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타기, 1946.
단오절 그네뛰기, 1946.
금남로 4가 중앙교회 앞 . 1946.
광주부청, 1946.
1946년 3월 광양 유당공원의 물그림자.
1946년 3월 광양 유당공원
1946년 3월 광양 유당공원의연못
광복절 광복 1주년 기념식, 1946. 8. 15.
전남 광주시 월신동. 1946. 겨울
해방은 되었지만 여러 가지 불안한 상황으로, 대중들 사이에서는 점술이 크게 유행하였다.
전남 담양 공출광경. 1946.12.
전남 담양추곡수매장, 1947.
3.1절 기념식, 광주, 1947. 3. 1.
3.1절 시가행진, 광주, 1947. 3. 1.
관덕정, 1947.
비오는 날의 남동, 1947. 6.
물대기, 1947.7.
8.15 경축대회, 1947. 8. 15.
민족청년단 전라남도 결성식, 1947.
군악대 시가행진, 1947.
조선경비대 제 4연대 연대장 이한림 중령, 1947.
조선경비대 제 4연대 군악대, 1947.
1948년 광양 가마탄 신부와 조랑말 탄 신랑.
전남 화순탄광 광부휴게실, 1948. 2.
광주상공회의소, 1948.
광주근교 투표소, 1948. 5. 10.
전남 광산군 서방면의 1948년 5월 10일 선거 모습이다.
광주근교 투표소, 1948. 5. 10.
광복절 기념식장, 1948. 8.15. 광주
광복절 기념식장, 1948. 8.15. 광주
정부수립기념 사가행진,1948. 8.15. 광주
학동들의 등교, 1948.‘광주중앙공립국민학교에 문을 연 광주계림국민학교
대동청년단 결단식, 1948.6. 죽창을 든 여학생들이 사열을 받고 있다
'대동청년단(大同靑年團)'은 1947년 9월 21일에 결성된 청년운동단체이다.
미군의 함포사격으로 불타고 있는 여수 시가지 광경이다.1948. 10.
여수 순천반란사건을 진압하기 위해 광주에서 여수로 이동한는 군부대,전남 승주군 주암, 1948.10.
1948년 10월 22일 순천 주암면 광천리 초가 사이에 투입되고 있는 트럭위의 이동중인 진압군.
여수 1948년 10월. 피난민들이 여수서국민학교 교정에 모여들고 있다.
토벌군들은 이들 중에서 반란군에.협조한 이른바 부역자들을 골라내 징계했다. Korea, 1948.
1948년 여순사건 당시 전남 여수서국민학교 운동장에 모인 주민들이 국군의 심사를 받고 있다.
사태 진압에 나선 국군들이 반란폭도와 양민을 가려내기 위해 주민들을 한곳에 모아 놓았다. 오른쪽 대열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부역혐의자로서 이들중 89명이 11월 1일 처형되었다. Korea, 1948
1948년 여순사건 당시 전남 여수 서국민학교 운동장에 모인 주민들이 국군의 심사를 받고 있다.
광양에서 진압군에 사살된 사진작가 이경모의 손아래 친구인 서울법대생 김영배 시신을
광양과 순천의 경계에 있는 덕내리 골짜기에서 가족들이 시신을 찾아내 거두고 있다
(당시 현장은 광양과 순천의 경계부근이었고, 이경모는 집안머슴과 함께 그 자리에 있던 친구의 어머니를 달래는 한편으로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영배야, 미안하다’는 말을 속으로 연방 되뇌었다는 것이 그의 술회다.)
전남 순천, 아기를 업은 한 여인이 여수 순천 반란사건으로 희생된 경찰관 남편을 찾고 있다. 1948.10.
전남 여수, 1948. 10. 반란군에 협조했다고 잡혀온 여수여고 학생들
이경모, 광양 백운산 1948년 11월
공비가 됐다가 다시 붙들려 온 과거의 동료 전우들을 진압군이 감시하고 있다.
여수순천반란사건 귀순자가 반란군에서 경험을 군민에게 증언하고있다. 전남 보성,1949.1.
벌교 1949년 1월
주민들이 호남지구 반도귀순촉진위원회 벌교지부가 게시한 귀순 촉구 공고문을 읽고 있다 . Korea, 1949
목총을들고 총검술훈련을 받고 있는 대동청년단원들, 전남 고흥, 1949. 3.
광주시청, 1949.
신랑이 신부집으로 가기위해 자기집 문을 나선다. 전남 광양. 1949.
노제, 1949.9.
국군 제 20연대 장병 시가행진, 1949.
낙동강변에 설치된 피난민촌, 경북 신령, 1950. 8.
서울 명동, 1950. 10. 디지털 잉크젯 프린트,80 X 95cm,
광주시가지 전경, 1950.
광주역 광장, 1950.9
산동교, 1950.11.
송정리역, 1951. 이경모의 사진집, '격동의현장'에서
공원에서 본 광주시가지 전경, 1951. 1.
전남 담양. 1951.2. 부역혐의자들이 면사무소 창고에 수용되어 있다
조선대학교, 1951.
사직공원에서 바라본 시가지, 1951.
전남도청을 중심으로한 광주 시가지 ,1951,3.
전라남도 화순의 산간마을의 주민 수용소, 1951.
빨지산의 보급투쟁의 대상이되었던 산간마을 주민을 안전한 곳으로 옮겨 주민수용소를 만들어 운영하였다
한국전쟁중인 1951년 6월, 임시수도 부산 부민동의 이기붕 국방장관 관사.
부산의 피난 천막학교, 1951.7.
유엔군 휴전협상대표단을 실은 헬리콥터가 회담장소인 개성으로 출발하기 위해 이륙하고 있다.
1951. 7.
광주역, 1951. 9.
1951년 12월. 전남 담양에서 생포된 빨치산
중앙포로수용소, 1952.
탱크 부대, 1952. 3. 1 .
상무대 개방, 1952. 3. 1.
이경모의 큰딸 지인의 사진관 앞에서 4~6세경, 1952.
제 1대 시의회 의원 선거.1952.
제 1대 시의회 의원 선거 개표장.1952.
제 1대 도의회 의원 선거 개표장.1952.
이승만대통령의 중앙포로수용소 방문, 1952. 12.
첫댓글 귀중한 자료들이네요 ,
부산의 피난천막학교에서 무어도 국민학교1학년을 다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