둑길에서 들녘으로
연일 한낮 기온이 30도 부근까지 오르는 오월 하순이다. 금요일도 이른 아침 자연학교 등굣길에 올랐다. 어제는 동읍 용산마을에서 주남저수지 둑길을 걸어 백양 들판을 지나 가술로 향했다. 날씨가 선선한 아침에 둑길과 들길을 두어 시간 걸어 대산 마을도서관에서 두세 시간 책을 펼쳐 읽었다. 금요일은 마을도서관 열람실이 어르신 문해 교실과 겹쳐 이번엔 건너뛰어 볼 요량이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월영동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다가 소답동에서 1번 마을버스로 갈아탔다. 이른 아침 생업 현장으로 나가는 중년 남녀들과 같이 용강고개를 넘어가 동읍 행정복지센터를 지났다. 주남저수지를 비켜 대산 산업단지에 이르니 승객은 줄어 가술을 지난 모산에서 한 아주머니가 나를 제외한 마지막 손님으로 내렸다. 그 아주머니는 비닐하우스로 일을 나가는 듯했다.
나는 비닐하우스 일손도 아니면서 제1 수산교 정류장을 지난 신전 종점까지 갔다.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마을 규모에 비추어 인적이 드문 골목을 지났다. 빈집이다시피 인기척이 없는 담장으로는 장미가 넝쿨로 타고 가면서 풍성한 꽃을 피웠다. 마당귀에 자라는 석류나무에서도 열매와 같은 꽃송이가 달렸다. 마을 안길을 벗어나 하옥정으로 가는 들길로 나가자 넓은 농지가 펼쳐졌다.
비닐하우스에서는 풋고추와 토마토를 키웠고 노지에 심은 감자는 꽃이 피어 한창 덩이뿌리가 굵어져 갈 듯했다. 작년 가을에 굴삭기로 뿌리를 캔 연근 농사를 짓는 무논에는 올해도 심어둔 연이 파릇한 잎을 펼쳐 자랐다. 연근은 제초제나 농약을 뿌리지 않은 친환경 농사로 고소득 작목이었다. 진흙에서 뿌리를 캐 상품으로 다듬는 절차는 일손이 가고 다소 번거로움이 따를 듯했다.
북면에서 한림으로 뚫리는 60번 도로 옥정 교차로에 이르러 4대강 사업 자전거 길 따라 수산 방향으로 걸었다. 본포에서 강심을 가로질러 학포로 건너는 다리가 보였고 강 건너편 반월 습지는 갯버들이 무성했다. 둑길에서 가까이 내려다보인 둔치는 드넓은 평원처럼 보였다. 창원 시민 식수원으로 삼는 강변 여과수를 퍼 올리는 취수정이 있어 4대강 사업 때 모래를 남겨둔 곳이다.
둑길 언덕엔 어릴 적 쇠꼴을 베러 나가 간식으로 뽑아 먹은 삘기가 쇠어 허옇게 꽃이 피어 바람에 하늘거렸다. 길섶에는 이즈음 대산이나 수산만큼 성하지는 않아도 노란 금계국이 흔하게 피어났다. 대산 정수장이 가까워진 부근을 지나자 물뱀 한 마리가 빠른 동작으로 시멘트 포장을 가로질러 둔치 풀숲으로 사라졌다. 무자치로도 불리는 물뱀은 독성이 없는 습지 서식 파충류였다.
대산정수장을 지나 국도에 걸쳐진 통로를 빠져나가 습지로 방치된 숲으로 들어가 봤다. 찻길에 막혀 물억새가 밀림처럼 무성해도 멧돼지나 고라니도 접근하지 못하는 외딴섬과 같았다. 높이 자란 뽕나무에 까맣게 익은 오디가 가득 달려 손을 뻗쳐 따 입에 넣자 달달한 맛이 느껴졌다. 우거진 대숲에는 죽순이 솟아나 쇠지 않은 몇 개를 골라 꺾어 껍질을 벗겨 배낭에 챙겨 넣었다.
대숲을 빠져나가자 우엉을 가꾸는 모래밭에 이어 농가와 강변의 초등학교가 나왔다. 어디론가 흘러가는 수로에서 아까 오디를 따 먹으면서 보라색으로 물든 손을 씻고 이마의 땀도 훔쳤다. 찻길을 건너 비닐하우스가 펼쳐진 들판을 지났다. 농사일을 하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아도 풋고추나 토마토는 수확이 계속될 테고 수박 농사는 끝나 비닐을 걷어 철골을 뽑아 모를 낼 준비를 했다.
구산마을 동구 밖에 이르자 해는 중천으로 솟아 정자에 올라 쉼터 삼아 따가운 볕살을 피했다. 가술까지 남은 여정을 마무리 지으려고 정자에서 내려오니 조경수로 심어둔 단정화가 꽃을 피워 나비들이 날아와 나래짓을 펼치며 놀았다. 곁을 좀체 주지 않으려는 노랑나비를 사진에 담은 뒤 죽동천 천변을 따라 걸어 가술에 닿았다. 카페에 들어 얼음 커피와 술빵으로 점심을 때웠다. 24.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