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오카 가 봤니?
글/ 구자선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낯선 풍경을 바라보며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들을 엿들으며 거리를 걷고 있다. 걷고, 걷고 걸으며 시간의 흐름과 관계의 묘연함을 생각하고 있다. 멀리 있어도 들을 건 다 듣고 생각할 건 다 생각하게 된다는 걸 낯선 거리에서 알아가고 있다
새벽 네 시, 마지막 점검을 한다. 빠진 건 없는지. 정리는 다 되었는지 돌아보며 집을 나선다.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다섯 시. 장기주차에 차를 주차하고 넓은 공항의 출국 팻말을 따라 한참을 걷는다. 지문을 확인하고 얼굴도 카메라에 찍고 여권을 검사하고 출국장 수속을 밟는다. 긴 줄을 따라 수속을 마치면 셔틀트레인을 타고 출국장으로 이동한다. 후쿠오카행 에어 서울 727기 121게이트를 확인하고 짐을 내린다. 출출하다.
롯데리아에서 새우버거 세트를 주문하고 요기를 한다. 세븐일레븐에서 껌도 사고 물도 사고 화장실에 들러 마음을 비운다. 떠날 때는 가볍게. 7시 40분 출발, 후쿠오카 563 Km, 1시간 20분 후에는 일본 후쿠오카에 내가 서 있게 될 것이다. 핸드폰 전원을 끄고 인터넷으로 주문한 유심 칩을 핸드폰에 갈아 끼운다. 인천공항의 떠오르는 아침 해를 바라보며 구름 위로 올라간다.
아침 9시 후쿠오카 도착. 긴 줄을 따라 다시 입국 심사를 한다. 카드를 찍듯 나의 정보가 입력된 큐알코드를 찍고 다시 지문과 얼굴을 카메라 검색대에 찍는다. 입국 심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10시. 국내선 전철을 타고 지하철역으로 이동한다. 네 정거장. 오호리역에 도착한다. 낯선 사람들 틈에서 일본의 전통 시장 하카타를 둘러본다. 딸기가 980엔. 사과 2개 520엔, 물건 앞에 쓰인 숫자에 동그라미 하나를 더해 돈의 가치를 가늠한다. 후쿠오카의 전통시장 야나기바시 시장을 둘러보고, 구시다 신사에 들러 활짝 핀 붉은 꽃과 마주한다. 우리 꽃 매화 같은데 매화는 아니고. 벚꽃은 지고 있는데, 전지를 많이 해서 그런가? 꽃이 별로 없다. 신사참배는 나와 상관이 없고, 그저 낯선 풍경을 카메라에 담는다.
이어 일본의 유명한 라멘 시장에 들러 늦은 아침을 먹는다. 얼마나 맛있을까? 980엔 라멘을 시킨다. 토마토와 쑥갓을 토핑으로 얹은 라멘은 파스타 같은 느낌으로 얇게 썬 돼지고기와 바지락을 버무렸으나 면발은 반쯤 삶은 국수 같은. 아, 짜! 많이 짜다. 덜 익은 국수를 짠 파스타 국물에 비벼 먹는 느낌. 김치 절일 때 쓰는 굵은 천일염을 팍 얹은 느낌이다. 하지만 일본 음식이 다 그렇다하니 그냥 먹는다.
넓게 자리한 쇼핑센터를 돌다가 30분에 한 번씩 펼쳐진다는 분수 쇼를 보고 캐널시티를 걷는다. 파란 자켓이 6.400엔 노란 잠바가 5.700엔. 우리 돈 64만원. 57만원. 휴, 무지 마켓도 가고, 다이소, 유니클로 매장도 가 본다. 익숙한 물건들이 넓은 매장에 가득하다. 우리나라에서도 흔하게 보던 물건이라 그저 눈요기만 한다. 갖가지 종류의 약들이 가득한 상점에서 관절에 좋다는 관절파스를 사고, 소화를 잘 시킨다는 소화제도 산다. 두리번두리번 춥다. 3월의 날씨는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다만 바닷바람을 맞는 듯 싸늘함이 있다
오후 3시. 후쿠오카에서 유명한 텐징 지하상가를 둘러본다. 끝없이 이어지는 상가의 진열품들을 관심 있게 본다. 옷은 그저 그런데 속옷은 정말 화려하다. 살까? 너무 예뻐서 속에 감추고 다니기는 좀 아까운 데, 하하. 농담도 섞어가며 함께 웃는다. 멀지않은 호텔에 짐을 풀고 잠시 침대에 누워 몸을 푼다. 아, 다리 아파. 장단지를 주무르며 잠시 누워본다. 조금 있으면 해가 떨어질 테니 게으름 피지 말고 또 나가 보자.
버스를 타고 세 정거장 지나 오호리 호수에 간다. 오리배가 떠다니고 까마귀 울음소리, 까만 오리, 갈색 오리가 여기저기 떠다닌다. 우리나라 일산호수공원 느낌이다. 내려앉는 저녁 해를 바라보며 호수에 비치는 햇살의 물결을 한참 동안 바라본다. 강아지 데리고 산책 나온 사람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벤치에 앉아 망중한 호수를 바라보는 사람들 틈에서 지는 해를 본다. 멀리 떠나면 그곳의 일들은 다 잊을 줄 알았는데 마음은 이곳이나 그곳이나 한 마음이라는 것을 알아간다. 그래, 그 마음 어디 가나. 그저 나는 나인 걸.
둘째 날
아침 7시 숙소를 나와 오호리 역으로 간다. 전철로 세 정거장을 지나 하카타 터미널로 간다. 그곳에서 예약한 유투버버스를 타고 다자이후 텐만구에 갈 것이다. 다자이후는 우리나라 안동의 도산서원 같은 느낌인데 한때 이곳이 일본의 관청이 있던 곳으로 무역과 경제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버스로 25분. 우리나라 수덕사에 올라가는 여느 관광지처럼 소소한 물건, 음식을 파는 가게를 지나 다자이후 텐만구에 도착한다. 천 년은 됐음직한 커다란 나무를 지나 세 개의 다리를 건너간다. 가이드 설명에 의하면 세 다리의 의미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의미하는데 첫 번째 다리를 건너갈 땐 절대 뒤돌아보지 말고, 두 번째 다리를 건너갈 땐 멈추지 말고, 세 번째 다리를 건너갈 땐 넘어지지 말라 고 한다. 즉, 과거는 돌아보지 말고, 현재는 멈추지 말고, 미래는 넘어지지 말라는 뜻이다. 살면서 우리는 과거에 매여 있거나 넘어지지 않을 곳에서 넘어질 때가 있다. 훌훌 털고 매사에 조심하며 앞을 보고 가라는 말로 들린다.
세 개의 다리를 건너가니 커다란 황소 동상이 있다. 이 황소 머리를 쓰다듬고 뿔을 만지면 지혜가 생긴다고 한다. 사람들이 너도나도 황소 머리에 손을 얹고 뿔을 만지며 지나간다. 이어 왼손 오른손 입을 순서대로 헹구고 참배를 한다. 나는 손 씻는 수도를 지나 매화나무가 줄지어 선 곳으로 가 본다. 지금 이곳은 매화가 활짝 피어 있어야 하지만 고목이 된 매화나무는 메마른 노인처럼 버즘이 가득하고 꽃은 손으로 셀 만큼만 피어 있다. 사람이나 나무나 세월을 어찌 이길까 싶다. 하지만 이곳에 천오백 년 되었다는 오구스 나무가 세 그루 있는데 나무의 거대함에 입이 딱 벌어진다. 천오백 년의 세월을 견디며 사람들의 소원을 음독하고 있겠구나 싶다. 너도 나도 건강하고 행복하고 잘 되기를 소망하며 살겠구나 한다.
다시 버스를 타고 두 시간, 유후인 마을에 간다. 이 층짜리 주택과 우리나라 시골 읍내 같은 풍경이 골목마다 펼쳐져 있다. 상점에는 꼬치나 고로케, 목걸이, 그릇점, 과자점들이 줄지어 있다. 450엔 어묵을 사 먹고, 400엔 게맛살도 사 먹고 200엔 고로케도 사 먹으며 거리를 구경한다. 멀리 여행 왔으니 선물도 좀 살까 관심을 가져보는데, 먹음직스런 과자도 살만 한 선물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옷가게엔 일본풍의 옷들이 걸려 있지만 우리나라 동대문 시장에 가면 아무렇게나 널려있는 옷 같아 손이 안 가고 그릇 가게엔 오래 진열되어 먼지 탄 느낌의 그릇들이 질서없이 널려 있다. 반짝이고 윤이 나는 한국의 그릇 가게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는 구멍가게다. 여름 양산이라도 살까 하고 우산을 보는데, 그 또한 쓸데없는 짐만 만드는 것 같아 돌아 나온다. 물이 먹고 싶은데 정수기 하나도 없고, 편의점도 보이지 않는다. 자판기는 여기저기 보이는데, 그 또한 손이 가지 않는다. 일본의 경제가 삼십 년쯤 전에 멈춰 있는 듯한 느낌을 실감하고 있다. 거리엔 일본 사람 보다 한국 사람이 더 많아 보인다. 우리도 이제 해외여행이 어렵지 않은 시대를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유후인 마을 끝에는 작은 호수가 있다. 이 긴린코 호수의 풍경은 여느 달력에 나올 듯한 아름다운 모습이다. 나란히 서 있는 키 큰 나무와 호수 끝에 자리 잡은 커다란 레스토랑 같은 건물과 높은 산과 산 위를 가득 채운 멋진 숲의 풍경이 한 몸으로 어우러져 있다. 주차장으로 돌아와 겨우 찾은 세븐 일레븐에서 주먹밥과 스타벅스 커피를 사 허전한 배를 채운다. 역시 나는 뼈 속까지 한국 사람인가 보다. 쌀밥이 들어가니 밥 먹은 것 같다. 한국의 삼겹살도 치킨도 추어탕도 김치도. 나는 한국 음식이 최고지 싶다. 다시 세 시간쯤 버스를 타고 하카타 역에 내려 전철을 타고 오호리 역 근처 몬토레라수르후쿠오카 호텔로 돌아왔다. 따뜻한 목욕물을 받고 푹신한 침대에 일본식 가운을 입고 둘째 날 하루를 정리한다.
한 때는 삼백 킬로미터가 넘는 바다를 건너와 조선을 지배하고 대륙의 꿈을 펼치며 2차 대전을 일으킨 나라. 눈부신 경제 성장으로 감히 따라 잡을 수 없을 만큼 대단했던 일본이 지금 내 눈앞에서 낯설게 보여 지고 있다. 표정 없는 사람들, 평범한 옷차림, 눈썹을 뒤덮은 머리, 출근길 많은 사람들 틈을 나란히 걸으면서도 오, 멋진데 할 만한 사람을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오히려 지금의 대한민국이 대단한 성장을 하고 있는 선진국처럼 느껴졌다. 그런 생각과 자부심으로 어깨를 활짝 펴고 일본 땅을 당당히 걸어본다. 잘하자 대한민국. 멋지다 내 나라.
인천공항
하카타 전통시장
라멘
몬트레라수르후쿠오카 호텔
오호리 호수
다자이후 텐만구 가는 길
다자이후 입구
기린코 호수
첫댓글 덕분에 일본구경 잘해어요 자선씨의 많은 생각속에 대한민국이 제일이란 뜻 역시 대한의 딸입니다 ~
잘 다녀왔습니다. 역시 나가보니 애국자가 되네요~^^
벌써 몇 년이 훌쩍 지나버린 그때가 생각나게 하는 글 잘 읽었어요~ 감사해요^^
다녀오셨군요~오자마자 또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재밌네요
잘 읽었어요
감사합니다
긴 글 읽느라 수고하셨어요.
그저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 일정 하나하나를 다 적어놨어요ㅎ
멀지 않은 곳으로 훌쩍 가볍게 날아갔다 오셨군요~
글과 사진을 보며 그곳의 일상을 떠올려 보네요~~^♡♡
여행이 생각보다 쉽게 이루어졌어요. 오면서 우리 글타래도 한번 같이 가서 종일 함께 걷고 맛있는 것도 먹고 순서 돌아가며 씻고 맛사지하고 코고는 소리도 듣고 ㅡ그래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갈까요?ㅎ
함께 여행할 날 손으로 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