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 13. 금요일
아외로워
‘시민케인’ 이라는 영화가 있다.
‘케인’이라는 사람의 인생에 대한 영환데,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추동력은 ‘로즈버드’ 라는 의문의 단어다. 언론재벌 왕부자 케인이 죽기 전에 내뱉은 ‘로즈버드’라는 단어의 정체를 찾기 위해 사람들이 케인의 과거를 캐고 다닌다. 결국 영화에 나오는 누구도 알아내지 못하고, 관객들에게만 밝혀지는 ‘로즈버드’ 의 실체.
케인이 어렸을 때, 부잣집으로 자기 의사와 상관 없이 입양가면서 놓고 온 눈썰매가 바로 ‘로즈버드’ 였다. 즉, 어린시절에 느낀 박탈감의 상징이 바로 눈썰매 ‘로즈버드’ 였던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상실의 기억으로, 한 거물의 야심과 탐욕, 수집벽 및 여성편력을 설명해내는 이 걸작 영화 얘기를 갑자기 하는 이유는, 나에게도 로즈버드 같은 상실의 기억이 생긴 것만 같기 때문이다. 나를 비롯한 전북 현대의 팬들은 모두가 느낄만한 상실감이다.
전북현대의 최강희 감독이 국가대표 감독이 됐다. 조광래 전임 국가대표 감독은 경질됐고, 전북은 이흥실 감독 대행 체제로 전환했다. 자기가 좋아하는 팀 감독이 국가대표로 가는 것이 뭐가 어떻냐는 말을 하실 분도 계시겠으나, 이번 건은 이야기가 좀 다르다.
1. 최강희 본인이 원치 않았다.
대한민국의 축구인으로서 국가대표 감독이 되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물론 누구나 국가대표 감독을 꿈꾼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단 하나의 예외 인물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최강희 감독이다.
나라가 부르면 지옥 끝까지라도 달려가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우리네 정서에서, 국가대표팀의 부름을, 그것도 제발 좀 불러달라는 사람이 줄줄이 서있는 상황에서 거절하는 것은 받아들여지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런데 국가대표 감독직이 병역의 의무도 아니고, 누구라도 거부 할 권리는 있다. 더군다나 축구협회는 국가기관도 아니다. 국대 감독 하기 싫다고 해서 조국과 민족의 배신자는 아니라는 말이다. 오히려 누군가에게는 그의 결정이 멋지고 감동적일 수 있다. 2010년, 축구 칼럼니스트 김현회씨와의 인터뷰에서 발췌했다.
나는 아직 전북에서 할 일이 많이 남아있고 계약 기간도 남아있다. 나도 대표팀 코치를 해봤지만 내 스타일과는 맞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대표팀은 꾸준하게 훈련을 할 수가 없고 대신 경기를 많이 보러 다녀야 한다. 선수를 소집해 일정기간 대회를 준비하는 게 대표팀의 역할이다. 그런 게 나와는 잘 맞지 않는다. 나는 선수들하고 1년의 대부분을 같이 생활하고 몸으로 부딪히면서 매일 훈련하는 게 좋다. 또한 클럽에서는 어린 선수들도 육성하는 보람이 있다. 나에게는 체질상 여기가 더 맞는다.
http://sports.news.nate.com/view/20100721n09379
이 글을 읽는 축빠들, 어디 한번 잘 생각해 보자. 내가 사랑하는 팀의 선수, 혹은 감독이 국대(혹은 명문리그 팀)에서 ‘부름을 받으면 보내주는 것이 도리’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 도리에 맞아서 기꺼이 보내주는 것인가?
얼핏 동네 세탁소 아저씨에서 시골 할머니댁 이장님으로 바뀐 것 같지만, 사실 조광래, 최강희
더 큰 명예와 돈을 보고 움직이는 사람들을 익히 봐온 우리는 우리의 영웅들이 우리보다 돈을 더 많이 주고 더 큰 명예를 안겨주는 자리로 떠나게 될 거라는 잠재적 불안을 가지고 있다. 선수나 감독을 ‘쿨하게’ 떠나 보내는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는 영웅을 잃어 상처 받기 싫다는 방어기제가 들어있다. 한 마디로 비겁한 거다. 박주영이 독일 국가대표팀에서 돈 더 많이 준다고 독일로 가버리면(현실에서 불가능한 이야기지만) 우리는 과연 쿨해질 수 있는가.
어쨌든 국가대표팀 감독 하고 싶다는 수많은 사람들을 놔두고 왜 하필 하기 싫다는 사람을 기어이 끌고가고야 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2. 팬들이 원치 않았다.
앞서 인용한 김현회 기자의 인터뷰에는 최강희 감독이 국가대표로 가고 싶어 하지 않는 또다른 이유가 나온다.
전북에 처음 와서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지금은 여기가 너무 좋다. 많은 성과를 얻었고 팀에 대한 애정도 많이 생겼다. 무엇보다도 우리 전북이라는 팀과 선수들, 그리고 나를 사랑해 주는 우리 팬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금은 대표팀보다는 팀에 더 집중해야 할 것 같아서 대표팀 감독직을 고사했다.
지금 우리 팀 선수들은 내가 와서 직접 데려온 선수들이 대부분이다. 이 선수들과 함께 전북에 오래 남아 일하고 싶다. 감독으로서 이런 꿈을 모두 이룰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지금은 전북에서 계속 큰 목표를 가지고 일을 하고 싶다.
전북의 팬들은 이 대목에서 뿅 갔다. 우리나라에서 프로축구팀 감독은 그야말로 파리목숨이고, 팬들은 감독을 몇 년 지나면 갈 사람으로 여긴다. 뿐만 아니라 몇 년이 지날 동안 시원찮은 성적을 내는 감독을 참고 견딜 만큼 인내심이 강한 팬들도 거의 없다. 그러니까 팬들이 오래 붙잡고 싶어하는 감독도 없거니와, 팬들이 붙잡는다고 국대에서 부르는데 가지 않을 감독도 없다는 말이다.
황보관 축구협회 기술위원장
감독상을 두 번이나 받은 명장이 국가대표팀에서 부른다는데 현 소속팀이 좋다며 가지 않겠단다. 이건 정말 꿈의 감독이다. ‘대승적 차원에서 쿨하게 보내준다’는 방어기제가 필요 없어지자, 전북 팬들은 최강희 감독의 열성적인 지지자가 됐다. 아니, 지지자 그 이상이다.
2011년 FA컵 16강전에서 전북은 부산에게 아깝게 졌다. 전북의 서포터들은 심판의 편파판정에 거세게 항의했고, 희대의 훌리건 사건으로 비화하려던 찰나, 피치에 최강희 감독이 나타났다. 그러자 당장이라도 폭력사태를 일으킬 것 같던 팬들이 각을 잡고 착석하는 기적이 일어났다.
전북 팬뿐만이 아니다. 최강희는 케이리그에 한 명쯤은 반드시 있어야 하는 감독이다. ‘국대보다 소속팀을 더 사랑하는 감독’ 이 가지는 상징성은 크다. 케이리그 다른 팀의 팬들은 설령 배는 아플지라도 최강희를 좋아했고 지지해줬다. 드디어 한국에도 퍼거슨 같은 클럽축구의 명장이 나오는 것 같았다.
3. 전북이 원치 않았다.
최강희 감독이 국가대표팀을 맡기로 결정되자 전북현대 구단은 홈페이지에 공지를 올렸다.
구단은 오늘 열렸던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의 최강희 감독의 대표팀 감독 선임 발표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올 시즌 ‘닥공’으로 K-리그는 물론 아시아 전역에 최고의 팀으로 이끈 선장을 내줘야 한다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당초 최강희 감독이 여러 차례 전북현대에 남겠다며 고사를 했지만 대한축구협회의 끈질긴 설득으로 인해 벼랑 끝에 몰린 한국축구를 살릴 적임자이기에 그 뜻을 같이 했습니다. 특히 모 기업인 현대자동차가 FIFA의 공식 후원사로서 한국축구의 발전을 그 누구보다 원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 결정에 대승적인 차원에서 허락을 하게 됐습니다.
모 기업인 현대자동차가
모 기업인 현대자동차가
http://www.hyundai-motorsfc.com/news/news_board_view.asp?seq=38473&gbn=1&page=1
선수들은 물론이고 팬들도 아버지처럼 따르던 감독을 메인스폰서가 원하기 때문에 내준다는 말이다. 본기자 혼자 소설을 써보자면 축구협회에서 현대자동차로 압력이 들어가고, 현대자동차가 구단 프런트와 감독에게 압력을 넣어 최강희 감독이 팀을 떠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축구협회에서 현대 정씨일가의 영향력이 크고, 그렇기 때문에 축구협회와 프로축구 연맹은 축구에 관한 한 현대가와 협상력을 지닌다. 선수와 팬들이 만들어 놓은 꿈의 나라는 협회, 연맹 그리고 무슨 그룹 회장님들의 꼰대짓에 쉽사리 무너지곤 한다.
가장 단적인 예는 2010년, 울산의 ‘서산 홈경기 사건’이다. 세상에. 팀 이름이 울산인데 울산 홈경기가 충청남도 서산에서 열린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2010 K리그의 메인 스폰서가 현대오일뱅크였고, 현대 회장님께옵서 서산에 있는 현대 직원들의 사기진작을 위해 공놀이 이벤트 하나를 서산 직원들 보는 앞에서 치르고 싶어하셨던 것이다.
비슷한 예를 들자면 2002년 월드컵 한국대 포르투갈의 경기를 이라크 같은 데서 치르는 거라고 보면 된다. 이라크에 파병된 한국 병사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서 말이다.
위에서 꼰대들이 돈 가지고 뭐라 하는데 깨갱하지 않을 수 없다. 흔히들 말하는 ‘구단과 협회의 대화’ 는 사실상 ‘협회의 으름장’ 이었던 것이다.
4. 그렇다면 문제는 무엇일까.
조광래감독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이렇게 경질되길 원하지도 않았다. 조광래 감독은 12월 7일에 기습적으로 해임 통보를 받았다. 축구협회 기술위원회가 소집되기는 커녕 기술위원들이 선임되지도 않은 상태였다. 기술위원회 위원으로 확정된 사람을 위원장 황보관씨밖에 없었다.
조광래 감독은 본 기자를 포함한 많은이로부터 원성을 사고 있었고, 선수 차출과 관련해서도 축구협회와 갈등을 빚었다. 팬들의 원성이야 원래 감독의 업무중에는 ‘관둬라’ 라는 말을 듣는 것도 포함되어 있으니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그런데 선수 선발로 축구협회와 갈등을 빚는 것은 정말 문제가 있는 거다.
그렇다. 정말 심각한 문제가 축구협회에 있는 거다. 선수 선발은 감독 고유의 권한이며, 축구협회가 감놔라 대추놔라 할 사항이 아니기 때문이다. 간혹 축구협회가 선수 선발에 큰 권한을 행사하는 나라들이 있긴 한데, 그런 나라들을 우리는 ‘후진국’ 이라고 부른다.
축구협회는 이천수 국가대표 선발과 관런해서 공공연하게 영향력을 행사하더니, 나중에 조광래 전 감독이 ‘선수 선발에 외압 있었다’ 라고 말하자 사실무근이라며 반발했다. 이것 참 웃기는 거다.
어쨌든, 조광래는 하루아침에 감독직을 잃었고, 전북의 팬들은 절대적으로 믿고 의지했던 영웅 최강희를 빼앗겼다. 마치 독립운동 하던 아버지가 일본 순사한테 끌려가는 것을 보는 것 같다. 끌려가던 아버지는 뒤를 돌아보고 자식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최종예선만 통과하면 복귀하겠다.’
5. 관 때문이야
조광래 경질 및 최강희 납치의 중심에는 한때의 축구영웅 황보관 기술위원장이 있다. 황보 위원장은 축구협회 회장단과 직접 논의를 했다고 밝혔고, 따라서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니까 회장님들하고 다 이야기 된 거니까 기술위원회니 절차니 하는 거 다 필요 없다는 말이다. 원칙이나 절차가 아니라 회장님의 권위에서 당위성을 찾는 저 모습. 어디선가 본 것 같기도 하다.
황보관 감독. 그는 2011 시즌에 FC서울 감독을 맡으며 축구계의 간디로 떠올랐다. 비폭력 무저항 원칙에 입각하여, 국내 최대규모 구단이면서도 시민구단들에게까지 승점 3점씩을 꼬박꼬박 헌납하는 황보감독의 인자함은 케이리그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이런 유능함을 질투한 축구협회는 황보감독이 FC서울에서 사퇴하자마자 그를 축구협회 기술위원장으로 불러들였다. 황보 위원장이 다른 것은 몰라도 정치력 하나는 으뜸이라고 생각되는 것이, 그가 일본과 한국에서 감독으로 그렇게 죽을 쒔는데도 끝까지 살아남아 축구협회에서 중용되고 있는 것이다. 역시 유능하다.
사실 축구판에서 정치 잘 하는 사람 끝까지 책임져 주는 평색복지 시스템은 이미 오래전에 정착됐고, 공공연한 비밀이다. 단적인 예는 대구FC에서 용병을 영입하면서 돈을 먹고 잘린 변병주 전 감독이 상주상무 전력분석관이 될 뻔한 사건이다. 지들끼리 해쳐먹으면서 말 잘 듣는 사람 꼬박꼬박 챙겨주고 있는 것이다.
이번 조광래 경질은 앞 뒤 다 빼고 봐도 문제가 있다. 회장단이 황보관 위원장에게 지시했는지, 황보 위원장이 독단적으로 처리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어쨌든 이렇게 막무가내로 처리 할 문제는 아니었다. 썩어빠진 축구판의 최전선에는 황보관이 있다.
아외로워
트위터 : @vforveri
첫댓글 변병주감독... 참 괜찮게 생각했던 사람이였는데....에효...
황10보 저새끼 낯짝을 확 찢어버리고 싶다... 쥐새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