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형욱의 뷰티풀게임] 우리 세대의 아이콘, '축구팬' 신해철을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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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는 FC서울에 관심이 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FC서울 홈 경기를 관전해 본 팬들이라면 신해철이 만든 'We are FC SEOUL'이라는 곡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http://pann.nate.com/video/144352981
신해철은 음악에 관한 인터뷰를 할 때도 축구를 예로 들어 비유하는 일이 잦았다. 축구에 대한 관심이 체화된 사람이 아니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대표적으로 지금은 폐간된 음악잡지 GMV에 2000년대 초반 연재한 신해철의 음악에세이가 있다. 당시 그는 '음악 축구론을 말한다'는 주제의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좀 길지만 인용해본다. 쌍따옴표 안의 내용은 모두 신해철의 글이다.
"음악 축구론을 말한다(혹, 전문 축구인들이 보기에 이상한 비유가 될 지 모르겠으나, 음악을 말하기 위한 비유일 뿐이므로 이해하시라). 센터포드는 대부분의 경우 득점의 주역이며 경기의 스타다. 그가 골을 넣을 때마다 관객은 열광한다. 모든 선수가, 아니 경기 자체가 그를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이 센터포드가 바로 대중음악의 소위 '스타'들에 해당한다. 누구에서 어시스트(작사,작곡,프로듀스 등)를 받든 득점(히트곡)만 올리면 된다. 이 센터포드가 갖춰야 할 자질이란 골 결정력인데, 이것은 스타성 즉 '끼'라든가, 가창력, 외모, 개성 등등이다. 한국 대중음악의 비애는 모두 이 센터포드만을 염원하는데도 있지만, 이러한 자질의 단 하나도 갖지 못한 2류의 스타들이 실력 이외의 요소를 등에 업고 100일 천하를 다투어 온 데에도 있다. 스타는 스타다워야 한다. 센터포드가 굳이 수비를 잘 해야 할 필요도 없거니와, 골을 넣은 후 관객에게 90도로 절을 해야 할 필요도 없다. 관객이 그에게 기대하는 것은 훌륭한 인간성이 아니라 득점이다.
(중략)
현대 축구로 올수록 미드필드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경기의 흐름을 읽고 운영하는 지휘관, 그것이 링커다. 이들에게 해당되는 것이 싱어 송라이터, 셀프 프로듀서 등이다. 이 층이 두터울수록 대중음악계의 저력이 된다. 최근으로 올수록 자신이 직접 골문까지 러쉬해 득점을 올리기도 하는 공격형 링커나, 센터포드(스타) 중 링커의 능력까지 겸비한 이들이 나타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긴 하지만, 어쨌든 이런 구별법이 구조를 분석하는 가장 편한 방법이다. 수비진에 히당하는 사람들은 연주자들이다. 외국과 우리의 차이점은, 외국의 경우 기타리스트를 위시한 많은 연주자들이 최소한 레프트 윙(Left Wing)정도의 위치인데 반해(케니 지는 심지어 센터포드다), 우리의 경우는 볼 것 없이 수비수라는 것이다. 연주자, 즉 수비수의 역할이 초라하다는 뜻이 아니다. 경직성이 위험하다는 것이다. 뛰어난 연주자의 부족도 문제지만 연주자가 이런 대접만 받는대서야 누군들 어린 시절부터 연주자의 꿈을 키우려고 하겠는가. 사실 싱어는 천부적인 자질에 따라 하루 아침에 발견되기도 하지만 연주자는 아무리 천부적 자질이 있어도 오랜 트레이닝 기간을 거쳐야 한다. 또 그 트레이닝은 어릴 때 시작할수록 좋다. 연주자가 스타의 꿈을 꿀 수 있는 환경이 형성될 때, 더욱 많은 어린이들이 악기를 잡기 시작할 것이다. 디렉터나 프로듀서는 감독, 매니저는 구단주쯤 될까.
(중략)
사이먼 앤 가펑클은 뛰어난 링커와 센터포드의 결합이다. 조지 마이클은 처음엔 포드인 듯했으나 지금은 링커에 가까우면서 뛰어난 감독이다. 에어로 스미스는 스티븐 타일러라는 걸출한 센터포드를 보유한 명문 구단이다. 비틀즈는 멤버 전원이 포드, 링커, 스위퍼, 스토퍼로서 전원 수비 전원 공격의 토탈 사커를 구사했다. 심지어는 본인들이 감독에 구단주도 겸임하여 오늘날의 축구(??) 발전에 기여했다. 엘비스는 역사상 가장 뛰어난 스트라이커로서, 팀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구단인 비틀즈보다 음악적으로 뛰어나다고 볼 순 없으나, 어쨌든 그가 없었다면 세계의 역사는 바뀌었을 것이다. 그는 '킹'이니까. 자 그럼 여기에서 결정적인 문제를 생각해 보자. 축구경기와 음악의 차이점은 무엇일가. (생각해 보셔요) (한번 더 생각해 보셔요) 답: "축구 경기는 내용보다는 승패가 중요하다. 그러나 음악은 승패보다는 경기의 내용이 중요하며, 심지어 승패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는다."
(중략)
그러나, 음악은 승부가 정해져 있는 경기도 아니고 등수를 매기는 시험도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기준에 의해 정해진 등수를 보고 '요즘 저 노래가 인기가 있나보지'하고 생각하고, 미래가 창창해 보이는 젊은 연주자가 '가수'로 전향했다는 보도와 함께 자신의 원래 색깔과는 아무런 상관 없는, 싱어로서는 3류에 불과한 노래를 착잡한 마음으로 들어야 한다. 사실 해보고 싶은 음악은 록인데 이번 앨범은 그냥 발라드라고 말하는 신인 가수의 인터뷰를 보며 '누가 너보고 말렸냐'라든가 '그럼 누구는 바보라서 록 하냐', 혹은 '그래 너 뜨고 나서 록 하나 어디 보자', '록이 동네 북이냐' 등등 분개한 후배들 옆에서 '욕 먹어도 싸다'라고 한 마디 거들고, 요즘 뜬다 하는 장르로 하루 아침에 전향한 햇병아리가 10년 이상 외길을 걸어온 선배(내가 감히 얼굴을 마주 보지도 못하는) 앞에서 아저씨 담배 하나 빌려주세요 하는 꼴을 황당하게 지켜본다. (장르의 변화 자체가 나쁘다는게 아니다. 가령 서태지가 메탈에서 댄스 그룹으로 전향한 것은 역사적 사건이 아닌가. 그러나 아무 개념 없이 그저 돈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하이에나 처럼 헤매는 족속들이 자신들이 전에 속했던 장르를 욕하는 건 무슨 이유인지. 하이에나는 사냥을 하지 않는다. 남이 사냥한 것의 찌꺼기를 먹을 뿐이다.) 예전 무한궤도 시절, "해처리 오빠 노래 열심히 하세요. 나머지 오빠들도 반주 열심히 해 주세요"라는 편지 한 통은 정말 우리 밴드의 사기를 바닥까지 떨어지게 했드랬다(지금은 우리도 웃으면서 얘기하는 일이다. 혹 그때 그 본인이 이 글을 보시더라도 무안해 할 필요는 없다). 그러던 것이 요즘 대중은 앨범을 살 때 디렉터의 이름, 세션맨의 이름도 자세히 보는 모양이다. 그러나 아직 전체적으로 동네 축구임을 부인하지 말자. 동네축구라는 말이 무엇인지 아실게다. 골목어귀나 인근 공터, 심지어는 경사진 산비탈길에서도 벌어지며, 축구공뿐만 아니라 배구공, 농구공, 짬뽕공이라 불리는 광경이란 이런 것이다. 골문으로 거의 모든 사람들이 몰려 있다. 저마다 주먹만한 공도 사용한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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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에 관한 속 깊은 이해가 없다면 나올 수 없는 명문으로 당시 음악 시장의 문제를 짚어낸 글이다. 이 밖에, 주요 축구 경기나 이슈가 있을 때마다 자신의 견해를 적극적으로 드러내며 축구팬 '인증'을 서슴지 않았던 것도 기억난다. 당장 네이버 검색창에 '신해철 축구'만 검색해도 이와 관련된 수 많은 웹페이지들이 발견된다. 신해철의 트위터 역시 축구 관전과 의사 표출의 흔적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올 봄, 음악평론가 김태훈과의 인터뷰(채널예스)에서도 축구를 예로 들어 음악을 설명하기도 했고,
"김태훈 : 원 맨 아카펠라를 하시면서 사운드를 계속 입히는 과정 속에서 보컬도 변화를 많이 주신 것 같아요. 정직하게 한 것도 있고, 위아래 악센트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음색을 부여한 부분도 있고요.
신해철 : 축구로 예를 들면, 우리 팀 선수들이 모두 발이 느리다면 그에 맞는 대안이나 전술이 있어야 되는 거잖아요. 바비 맥퍼린처럼 특징적인 각 음역대를 잡아낼 수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몇 번 녹음하면 원 맨 아카펠라가 만들어지죠. 그런데 저처럼 막노동을 해야 되는 사람들은(웃음) 굉장히 많은 숫자의 녹음 작업을 원한다면, 목소리가 뭉치고 구별이 안 되는 일은 피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마이크를 바꾸거나 녹음하는 거리를 다르게 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했는데요."
최근 들어 밴드 '넥스트(N.EX.T)'를 재건하려는 시도를 하면서 이에 대한 구상을 축구팀에 빗대 설명하기도 했다.
"넥스트 유나이티드를 하나의 축구팀으로 보면 그 안에 다양한 포메이션이 존재하는 거다. 포메이션 K가 국악, 포메이션 M이 메탈, 이런 식으로 다양한 음악을 들려드릴 계획이다. 넥스트라는 이름이 음악집단으로 인정받았으니, 넥스트 유나이티드로 최대한 다양한 음악을 펼쳐볼 생각이다"
그러니, 그가 세상을 뜬 것은, 국내 축구팬들이 안그래도 늘 아쉬워하던 셀레브리티 (골수) 축구팬의 존재가 더욱 줄어들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규모답지 않게 스스로를 늘 마이너로 의식할 수 밖에 없는 국내 축구팬들에게는 축구에 전방위적 지식과 애정을 갖고 있던 그가 세상을 떠난 것이 그래서 더 남다른 일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에게서 더 많은 축구 이야기를 듣지 못하는 것이 슬프다. 그리고 이것은, 내가 그를 추모하는 여러 이유 중의 일부분이기도 하다. 언젠가 그와의 인터뷰를 꿈꾸었지만, 그를 이렇게나마 축구 섹션에 불러낼 수 있는 것이, 하필 그의 마지막이 될 줄은 미처 몰랐다. 그곳에선 부디 평안하기를.
故 신해철의 명복을 빕니다.
첫댓글 잘읽었어요~
쏙쏙 들어오는 내용이네요
잘 보았습니다
연예인들중 어느 누가 자기의 생각을 순차적으로 체계적으로 논리적으로 풀어 놓을 수 있을까요...게다가 감성과 지성이 골고루 조화를 이룬 데다가 해박하면서도 겸손하기까지...
잘 읽었습니다...
다 갖췄어 진짜ㅜㅜ
아깝다구 ㅜㅜ
국가적 손실인데..ㅜㅜ
지식과 재능과 유머를 겸비한...정말 다갖춘사람... 그립습니다..
흠흠...오빠 사랑해요~~~
이동영상보니까 마왕님 이 그리워요 지금도어디에선가 음악을
하고있는것만같아요 해철오빠 영원히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