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농과 꾸러미사업으로 상품 경쟁력을 갖춘 충남 홍성 금창영 씨(42)
충청남도 홍성군 홍동면은 갓골어린이집과 국내 최초의 대안학교인 풀무학교,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등이 있는 유기농 특화마을이다. 2008년 홍동면에서 귀농 생활을 시작한 금창영 씨(42)는, 당시 30대 후반이란 젊은 나이에 귀농을 시작해 4년 만인 2011년 꾸러미사업을 시작하며 안정권에 접어들었다. 자연농법을 통한 유기농으로 경쟁력을 확보하며 성공적인 귀농생활을 펼치고 있는 그를, 볕 좋고 흙 좋은 감자밭에서 만나보았다.
가족 구성원, 모두의 행복이 우선
“귀농의 첫째 조건은 가족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홍동면은 그런 면에서 유기농 특화지역답게 선배 귀농인들이 많아 아내가 어울릴 수 있는 사람들이 많고, 훌륭한 교육시설이 갖춰져 있어 아이들에게도 적합한 지역이었습니다.”
금창영 씨의 귀농 선제 조건은 귀농의 목표이기도 했던 가족의 행복이었다. 충남 홍성군 홍동면은 이미 80여 명의 아이들을 교육할 수 있는 갓골어린이집과 국내 최초의 전통이 있는 풀무학교(대안학교)로 유명한 지역이다. 더욱이 유기농 특화마을로 국내에서 손꼽힐 만큼 전통과 규모가 있어 귀농인들에게 각광받는 지역이기도 하다.
서울에서 역사학연구소 연구원으로 근무하던 금 씨는, 사실 농사와는 무관한 삶을 살았던 지식인이었다. 아내 장현숙 씨 역시 10여 년간 출판사에서 근무하며 도시여자로 살아온 전문직 종사자였다. 그들에게 귀농이란 매우 어려운 결정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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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대학원에 다니며 역사학에 전념했던 터라, 아내의 갑작스러운 퇴직선언에 많은 고민을 했었죠. 서울에서 가장 노릇을 하기 위해 노력하다 결국에는 ‘아이들과 가족의 행복’을 찾아 귀농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30대 후반의 젊은 나이에 귀농을 감행할 수 있었던 것은 가족의 행복 외에 금 씨, 자신의 성격도 한몫했다. 어려서부터 흙을 좋아하고 농사를 좋아했던 그는, 땅을 일구고 작물을 심으며 행복감을 느낀다고 한다. 이를 설명해주듯 그는 결심과 함께 아무런 대책도 없이 덜컥 귀농 길에 들어섰다.
물론 처음부터 행복한 귀농 생활이 펼쳐진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그저 텃밭을 가꾸며 가족끼리 오순도순 살기 위해 귀농을 계획했기에, 작물을 선택하랴, 땅을 구하랴, 생계비를 마련하랴 어려움이 한둘이 아니었다. 이를 해결하고자 홍동면에 내려오기 전에는 친환경 쌀을 재배하는 농장에 취직하기도 했고, 홍동면에 와서는 남의 집에 얹혀 살며 4개월을 지내기도 했다. 어려움 속에도 그는 ‘가족의 행복’만을 떠올리며 ‘포기’가 아닌 ‘안정된 귀농의 삶’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아내 역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가족의 행복”이라며, 덧붙여 “남편의 가족에 대한 마음과 노력을 알기에 묵묵히 믿고 따랐다”고 말한다. 결국 그는 가족의 행복을 위하는 마음 하나로 끊임없이 노력한 결과, 현재의 행복한 귀농생활을 이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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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농법으로 상품 경쟁력을 확보하다
“드넓은 땅에서 대량 생산하는 농가들을 상대로 경쟁력을 확보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실 가격경쟁력과 판매 루트를 생각하면 불가능한 일이죠. 그래서 자연농법을 활용한 친환경 유기농 작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남의 밭 1천 평과 남의 논 1천 평에서 시작된 농사는 도시 청년에게 고난의 연속이었다. 친환경 농업도 어려웠지만, 무엇보다 힘들게 수확한 작물의 판매경로를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지인을 통해 꾸러미사업을 접하게 되었다. 그리곤 친환경 유기작물 시장의 새로운 활로라 판단하여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사업에 뛰어들었다. 꾸러미사업이란 한 작물만을 판매하는 것이 아닌, 한 박스에 여러 종류의 작물을 담아 직배송을 통해 구매자와 판매자가 일대일로 거래하는 판매사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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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만 보던 사람이 농사도 어려운데, 약도 안 치고 비료도 안 주고 비닐도 안 씌우고 농사를 짓자니 어려움은 컸지만, 품질만큼은 누구보다 자신이 있던 터라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처음 3명의 친구로부터 시작된 꾸러미사업은 2009년 6월 고객이 30명으로 늘어나며 안정권에 접어들게 되었다. 나아가 2011년에는 박스당 가격을 2만 5천 원에서 3만 원으로 인상하며 농가소득에 가속이 붙기 시작했다. 물론 가격 인상과 함께 100% 자연농법의 활용에 남다른 애정을 쏟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현재는 꾸러미사업을 통해 매주 120~180만 원을 벌어들이며 안정적인 귀농사례를 만들어가고 있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감자를 1박스 심으면 3박스가 나옵니다. 여기에 비료를 사용하면 8~10배가 됩니다. 비닐을 씌우면 16배가 되고, 농약을 치면 26배가 됩니다. 그런데 저는 비료도, 비닐도, 농약도 사용하지 않습니다.”
무식한 방법이다. 가격경쟁력은 물론이며, 터무니없는 수확량을 보면 “답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곧 경쟁력이 되어 현재는 특별한 마케팅을 활용하지 않더라도 입소문을 타고 그를 찾는 이들이 늘어가고 있다. 실제 꾸러미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그의 홈페이지(www.minjene.com)를 보면, 방문자의 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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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은 머리가 아닌 몸으로 하는 것
귀농·귀촌을 계획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최근 다양한 기관과 협회를 통해 지역 선정부터 작물을 고르는 방법, 판매 루트 등의 교육이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이러한 교육에 대해 그는 “농사는 머리가 아닌 몸으로 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땅을 고르고 씨를 뿌리고 수확을 해봐야 ‘아, 이거구나!’ 합니다. 책으로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익히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라고 강조한다.
남다른 추진력과 뚝심을 지닌 그였기에 농사에 대한 무지(無智) 속에서도 귀농에 뛰어들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말은 선배 귀농인의 하나같은 조언이기도 하다. 책에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한편으론 주식과 같다. 제아무리 책을 보고 지식을 쌓는다 해도 결과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일단 뛰어들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뛰어든 이후에는 앞만 보고 부지런히 달려야 한다는 것이다.
“귀농을 준비하는 많은 이들이 매뉴얼을 그리며 농사에 뛰어듭니다. ‘1+1=2’라는 식으로 말이죠. 귀농하려거든 일단 내려와서, 직접 몸으로 부딪히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또한 도시의 기준에 맞춰 큰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자신의 목표를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현재 그는 11곳의 농지, 4천 평(논 2천 평, 밭 2천 평)에 80~130여 가지 작물을 수확하고 있다. 계절마다 생산량도 작물도 각기 다르지만 꾸준한 수확으로 두터운 고객층을 확보하고 있다. 그가 말한 자신의 목표란, 앞서 말한 ‘가족의 행복’ 같은 소소하지만 처음에 가졌던 목표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가족과 오순도순 대화를 나누며 즐겁게 농사를 짓는 것처럼 말이다. 그 역시 새벽부터 저녁까지 고된 일을 하다 보면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현재 그는 처음의 목표대로 아내와 함께 농사를 짓고, 저녁이면 아이들과 함께 미소를 나누고 있다. 그것이 곧 목표를 이룬 귀농인으로서의 모습으로 모범이 되고 있다.
귀농은 나에게 ‘행복의 시작’이다
“각박한 도시와는 달리, 작은 일 하나도 함께 기뻐해 주고 함께 고민해주는 마을의 모습은 행복 그 자체입니다. 더욱이 흙을 좋아하던 제게 있어 귀농이란 ‘행복의 시작’ 그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귀농을 행복의 시작이라 말하는 그는, 덧붙여 후배 귀농인을 향해 통상적인 예의를 강조한다. 이는 마을주민과의 융화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홍동면으로의 귀농을 준비하면서 덜컥 ‘빈집을 알려달라’ 거나 ‘땅 좀 빌려 달라’ 그러면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는 “수시로 전화하고 밥도 먹고, 집에도 찾아가서 마을에 살고 싶다는 의지를 밝히는 것이 중요합니다. 귀농인이 마을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마을이 귀농인을 받아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됩니다. 진심으로 살려는 사람이라면, 당장 저라도 나서서 집을 알아봐 주고 땅을 알아봐 주는 게 당연한 사람의 이치 아닌가요?”라고 강조한다.
도시의 법은 어디까지 도시에서의 이야기일 뿐이다. 귀농이란, 그 마을주민이 되겠다는 의지인데 시골 마을의 경우 특히 주민의 도움 없이는 그 무엇도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마을주민으로 인정을 받고 함께 기쁨과 고민을 나눌 수 있게 된다면, 이후의 삶은 도시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행복한 일들로 가득할 것이다.
꾸러미사업을 통해 안정된 귀농 생활을 가꿔가고 있는 금창영 씨는, 향후 효소나 막걸리 등의 먹거리 특화사업도 계획 중에 있다. 또한 마을주민들과 방문객 등 집을 찾아오는 모든 이들과 행복을 나눌 수 있는 조그만 소통의 공간, 게스트하우스를 꿈꾸고 있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금창영 씨의 귀농 생활 속에서, 그의 꿈속에서 행복을 그려본다면, 그것은 나와 가족과 이웃을 넘어 모두가 행복을 공유하는 것이 아닐까. 그가 꿈꾸는 게스트하우스를 통해 행복이 홍동면을 넘어 전국 곳곳에 전해질 수 있기를, 그것이 곧 귀농의 참된 행복임을 귀농을 준비하는 모두가 깨닫게 되기를 소망해본다.
자료제공·농림수산식품부,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