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4일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군중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1-8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배에 오르시어 호수를 건너 당신께서 사시는 고을로 가셨다.
2 그런데 사람들이 어떤 중풍 병자를 평상에 뉘어 그분께 데려왔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얘야, 용기를 내어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3 그러자 율법 학자 몇 사람이 속으로 ‘이자가 하느님을 모독하는군.’ 하고 생각하였다.
4 예수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에 악한 생각을 품느냐?
5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6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그런 다음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 네 평상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7 그러자 그는 일어나 집으로 갔다.
8 이 일을 보고 군중은 두려워하며,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오늘 복음에서는 아주 쉽게 지나쳐 버릴 수 있는 말씀이 있습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이 소홀히 지나칠 수 없는 말씀이지만 유독 오늘의 말씀이 마음에 새겨지는 것은 ‘사람들’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어떤 중풍 병자를 평상에 뉘어 그분께 데려왔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얘야, 용기를 내어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중풍병자는 혼자서 걸을 수도 없고, 심지어는 말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평상에 그를 뉘어 주님께 데리고 왔습니다. 평상을 옮기려면 적어도 네 사람이 평상을 들어야 합니다. 중풍 병자 한 사람을 예수님께 데리고 오기 위해서 네 사람이 한 마음이 되어 움직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중풍병자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를 고쳐주시는 것이 아니라 중풍병자를 데리고 온 사람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를 용서하여 주시고, 병을 고쳐주십니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습니다. 어려운 일이거나 힘든 일은 서로 도우면서 살아야 합니다. 특히 슬픈 일에는 위로하면서 지내야 하고, 기쁜 일에도 같이 기쁨을 나누면서 지내야 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 사람들은 대부분 친구들입니다. 친구들이 아니면 이웃들입니다. 이웃을 형제들이라고 하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가족 중심의 사회에서 점점 핵가족 중심의 사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핵가족은 너무 외로워졌습니다. 그래서 사람들끼리 공동체를 꾸리며 살아가야 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의 세상의 모습은 다양하고 많은 공동체가 많이 발전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어떤 유대감과 친근감이 있는 공동체의 발전이 당연한 결과라는 것입니다. 그런 반면에 점점 이기적인 사회로 변할 것이라는 견해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사회가 점점 각박해지고 경제적으로 힘들어지면서 이웃을 돕는 마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기부행위가 줄어들 뿐만 아니라 공동체 의식마저 점차 줄어들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점점 이기적인 사회에 익숙해져 가고 있습니다. EU는 유럽이 경제적으로 공동체를 이뤄서 엄청난 힘을 발휘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해 영국이 국민투표를 해서 EU로부터 탈퇴를 선언했습니다. 그 여파가 지금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파급되고 있습니다. 영국 사람들은 영국이 EU에 부담하는 30조원에 이르는 부담금을 영국 자국민의 복지에 쓸 것과 난민들의 유입과 난민들을 위해서 많은 경제적 부담을 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 EU를 탈퇴하는 편에 표를 던진 것입니다. 세계도 이제는 이기적인 자국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사회로 변하고 있습니다. 미국도 모든 수입품에 엄청난 관세를 부과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수출하는 자동차에도 관세를 높인다고 합니다. 이렇게 보호무역이 다시 급상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래서는 안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와 같이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위해서 힘을 모아야 합니다. 병든 사람을 오늘 복음에서와 같이 돌봐야 합니다. 힘으로 할 수 없다면 기도로 응원해야 합니다. 또한 이기적인 사회에서 공동체적인 사랑으로 똘똘 뭉친 사랑의 공동체로 변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기적인 사회를 공동체적인 사회로 변화시키는 주역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을 보고 주님의 용서를 받고, 주님의 은총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나의 선행을 보고 나를 구원해 주시겠지만 우리의 공동체의 사랑을 보시고 우리 공동체의 믿음을 보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실 것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우리의 형제적 사랑을 보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가서 내 백성에게 예언하여라.>
▥ 아모스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7,10-17
그 무렵 10 베텔의 사제 아마츠야가 이스라엘 임금 예로보암에게
사람을 보내어 말하였다. “아모스가 이스라엘 집안 한가운데에서 임금님을 거슬러 음모를 꾸미고 있습니다.
이 나라는 그가 하는 모든 말을 더 이상 참아 낼 수가 없습니다.
11 아모스는 이런 말을 해 댑니다. ‘예로보암은 칼에 맞아 죽고 이스라엘은 제 고향을 떠나 유배를 갈 것이다.’”
12 그런 뒤에 아마츠야가 아모스에게 말하였다. “선견자야, 어서 유다 땅으로 달아나,
거기에서나 예언하며 밥을 벌어먹어라.
13 다시는 베텔에서 예언을 하지 마라. 이곳은 임금님의 성소이며 왕국의 성전이다.”
14 그러자 아모스가 아마츠야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예언자도 아니고 예언자의 제자도 아니다.
나는 그저 가축을 키우고 돌무화과나무를 가꾸는 사람이다.
15 그런데 주님께서 양 떼를 몰고 가는 나를 붙잡으셨다.
그러고 나서 나에게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16 그러니 이제 너는 주님의 말씀을 들어라. 너는 ‘이스라엘을 거슬러 예언하지 말고
이사악의 집안을 거슬러 설교하지 마라.’ 하고 말하였다.
17 그러므로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 아내는 이 성읍에서 창녀가 되고 네 아들딸들은 칼에 맞아 쓰러지며
네 땅은 측량줄로 재어 나누어지고 너 자신은 부정한 땅에서 죽으리라.
그리고 이스라엘은 제 고향을 떠나 유배를 가리라.’”
축일7월 4일 성녀 엘리사벳 (Elizabeth)
신분 : 여왕, 3회원
활동 지역 : 포르투갈(Portugal)
활동 연도 : 1271-1336년
같은 이름 : 엘라, 엘리자베스, 엘리자벳, 엘리제, 이사벨, 이사벨라
성녀 엘리사벳(Elisabeth)은 에스파냐 아라곤(Aragun)의 왕 페드로 3세(Pedro III)와 시칠리아(Sicilia)의 왕 만프레디(Manfredi)의 딸인 콘스탄스(Constance) 사이에서 태어났다. 페드로 3세 왕은 자신의 딸이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위해 헌신한 그녀의 고모할머니인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11월 17일)을 본받으라고 같은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녀는 12세의 어린 나이에 포르투갈의 왕 데니스 1세(Denis 또는 Dinis I)와 결혼하여 오랫동안 자녀를 낳지 못하다가 후에 남매를 얻었다. 딸 콘스탄스는 후에 카스티야(Castilla)의 왕인 페르난도 4세(Fernando IV)와 결혼해 왕비가 되었고, 아들은 포르투갈의 왕위를 승계해 아폰수 4세(Afonso IV)가 되었다.
데니스 1세 왕은 능력 있는 강력한 통치자였지만 남편으로서는 칭찬받지 못할 사람이었다. 성녀 엘리사벳은 남편의 불신앙을 감내하면서 자신이 낳지 않은 서자들의 교육까지 담당했다.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기도와 경건한 삶을 추구하며 자선 사업에도 힘써 병원 · 고아원 · 매춘 여성들의 보호소 · 양로원 등을 설립하고, 순례자와 가난한 이들을 위한 숙소도 마련해주었다. 성녀 엘리사벳은 남편의 냉대에도 인내심을 갖고 대했고, 1297년 이복형제들에게 관대한 아버지의 행동에 분개한 아들 아폰소 4세와 남편 사이의 대립을 중재하고 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런 그녀의 노력과 정치적 영향력 때문에 오해를 받아 한때 알랑케(Alenquer)로 추방되기도 했다.
성녀 엘리사벳은 1324년 남편 데니스 1세가 병을 얻자 헌신적으로 간호해 주었다. 그녀의 정성에 감동한 남편은 뒤늦게 회심하고 신앙을 찾았지만, 이듬해에 선종하고 말았다. 남편으로부터 많은 재산을 물려받은 성녀 엘리사벳은 아들이 왕위를 승계한 후 수도원 · 교회 · 빈민 구제소 등을 세우는데 자신의 재산을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그리고 코임브라(Coimbra)에 자신이 세운 성녀 클라라(Clara)의 가난한 자매 수도회 근처로 거처를 옮겼다. 그녀는 그곳에서 수녀가 되겠다는 이상은 포기했지만, 작은 형제회의 3회원이 되어 수도자 못지않은 엄격한 보속의 생활과 봉사활동에 전념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했다.
‘평화와 중재의 사도’로 알려진 성녀 엘리사벳은 말년에도 포르투갈과 카스티야의 전쟁을 막아내는 역할을 했다. 그녀는 1336년 7월 4일 아들인 아폰수 4세와 카스티야의 왕이자 자신의 조카인 알폰소 11세(Alfonso XI) 간의 평화를 중재하러 가능 도중 과로와 열병으로 인해 병을 얻어 에스트레모스(Estremoz)에서 선종했다. 전쟁을 막기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 바친 그녀의 유해는 코임브라의 성녀 클라라의 가난한 자매 수도회 성당에 묻혔고, 두 왕은 후에 동맹을 맺었다.
성녀 엘리사벳은 1516년 교황 레오 10세(Leo X)에 의해 복녀로 선언됨으로써 코임브라 교구에서 공식적으로 공경 예절이 허락되었고, 1626년 교황 우르바누스 8세(Urbanus VII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1630년 “로마 순교록”에 성녀의 축일이 7월 4일로 수록되어 있었으나, 1695년에 교황 인노켄티우스 12세(Innocentius XII)는 6월 29일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8일 축제(현재는 폐지되었음)와 겹치는 관계로 7월 8일로 바꿨다. 하지만 1969년 전례력 개정과 함께 선택 기념일로 변경되면서 축일 또한 천상 탄일(선종일)인 7월 4일로 복원되었다. 그녀는 흔히 포르투갈 또는 아라곤의 이사벨라(Isabella, Isabel)로 알려져 있다.
교회 미술에서 성녀 엘리사벳은 평화와 중재의 사도답게 대개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 혹은 올리브 가지가 그려진 왕비의 옷을 입고 있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과 마찬가지로 장미의 기적을 주제로 한 작품도 많이 있다. 14세기의 한 제대에 기록된 바에 따르면, 어느 겨울 아침에 성녀가 성을 나와 가난한 사람들에게 동전(또는 빵)을 나누어주었는데, 그녀와 마주친 왕이 무엇을 감싸고 있냐고 묻자 ‘주님의 장미’라 답했고, 1월임에도 불구하고 풀어헤친 앞치마에는 장미가 있었다고 한다.
오늘 축일을 맞은 엘리사벳(Elizabeth) 자매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