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제요는 분수 유역으로 계속 진전한다.
먼저 제요천제帝고신씨자실심(喾高氏子沈)으로, 《좌전(左)》소서년 : "옛날 고신씨에 2남이 있는데, 백이 '阏'이고, 계절이 '실심(。)'이다.허허벌판에 살면서 서로 재주를 부리지 못하고 나날이 건곤거리기만 한다"고 말했다.그러자 제요는 "대하, 주참으로 옮겨갔다."두주:"대하, 지금의 진양현."《사기·진시황본기》: "황제의 흙, 서쪽에서 모래가 흘러 남진(南尽)하는 북호(北户), 동쪽에 동해(東海)·북대하(北过大)가 있다.정의: 두예운: "대하, 타이위안 진현.지금의 병주(并)에 따르면, 심(沈)을 대하(大夏), 주참(主), 즉 이것", 《사기(史)진본기(秦本纪)》:장양왕 2년, "태원군(太"。)을 초치했다.진시황은 천하의 경계를 정하여 북거하위색, 병음산, 랴오둥이라고 하여 진시황 때 진국토의 북대하를 금태원으로 삼았다.그러나 고대의 대하에는 진양일지에 한하지 않았다.후에 제요(灭)가 멸망하자 《일주서사기(一周)》: "과거의 서(大) 하성인은 병사가 아니며, 성돈은 보수하지 않고, 무사는 자리가 없어...................................................................................................주: "당씨, 요제."이때부터 제요족은 태원으로 이동하였고, "당요시봉은 당에 있고, 또 진양, 즉 지금의 태원이다."탕야오족은 태원을 이동한 후에도 당(唐)으로 불리다가 주초에 이르러, 《좌전(传)》소서년 "대하(大大)보다 심(沈), 주참(。)으로 옮겼다.당인은 그로 말미암아 여름, 상, ...및 성왕의 멸당 이후를 섬기게 되었다.그래서 '좌전' 양공 29년 "주악을 보고, 당을 노래하고, 깊이 생각해 보세요.도당의 유민이 있었느냐"고 말했다.바로 '문심조룡(文心龍)'이 "요유대당(大唐)의 노래"라고 한 것이다
도당씨 제요겸은 대하가 태원까지 뻗어나간 후 점차 펀수 하류에 이르고 있다.《장자·캐치유》 : "요치 천하의 백성, 평해내의 정치, 왕견의 4남이 고모사지산, 분수의 양을 깔본다."고모가 쏘는 산, 산해경동산경은 '고사지산(高射)'으로, '비고사지산(郝高射)'은 '고사산(高射)'이다.즉 지금 펀시(临西)에 임하고 있는 평산(平山) 기주도경(经經). "평산(平山), 서(西)는 문성군(文成)에 들어가고, 산을 경계로 하고 있다.《장자》운: 요견고가 신인을 쏘아서 그 천하를 조사하여 망하게 하다.본명은 고사산(高射山)이다."펀수이출금금산시닝부현 관류산(山海經·北二經)'회남자지형훈'은 '분수출연경(汾水出京)'산, '13주지(十三州。")' '연경산(京京山)'은 땀 흘리는 별명도 있다.분수 동남류는 태원을 거쳐 진수와 합쳐진 것으로, 진수출태원 진양현 북서쪽 현옹산에서, 산해경북차이경은 "현 옹의 산, 진수는 出에서, 동남류는 。"水水"라고 한다.'한서지리지' 태원군 '진양진수소출동입분'과 합쳤다.진수와 분수가 합류한 후 남서쪽에서 지금까지 하진현에서 황하로 들어간다.고대 분수(汾水)를 알 수 있는데, 태원(太原)에서 남합(南南)하여 '분수에서 대원고분양현이 나오고, 하동분음현에 물이 들어온다'고 하여, 지금은 분하(汾)또한 곡식이 진수의 글이라고는 하나, 속설로 옛 진수가 곧 평수임을 증명할 수는 없다.'괄지지(直地平)'는 '평양강수(平一名水)'로, '속(。)'설로 잘못됐다.고분수, 진수는 모두 대원, 근인 또는 대원을 분수 유역의 '고평지'로 여긴다.'좌전(昭)'은 서기년에 '진중행목자패무종(及子狄)'과 '대원위(大卤)다.석음: "대, 음태."소="대원 즉 태원군 진양현은 야."《한서지리지》:유차(榆).그 둘은, 타이페이 "선분, 洮, 오사와를 제외하고, 오하라에 위치한다."두주:대원, 진양야; 선, 유통야.즉 대만의 骀는 대원에 통분하여 洮에 있다.이상 본 "진·대원·태원·대하·참허·진양 6명, 태원 진양현에 있습니다".'좌전' 소서기년 '대원', 왕백주(王亦)는 "대원(大原)도 큰 할로겐, 즉 우공(原)의 태원(太太), 지금의 산서구(西。")태원(太太), 분주)이댁)의 땅"이라고 했다.이처럼 요거태원은 분수 유역을 겸하고 있어 평양으로 천도해야 한다.제왕의 세기: "요, 초봉당, 중산당현, 후이진양, 및 천자의 평양."평양은 실제로 탕요계로 봉지하였다
6. 탕야오계는 펀, 汾 유역에서 경영한다.
《사기·화물식열전》 "옛날, 당나라 사람들은 모두 하동에 있었다."정현은 "당자(唐)이자 제요(帝)의 옛 수도였던 태원(太原) 진양(晋)은 요시(尧)가 살았고, 그 후로는 하동평양(。"東平阳)으로 옮겨갔다"고 말했다.평양은 지금의 산서익성(西翼城)에 있는데, 고대에는 당나라(唐國)라고도 불렀는데, '당나라, 제요(。")계자가 봉했다'고 한다.괄지지(:"城)="고(城) 당성은 绛州) 기성(城城)현 서이십리(西二十)에 있는 제요(。")계자가 봉한 것이다."제요유자십인, 장남명주, 상서요곡, "방제왈윤자주", 거단연으로 이름 단주, 상서일편 "요자불초, 순자부초".단주가 방출된 이유는, '상서익직'은 '단주丹...집안에서...붕음..그래서 죽서기년은 후직방제자주우단수(。"水)라고 했다.단수는 단연이 북쪽에 있는 데서 발원한다.산해경해내남경은 "창오의 산은 제순은 양지에서, 제단주는 음지에 묻혔다"고 했다.창오산은 남쪽에 있으며, 산해경해내경은 "남쪽, 창오지구, 창오연이 있는데, 그 중 구연산이 있고, 순지가 장사영릉에 묻혔다"고 명시하고 있다.대황남경(大荒南經)="창오의 야(野), 순(舜)과 숙균(均)이 묻혔다."숙균 즉 상균은 임금의 순자라, 창오산 비단주장처를 알 수 있다.곽 교수는 "지금 단양에는 단주가 복유하고, 죽서는 후직방제주우우단수(。"水)라고도 하는데, 이것과 의합한다"고 말했다.그러나 '죽서'는 '단양(丹)'의 글이 없어 지총(知)이 후인(后人)이고, 가탁(。)'이다.단연이 낸 단수는, 제요계자 봉지 당성이나 제순소 도포사카 근방에, "옛날, 당나라 사람이 하동에 살았다",단연, 단수는 익성 당성과 순도 포사카에서 멀지 않다.제후가 조조하는 자는 단주께서 하시고, 옥송하는 사람은 단주께서 하시고, 순임금을 주시는 일이 없도록 하여야 한다.또 단주는 순과 가깝다.정의 "하(河)는 요도(尧都)의 남쪽에 있으므로 남하(南河)라고 한다"쿵전(:")="강은 기주 남쪽에 있고 동쪽으로 흐른다."즉 지금의 황하는 남하가 기성 당성남에 있고 낙수이북이다.반면 순거우는 하동포판, 괄지지: "하동현 남이리 고민포판성, 순소도."산서역사지명록: "고지는 지금의 영제현 포주진 동남2리이다."단연을 알 수 있다면 단수는 진남에 있을 것이다.갑골문은 재단(문) 713) 왕재단(경진3649)이라는 지명이 있고 방국명이며 단백(을)이라고도 한다.세기: "도당은 천하를 천하에 내주고, 사자 주를 단연에 두고 제후가 되었다."이 '상서'의 유편인 단연, 단수는 지금의 진남심수동에서 '산해경북산경(山海經북산경)' "알패지산은 물이 나오고 단림은 물이 나온다"고 한다.단림(丹林) 즉 단연(即), 단림(丹林)의 물이 단수(丹水), 전서(郝) : 주원왕(《) 6년, 단수(。"水) 3일절.또 한서지리지상당군하(上軍下)는 "완곡, 단수가 나온다"고 했다.균작 단수.또한 단림 즉 완곡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데, 단림은 단곡, 균단연이라는 별칭을 얻기도 합니다.'수경심수주(水經沁水注)'=당고도현 고성 동북부하(지금의 고평현 북)에서 단수가 나온다.속칭 물이라고 한다."토산은 부, 토산 아래의 "원" 즉 단연지음의 속전으로, 지금의 고평현 북쪽의 토산 아래에 있음을 알 수 있다.산이 단주령(名)이라고도 불리며, '고평현지(高平县)' : '단주령은 장남 현계를 이어 요봉단주(。)라는 이름을 얻었다'는 근거가 있다.심계산 진록: "장자 현성(,城), 요(尧) 장남 단주쿠야(丹).장남 고성은 지금의 장남 현 서, 구칭 "단주성"(지명록 166쪽)에 있다.실은 순이 즉위한 포사카 후기에 단주를 다시 평양 당성으로 돌아오게 하고, 하우까지 《사기오제본기》 "우천자위, 요자단주, 순자상균이 있다."단주의 '선례'가 당성에 있기 때문에 '집해'는 주나라를 인용하여 '이당봉요자(以子)'라고 하고, '로사후기(路)'도 우(禹)는 '봉단주위당(封)위(于)왕위(。")는 모두 우(谯)'라고 한다.《로사·국명기(路國名名)》 "평양·안읍(安邑)을 당(唐)·평양(平阳)역단주봉지(。"地)라고도 한다.《사방여기요》는 더하여 "단주읍, 즉 지금의 부산현치(。山县)"라고 하며, 땅은 지금의 익성 북쪽에 있다.
단주 외에도 당요계 아들이 또 있다.《로사후기》:제요이후는 기자에 나누어졌다.기씨.나=춘추 때의 아들이다.《좌전》 2년. "가도자우(荀道子虞)를 숨기고, 이를 불도(不道)라 하며, 입종(。)이 낭자하고, 벌채(鄍)가 삼문(三門)이다.병치레를 바란다면 당신의 탓이기도 합니다."두주(:") : "기(冀), 국명(國名), 평양 피씨(平阳)현 동북에 기정이 있다."《수경·분수주(水經·汾水水)》 : "분수가 기정남을 지나, 쿄상璠이 말했다.이것은 당요후기씨로, 《로사후기》 "제(순)는 죽은 것이고, 기와관으로 장례를 치르는 것이요, 조목을 울리기 위한 것이다."나애주:기.즉기.고(故) 후기(后)는 지금의 하동피씨현에 희망이 있고, 기자국(。"子國)도 있다"고 말했다.이와 같이, 역시 제요계자국이 되기를 바란다.
지금의 강진기성고평 사이를 알 수 있다.이 일대는 현재 하진, 임분, 양분, 후마, 绛현, 기성 등에 알려져 있으며, 도사 유형별 용산문화지 70여 곳, 초기 양분도사 외에 곡보, ,순, 우 때 제요계인 단주, 익씨 등의 봉지가 이 범위에 있다.도사지 유적은 당성촌 서탑아산 아래, 당성촌 즉 단주가 고당나라 옛터에 있으며, 괄지지지: "고당성, 绛州 익성현 서이십리, 즉 요도사 유형의 용산문화는 상당히 우하시대에 출토 토기 중 증(IH6:30), 분(IIH4:28), 누린(IIIH303:18), 《한시외증》묘장에서는 상당한 양의 채색 목기가 출토되었으며, 목반(M3015:32), 목두(M3073:5), 목형기(M3015:25), 목고(M3015:25)가 있습니다.《설원반질》 "순은 식기(,)로서 석목(。")으로 재단되었다."'예기명당위'="쟁의는 우씨, 하후씨 이가 있다."하후씨 이두.쌀뜨개, 우씨네.목고 "악어가죽으로 북을 가리킴, 즉 옛 문헌에 기록된 북" (코고 83, 1,38쪽).《사기(司)·사마상여전(鼍)》.초기대묘에서는 "목고와 석고, 도형기(토고?)"동출"(고고고 83, 1,38쪽). 목고와 도고와 석고, 당요 때 이미 성행했고, 여씨춘추고락은 제요 때 을치지缶(麋鞈).즉 석고(石磬)는 麋피도고(皮石)를 치고, 柎石의 향기는 하대(下柎)까지 이어졌고, '하관鼗고(下管)'는 '"。石'이다.이러한 목고, 도고, 석고와 같은 악기들은 당요시대부터 우하시대까지 전해진 것이다.특히 9개의 초기대묘에 용무늬를 그린 도반이 한 벌씩 모셔져 있는데, '머리는 바깥으로, 몸은 안쪽으로'라는 용은 '그전에는 형태가 더 원시적이어야 한다.'이 반룡의 곱슬곱슬한 모양은, 내몽골의 옹우 삼성 타라마을 홍산문화 말기에 나온 옥룡, '머리는 바깥으로, 몸은 안쪽으로'라는 모양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듯이, 반룡홍산문화의 옥제반룡적봉홍산 이후 출토된 용문도편에 나오는 용인紋은 도사문화 초기에 나온 도반내 채색 용인용린紋과 흡사하여 홍산문화 말기의 옥조반룡에서 도룡까지의 모습을 암시하였다.
용은 황제의 천애씨족이 숭앙하는 영물로, 끌채로 용으로 옮겨질 정도로 '국어정어' "용....은 현애로 화하다.현구는 곧 헌채의 목소리가 돌기 때문에 《사기천관서》는 "헌채황룡체(体龍"。)"라고 하였다.《오제본기(:"本黄)》 "황제는 헌채(轩)라고 했다."한하룡(蛟龍)은 바로 용(龍)을 가리켰고, 기린(蛟)이 있었다.홍산문화는 물론 도사문화토기의 용무늬까지 비슷한 기린무늬를 특징으로 하여 '하룡(知龍)'을 알고 있는데, 바로 제요(帝)가 구한 '조통("。)'이다.요는 용생이라고 전해지는데, 한 《제요비》: "경도는 적룡과 사귀고 이요를 낳았다." 사실은 황제 고신씨를 적룡으로 삼았습니다. 예를 들면 황제는 "황룡",'제왕세기':요(唐)가 '당(鼋)에서 몽어룡(龍)이 하늘로 올라가고 천하가 있다'는 것은 황제 천애씨족이 용(龍)을 '조통(。)'으로 삼고 신(神)을 가졌다는 증거다.도사 초기의 대형묘주 "부족에서 큰 권력을 잡은 현귀" ("고고"83, 6,534쪽)는 모두 적색시색에 따라 용문도반을 그리며, 제요를 설명하였다.펀, 浍 유역의 도사 유형별 문화유적과 묘장은 모두 제요계자 단주, 기씨 등 우·하 시대의 유적임을 증명할 수 있다.
부기:본문은 초안을 작성하는 동안 랴오닝성 고고학회, 문화청, 고고학연구소의 지원을 받아 곽대순 동지가 편저한 '홍산문화 장르별 변시의도' 등을 제공하고 있다
고유시장망에서 온 저자: 금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