녹은 물이 뿌옇게 흐르는 아로보강을 건너 ‘산악인의 집’에 들러 앞으로의 산행에 대비해 산악보험을 가입하고 알프스 산악모형도를 보며 루트 파인딩을 해보았다. 봉우리와 계곡, 빙하가 하도 많고 프랑스어 지명이 그게 그거 같아 아직은 어디가 어느 산인지 잘 구분이 가질 않는다.

  산행지도를 구입하고 장비점 두 곳에 들러 물건을 살피고 가격비교도 해보고 좋은 장비를 저렴하게 구입하려고 작전회의(?)도 하고... 브레방 올라가는 케이블카 타는 곳 입구에 있는 철길건너 첫 사거리 ‘인터스포츠’라는 장비점을 단골로 정하고, 남연씨의 불어실력을 동원해 15% 할인해주기로 약정을 하였다. 할인에다가 나중에 국경을 나갈 때 tax free(유럽연합 내에서는 무관세 거래가 인정되므로 일정금액이상 구입하면 국경을 나갈 때 세금 환급)까지 고려하면 약 30% 싸게 산 것이니 일단은 작전 성공인 것 같다. 이탈리아제 ‘라스포티바’ 등산화를 260£(유로)에 구입하였다. ‘레키’ 스틱의 경우는 국내보다 확실히 저렴해 반값 이하라 가장 인기가 많은 품목이다. 비교적 신형의 경우 66£(한화 8만정도)면 한 쌍으로 구입이 가능하다.

  슈퍼에 들러 목살과 쇠고기, 와인을 준비해 스테이크로 푸짐한 저녁을 먹고 와인 몇 잔에 취기가 오르니 더 부러울 게 없다.

  현재 일기예보 내일은 구름 많고 월-화-수-비, 목-토에 날이 매우 맑다(sunny)니 그 때쯤 몽블랑 산군으로 가기로 하고, 내일은 일단 락블랑에서 브레방까지 고소적응 겸 트레킹을 떠나보자.

  샤모니는 빙하의 침식작용으로 형성된 거대한 빙식곡(氷蝕谷,U자곡)에 형성된 산악도시이다. 원주민 인구가 9천명인데 관광시즌에는 10만 명 정도까지 모여드는 프랑스 알프스의 대표적 산행기점이자 관광도시이다.  집집마다 창문에 덧문이 있고(겨울에 눈과 바람이 집안으로 들이치는 것을 막아주고, 과거 2차 대전 독일 침공시 집안의 불빛이 집밖으로 새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설치했다나…), 작은 방들이 여러 개 붙어있는 아담한 별장 같은 집들이 정말 많다.  창문 아래로  집집마다 꽃들을 걸어 놓은 목조건물로 된 예쁜 집들과, 호텔, 장비점, 레스토랑이 이어지는 샤모니 거리는 촌스럽지 않으면서도, 순박함을 잃지 않은 알프스 소녀 같은 느낌이랄까!


7월 22일 (락블랑에서 브레방까지)

  얼큰한 북어국으로 아침을 먹고, 시내로 나가 그랑몽테 행 시내버스를 타고 아르장띠에에서 내렸다. 말이 잘 안 통하니 눈치로, 독도로 락블랑 입구를 찾고 빵집에들러 점심으로 쓸 바게뜨 빵을 행동식으로 준비하고 설레는 첫 산행에 나섰다.

  가문비 숲을 헤치며 산길을 오르는데, 구름이 산아래로 드리워져 샤모니 시내가 가끔씩 보였다 구름속으로 사라진다. TMB코스(알프스 산허리를 돌아 일주하는 트레킹 루트)를 벗어나 우측 거대한 바위지대의 험로로 들어서니 작은 암벽에 볼트가 몇 개 보이는 볼더링 지대를 지나친다. 한 참을 돌아 오르니 당나귀 귀모양의 제법 큰 바위를 오르는 클라이머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들은 대부분 이중자일로 암벽등반을 한다. 안전을 생각하는 의식수준과 이 고장의 거친 바위 때문인 것 같다.

  

한참 고도를 올리니 물이 당기는 게 확실히 고산지대에 들어섰다는 실감이 난다. 주근깨가 얼굴에서 팔뚝까지 점점 박혀있는 네덜란드 주근깨소녀들과 사진도 찍고, 이 곳의 대표적 동물 ‘마모트’구경하면서 대 암벽을 거슬러 5시간 정도 오르니 락블랑(하얀 호수란 뜻)산장이다.  쪽빛 호수를 배경으로 몽블랑산군의 샤르도네와 그랑드조라스 북벽이 구름 사이로 얼핏 얼굴을 보이더니 수줍은 듯 구름 뒤로 숨어 버린다.

  고산등반에 대비해 속도를 늦춰가며 천천히 오르는데 황인태님이 허리가 많이 아프셔서 힘들어하신다. 산장 한 켠의 공터에서 라면으로 점심을 먹고 호수를 한바퀴 둘러보고 브레방쪽으로 천천히 걷는다. 오른쪽으로는 만년설의 잔재인 작은 설원과 암벽지대가 펼쳐지고, 왼쪽으로는 몽블랑 산군의 흰 산과 대 암벽지대가 바로 눈앞의 것처럼 보이는 이 산행길은 전망이 단연 압권이다.

  브레방에 가까워지고 산행이 8시간이상 이어지면서 다리도 아프고 허리도 뻐근하지만 에귀디미디-몽블랑 따귈-몽모디-몽블랑으로 이어지는 하얀 설능을 보니 통증이 잠시 잊혀질 정도로 아름답다. 겨울에 스키장으로 사용되는 이곳은 스키장 곤돌라가 있고 지도상에 index라고 표시되어 있는데 주변의 바위에는 동네 클라이머들이 능선마다 붙어 등반을 즐긴다. 300-500미터 정도의 바위지대가 널려있어 아무데나 붙으면 등반이 될 듯---. 별다른 확보물이나 루트 표시가 없어 그냥 가는 게 등반루트가

된다.

옆에서는 산양이 바위 사이를 가뿐히 뛰어다니고, 한쪽에서는 클라이머들이 바위를 기어오르고, 그 옆으로 초원사이의 길에는 가족과 연인들이 손을 맞잡고 걷는 모습이 참 조화롭다.

  10시간이상 산행이 이어지면서 다들 지쳐갈 무렵 브레방 정상 바로 아래 곤돌라 중간역에 도착하였다. 벌써 6시가 넘었다. 연습 산행에 넉아웃 될 지경이다. 슈퍼에 들러 저녁거리를 장만하고 뜨겁게 달구어진 샤모니 아스팔트길을 지나 지친 걸음으로 숙소에 도착하니 7시가 훌쩍 넘었다. 아직도 밖은 해가 남아있다.

얼큰한 김치찌개로 저녁을 먹고 일찍 침상에 누웠다.


7월 23일  (샤모니를 둘러보며 등반 준비)


  미역국으로 아침을 먹고 조성주님과 남연씨의 도움을 받아 시내 유람길에 나섰다. 가면서 배우는 기초 불어 (봉쥬(안녕하세요-아침인사) 봉수아(안녕하세요-저녁인사). 세봉(좋다-good). 메르씨(감사합니다))를 따라하다 보니 장비점 앞이다.    인터스포츠에서 자일, 크램펀, 신발--- 내일 산행에 대비해 장비를 거하게 장만하고, ‘이탈리아노’라는 레스토랑에서 홍합을 곁들인 스파게티에 와인으로 점심을 먹었다. 아르보강변에 위치한 강변에서 강물을 내려다보다, 눈앞에 바로인 듯한 착각이 드는 드류, 상트랄 샤모니, 에귀디미디를 보면서 먹는 식사는 자못 운치가 있다.

  국립스키등산학교(ENSA)에서 쟈크팔마(수정채집가로 의사인 파카르와 더불어 몽블랑 초등)동상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슈퍼에 들러 저녁거리를 장만하였다. 내일부터 있을 힘든 산행에 대비해 오늘 저녁은 허민행님이 지리산에서 채취한 천삼을 넣은 삼계탕으로 하기로 하였다.

  숙소에 돌아와 보니 몇일전에 융프라우에서 벽 등반을 하고 돌아온 코오롱 등산학교 강사진들이 와있다. 작년 설악산 적벽 ‘삼형제길’등반 때 만난 적이 있는 윤대표님 일행들이다. 자외선에 심하게 일그러진 얼굴들을 보니 등반이 쉽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한나절 등반에 자외선에 무심코 노출하여 그렇게 되었다며 선크림 아끼지 말고 듬뿍 바르고 관리 잘 하라고 당부한다.  삼계닭을 나누어 먹으며 그동안 등반이야기를 들어본다. 어제는 발레블랑시 평원에서 야영하다 악천후 때문에 등반도 못하고 탈출하다시피 내려왔다 한다. 코스믹산장 아래 무인산장이 (8명 정도 들어갈 수 있는)있으니 부지런히 가면 사용할 수 있을 거라 귀뜸 해준다.

 

7월 24일  (폭풍속으로)


  샤모니 시내의 날씨는 비교적 양호한데 몽블랑 산군을 보니 3,000미터 지점위로 구름이 드리워져 보이지 않는다. 알펜로즈 조문행사장을 통해 일기예보를 간추려보니 오전 중에 구름끼고(cloudy), 오후부터 3-4일 맑은(sunny)날씨라 한다.

  이정도면 등반에 최적이라 판단하고 등반장비를 챙기고 에귀디미디 케이블카역으로 무거운 배낭을 메고 첫걸음을 떼어본다. 산위에서 등반할 복장(고소내의에 동계용 티셔츠를 껴입은)으로 대형 배낭을 메고 한여름의 샤모니 시내를 걷자니 20여 분만에 온몸이 땀을 범벅이 되어버린다. 케이블카역에 도착하니 부지런한 관광객들이 벌써 나와 줄을 서고 있는데 상층부의 날씨가 좋지 않아 케이블카 운행을 할 수 없으니 기다리란다. 일본인 단체 관광객들 사이에 멋쩍게 서서 1시간 정도 기다리니 운행이 시작된다. (요금은 편도 39£)

  해발 2,230미터의 중간기점인 쁠랑역부터 구름속이다. 고소적응 겸 잠시 이곳에 내려 에귀디미디 남벽과 보송빙하를 보는데 빗방울이 내리친다. 잠시 화장실 들렀다가 최종역으로가는 케이블카를 타고 구름 속을 거의 수직 상승하여 한참을 오르니 에귀디미디 전망대다.

내려서자마자 눈을 동반한 바람이 몰아친다.

  무거운 마음으로 발레블랑시 평원 방향으로 나서니, 그 유명한 ‘얼음동굴’이 나온다. 밖에서 몰아쳐 들어오는 폭풍설에 정신이 없다. 크램폰(아이젠)을 착용하고, 피켈을 꺼내 들고, 5~6미터 간격으로 안자일렌(등반자의 몸을 서로 자일로 연결하여 등반)하고 본격적인 등반준비를 한다.

사진으로 보면 얼음동굴에서 보는 알프스 산군의 경치가 정말 멋지던데…

날아드는 폭풍설을 온 몸으로 맞으며 조그마한 철문을 열어젖히는 순간!

  이것이 사지로 들어서는 길일 줄이야…

  몇 발짝 내려서다 보니 좌우로 끝이 보이지 않는 경사 80°이상의 설벽이 나오는데 우리가 갈 길은 한발 내려서기도 쉽지 않은 칼날능선(나이프릿지)이다. (그때는 안보여서 몰랐지만, 맑은 날 올라오면서 보니 우측은 300미터, 좌측은 700미터의 설벽이었다) 이 루트의 등반경험이 있는 기현이 앞장서고 허민행님-최명락님-황인태님이 중간에 서고 내가 끝에서 서로를 도와가며 등반 대열을 유지하며 조심스레 한발 한발 옮겨간다.

갈수록 눈보라가 거세지더니, 화이트 아웃!

  폭풍설로 시야는 겨우 3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온몸을 흔들어대는 강풍에 눈과 우박같은 싸락눈이 번갈아가며 얼굴을 때리는데 바람이 스칠 때마다 노출된 얼굴부분이 쓰라리다. 안경까지 얼어붙어 안 그래도 시야가 없는데 앞이 더욱 보이지 않는다. 앞사람의 모습이 잠시 보였다 사라지고, 자일만이 허공으로 사라지며 앞사람이 지나간 자리임을 나타내준다. 서로의 목소리로 존재를 확인하며, 신의 가호를  빌면서 발레블랑시로 내려서는 한걸음 한걸음에 사력을 다한다.

  매우 어려운 상황에서도 기현이 길을 잘 찾아가며 팀을 인도한다. 중간에 한팀 올라오는 팀을 스쳐간 이후에 다른 등반팀도 없다. 한 시간 이상 위험구간을 내려서니 경사가 완만해지며 시야도 약간 트인다. 잠시 휴식하며 안경을 바꿔 쓰니 앞이 보이는 게 살 것 같다. 쵸콜렛으로 원기보충하고 30-40분 더 내려서니 발레블랑시 평원(꼴디미디. 3532m)이다. 구름속으로 텐트 몇 동이 보인다.

  적당한 곳에 배낭을 내리고 설사면을 파내어 텐트 2동 들어갈 자리를 만든다.  산소부족으로 몇 삽 뜨고 나면 숨이 가빠온다. 서로 삽을 돌려가며 눈을 퍼내고, 한쪽에서는 코펠로 눈을 담아내가며 거의 2시간 가까이 작업 후에 그럴 듯한 잠자리가 완성되었다. 고소증세를 느끼면서도 도배업하시는 황인태님이 설동자리 주변을 매끈하게 다듬어 평원에서 가장 멋진 집터가 만들어졌다.

  텐트안에서 눈을 녹여 컵라면을 끓여(물을 부어 먹지 않고 라면 끓이듯이 컵라면을 끓이면 빨리 익고, 컵라면 특유의 불어터진 맛이 아닌 쫄깃한 맛을 살릴 수 있다) 점심을 먹고 텐트 내부를 정리하고 나니 7시가 다되어 간다. 고산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속도 조금 울렁거리고, 머리도 지끈하지만 다행히 식사를 못하는 대원은 없다.

  폭풍속에 고립되어 텐트안에서 머무르려는 시간을 죽이고 있다.

바로 옆에 8명 정도의 영국등반대가 왔는데 새벽 2시에 기상하여 몽블랑 따귈을 오른다 한다. 잠도 오지 않고 앉았다 누웠다 반복하며 기상상태를 체크해보는데 예보와는 달리 12시가 넘어도 우박에 비바람이 텐트를 흔들어대며 대원들을 불안하게 한다.

아무래도 내일 등반이 어려울 것 같다.


7월 25일   (몽블랑 따귈 등정)


  새벽 2시가 넘어서 잠시 잠이 들었다가 눈을 떠보니 아침이다.

여명이 밝아오며 바람이 잦아진 게 날씨가 쾌청하다.

갑갑한 텐트를 벗어나며 맞이하는 알프스의 정경이란!

드넓은 설원 앞으로 펼쳐지는 첨봉의 파노라마와 하얀 설산 들이 참 아름답다. 대충 눈으로 4-50cm 파내어 간이 화장실을 만들고 알프스의 파노라마를 즐기며 호사스러운 아침 큰 일(?)을 치러낸다. 이 시간이며 말만한 유럽 처녀들의 허연 엉덩이가 심심찮게 보인다던데 어제의 폭풍우로 등반팀이 별로 없어 오늘은 볼 일이 없을 듯...

  누룽지와 라면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오늘의 등반 목표인 몽블랑 디 따귈(4,248m)의 루트를 관찰해 본다. 몽블랑 쪽의 구테루트가 평범한 노말루트 라면, 이곳은 등반가를 위한 루트라더니 과연 범상치 않다. 70°이상 되어 보이는 설벽과, 크레바스, 중간 중간에 아슬아슬하게 걸려있는 커니스(눈처마)가 관찰된다. 밤새 내린 신설로 무릎까지 눈이 빠지는 상황이라 7~8팀이 텐트를 쳤지만 모두들 망설이며 선뜻 출발하지 못한다.

  텐트를 대충 정리하고, 크램폰을 착용하고 나니 8시가 조금 넘었다. 3인 1조 한팀이 먼저 출발하여 설벽 아래에 도달하고 있다. 북벽에도 한 팀, 이태리 쪽 평원으로 하산하는 한 팀도 보인다.

  족히 수백만평이 넘어 보이는 발레블랑시평원을 가로질러 따귈 아래에 이르러 본격적인 등반을 시작한다. 처음에 40°정도의 설벽을 올라치며 힘찬 출발을 하였다. 경사는 점점 심해지며, 고도를 올릴 때마다 숨이 차오른다. 처음에 30걸음에 한번 정도 쉬던 것이 점점 줄어 25걸음, 20걸음마다 숨을 고른다.  50대 후반이신 허민행, 황인태 두 형님이 고산 등반경험이 전무한데도 힘든 것을 참고 잘 따라오시는게 정말 존경스럽다.

  5부 능선에 이를 즈음 눈이 얼어붙어 생긴 빙벽이 나타나 일행을 긴장시킨다. 피켈로 빙설사면을 루트를 내가며 오르자, 깊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크레바스를 횡단하는 스노우브릿지(크레바스사이에 다리형태로 놓여진 얼음)를 건너간다. 떨리는 다리를 추스르며 잠시 행동식으로 원기를 보충하고 다시 설벽을 향해 피켈을 휘두른다. 점점 세지는 경사를 뒤로하고 정상을 생각하며 한발 한발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7부능선을 지날 즈음 십미터가 넘는 큰 눈처마를 살짝 돌아 지그재그로 설벽을 올라서고, 피켈과 아이젠워크로 진기가 고갈되어 갈 쯤 마지막 경사면의 청빙지대가 우리를 막아선다. 오늘 등반의 마지막 고비인가. 한숨 돌리며 멀리 샤모니를 배경으로 사진 한 장 찍어보려는데 젠장 카메라가 말썽이다. 날씨가 추워서인가 카메라 앞의 렌즈가 반쯤 밖에 열리지 않는다. 몇 번 시도해보다 과감히 카메라 포기하고 등반에 열중하자.

  청빙지대를 프런트 포인팅으로 올라서니 정상으로 이어지는 부드러운 설능이다. 고도가 4000미터를 넘었다. 조금만 빨리 움직여도 숨이 가빠온다. 무거운 발걸음을 허위허위 더해가며 정상을 향한 일념으로 걷고 또 걷는다. 1시간 정도 걸었을까 정상이 바로 눈앞이다. 80°각도의 암벽에 왼쪽으로 끝이 보이지 않는 눈처마가 위태롭게 매달린 정상부 바로 앞의 제법 널찍한 설원지대에 이르렀다.

  배낭을 풀고, 주변을 둘러본다. 남쪽으로 몽모디(4,465)로부터 이어지는 몽블랑산군, 동쪽으로는 그랑드조라스(4,208) 산군, 북동쪽으로는 드류(3,754)와 이 각도에서 특히 거대하게 다가오는 에귀베르트(4,122), 드로와떼(4,000), 북쪽으로는 삼각형의 탑이 선명한 마터호른이 보인다. 북서쪽으로는 엊그제 등반한 락블랑-브레방 능선이 손이 잡힐 듯 가깝게 보이고, 남서쪽으로는 그랜드캐년 비슷한 형상의 암벽군도 눈에 들어온다.

  알프스의 비경에 취해 손이 얼어오는 것도 모르고 사진을 찍고 있다. 가끔식 올라오는 외국등반대의 대부분이 이곳을 정상으로 삼고 사진 찍고 내려간다. 노랑머리에 바라클라바를 뒤집어써서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아저씨가 “Very dangerous, It's needs rock climbing"이라며 여기서 내려가기를 권한다. 잠시 망설여보지만, 결론은 역시 하나! 올라가보자!

  벽등반 경험이 적은 두 형님은 바람이 약한 곳으로 가시고, 기현, 명락님과 정상부 암벽루트로 진입하였다. 100여미터의 급경사 설벽을 치고 올라가, 설벽에 피켈 두개를 박아 확보지점을 만들고 기현의 선등으로 등반을 시작하였다. 좌우로 보이는 직각의 설벽은 먹이감을 노리는 악마의 입처럼 흉물스럽고, 등반자의 오금을 저리게 한다. 반침니를 지나 암벽지대를 통과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정상에 도착!

서로의 손을 맞잡는다.

서너평 남짓한 정상에는 정상임을 알리는 철구조물 만이 알프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멋없이 덩그러니 놓여있다.

알프스의 중심에서 다시 한번 알프스를 느껴본다.

명락님이 약간의 고소증세를 느끼는 것 같다. 하산 길이 더 위험하다. 철구조물에 자일 확보를 하고 나와 명락님이 연등으로 하강하고, 기현이 마지막으로 내려섰다. 추위에 떨면서 기다리시는 두 분 형님을 생각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모두 합류에 설벽지대로 돌아 내려선다. 내려갈 길을 위에서 내려다보니 올라올 때보다 경사가 더욱 심하게 느껴져 걱정이 앞선다.

  헬기가 주기적으로 항공을 선회하며 조난자가 있는지 살피고 지나간다. 여기서는 헬기를 보고 반갑다고 양손을 흔들면 큰 일난다. 그게 바로 구조신호라 당장 헬기가 내려온다.

  기현이 앞장서고 내가 마지막에서 하산자를 확보하는 형태로 하산이 이루어진다. 강렬해진 ??에 눈이 녹아 습설이 되어 발이 푹푹 빠지는 구간이 많다. 급경사에서는 킥 스텝, 완경사는 글리세이딩(설벽을 미끄럼타며 내려오는 등반)을 하며 대형 크레바스 두개를 지나 3시간정도 하산하니 발레블랑시 평윈이다. 평원을 가로질러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텐트에 도착하니 4시가 넘었다.

  체력보강을 위해 라면과 누룽지로 이른 저녁을 먹고, 설원에 메트리스를 깔고 아예 누워버렸다. 몽블랑산군 쪽으로는 설벽을 하산하는 원정대들이 보이고, 텐트 바로 뒤 에귀디미디 남벽에는 암벽쟁이 들이 매달려 있고, 전망대 바로 옆의 설능에서는 두명의 스키어가 S라인을 그리며 스키활장을 하고 있다. 

  이탈리아쪽에서 올라오는 케이블카가 오락가락하는 걸 보고 있는데 난데없이 헬기소리가 들려온다. 에귀디미디 남벽에서 등반자가 추락하며 바위에 고립되었다. 20여 분만에 구조대가 출동하여 대원 두 명이 벽을 따라 올라 고립지점에 도착한다. 허공을 선회하던 헬기에서 조난지점으로 케이블이 내려오고 안전벨트에 케이블이 연결된다. 헬기 조정술이 입신의 경지인지 한 치의 오차도 없다. 허공의 순회하며 헬기안으로 빨려 들어간 조난자를 평원에 내려놓자, 빨간색 수송기가 곧바로 날아와 환자를 병원으로 후송한다. 일련의 구조에 걸리는 시간이 30분이나 될까말까, 산악구조대원으로 활동하는 나로서는 정말 배울게 많다. 등반 중 다친 환자가 발생하면 샤모니중앙병원으로 후송되어 치료하고, 많이 다친 경우는 의사가 본국까지 동행하여 후송하고 본국의 의사에게 환자를 인계하고 다시 프랑스로 비행기로 돌아온단다.(단, 보험에 가입해야)  산악인들에게(특히, 암빙벽을 하면) 보험가입도 안 해주는 우리나라의 현실이 아쉬울 따름이다.

  조난자 구조를 하거나 말거나, 옆에서는 바위를 오르고,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각자 자기 등반에 다시 몰입한다. 알프스는 그런 곳이다. 등반의 자유가 있는 곳, 철저한 자기 책임하에 등반이 이루어지는 곳…

  잠깐 선 잠이 들었다 깨어보니 8시가 넘었다.

  주변은 아직도 해가 남아있다. 차 한잔 마시고 코스믹 산장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올라 석양을 본다. 빨간 석양이 구름위로 떨어질 무렵 시계를 보니 9시 20분이다.

슬슬 내려와 10시에 잠을 청해본다. 그런대로 컨디션은 Good. 누워보지만 쉽사리 잠이 오지 않는다. 자다 깨다 뒤척이면서 어수선한 설원의 하루 밤을 보낸다.


7월 26일  (샤모니로 돌아오다)


  오늘은 알프스의 일출을 보며 호사스럽게 큰 일을 치러본다. 동트기 전에 새벽에 출발한 팀들이 설벽과 암벽에 붙어 점점히 올라가고, 부지런한 트래커들은 벌써 발레 블랑시 평원을 가로질러 메르데 빙하(Merde Glacier)쪽으로 내려서고 있다. 이 곳 사람들은 대개 전문가이드 1명을 대동하고 1-2명이 함께 이동하는 팀 아니면 전문 등반팀들이 주를 이룬다.

  텐트가 얼어붙어 회수가 쉽지 않고, 억지로 회수하려니 자꾸 찢어진다.  피켈로 얼어붙은 눈을 파내어가며 텐트를 정리하고 나니 벌써 9시가 넘었다. 젖은 텐트를 집어넣어 매우 무거워진 배낭을 메고 안자일렌상태로 에귀디미디를 향해 오른다. 설원을 지나 언덕지대로 오르니 플랑을 비롯한 알프스의 첨봉들이 더욱 가깝게 다가온다. 나이프릿지의 설릉으로 이어지는 설사면의 곡선이 S라인의 처자 몸매처럼 아름답게 이어진다. 멀리 보이는 에귀디미디를 향해 거친 숨을 내쉬며 한발 한발 오르는데, 점점 각도가 심해지며 좌우가 까마득한 절벽을 이룬 설능이 나온다. 내려오는 팀과 마주칠라 치면 서로 비켜주기도 어려운 칼릉이 좌로 구르면 300, 우로 구르면 700이다.

 앞서 가시던 허민행님이 다리 떨려서 못가겠다며,

 사진이고 뭐고 그만두고 빨리 오라고, 기현을 다급하게 부른다.

내려올 때 폭풍설 때문에 안보였기에 망정이지, 날씨 좋았으면 절대 내려오지 않았을거라고 농을 하신다. 에귀디미디에서 3£하는 엘리베이터타고 맨 위 전망대에 오르니 어제 등반했던 봉우리와 설능들이 눈 앞에 펼쳐진다. 하산기념으로 전망대 레스토랑에서 맥주 1캔씩 마시고, 하산길에 오른다.

  샤모니 시내에 도착하니 기온이 30℃, 영하 15℃에 맞춘 복장을 하고 샤모니시내를 걸어 숙소 ‘알펜로즈’로 가려니 온몸에 땀이 흐르고 몸이 천근만근이다. 따뜻한 물로 개운하니 씻고 나니, 알펜로즈 주방장으로 일하시는 ‘조성주’님이 마침 쉬는 날이라며 시내구경 가자하신다. 조성주님과 ‘남연’씨와 더불어 어제의 등반이야기, 샤모니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며 여유있는 시간을 가져본다. 장비점에 들러 물건체크하고 나가다보니 파타고니아매장에서 세일중이다. 다들 이것저것 고르는 틈에 끼어 기현이 추천해주는 하늘색 가을용 등반쟈켓을 99£에 사보았다. 몸에 잘 맞고 색상도 마음에 든다. 슈퍼에 들러 장을 보아 ‘성주’님의 집에서 등반 뒷풀이를 겸한 만찬을 준비해주었다. 보송빙하가 바로 보이는 2층의 테라스에 앉아 저녁노을 빠알갛게 물들어가는 빙하를 보는 맛이 일품이다.

  포도를 발효한 ‘발사메식초’에 올리브유를 3 : 7로 섞어 만든 소스를 어린 야채에 얹어 먹는 엉트레(본격적인 식사 전에 입맛을 돋우는 전채요리)를 시작으로 푸아그라(거위 간)를 바른 빵, 치즈, 달팽이 요리가 등장하고 각종 와인이 원산지, 특징, 마시는 방법에 대한 교육과 더불어 계속 나온다. 이어지는 메인요리는 한국식으로 고등어조림, 밥에, 매운 돼지고기 볶음로 더 이상 들어가 배가 없다.  인간미가 철철 넘쳐흐르는 두 분의 배려로 우리 등반이 더욱 즐겁고 윤택해진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 한다는 것이 참으로 소중함을 일깨워 주신 고마운 분들이다.

  11시가 넘어서야 만찬이 끝나고 성주형님, 명락님과 기현과 함께 자정 너머 샤모니 시내를 방황해본다. “한잔 더”를 외치며 시내를 거닐다 경찰서 바로 지나 좌측의 바에서 ‘떼제베’라는 민트향이 나는 위스키를 한잔 털어 넣으니 속에 불이 난다. 마지막 마무리로 데킬라맛이 나는 독주를 마시고 나서니, 시간이 12시 30분이 지나버린다.

산에, 사람에, 술에 취하는 샤모니의 밤이다.


7월 27일  (라크베르 트레킹)


  조성주님이 낮에 까지 쉬는 날이라며, 라크 베르(Lac-호수,Vert-초록)트레킹코스를 추천한다. 시내에 잠시 들렀다가 가이영 암장 앞의 ?레링역까지 가볍게 걸어본다. 어린이부터 전문가용까지 다양한 난이도의 암장이 퍽이나 마음이 끌린다. 아이들, 연인들, 가족들끼리 등반을 즐기는 암장에, 송어가 노니는 암장 앞의 맑은 호수까지 정말 마음에 든다.

  샤모니 떠나기 전에 꼭 등반해보아야지!

몽블랑쪽 오르는 니데글 산악열차가 출발하는 우쉬마을을 지나 세르보역까지 열차로 이동한다. 깨끗한 실내의 빨간 열차가 참 앙증맞다. 세르보역에 내리니 거대한 암벽이 병풍처럼 드리운 라크베르가 눈앞에 펼쳐진다. 암벽지대 사이로 수목한계선 끝 쯤에 있다는 초록호수 라크베르를 향해 샤모니 산간마을을 통과하는 산길을 오른다. 농가와 휴양지용 펜션가옥들이 섞여있는 산간마을을 오르다보니 맞은편으로 알프스 산군이 달력에 나오는 그림처럼 다가온다. 마을이 끝나고 가문비숲을 지나 2시간 정도 오르니 초록빛이 영롱한 아담한 호수가 나온다. 나들이 나온 이곳 사람들이 꽤 많다. 근처에 실버타운이 있어서인지 노인 분들이 식탁까지 들고 나와 한가한 점심을 즐기고 있다.

  점심으로 라면을 끓이려니 가스가 홈이 맞지 않아(2가지 방식의 가스가 있어 사용시 주의) 여러 가지 간식과 과일, 와인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호수를 한바퀴 돌았다. 이생강 옹의 대금연주를 mp3로 들으며 눈으로 알프스 산군을 감상하며 터벅터벅 걸어 내려오는 길은 그야말로 이것이 진정한 “트레킹”이 아닐까?

  세르보역에서 4시기차로 샤모니 시내로 이동하여 역 앞의 카페에서 차 한잔 마셔본다. 아이스크림을 시켜보니 이름이 가관이다. ‘발레블랑시’ ‘에귀디미디’ ‘몽블랑’ 산악도시처럼 엽기적인 이름의 아이스크림을 주문해본다. ‘발레블랑시’라는 걸 먹어보니 블루베리에 강한 식초향이 듬뿍 들어 나른한 몸을 깨우고 잠을 확 달아나게 하는 정말 본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독특한 맛이다.

오리고기 주물럭에 와인을 곁들인 든든한 저녁식사이후에 등반기를 정리하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7월 28일   (아르장띠에 산장으로)


  아침을 먹고 아르장띠에 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로냥 중간역을 거쳐 그랑몽테까지 케이블카로 오르니 고도가 3,300m가 넘었다. 멀리 등반목표인 아르장띠에를 비롯한 4,000미터급의 산이 보이고, 산군사이로 거대한 아르장띠에 빙하가 가로질러 흐르고 있다. 빙하지대로 내려서서 빙하를 가로질러 아르장띠에 산군으로 가는 길이 무척 험난할 것 같다.

  아이젠신고, 벨트 착용하고, 피켈 챙기고 단단히 무장을 하고 빙하방향으로 급경사의 설사면을 내려선다. 빙하가 바로 내려다보이는 것이 잠깐이면 갈 것 같은데 어찌된 일인지 급경사 설사면을 내려서면, 완경사의 설사면이 나오고 이걸 지나치면 다시 급경사의 설벽이 나오고, 빙하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고…

  알프스 귀신에 홀렸나?

  2시간 이상의 내려서서야 겨우 빙하의 측면에 도달했나 싶었는데, 길을 잘못 들었다. 산장방향으로 빠르게 진행하다보니 크레바스가 엄청난 청빙지대로 들어가고 말았다. 다시 설사면을 따라 왼쪽으로 크게 횡단하여 겨우 모레인(Morain. 종퇴석-빙하의 말단부에 빙하에 의해 운반된 암석과 모래가 쌓여있는 지형)지대를 통과해 빙하에 도달하였다. 바위틈으로 흘러내리는 석간수에 목을 축이고 행동식으로 간단하게 요기하고 빙하횡단에 나섰다. 지루함을 달래려고 mp3로 음악을 들으며 크레바스를 살살 피해가며 10시 방향으로 빙하지대를 건넌다. 중간에 초록빛 물이 고인 작은 호수들이 참 어여쁘다.

빙하를 횡단해 맞은편 모레인지대로 들어섰다.

  느낌은 다 온 것 같은데 산장은 보이지 않는다. 언덕을 몇 개를 넘고 다리가 후들거릴 무렵 오후 4시가 다되어서야 아르장띠에 산장에 도착하였다. 불어를 못해 아는 영어를 다 동원해 예약을 확인하니 1시간 이후에 방배정을 해준단다.

  컴컴한 조리실에서 압력솥으로 밥을 해서 카레와 함께 비벼 저녁을 해결하고 내일의 등반을 위해 밥을 한번 더해 김밥을 말아두었다. 최명락님이 고생이 많다.3호실로 방배정을 받고 몸을 뉘우니 8시가 넘었다. 너무 일찍 잠자리에 들면 잡념에 잠못들까 싶어 테라스로 나와 빙하 맞은편의 에귀베르트(4,122), 드르와떼(4,000)로 이어지는 능선과 여기서 갈라져나온 암릉들을 감상하며 “등려군”음악에 취해본다.    가사를 모르는 게 태반이지만 애절한 목소리는 가히 신이 내린 천상의 목소리이다. 95년에 요절하였지만 아직도 추모앨범이 계속 나오고, 많은 팬클럽이 계속되는 걸 보면 그녀는 사람들 마음속에 영원히 살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짙은 구름이 빙하를 거슬러 올라오더니 마지막 한자락 몸부림치는 석양을 삼키고는 몽둘랑(이태리, 프랑스, 스위스의 국경을 이루어 일명 삼국봉(三國峰)이라 불리우는)쪽으로 사라져 버린다. 음악을 들으며 청승떨다가 10시쯤 잠자리에 들었다. 옆에서 연인인듯한 남녀가 밤새 소곤거리는데 불어라 물론 알아듯진 못하고, 대충 서로 사랑한다는 말인것도 같고…

가끔 “쪽쪽” 입맞춤 소리도 나고…


7월 29일  (아르장띠에봉에 오르다)


  단잠을 떨구고 일어난 시간이 새벽 2시 15분이다.

일행을 깨우고 출발준비를 서두른다. 컵라면으로 몸을 덥히고 산장 문을 나서는 시간이 3시경이다. 모레인지대를 벗어나는데 한 시간 이상 소요된듯하다. 빙하지대에서 크램폰을 착용하고 본격적인 설상 등반에 나선다. 빙하지대를 지나면서 크레바스를 피해 운행하다보니 영 속도가 나지 않는다.

  황인태님이 힘드시는지 여기서 돌아가고 싶다고 하신다. 하지만 모두의 독려에 힘을 얻어 다시금 등반의욕을 높힌다. 시커먼 아가리를 벌리고 먹이감을 기다리는 악마같은 크레바스를 요리조리 피해가며 설사면 아래에 도착하였다. 계곡 아래에서 찬바람이 불어 올라와 벗었던 옷가지를 하나씩 다시 걸쳐가며 등반을 이어가는데 한참 뒤에 오던 2인 1조 외국인 팀이 우리를 좌측으로 앞질러 대암벽지대 밑으로 지나간다.

바위지대 아래로 가는 길은 낙석 때문에 매우 위험한데…

200미터가 넘는 급경사 설벽을 몇 개를 올랐는데 정상은 아직도 여전히 멀리 있다. 뿌옇게 보이는 정상 능선의 스카이라인 사이로 흘러내린 빙설벽이 어렴풋이 보인다. 

  6부 능선을 지나면서 20걸음 이상 떼기가 힘이 드는 듯 쉬는 시간이 많아진다. 고도 3500미터를 지날 즈음부터는 설벽의 경사가 더해지며 15-13-10 숨을 몰아쉬는 사이로 걷는 걸음수가 눈에 보이기 줄어든다. 입에서 쓴내가 넘어 오길 몇차례 거듭할 즈음 등 뒤에서 따뜻한 햇살이 느껴진다.

태양이 이 때처럼 소중하게 느껴지는 때가 또 있을까?

따스함을 주고, 세상을 밝게 비추어지고…

경사가 70~80°되어 보이는 급경사의 대설벽지대를 지나 정상에서 뻗어나온 주능선에 오르니 엄청난 칼바람이 불어온다. 간식을 좀 먹어보려 해도 손이 곱아 엄두가 나질 않는다. 

  칼바람과 얼굴을 때리는 눈가루를 헤치고 올라선 정상! 허망하다.

3평 남짓한 언덕이다. 거대한 눈처마 위로 볼록 솟아오른 정상으로부터 설능이 양쪽으로 뻗어있다. 폭풍설 속에 잠시 갇힌 듯, 주변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조금 더 머물렀다가는 동상이 걸릴 것 같다.

  서둘러 정상사진을 몇 장 찍고 하산을 서두른다. 어두워서 설벽을 오를 때는 잘 몰랐는데, 내려서려니 아찔하다. 이런 곳을 어떻게 올라왔담! 바짝 긴장하고...

기현이 2년 전에 등반 시 일본인 5명이 안자일렌으로 하산하다 추락하여 5명 모두 중상을 당하는 걸 목격한 바로 그 구간이다. 아무리 춥고 배고파도 안전이 최우선!피켈자루를 간밤의 추위로 단단하게 굳은 설사면에 깊숙이 박아 확보점을 만들고 자일하강하는 형태로 하산을 시도한다. 8마디로 200여 미터를 하강하니 경사가 다소 완만해진다. 안자일렌을 잠시 풀고 차디찬 김밥으로 아침을 대신한다.

  중간정도 내려서니 폭풍설이 지나간 듯 ?빛이 다시 들어오며, 다시금 한꺼풀씩 옷을 벗는다. 시야가 트이면서 눈앞의 알프스 침봉들이 파란하늘을 배경으로 제 각기 위용을 뽐내고 있다. 트리올레(삼국봉)-드로와떼-에귀베르뜨로 이어지는 첨봉들이 제각각 우렁참을 뽐내면서도 종국에는 하나의 거대한 산릉으로 연결되어 있다.

  크레바스 지대를 지나 빙하가 가까워질 즈음 허민행, 황인태 형님들이 지치시는 것 같다. 두 분이 지름길로 먼저 내려가시고, 비교적 젊은 셋이 산장으로 방향을 틀어 짐을 챙기러 간다. 1인당 숙박비가 21£였는데 친절한(?) 산장지기 아가씨가 산악연맹 가이드 할인가격인 10.5£로 계산해 주었다. 아주 잘된 체크아웃!

  빙하지대를 반쯤 내려설 무렵 먼저 하산하신 두 분 형님을 만났다. 지름길로 알고 내려선 길이 길은커녕 낙석지대에 절벽이어서 무척 고생하셨단다. 물까지 바닥나 빙하녹은 물로 목을 축이고, 빙하지대를 횡단하여 맞은편 모레인지대로 들어섰다. 새벽부터 계속되는 운행으로 파김치가 되어있는데 여기서부터 그랑몽떼 케이블카 역까지 800여미터 높이를 설사면을 막차 시간(4시20분)까지 쳐 올라야한다. 모레인지대를 통과해 설사면을 오르는데 바로 보일 것 같은 정상이 가도가도 나타나질 않는다. 완만한 설사면, 급경사 설사면, 다시 완만한 설사면, 다시 급경사…

  지겨워라! 마치 무슨 마법사의 주문에 걸려 어딘가를 빙빙 도는 그런 기분이다. 한올 남아 있는 내공을 쥐어짜가며 모두들 힘을 내본다. 몇 번을 쉬었는지 기억도 안날 즈음 정상 바로아래의 급경사 설벽이 보인다.

3시 30분이 되어서야 그랑몽테역에 도착하여 지겨운 크램폰을 벋을 수 있었다. 아르장띠에 마을로 내려서서 버스를 기다리는 몇 분 사이에 땅바닥에 앉아 잠이 들었다.

  지친 걸음으로 숙소에 돌아와 보니 2년 전에 기현이 등반 왔을 때 함께 왔다는 정계봉님이 우리를 기다리고, 저녁을 준비해 초대해준다. 알고 보니 대산련 청소년분과에서 함께 일했던 정계조님의 동생분이다. 2달 일정으로 캠핑카를 빌려 스위스에서 넘어오셨단다. 큰아들 성호가 몽블랑산군을 오르고 싶어 등반장비를 챙겨왔다한다. 청소년오지탐사대 대원으로 해외 등반경험이 2번 있다한다.

호주산 와인에 융숭한 저녁대접을 받고, 샤모니 밤거리로 나가 맥주에, 칵테일에 잘 먹지도 못하는 술을 취하도록 마시고 나서야 숙소에 들었다.


7월 30일  (메르데빙하탐사와 가이영 암장 등반)


  아침식사를 하고 몽땅베르 산악열차를 타고 메르데빙하 탐사에 나섰다. 알펜로즈에 배낭여행을 왔다는 한국처자 둘이 묵었다. 낭시에서 왔다가 하루만 샤모니 관광을 하고 파리로 간다는데 이곳이 낯설어 힘들어한다. 마침 쉬어가는 날이라 우리와 동행하여 몽땅베르행 산악열차에 올랐다. 

  그랑드조라스가 멀리 보이는 전망대는 경치가 너무 아름다운 곳이다. 몽땅베르역에서 블랑역을 거쳐 샤모니로 이어지는 가문비숲속을 걷는 트레킹도 무척 좋을 것 같다.

  열차에서 내려 산악인의 묘에 들러보았다. 원래는 샤모니 시민묘지 같은 곳이었는데 알프스 한가운데 있다보니 산쟁이들의 많이 묻혀 언제부터인가 산악인의 묘로 불리운다. 꽤나 알려진 이름의 등반가들도 있고, 한국의 산악인 고 유재원씨의 묘가 있어 잠시 묵념을 해본다.

  슈퍼에 들러 시장보아서 점심을 푸짐하게 먹고, 곁들인 와인 덕에 낮잠까지 한잠 즐기고 나니 신선이 따로 없다. 늦은 오후 시간을 이용해 가이영 암장등반에 나섰다. 기현이 확보보고 선등으로 2피치 한 코스 하고 내려오니 허민행님이 안 보이신다. 카메라를 오전에 그랑몽테 갈 때 산악열차에 놓고 오신듯하다. 암장 우측으로 이동하여 직벽 한 코스를 더 등반하였다. 모처럼 바위에 매달리니 힘이 솟는 기분이다. 

  숙소에 와보니 카메라를 찾으셨단다. 독일에서 온 어느 관광객이 사진속의 태극마크를 보고 동양인이 주로 묵어가는 숙소를 수배하여 확인하고, 직접 카메라를 들고 왔더란다. “선진 시민”이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저녁은 코오롱 등산학교 팀에서 바비큐를 준비하여 초대하신다. 일행 중에 어느 기업회장님이 생일이라며 와인에 바비큐를 곁들인 저녁을 푸짐하게 준비하였다. 프랑스 외인부대에서 근무하는 조중사는 어느덧 코오롱팀의 막내가 되어 식사준비에 바쁘다. 4년 전에 한국에서 군생활 마치고 외인부대 용병으로 지원하여 이곳에 근무한고 있단다. 다구진 외모에도 순진함이 넘쳐흐르는 조대현 중사가 동생같은 지 다들 잘해 주신다.


7월 31일   (헤르보네 산장에서 낮잠즐기기)


    오늘은 마터호른(Matter Horn. 4,478 악마의 뿔) 트레킹하러 체르마트로 가기로 한 날이다. 정계봉님의 식구들과 합류하면서 계획이 어긋나 성호와 명락님, 기현이 몽블랑을 향해 발레블랑시로 출발하고 나머지 일행은 ‘남연’님의 안내로 체르마트로 가기로 하였는데, 일이 꼬이려니 추진이 안된다. 남연님이 여행가이드일로 바쁘고, 우리끼리라도 체르마트로 가려니 차편이 연결이 안된단다.

  이왕지사 그렇게 된 일, 등반나가는 3명의 출발모습도 보고, 이태리쪽 알프스도 답사할 겸 에귀디미행 케이블카를 타게 되었다. 에귀디미디에서 발레블랑시 설원으로 가는 일행을 배웅하고 이탈리아쪽 으로 가는 케이블카에 다시 올랐다.

  산이 크다 보니 케이블카타는 시간도 무척 길다. 거기다 친절하게도 중간에 매달아 놓고 주변을 감상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10분정도)까지 주어 알프스 산군을 여러 각도에서 볼 수 있었다. 이탈리아쪽 헤르보네산장에서 내려서 산장 옥상에서 프랑스쪽 과는 약간 다른 이태리 알프스를 감상해본다. 케이블카 손님이 많아 1시간정도  대기하면서 옥상에서 고산 낮잠을 한 숨 즐겨본다.

  산 아래에서 지낼 복장으로 나선 데다 케이블카가 밀려 고산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많다보니 몸에 무리가 오는 듯 허민행님이 등반 이후 나아가던 몸살기가 다시 도져서 저녁식사 후에 바로 자리에 누워버리신다. 황인태님이 만들어 주신 ‘다시다 대신 커피가 첨가된’ 얼큰한 북어국으로 저녁을 마치고 몇줄 적다 보니 융프라우 구경 갔다 돌아온 골수산악회 팀이 들어온다.


8월 1일  (야생화속에 묻혀 뷔에산 트레킹)

 

  오늘은 참 늦게까지 잠을 잤다.

  허민행님이 밤새 몸살로 않으시더니 얼마나 힘드신지 “나 엄마 보고 싶어!”라고 하신다. 7시 30분경에 일어나 코오롱팀에서 등반 안 나가신 막내(53세) 최 대원님이 만들어 주신 푸짐한 쇠고기국으로 든든한 아침을 먹고 컨디션조절을 위한 뷔에산(3,099) 트레킹을 나서본다.

  뷔에역에서 내려 한적한 알프스 산간마을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산골마을을 지나 가문비나무숲으로 들어섰다. 20분정도 오르니 거대한 폭포의 물소리가 들려온다. 폭포위에 멋들어지게 앉아있는 케스캐이드 산장을 왼쪽으로 돌아내리니 거대한 폭포의 물줄기가 힘차게 쏟아져 내린다. 특이하게 폭포수가 떨어지는 안쪽으로 길을 내어 폭포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한 것이 참신하다. 국내의 폭포 관광지에서도 벤치마킹하면 괜찮을 듯한 아이디어다.

  선사시대 유적지 분위기를 풍기는 동굴을 보고나와 완만한 산길로 이어지는 트레킹루트는 평화로움 그 자체이다. 바쁠 것도 없는 잔잔한 걸음으로 서너 시간 야생화를 즐기며 걷다보니 피에르 베르나르도 산장이다. 아침 일찍 출발하여 점심을 준비하지 못해 산장에서 음식을 주문하려니 어렵다. 온통 불어로만 되어있어 무슨 요리인지 알 수가 없고, 아랫배가 푸짐하게 나온 인심 좋아 보이는 산장 아줌마가 영어를 전혀 모르니 난감하다. 대충 위에서 두 번째 메뉴를 시켜본다.

  따스한 ??을 즐기며 한숨 졸고 나니 음식이 등장하는데, 이건 아닌데!

  거칠은 밀빵에 치즈를 녹여 얹은 매우 느끼한 음식이다. 게다가 어찌나 짠지 2/3먹고 결국 손 놓았다.

두 분 형님은 감기가 도지고 편도선이 부어 컨디션이 좋지 않으셔서 산장에서 먼저 내려가시고 나는 빠른 걸음으로 뷔에산으로 향한다. 홀로 산길을 걸어보는 것도 가히 나쁘지 않다. 누운향나무 군락지대를 지나 목동들이 옛날에 다녔음직한 돌너덜을 1시간 반 정도 뛰다시피 걸어 살렘통산에 오르고 내친김에 뷔에산까지 다녀와 하산을 서두른다.

  먼저 내려가신 분들이 지루하게 기다릴 까봐 산길을 뛰어 내려가 보니 캐스케이드산장에서 아이스크림을 즐기고 계신다. 산딸기가 들어간 아이스크림으로 허기를 달래고 뷔에 역에 도착하여 샤모니행 열차를 기다린다.

  샤모니로 돌아와 저녁준비가 귀찮아 외식하러 케밥집에 들렀다. 햄버거용 큰 빵에 양고기를 큰 꼬치에 돌려가며 구운 것을 썰어 넣어주는 이 요리(케밥)는 역시나 맵고 짠데다 양은 어찌나 많은지 다 먹는 게 고문이다.  돌아오는 길에 야영장에 들러보니 몽블랑 등반갔던 성호가 벌써 돌아와 있다.

  고생이 무척 심했는지 “다시는 산에 안간다”고 한다.

강추위와 몸을 날리는 바람을 헤치며 13시간 만에 정상에 다녀온 기현, 명락님, 성호에게 다시 한번 축하를 보낸다.  몽블랑 등정 축하연을 겸해 정계봉님 가족이 저녁을 준비해주어 와인을 곁들인 저녁식사가 이어진다.


8월 2일   (몸살)


  아침 나절 천둥번개를 동반한 비가 내린다.

알프스가 정을 떼려고 심술부리는 듯한 장대비가 내리더니 잠시 개인다. 조성주님이 프랑스 요리 레스토랑에서 대접한다고 초대하시어, 정계봉님 가족과 우리일행 10여명이 라크베르 입구에 있는 ‘조르지아’라는 레스토랑에 갔다. 10시 40분 기차로 세르보역에서 내려 우체국을 지나 레스토랑 앞 공터에서 일행을 기다리는데 온몸이 떨리고 오한이 나는 것이 전형적인 몸살 증세다. 송아지 스테이크, 어린 송아지 염통, 송아지 간, 생선요리, 오리구이 등 여러 가지 요리와 와인이 곁들여진 멋진 식사였지만 몸살로 컨디션이 좋지 않아 도통 맛을 모르겠다. 2시간에 걸친 식사를 마치고 기차를 타려니 1시간 20분을 기다려야한다니...

  기차 간이역 대피소에서 떨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해 웅크리고 있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깨기를 서너 번 할 즈음, 갑자기 지붕을 두드리는 엄청난 소리에 잠이 깬다.   새끼손가락만한 우박이 사정없이 내려친다.

알프스에 온 뒤 최악의 날씨에 몸살이라...


8월 3일 ~ 5일  (몸살Ⅱ 그리고 귀국)


  아침에 일어나니 머리가 맑아진 것 같다.

밤새 덥게 자느라 땀이 차 샤워한번 하고 늦은 아침을 먹었다.

분명 컨디션이 최고였는데 어찌된 일인지 아침 먹고 나서 갑자기 온몸이 떨려온다. 사시나무 떨 듯 한다는 말이 맞는 듯, 가만히 있으려고 해도 몸이 절로 떨리고 이빨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난다. 갑자기 닥쳐온 오한으로 눕고 말았다.

  일행들은 장비점으로 최후 쇼핑을 하러 나간사이 담요 3개를 겹쳐 덥고 2시간을 앓았다. 12시 거의 되어 깨어보니 이제 조금 살 것 같다. 안사람과 아이들에게 줄 선물을 고르려 샤모니 시내로 가는데 한 발 한발이 흔들리고 진땀이 난다. 쑤셔대든 온몸에 허기진 배로 시내 기념품점과 공예품점을 두 세번 돌아보아도 마음에 쏙 차는 게 없어 한바퀴를 더 돌아서야 강아지 목각인형과 아이들을 위한 산양 인형과 몇 가지 선물을 고를 수 있었다. 선물을 고르다보니 가족들의 얼굴이 자꾸만 떠오르며 참았던 그리움이 왈칵 치밀어 오르며 괜스레 눈물이 난다.

  몸에 힘이 다 빠져 걷기도 어려워 시내 광장의 빈 의자에 앉아 운기조식을 하고 아이스크림하나로 에너지를 보충해 숙소로 돌아온다. 돌아오는 길이 참 멀다. 숙소에 오니 내가 문 잠그고 사라져 어디서 잘못 된지 알고 한참 찾으셨단다. 저녁 식사 후에 조성주님 댁에서 간단한 이별주를 마시고 그동안의 등반을 정리해본다.

 이제 내일 아침이면 샤모니를 떠난다. 제네바-취리히-일본 나리타-인천공항 갈 길을 점검해본다.

  샤모니의 마지막 밤 덩그러니 ‘알펜로즈’의 테라스에 앉아 물끄러미 보송빙하와 맞은 편의 브레방 산릉을 보다가 상념에 젖는다.

일년 전부터 계획했던 알프스 등반, 시작부터 출발까지 참으로 난관도 많았다. 어렵사리 꾸려진 5인의 등반대였지만 다들 무척 소중한 인연이었다. 같이 함께 하진 못했지만 등반대를 꾸리는 산파역할을 해주신 홍현님, 등반을 주도하며 어려운 순간마다 팀을 잘 인도해준 기현, 어려운 살림을 차질없이 잘 꾸려주신 명락님, 늘 젊은 사람들을 배려해주시고 자상하게 돌보아주신 허민행, 황인태 두 형님, 따뜻하게 우리를 맞이해준 조성주, 남연님 모두 참으로 소중한 사람들이다.

  폭풍설을 뚫고 발레블랑시로 향하던 그 각오, 몽블랑 따귈의 정상에서 내려다본 슬프도록 눈부신 알프스의 전경들, 아르장띠에의 폭풍설속에서 맞이한 정상의 그 순간, 야생화사이를 정처 없이 걸으며 행복했던 뷔에산 트레킹…

어느 한순간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산에 취해, 사람에 취해 참으로 좋았던 알프스여!

이제는 떠나가노라!



孤山子 재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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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07.09.04 18:14

    첫댓글 7월 31일 은 나와 기현 정성호는 다시 발레부랑쉬 설원으로 가서 텐트치고 자고는 8월 1일 새벽 2:30분부터 등반하여 몰블랑 등정하고 15시30분 설원 다시도착, 텐트철수하고 에귀디미디 올라서 18:10분 케이블카타고 샤모니로 하산 했슴.

  • 07.09.04 18:24

    배꼽 처리 좀 해주면 않되겠니? 내용이 너무 장황해 읽다가 전에거 다 까먹었네...

  • 작성자 07.09.04 18:25

    할줄몰라 , 한글에서 베껴온거라서 그런가? 할려면 시간 많이 걸리는디? 구냥 글만 읽어~~

  • 07.09.05 02:31

    "글"만으로도 충분합니다.

  • 07.09.05 14:52

    소설을 읽은 기분입니다....알프스에있는듯한....꼭가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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