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 운달산 김용사 제1부에 이어 제2부에는 김용사의 전각 뒤편에 조성되어 있는
석불과 삼층석탑,그리고 명부전을 위주로 살펴본다.
우리나라의 사찰은 신라 때부터 비보사찰(裨補寺刹)이 많았다.
조선의 숭유억불(崇儒抑佛) 정책하에서도 선정된 자복사찰(資福寺刹) 또한 그러하다.
왕실의 지원을 받으면 당연히 국운의 융창과 왕실 보호가 따랐다.
이는 분명 풍수지리의 이점을 살려 사찰 자체의 번영을 위함은 아니었다.
그런데 김용사의 석불과 삼층석탑에 대해서는 매우 흥미로운 기록이
『운달산 김룡사사적(雲達山金龍寺事績)”』 에 드러나 있다.
“……기축(己丑, 1709)에는 영산전 앞에 극락전을 세웠으며
왼쪽에는 한산전을 건립고 오른쪽에는 원통전을 건립하였으니
이들 또한 모두 여러 스님이 창립하였다.
석탑(石塔)과 석상(石像)을 그 뒤쪽에 세워
혹은 선익(蟬翼)을 눌러주고 혹은 촉맥(促脈)을 비보 하였다.
그 아래에 또 상실과 중신의 두 요사가 있으니 이들도 모두 설잠 스님이 완성을 보았다.
”*선익(蟬翼) 풍수에서 매미의 날개처럼 좌우에서 혈장을 감싸주는
구릉*촉맥(促脈) 풍수에서 기운이 손상된 맥이로 보아
김용사의 삼층석탑과 석불은왕실 보호가 아닌 풍수지리에 의한
사찰의 비보(裨補)를 목적으로 조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일반 사찰의 석불 조성과 비교하면 목적이 다른 것이다.
김용사 석불입상: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655호
김룡사의 석불입상은 자연석을 돌기둥 모양으로 깎아 만든 돌부처이지만 입체감은 없다.
광배는 없고 전신부와 대좌가 조성되어 있다.
얼굴은 후박하게 둥근 형태이며 나발(螺髮)과 삼각형으로 뾰족한 육계(肉髻)가 부조되어 있다.
수인(手印), 옷 주름 등 전신(全身)이 매우 얕고 투박하게 부조(浮彫)되었으나
얼굴만 비교적 자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그런지 전신에 이끼가 끼어 있고,분명하지는 않지만,
약사여래와 같이 왼손에 무엇인가 들고 있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대좌는 상대와 중대만 조성되어 있다.옆에는 석등이 보인다.
상대는 앙련(仰蓮)이 중대는 팔각방형으로보살, 나한상이 부조되어 있다.
1725년에 출간된『운봉사사적(雲峰寺事蹟)』에 의하면,
서쪽 계곡 건너에 있는 석탑과 함께 풍수사상에 입각하여1709년에 조성된 것으로 확인된다.
조선시대 대부분의 민불처럼 투박한 조형성을 특징으로 보이고 있지만,
1709년이라는 제작연대를 알 수 있고 김룡사의 풍수적 약점을 비보(裨補) 하려는 목적 등이
사적기에 기록되어 있어 당시 시대 상황을 알 수 있다는 관점에서
학술적인 가치가 있다고 평가되고 있다.
삼층석탑;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668호
김룡사 삼 층 석탑은 응진전의 북동쪽 상부에 자연석으로 이루어진석축 위에 있다.
1709년에 지덕(地德) 비보를 위해 석불입상과 함께 조성된 비보사탑(裨補寺塔)이다.
비보사탑은 대개 통일신라 시대와 고려시대에
국운 융성과 왕실 보호를 위해 집중적으로 조성되었다.
조선 후기에 풍수적 지덕 비보를 위해 김룡사처럼 탑과 불상을
동 시기에 함께 조성한 예는 그리 많지 않다.
이 탑의 전체 높이는 2.85m로, 단층 기단부와 3층 탑신부 그리고 상륜부로 구성되어 있다.
1층 탑신석 남면에는 삼층석탑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방형의 틀을 파서 불상을 새겼다.
2층 탑신부 이상은 탑신석 체감이 적으나,
옥개석 체감은 매우 큰 편으로 일정한 체감률을 보여 주지는 않는다.
전체적으로 기단부에 비해 탑신부의 너비가 좁은 편이어서 가늘고 긴 느낌이 든다.
김룡사와 관련된 자료 중 <김룡사사적>에 의하면
1709년 삼층석탑과 석불 등을 조성하였다는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김룡사 삼층석탑은 양식적으로는 그 가치가 미미하지만,
조선 후기 석탑의 연구가 거의 전무한 상황에서
절대적 편년의 기준을 제시한 점에서 비보 사찰의 연구에 좋은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명부전:김룡사 명부전 내의 불단은 'ㄇ'자형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지장보살 삼존상을 비롯하여 시왕상, 판관, 사자,인왕상 등 총 21구의 목조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목조 지장보살 삼존상 및 제상 21구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85호로 지정되어 있다.
높이는 지장보살좌상(본존) 88㎝, 도명존자(좌) 134㎝,무독귀왕(우) 124㎝.
김룡사 명부전에는 목조 지장보살 삼존상 외에도
시왕상 및 하부 권속들을 포함한 21구의 존상들이 봉안되어 있고,
동자상들 4구는 현재 직지사 성보박물관에 있다.
무독귀왕 내부에서 발원문이 발견되어
이 불상들이 1714년(숙종 40년)에 제작된 사실이 확인되었다.
내용 및 특징
김룡사 명부전은 사찰의 중심 권역에서 동편으로 떨어진별도의 공간에 자리하고 있다.
사찰에 전하는 기록에 따르면명부전은 1714년에 담유(曇裕)와 탁밀(卓密)에 의해 중창되었다.
명부전에는 나무로 만든 지장 삼존상(3구), 시왕(10구),귀왕상(2구), 판관상(2구),
사자상(2구),인왕상(2구)이⊓모양의 불단에좌우대칭으로 봉안되어 있다.
명부전에서 시왕의 배치는통상적인 방식대로 향 우(向右)측에
1·3·5·7·9의 홀수 대왕을, 향좌(向左) 측에 2·4·6·8·10의 짝수대왕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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