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 100년, 도전과 변모의 발자취 2-1
네이버블로그/ 정지용 최초의 동시집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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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의 역사가 흘러온 지 어느덧 100년이다. 인간이 이룬 모든 역사가 그렇듯이 동시가 탄생하고 또 그 흐름에 여러 차례에 걸쳐 새로운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앞에 존재했던 것에 대한 ‘도전 정신’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1923년 방정환의 『어린이』지로부터 시작되는 ‘동요’ 역시 앞 시기 존재했던 ‘창가’에 대한 도전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누구나 알다시피 1920년대는 소년운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진 시기다. 이른바 식민지에 대한 일제의 압박과 전통적 유교사상에서 오는 어린이에 대한 멸시로 고통받는 어린이의 지위를 높이기 위한 사회운동이 본격적으로 펼쳐졌다. 동요운동은 그러한 소년운동의 선상에서 기획된 일종의 문예운동의 성격을 지닌다. 그것은 일본에서 촉발한 창작동요운동에 영향 받은 바 있지만, 식민지라는 요인으로 인하여 그 성격이나 전개 과정은 사뭇 다를 수밖에 없었다. 창가에 대응되는 동요라고 할 때 그 ‘대응’의 의미는 여러 층위를 내포한다.
일본의 동요운동을 대표하는 것이 일본 시단의 전문적 시인 집단이었다면, 우리의 동요운동을 이끈 것은 소년운동을 주도하던 청년 지도자들이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동요운동을 뒷받침하고 꽃을 피운 것은 소년들 자신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은 동요의 단순한 수용자가 아니라 누구보다 적극적인 생산자였다.
이 가운데 방정환이 주재하던 『어린이』지를 통해 등단한 소년시인들의 활약은 주목할 만하다. 윤석중, 이원수, 윤복진 등이 참여한 ‘기쁨사’는 소년 자신의 손으로 조직되어 전국적인 네트워크로 운영되던 우리나라 최초의 소년문예 단체였다. 기쁨사 일원들은 1920년대 당대에서 같은 또래들의 모범이 되었을 뿐 아니라 1930년대에는 우리 동요문단을 이끄는 주요한 시인으로 활약하게 된다. 이들이 창작한 동요들은 작곡에 힘입어 입에서 입으로 전파되었다. 1920년대 동요는 입으로 부르는 노래, 즉 ‘아동가요’의 성격을 지님으로 해서 창작이나 수용의 측면에서 공히 대중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동요는 주로 슬픔을 환기하는 애상적 정조를 띠고 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것이 당대 대중의 정서에 부합했다.
그러나 1920년대 산출된 모든 동요가 대중에게 호응을 얻었던 것은 아니다. 1920년대 동요 가운데 대다수는 단조롭고 상투적인 내용의 반복과 정형화된 율격의 반복에서 오는 한계를 명백하게 노출했다. 세련된 언어 기법을 개발하는 데 박차를 가하지 못하고 대부분 앞의 것을 흉내 내거나 거칠고 투박하게 자신의 감정을 토로하는 정도에 머무른 경우도 많았다. 소년운동이 전개되었던 1920년대 초반부터 1930년대 초반에 이르는 약 10년의 시기에 신문 잡지 지면에는 수많은 시인들의 동요가 발표되었지만, 작곡을 통해 대중의 입에 오르내리거나 뒤에까지 창작으로서 살아남은 작품은 사실상 얼마 되지 않는다. 1930년을 전후로 계급주의 문학운동이 위세를 떨치면서 동요는 계급적 현실에 지극한 관심을 표출하기도 하였는바, 그 역시 앞 시기 동요들이 노출한 한계를 크게 극복하지 못했다. 당시의 동요시인들은 어떻게 노래를 부를까에 대한 고민보다 그저 감정을 표출하는 자체에 만족하는 경우가 허다했던 것이다. 여기에는 소년문예운동에 참여한 인자들이 대부분 본격적인 의미의 문인이 아니라 소년운동가나 소년문사들이었다는 데 원인이 있었다. 이들은 아마추어리즘을 온전히 탈각하지 못한 한계를 노출했다.
이들과는 대조적으로 윤석중, 이원수, 윤복진 등이 1930년대 전문 동요시인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까닭은 1920년대 동요가 가진 상투성에서 탈출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천편일률에서 탈피해 자신만의 개성을 찾음으로써 비로소 온전한 시인이 되었다.
이들보다 한발 앞서 시적 개성을 유일하게 뽐낸 1920년대 동요시인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정지용이다. 정지용은 유학 중 일본 시단에 등단한 전문 시인이었던 만큼 언어에 대한 자각과 동시가 가지는 장르적 특성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꿰뚫고 있던 시인이었다. 그는 1918년 『빨간 새』를 무대로 펼쳐지기 시작한 일본 문단의 동요운동과 1923년 기타하라 하쿠슈의 ‘동시 제창’ 이후 전개된 동시 창작의 흐름을 소화하고 그것을 우리말과 정서로 새롭게 거듭나게 한 시인이라 할 수 있다. 그의 동시 중 어떤 것은 지금의 어린이 독자들이 읽기에도 전혀 낡지 않은 면모를 지니고 있다. 이는 그가 선보인 동시에는 진정한 의미의 근대적인 시정신이 내재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런 정지용을 닮으려고 애쓴 것이 바로 당시에 ‘천재 동요시인’으로 정평이 나 있던 윤석중이다. 윤석중은 방정환의 『어린이』지가 배출한 최고의 스타였다. 윤석중과 동갑이면서 함께 기쁨사 동인으로 동요 창작을 시작했던 이원수는 늘 카프(KAPF)의 지근거리에 있던 시인이긴 했지만 계급주의 시인들과 일정 부분 다른 시세계를 선보였다. 계급주의를 표방한 시인들이 ‘청년적 운동’ 혹은 메가폰을 든 ‘수염 난 총각’의 그림자를 서툴게 드러내 보였다면 이원수는 공감할 수 있는 어린 서정적 자아의 관점과 목소리로 식민지 현실을 보여줌으로써 폭넓은 공감을 확보했다. 그러나 그는 일제 말기에 친일 혐의가 농후한 시를 발표함으로써 오점을 남겼다. 윤복진은 단순한 언어와 정형율격만으로 유년의 세계를 그리는데 재능을 보인 시인이다. 그는 그러한 점에서 윤석중과 쌍벽을 이루었는데, 윤석중이 도시 아이들의 세계를 그렸다면 그는 토속적인 시골 아이들의 세계를 그려냈다.
1920년대 동요단이 천편일률적인 아마추어 시인들이 등장하는 무대였다면 1930년대는 자기 개성을 확보한 시인들이 등장한 시기였다. 이들에게 윤석중과 윤복진은 하나의 주요한 모델이었다. 앞서 말한 대로 정지용 작품 또한 빼놓을 수 없는 모범이었다. 특히 1935년 출간한 『정지용시집』에 수록된 그의 동요들은 1930년대 등장한 동시 지망생들에게 큰 의미를 지닌 텍스트였다. 이런 정지용의 작품과 1920년대 소년문사 출신의 윤석중, 윤복진을 본으로 하여 윤동주의 동시가 나왔고, 박영종(박목월)의 동시가 나왔다. 또한 한국전쟁 이후 1950~60년대 아동문단을 주도하던 인사 가운데 하나인 강소천이 나왔다. 이들은 소년운동이 와해되고 계급주의 운동이 좌절된 상황에서 등장한 시인들이기에 1920년대 동요시인들이 안고 있던 ‘감정 과잉’ ‘의식 과잉’이라는 한계를 오래 답습하지 않아도 되는 이점을 누렸다. 반면에 강고해져만 가는 식민지 체제의 억압과 그로 인한 소년운동의 소멸, 문학단체에 대한 탄압 등으로 당면한 아동 현실에 대한 관점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는 조건을 떠안게 되었다. 현실 도피와 순응, 자연 관조 등의 한계를 지닌 작품 경향에 머무름으로써 분단 이후 우리 동시의 흐름을 일정 부분 왜곡하는 결과를 낳게도 된다.
해방은 우리 겨레에게 환희를 안겼다. 잠시나마 잃어버렸던 나라의 주권을 되찾았다는 기쁨과 함께 새 나라 건설을 위한 희망으로 부풀었다. 그러나 겨레의 그런 열망에도 불구하고 한반도는 곧 외세의 각축장이 되었다. 해방은 우리에게 혼란과 궁핍이라는 또 다른 삶의 조건을 안겼다. 새로운 국가 건설에의 희망과 참여의지가 솟구쳐 올랐던 만큼 좌우익의 이념적·물리적 갈등은 날로 첨예해져 갔다. 이런 와중에 해방기의 걸출한 시인으로 등장했던 이가 바로 권태응이다. 권태응은 1930년대 윤석중, 윤복진으로 대표되는 우리 동요의 계보를 이으면서, 농촌 현실을 배경으로 유년 아이들의 생활을 쉽고 깨끗한 말로 부려 썼다. 그는 일제 말기 등장한 앞 세대 시인들처럼 생활의 실감이 거세된 자연을 그리는 데 머무른 것이 아니라, 농촌 아이들의 삶과 그 배경이 되는 해방기의 민족 현실를 간결하고 정제된 언어로 그려 냈다. 1920년대 촉발된 동요의 전통은 바로 해방기의 권태응에서 정점을 이루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분단 이후 우리 동요는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지 못한 채 점차 퇴조의 길을 걷는다. < ‘동시를 읽는 마음, 새로운 동시를 위한 탈중심의 상상력, 김제곤 평론집(김제곤, 창비, 2022)’에서 옮겨 적음. (2023. 6.25. 화룡이) >
첫댓글 100년 전에도 동시 작가가 많았군요...
역시 한국은 위대한 나라입니다
오늘 이순지라는 세종대왕 시절에
천문학자가 하루의 일년의 시간을 오늘날보다
1초가 작게 계산을 하고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기록에 남겨 놓았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세상의 무엇도 저절로 된 것이 없음을 되짚어보게 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