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한영 베드로 신부
주님 공현 대축일 전 토요일
마르코 1,7-11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세상의 아름다움을 많이 보지만 동시에 험악함도 많이
보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이어서 아름답지만, 아담과 하와의 원죄와
카인의 살인 같은 죄가 가득한 이 세상의 추악함을 대면하게 됩니다.
요한 사도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까?” 사도의 이 말씀은 타락한 세상을 구원하시는 예수님에 대해 증언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고, 그 영원한 생명은 예수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고 증언하면서,
그분을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아들,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아들’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구세주로 모시면서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험악한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붙잡아 주시고
끌어 올려 주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모시면서 점점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
하느님께서 흐뭇해하시는 사람으로 변합니다.
우리는 성령 안에서 하느님의 자녀가 지니는 특권을 누리며 삽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이기는 사람, 승리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영적 싸움에서 승리한 사람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주어집니다.
미약한 우리의 삶은 영원한 생명의 은총으로 채워집니다.
청주교구 류한영 베드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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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요비 욥신부님
주님 공현 대축일 전 토요일
마르코 1,7-11
작년 가을, 아주 어린 시절에 우리 가족에게 교리교육을 해주신 인보성체수도회
오 수산나 수녀님이 사진 한 장을 보내주셨다.
이 사진은 단기 4291년(1958년) 4월 6일에 찍은 흑백사진으로,
어머님이 청평본당에서 윤을수 신부님(인보성체수도회 설립자)께 세례를 받고 찍은
가족사진이다.
어렸을 때 본 기억이 있었는데, 중간에 잦은 이사로 분실하여 늘 마음으로 아쉬워했었다.
가족들이 아버지·어머니 주위에 서 있는데 묘하게도 내가 제일 가운데 있고,
아버님의 친구이셨던 고 김홍섭(바오로) 판사님이 우리와 함께하셨다.
그렇다! 「무상(無常)을 넘어서」의 저자,
지금까지도 법조인의 귀감으로 존경받는 사도 법관 김 판사님이
주말이면 우리집 사랑방에 머물며 전도하시던 기억이 난다.
그 선하고 마냥 온유하고 인자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 사진을 크게 확대하여 서재에 모시니 방안이 따스하게 안정을 찾은 듯하다.
전통적 유교문화에서 살아온 한 가정이 가톨릭 신앙으로 귀의한 것은
그 가정의 역사가 구원의 역사로 전환된 것을 뜻하며
각 사람한테는 새로운 생명의 탄생,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 것이다.
이를 두고 사도 요한은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모두 세상을 이기기 때문입니다”
(1요한 5,4)라고 선언하신다.
세례는 예수님의 영이 우리 인간 안에서 이루시는 새로움이다.
예수님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성모님의 태중에서 잉태되시고 태어나셨듯이
같은 성령께서 우리 인간 각자 안에서 그리스도의 탄생을 이룩하심이다.
이는 우리가 하느님의 양자(養子)가 됨을 말함이니,
“이 성령의 힘으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 하고 외치는 것입니다”(로마 8,15ㄴ).
서울대교구 구요비 욥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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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영 신부님
주님 공현 대축일 전 토요일
마르코 1,7-11
주님 공현 대축일을 준비하면서 우리는 오늘 주님의 세례 장면을 복음으로 듣게 됩니다.
복음을 묵상하면 다음 두 가지가 의문으로 다가옵니다.
첫 번째는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왜 죄 사함의 방법인 세례를 받으셨을까?’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주님의 공현 축일과 예수님의 세례는 과연 어떠한 관계가 있는 것일까?’
하는 부분입니다.
먼저 주님의 공현 축일과 세례와의 관계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동방박사의 방문으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의 증언, 제자들의 믿음과 추종 등을 통해서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이심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특히 세례자 요한에게서 받은 세례를 통해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드님이시오,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이심이 더욱 분명하게 밝혀집니다.
“물에서 올라오신 예수님께서는 곧 하늘이 갈라지며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당신께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마르1,10)
이어서 예수님을 직접 증언하는 하느님의 소리가 들려옵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르1,11)
이렇듯이 세례를 통해서 하느님께서는 삼위일체의 하느님이시며
예수님은 사랑하시는 아드님이시며, 성령이 함께 하시는 메시아이심이 확인됩니다.
사실 세례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요한도 예수님을 잘 알지 못했다고 고백한 바 있습니다.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물로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그분께서 나에게 일러 주셨다. "
"성령이 내려와 어떤 분 위에 머무르는 것을 네가 볼 터인데,
바로 그분이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다. "
"과연 나는 보았다. 그래서 저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내가
증언하였다."(요한1,33-34)
요한은 세례를 통해서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확신하게 되고 더욱 힘차게 증언합니다.
세례를 통해서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이심을 드러낸 예수님께서는
지금까지의 30년간의 사생활을 떠나 공생활을 시작하지요.
이렇게 세례는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더욱 분명하게 드러낸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공현 대축일을 준비하면서 주님의 세례에 관한 복음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첫 번째 질문인 왜 죄도 없으신 예수님께서 죄 사함의 방법인
세례를 받으셨는지에 대한 답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요한도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러 요르단 강을 찾으셨을 때 황송하고 두려운 나머지
“제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선생님께서 저에게 오시다니요?"(마태3,14)
하고 사양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지금은 이대로 하십시오. 우리는 이렇게 해서 마땅히 모든 의로움을
이루어야 합니다."(마태3,15)하시면서
당신께서 세례를 받아야 함을 설득하셨습니다.
많은 신학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죄도 없으신 상태에서 세례를 받으신 이유는
누구나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줌과 동시에
세례 성사는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행해지며,
누구나 성령을 받을 수 있음을 몸소 보여주신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 역시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마르1,8)고 증언하며, 세례를 통한 성령의 은사를 확인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성부, 성자, 성령의 세례를 이후에도 여러 번 증언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요한3,5)
또 승천하시는 그 중요한 순간에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마태28,19-20)하고 당부하셨습니다.
세례가 이처럼 중요한 성사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몸소 세례에 참여하셨고,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받을 것이라고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몸소 보여주신 그대로 세례를 통하여 죄에서 죽고
영원한 생명에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세례는 죄가 있으셔서 받으신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세례의 중요성과 그 은총을
가르쳐 주시기 위한 모범이었던 것입니다.
주님 공현 대축일을 준비하면서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또 한 번 증언합니다.
그리고 겸손하게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내 뒤에 오신다.
나는 몸을 굽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마르1,7)고 증언합니다.
자신보다 더 큰 스승이 나타나자 제자들을 향해 그분을 따라가라고 지시하는
요한의 강직한 모습에서 우리는 진리를 읽습니다.
드러나셔야 하실 분은 오직 한 분, 주님뿐이십니다.
다가오는 주님 공현 대축일을 잘 준비하는 하루되시기를 바랍니다.
부산교구 권우영 신부님
-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에서 참조
가톨릭사랑방 catholicsb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