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등 강가로 나가
우리나라는 계절 구분이 뚜렷한 북반구 중위도다. 앞으로 지구 온난화의 가속으로 달력으로 계절을 구분 짓는 전통적 방법은 통하지 않을 듯하다. 돌발적인 이상 기후는 국지적이지 않는 전 지구적 현상이다. 봄가을은 짧고 여름과 겨울이 길게 느껴지기도 하고 봄과 여름 사이 장마철 우기를 넣어 다섯으로 나누려거나, 아예 여름과 겨울의 극단적 이분법으로 보려는 경향마저 있다.
농사는 계절의 변화와 순리를 따르고 기후 환경에 민감한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이제 논밭에는 봄 농사가 끝나 여름작물이 싱그럽게 자란다. 산과 들에 피고 지는 야생화들도 봄꽃이 저물고 여름꽃이 등장하고 있다. 나에게 계절 구분은 산나물 산채가 끝나면 봄이 가고, 죽순을 채집하면서 여름이 시작된다. 지난 주말 북면 상천 야산에서 쇠어서 억센 미역취를 뜯으며 봄을 보냈다.
“비록 쇠기는 해도 미역취 채집을 올봄 마지막 산채로 삼았다. 귀로에 돌나물을 맛보지 못하고 봄날이 가는 아쉬움이 남아 감계를 지나다가 중방마을에서 내렸다. 단감단지에서 달천정이 있는 새터에서 구부정한 논배미가 있는 들녘을 지났다. 수로에 자라는 돌나물은 모를 내려고 무논을 다려 놓은 농부 손길에 잡초로 취급받은 애물단지였다. 그래도 쇠어가는 잎줄기에서 꽃은 피웠다.”
바로 앞 인용절 단락은 지난 주말 올봄 들어 마지막 산채가 될 산행을 다녀와 남긴 글의 마무리 부분이다. 그 글의 제목을 붙이기를 ‘산채 엔딩’으로 했다. 이튿날 돌나물을 걷어와 찬으로 삼아보지 못한 아쉬움에 ‘돌나물꽃’이라는 시조를 한 수 남겨 사진과 함께 지기들에게 아침 안부를 전하기도 했다. 이제 나에게 계절의 시계추는 봄이 지나 여름으로 가고 있음이 분명하다.
오월 하순 화요일 이른 아침 자연학교 등굣길에 나섰다. 창원역 앞으로 나가 유등 강가로 다니는 2번 마을버스 첫차를 탔다. 근교 회사나 비닐하우스 일을 나가는 이들과 섞여 용강고개를 넘어간 용잠삼거리에서 주남저수지를 비켜 일반 산업단지를 지났다. 대산면 소재지 가술에 이르자 승객 대부분이 내려 셋만 남았다. 우리는 유청에서 내렸는데 둘은 그곳 작은 회사 직원이었다.
유청은 배수장이 있는 유등 종점에서 가까운 강마을이다. 마을 안길을 걸어 강둑을 넘어 둔치로 향했다. 강둑과 둔치에는 늦봄을 황금빛으로 장식했던 금계국이 절정을 지나고 있었다. 4대강 사업으로 정비된 둔치는 자전거길을 뚫어 생태공원으로 바뀌었다. 대산 일대 둔치는 파크골프장이 생겨 동호인들이 여가를 즐겼다. 파크골프장에서 유등이 가까운 강변에는 대숲이 우거졌다.
국가 하천 둔치에 생태가 복원되면서 절로 자란 대나무가 숲을 이루어 무성했다. 대나무는 예전에 바구니를 비롯한 생활 도구를 만들던 재료로 삼아 요긴하게 쓰였다. 세월의 흐름 따라 플라스틱에 밀려 대나무 공예품이 사라진 지 오래다. 아무도 거들떠보질 않는 대숲으로 들어 이즈음 솟아난 죽순을 살펴봤다. 엊그제 비가 내렸는데 강수량이 적어서인지 죽순이 많이 솟지 않았다.
대숲 언저리에 솟은 죽순을 발로 툭툭 차 쓰러트렸다. 자주색 껍질에 쌓인 죽순 가닥은 가져간 문구용 칼로 세로로 금을 그어 외피를 벗겨내니 노란 속살이 드러났다. 울창한 대숲에서 솟은 죽순이 많은 양은 아닐지라도 일용할 몇 끼 찬거리로 삼을 만치 되었다. 껍질을 벗겨낸 죽순을 수습해 배낭에 챙겨 유등 종점으로 나가 진영을 출발해 오는 3번 마을버스를 타고 가술로 갔다.
워낙 이른 아침에 강가로 나왔는지라 가술에 이르니 마을도서관은 업무가 시작된 무렵이었다. 서가에서 눈길이 가는 책을 골라 열람석에 앉았다. 전통문화에 관심이 많아 선비들의 삶을 쫓아가는 허균이 남긴 ‘한국의 서원’을 독파했다. 이후 두 여성 상담가 강현숙과 차봉숙이 쓴 ‘오십의 마음 사전’도 일별했다. 때가 되어 도서관에서 나와 국도변 국숫집에서 콩국수로 점심을 때웠다. 24.0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