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가지가지의 생활의 과정에서 이른바 덧없는 세상의 무정함.
가련함, 슬픔에 직면하고 일상생활에서 반성을 찾는 기회에,
대개 조우하도록 짜여 있습니다.
친한 사람과의 사별, 사회적 모순, 건강문제, 어떻게도 되지 않는 운명의 장난,
살기 위한 노력 등..
그 인생의 어딘가의 시점에서 반드시 한 번이나 두번, 아니 몇 번,
수도 없이 멈추어서서 자신을 되돌아 보는 기회를 만나는 것입니다.
이 때가 말하자면 전세(前世)에서 배운 것에의 향수인 것입니다.
노스텔지어입니다.
인간은 무엇때문에 태어나서, 어디로 가는 것인가,
죽음이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어떤 사람이라도 가슴을 스칩니다.
가슴을 스칠 때, 그 사람이 만약,
이제까지의 잘못된 삶의 방식에서 정신적인 방향을 찾아내어,
올바르게 살려고 원한다면,
그 사람은 저 세상에서 배운 것의 몇 퍼센트인가를 현실에 살리는 것이 되지요.
그 반대로 그것은 그것, 이것은 이것이라고 딱 잘라 결론지어
육체적인 감각만을 다시 쫓아 간다면,
그 사람은 저 세상으로 돌아 갔을 때에,
태어날 때의 약속을 파기한 것이니까,
다시 한 번 천 년, 이천 년, 저세상에서 수행을 다시 합니다.
그렇게 해서 이 세상에 태어날 때는,
전세와 똑같은 상황아래서, 생활을 하고
그 사람이 약속을 깨닫지 않는 한,
같은 운명을 2번, 3번이나 반복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전(前)의 세상에서 부자로 태어나,
돈에 고통받지 않는 일생을 보냈으나,
부자이기 때문에 남을 깔보고 자만심이나 우아한 생활에 길들어,
곤란한 사람들을 구한 것이 없었으니까,
다시 한 번 그러한 환경에 자기자신을 두고, 자신을 직시하게 됩니다.
일견 이러한 생활은 편해서 좋은 것같이 보이는데,
저세상으로 돌아가고부터가 큰일입니다.
마음은 교만함으로 거들먹거리고, 그위에 우아한 생활에 너무 익숙해졌기 때문에
우선 교만한 인간이 모인 에고의 세계로 갑니다.
에고의 세계에 마음의 평안은 없습니다.
동류(同類)가 모인 세계이니까,
'내가' '내가'라고 하는 싸움의 와중에 말려들어,
오른 쪽을 봐도 왼쪽을 향해도 적들 뿐,
부자인데도 불구하고 남에게 베푸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돈에 집착하고 아귀계라고 하는 세계가 전개됩니다.
지상계와 달라서 자기가 말하는 것을 듣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무엇을 하더라도 혼자입니다.
남의 돈을 훔치더라도 자기가 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아한 생활로 완력은 약한 몸이기때문에
패배의 쓰라림을 오랜 기간, 경험하게 됩니다.
이 지상계는 테스트하는 수행의 장이므로,
부자이든, 가난한 자이든 그러한 환경 속에서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움직여,
어떤 행위를 해 갈까가 문제이며,
이러한 환경에 지고 혹은 그것에 휩쓸려 버린 경우는,
그 테스트에 합격하지 못한 것이니까.
다시 한 번, 그러한 환경을 선택해서 자신을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것만큼 본인에게 있어서, 가혹한 운명은 없습니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업(業)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트 교에서는 원죄에 해당합니다.
업(業)도 원죄도 인간의 마음속에 사는 마(魔)입니다.
마(魔)의 작용입니다.
그 마(魔)가 인간으로 하여금 저 세상에서 배운 것이랑 목적을 잊어버리게 하고
오관에 의한 육근에 휘둘리는 원인을 만들고 있습니다.
마(魔)란 자기 본위의 감정입니다. 자아아욕입니다.
예를 들면 ' 돈은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좋다' 라는 자연스러운 감정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필요이상으로 선동합니다.
'만약 그대가 고개숙여 엎드려 나에게 절을 하면,
세상의 모든 나라와 그 영화를 그대에게 주리라.'
하자 예수는
' 악마여 물러가라 '
라고 일갈합니다.
악마는 예수의 강한 신념에 눌려서 달아납니다.
이 대목은 성서속에 쓰여 있습니다.
예수와 같은 신의 사자에게도, 그 마음속에, 악마는 숨어 있던 것입니다.
석가에 대해서도 6년의 고행중에, 여러가지 시련을 만나고 있습니다.
미녀의 한 무리에 둘러싸여, 정욕을 유혹받기도 하고,
수행의 무의미함, 깨달음에의 허무한 노력,
카피라의 낙원이 뇌리에 떠올라 옵니다.
몸은 야위어 마르고, 보기에도 처참한 패자의 모습이 눈 앞에 떠오르고,
출가의 목적이 안개 저 편으로 희미하게 숨고 맙니다
그러나 석가는
자기자신의 마음 속에 숨은 악마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초지를 굽히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석가도 악마에게 이겼던 것입니다.
우주대로 넓어진 자기자신의 모습을 볼 때,
인간의 본성을 앎과 동시에,
인간의 괴로움은,
자기속에 숨은 악마의 말에 휘둘리는 것에 있고,
이것마저 뛰어넘으면,
인간은 모두 신의 자식, 불(佛)의 자식이니까,
인간에게 주어진 참된 자유와 법열(法悅)을 수중에 넣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심행(心行)의 해설에서
다카하시 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