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22일, 금요일, 맑음
(범초산장 이야기 807회) 자연이 부린 마술 누린내 풀이 꽃을 피웠다. 해마다 9월 이때쯤 꽃이 피는데 올해는 하도 가물어서 꽃이 많이 피지 않았다. 그래도 여인의 속눈썹처럼 예쁘다. 이 꽃이 언제 피나 몹시 기다렸는데 꽃을 보아서 기쁘다. 여주꽃이 핀 범초산장에서 밤에 자려고 누우면 풀벌레 소리가 요란스럽다. 귀뚜라미도 울고 또 다른 벌레들도 질세라 목청껏 소리친다. 여름에 듣던 소리보다 한결 선명하고 또렷하다. 이제 소쩍새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밤에 누워서 소쩍새 소리 듣는 게 참 좋았는데...... 가을 벌레들이 우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어린 시절도 생각나고 가을에 여행다닌 일들도 생각난다. 최영희씨와 목포 세미나에 간 일도 떠오르고, 김문홍씨와 영동에 간 일도 기억난다. 올해도 한국아동문학인협회 가을 세미나가 10월 14일-15일 창녕에서 있고 계몽아동문학회 황금펜 문학상 시상식은 안양에서 10월 21일-22일 1박 2일로 열린다. 전국에서 찾아올 문우들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보리수 술을 담은 지 벌써 석 달이 지났다. 누가 와야 개봉을 할 텐데, 태관이도 요즘에는 바쁜 모양이다. 누구라도 불러서 같이 마셔야겠다. 요렇게 6월 하순에 매실 효소를 담았는데 사진에는 항아리에 여유가 있지만 실제로는 매실을 더 넣어서 항아리 목까지 꽉 차게 담았다. 담고 나서 1-2주 동안 꽉 찬 그대로 있어서 혹시 상하지나 않을까 염려가 되었는데 오늘 열어보니 황금빛 매실 효소가 찰랑거렸다. 그 어느 해보다 제일 잘 된 매실 효소였다. 맛도 그저 그만이었다. 이렇게 잘 된 것은 백금자씨 덕분이다. 매실 효소를 담을 때 소금을 조금 뿌려주면 좋다고 한 말을 기억해두었다가 나도 그대로 했더니 잘 되었다. 항아리 목까지 차 있던 초록색 매실들이 어느새 밑으로 다 내려가고 황금빛 액체가 가득 차 있으니 이 얼마나 신비한가! 자연이 부린 마술이 참으로 놀랍다. 비록 양은 많지 않지만 음식 만들 때 조금씩 넣어야겠다. 매실 효소를 거르고 남은 매실 찌꺼기는 그냥 버리지 말고 막걸리를 부어두면 식초를 만들 수 있다. 매실 효소를 다 따라내고 남은 건더기에 막걸리를 부었다. 그랬더니 조금 뒤부터 작은 기포가 올라왔다. 초막이 생기는 과정이다. 귀를 기울여 보니 뽀글뽀글 소리가 들린다. 자연이 또 한 번 마술을 부리는 중이다. 요렇게 한 달만 놓아두면 매실식초가 된다. 주의할 점은 뚜껑을 막아 놓으면 흘러넘칠 수 있으니 가재 손수건이나 키친 타월로 막고 조금 여유 공간을 두어야 한다. 이건 요대로 해보고 다른 병에는 매실 건더기에 뽕잎을 따서 넣은 뒤에 막걸리를 부어놓을 참이다. 그러면 뽕잎 매실 식초가 될 것인지? 실패하더라도 도전해볼 생각이다. 에이치빔과 안전발판에 페인트 칠을 해놓고 마른 뒤에 사다리차를 불러 연갑씨와 다리를 놓았다. 에이치빔 하나를 사람이 들려면 네 사람이 달라붙어야 하는데 사다리차에 줄을 묶어서 들어올리니 한 사람이 들어도 가능했다. 역시 이런 일을 할 때는 기계가 있어야 한다. 우선 요렇게 대충 놓아둔 뒤에 양 끝에서 두 사람이 들면 위치를 옮길 수 있다. 걸쳐 놓기가 힘들지 걸쳐 놓은 뒤에는 쉽게 옮길 수 있다. 다리를 놓고 있으니 과수원집 부부도 나와서 거들었고, 도라지집 아주머니도 훈수를 했다. 요렇게, 저렇게, 착공식을 할 때는 고사를 지내야 하는데...... 아, 그런 것도 해야 하는군요. 아내가 여행가고 없으니 내가 혼자 바빴다. 차를 몰고 가서 막걸리와 음료수, 안주거리를 사 왔다. 과수원집 아주머니가 다리 아래로 술을 부으며 중얼중얼, 다리 놓고 무탈하소서- 이웃들이 나와서 거들어주니 감사하다. 우선 임시로 발판을 다 놓아보았다. 연갑씨가 자로 재어서 간격을 맞춘 뒤라 딱 맞다. 이야, 이제 다리가 들어서겠구나! 그런데 용접을 해야 고정이 된다. 지난 토요일에 용접을 하려고 했는데 하필 그날 비가 와서 못했다. 용접은 비가 오면 감전 위험이 있어서 할 수 없다고. 18일 월요일에는 등산도 못 가고 연갑씨와 추가 재료를 사러 다녔다. 안전 발판이 4개 더 필요한데 주위에 없어서 내원사 부근 성도산업까지 사러 갔다. 안전 발판 4개와 쇠막대 4개를 사왔다. 한쪽은 경사가 심하지 않으니 시멘트로 붙이면 되고 김송권씨네 밭쪽은 경사가 심해서 쇠막대를 대어서 안전 장치를 해야 한다. 내일 용접으로 최종 마무리를 할 예정이다. 아내가 없을 때도 나 혼자 밥을 해서 잘 먹었다. 표고 버섯 밥에 생선과 가지 요리다. 무 싹을 솎아서 무쳤더니 그것도 먹을 만 했다. 또 하루는 홍어회를 사서 반찬으로 먹었다. 톡 쏘는 맛을 즐기며 저녁을 맛있게 먹었다. 이건 아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을 테니 없을 때 혼자서 냠냠~~~~ 달님반 수업을 마치고 최대호씨가 막걸리를 사서 함께 마셨다. 해님반에서는 먹을 수 없는 막걸리파티! 얼큰하게 취해서 집으로 돌아갔다. 배추 요놈 좀 보소! 솜사탕처럼 마구 부풀고 있네. 넌 뭘 먹고 그리 잘 크냐? 무를 솎아 주었더니 간격이 넓어져서 더 잘 크는 것 같다. 저렇게 어린 녀석이 차차 커서 굵은 무를 만들어낸다니 농사는 신 바람나는 일이다. 부추와 파는 바로 옆에 있어서 경쟁하듯이 잘 큰다. 영차 영차, 누가 먼저 크나? 줄다리기 하듯이 무럭무럭 큰다. 계곡에는 물봉선 꽃이 곱고 새가 앉아 있는 듯, 핫립세이지도 줄지어 피어나고 메리골드(천수국) 한 송이가 피었다. 가물 때도 이걸 죽지 않게 돌보느라 애썼더니 살아났다. 이제 하나가 피었으니 둘, 셋, 넷은 문제 없고 열 송이도 넘게 필 것이다. 무엇이든 처음이 제일 어렵다. 한 고개만 넘으면 다음은 어떻게든 넘어간다. 천수국이 가뭄을 이겨냈듯이 어떤 어려움에도 도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상추도 잘 크고 있다. 보기만 해도 입맛이 당긴다. 산장에 가면 먹을 것이 많아서 즐겁다. 산장은 어머니 밥상이다. 다 시들었던 대파를 땅에 심어 놓았더니 살아났다. 땅은 용한 한의사다. 죽어가는 모종 환자를 척척 살려낸다. 나도 그 용한 한의사한테 건강 상담을 하면서 건강하게 살아간다. 건강 검진에서 아무 이상없이 건강 양호를 받은 것은 땅 한의사 덕분이다.
참, 비수면 내시경을 할 때 에피소드 한 토막 -. 내시경 줄을 목구멍으로 집어 넣기 전에 간호사가 이렇게 일러주었다. 자, 연습을 먼저 하고 내시경을 넣겠습니다. 하아, 하아- 입을 크게 벌리고 숨을 내쉬어보세요. 나는 간호사가 시킨 대로 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내 건강을 체크해주는 고마운 내시경이 잘 들어오게 해야지. 하아, 하아 - 감사합니다!' 드디어 내시경이 목구멍으로 들어오는 순간, 구역질이 나려고 했으나 '감사합니다. 잘 받아들일게요, 고마운 내시경!' 이런 생각을 하면서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더니 예전보다 덜 메스꺼웠다. 뭐든 생각하기 나름이다. 거추장한 기계가 들어온다고 생각하면 불편하니 토할 수밖에 없다. 감사한 내시경을 잘 받아들이겠다고 생각하면 덜 불편하다. 덕분에 검사 잘 하고 건강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범초산장에 있는 약초와 약나무들 모두 고맙습니다!
배초향 꽃! 부추꽃도 별처럼 곱다. 아내가 돌아오니 상이 기름지다. 혼자도 잘 살 수 있지만 아내가 있으면 더 잘 살 수 있다. 가끔은 아내가 없어봐야 고마운 줄을 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