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사건·사고가 부쩍 잦다. 신림역 묻지마 살인사건 과 서현역 칼부림 사건 같은 범죄부터 각종 재해에 자살 사고까지, 날마다 쏟아지는 뉴스가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이런 사고를 직접 겪은 사람은 물론 간접적으로 접한 사람들도 스트레스를 호소하는데, 이런 아픔은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글 신준영(마인드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과장) 일러스트 아몽(@among_studio)
마음의 병에는 시간이 특효
칼부림 사건 과 같은 범죄 피해자가 우울·불안·불면을 호소하면 먼저 급성 스트레스 장애(acute stress disorder)를 의심해야 한다. 이 질병의 지속 기간은 대개 한 달 미만인데, 증세가 계속된다면 외상후스트레스장애(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이하 PTSD)로 진단한다. 급성 스트레스 장애와 다르게 외상 후 반복적인 회상, 재경험, 악몽 같은 증상을 동반하는 것이 PTSD의 특징이다.
흔히 PTSD와 혼동하는 질병이 적응장애다. 적응장애는 일상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우울·불안·불면 등 증상을 겪는 경우다. 원인이 다를 뿐 증상 자체는 PTSD와 유사하다. 만약 특정 사건에 대한 뉴스를 읽고 불안감이 발생했다면 이는 사건에 직접 노출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적응장애에 가깝다. 적응장애는 PTSD와 달리 대개 반년 안에 증상이 자연스럽게 해소된다.
PTSD의 원인인 외상성(外傷性) 사건은 생명을 위협하는 신체적 정신적 충격을 준 사건을 말한다. 이런 경험을 직간접적으로 겪은 주변 지인과 환자들로부? 받은 질문을 모았다. 실제 사례를 보며 PTSD에 대해 알아보자.
Q: 최근 주변에서 친구가 폭행당하는 끔찍한 사건을 겪고 불면에 시달리고 있어요. 제가 직접 당한 것은 아니고 그 장면을 목격했을 뿐인데, 자꾸 생각나고 그 장면이 떠올라서 잠도 못 자고 불안해요. 검색해보니까 PTSD나 적응장애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하던데, 저는 어떤 경우인가요?
A : 증상이 1개월 이상 지속됐다면 PTSD가 의심된다. 사건의 직접피해자가 아니더라도 외상성 사건을 목격했다면 PTSD 진단 기준에 맞다. 다만 폭행의 정도가 생명을 위협하는 정도가 아닌 수준인데도 이러한 증상을 겪고 있다면 적응장애를 의심할 수 있다.
Q: 묻지마 살인사건 뉴스를 보고 궁금해서 영상을 찾아봤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너무 끔찍했어요. 영상을 본 뒤로 자꾸 그 장면이 머릿속을 맴돌아요. 그리고 내 주변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불안하고 길을 걸을 때 과도하게 경계해요. 제가 PTSD일까요? 사고 영상을 본 것만으로도 PTSD에 걸릴 수 있을까요?
A : 이 경우 PTSD 진단에는 부합하지 않는다. 직업적으로 외상성 사건에 자주 노출되거나 직접 목격한 것이 아니라 영화나 매체를 통한 노출은 PTSD로 진단하기 어렵다. 다만 매체를 통한 반복적인 자극은 적응장애를 유발할 수 있으니, 영상을 본 후 장면이 자꾸 머릿속에 맴돈다면 비슷한 영상 시청을 자제해야 한다.
Q : 최근 주변 사람이 자살한 뒤로 마음이 너무 안 좋고 저도 우울해지는 것 같아요. 직접 사건을 목격한 것은 아닌데도 자꾸 우울한 마음이 오래가는 것 같아서 걱정돼요. 저는 어떤 경우일까요?
A : 직접 사건을 목격한 것이 아니라면 PTSD로 볼 수 없다. 이 경우 지인에 대한 애도 반응과 우울증이나 적응장애로 판단할 수 있다.
[PTSD 치료는 시간과의 싸움]
위 사례를 보면 비슷한 사건을 겪은 사람 간에도 사건의 내용과 노출 방식에 따라 진단 결과가 다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PTSD를 진단받았다면 어떻게 치료해야 할까? PTSD를 치료할 때는 약물치료, 인지행동치료, 바이오피드백(biofeedback)이나 경두개 자기 자극법(TMS) 같은 방법을 쓴다. 이 중 약물치료는 항우울제나 항불안제를 이용하는 방식이다. 항불안제는 장기간 사용 시 내성이 생기거나 금단증상이 나타날 수 있으므로 주의한다. 인지행동치료는 환자를 사건에 천천히 노출시키면서 증세 호전을 꾀하는 방법이다. 대개 전문의나 전문상담사의 입회 하에 시행한다. 인지행동치료 중 안구운동 민감소실 및 재처리 요법(EMDR)은 PTSD에서만 특별하게 쓰이는 치료법이다. 눈을 양 옆으로 움직이면서 사건에 대해 상상하며 감정을 다독이는 것이다. 바이오피드백은 외상성 자극에 대한 환자의 반응을 객관적 수치로 환산한 뒤 그 추이를 보며 치료하는 방법이다. TMS는자기장을 이용한 치료법으로 PTSD뿐 아니라 우울증에도 쓰인다.
PTSD 치료는 약물치료를 제외하면 결국 외상성 스트레스에 대한 감정 소화가 핵심이다. 전문가가 지켜보는 가운데 사건에 반복적으로 노출시키는 것이 치료의 근간이라 할 수 있다. 워낙 큰사건이라 뇌가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감정을 천천히 나눠서 소화하는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시간이 지나면 큰 사건이 일으킨 감정도 처리되기 마련이다. 혹시라도 주변의 사건 때문에 커다란 감정에 압도되고 있다면 언제든 가까운 정신건강의학과나 심리 상담 센터에서 도움을 받아보자.
[혹시 나도? PTSD 체크리스트]
□ 스트레스 경험에 대한 괴로운 기억이 반복적으로 떠오른다
□ 스트레스 경험에 대한 악몽을 꾼다
□ 스트레스 경험을 다시 체험하는 것처럼 느낀다
□ 스트레스 경험을 생각하면 마음이 힘들다
□ 스트레스 경험을 떠올리면 강렬한 신체 증상이 나타난다
□ 스트레스 경험 관련 기억·생각·감정을 피한다
□ 스트레스 경험을 떠오르게 하는 요소를 피한다
□ 스트레스 경험의 중요한 부분을 기억하기 어렵다
□ 나 자신 혹은 세상에 대한 부정적인 신념을 가지게 됐다
□ 스트레스 경험 이후 자신이나 다른 이를 탓한다
□ 두려움과 수치심 같은 부정적 감정에 휩싸여 있다
□ 이전에 즐겁게 하던 활동에 관심을 잃었다
□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멀거나 끊어졌다고 느낀다
□ 긍정적 감정을 느끼? 어렵다
□ 신경질을 부리거나 분노 폭발, 공격적 행동을 한다
□ 위험한 행동이나 자신에게 해가 되는 행동을 한다
□ 예민하게 늘 주변을 살피고 경계한다
□ 작은 일에도 쉽게 놀란다
□ 집중하기 어렵다
□ 잠들기 어렵거나 깨지 않고 쭉 자기 어렵다
* 8개 이상 해당 되면 PTSD 고위험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