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의 마을버스] ② 명륜동과 혜화동 주택가를 가로질러 대학로까지
'마을버스 종로08' 노선을 따라서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마을버스 종로08은 명륜동과 혜화동 주택가를 빠져나와 대학로를 가로지른다. 그런 다음 이화사거리와 원남동 사거리를 거쳐 종로5가 일대를 한 바퀴 돌고는 다시 명륜동 고지대 주택가에 자리한 종점으로 향한다. 종로08은 주변 학교 학생들에게는 통학버스가, 고지대 주민들에게는 발이 되어 주는 마을버스다.
마을버스 종로08 종점. 명륜동 고지대에 자리했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명륜동, 북악산 자락 따라 들어선 주택가
마을버스 종로08의 종점은 명륜동 주택가를 따라 올라간 고개 위에 있다. 정비소 겸 차고로 쓰이는 공간에 버스 두어 대가 정비를 기다리고 있고, 그 앞 골목에는 한 대가 출발을 기다리고 있다. 사방이 경사진 골목이다. 종로08은 경사가 심한 명륜동 주택가에 없어서는 안 될 교통수단으로 보인다.
마을버스 종로08이 다니는 대학로, 혜화로 등은 중앙선이 나뉜 도로이지만 종점으로 향하는 ‘명륜길’로 들어서면 중앙선은커녕 길 폭이 확연히 줄어든다. 만약 마을버스끼리 마주친다면 한 대는 건물 쪽에 바짝 붙어 기다려야 한다. 다른 지역의 마을버스는 상대적으로 큰 차량을 운영하기도 하지만 이 노선은 작은 차량만 운행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보인다.
마을버스 종로08. 명륜동 고지대 주택가 사이를 운행한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종로08 노선에는 학교 이름의 정류장이 여럿 있다. 한 마을버스 기사에게 통학생이 많냐고 물어보니 “성균관대 학생들은 주로 셔틀버스를 이용하고 서울국제고 학생들은 평일에 기숙사에서 생활하니까 시간대와 요일에 따라 편차가 크다”고 답했다.
종점에서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면 와룡공원(臥龍公園)이 나온다. 용이 누운 모습을 한 북악산 자락의 와룡공원은 한양도성이 지나는 지점에 있다. 도성을 따라 내려가면 동소문인 혜화문이 나오고 북악산을 따라 올라가면 북대문인 숙정문으로 연결된다.
성벽을 경계로 종로구와 성북구가 나뉜다. 성벽 한켠에 암문이 있는데 그 문을 지나면 성북구 성북동이다. 멀리 성북동의 저택들이 보이지만 성벽 가까이는 서민들이 사는 거주 공간이 촘촘하게 모여있다. 그곳이 북정마을이다.
성벽은 방어를 위한 시설이라 조선시대에는 주변에 민가가 없는 완충지대였다. 빈터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빈터는 해방 후와 한국전쟁 후 일을 찾아 서울로 온 서민들에게 집을 짓기 좋은 곳이었을 테다. 성북동의 북정마을과 명륜동 고지대의 마을이 성벽 가까이 들어서게 된 연유다.
한양도성 성곽 바로 아래에 들어선 성북구 성북동의 마을.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명륜동은 명륜당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명륜당은 원래 서울의 성균관이나 지방의 향교에서 유학을 가르치던 공간을 의미한다. 그래서 안동시와 원주시 등에도 명륜동이 있다. 서울의 명륜당은 성균관대학교 정문 바로 옆에 있다.
조선시대에 성균관 근처에는 반촌(泮村)이 있었다. 성균관에 소속된 노비들과 성균관에서 필요한 물품들을 공급하는 이들이 사는 마을이었다. 반촌은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유생들의 하숙촌이기도 했다. 지금의 성균관대학교 주변에 자리한 주택가들이 예전에 반촌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된다.
성균관대학교 안에 자리한 '명륜당'. 명륜동 지명의 유래가 됐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혜화동, 조선인의 문화를 지키며 살았던 ‘문화촌’
조선시대에 동소문 안, 즉 혜화문 일대는 고지대라 궁궐을 들여다볼 수 있어서 백성들의 거주를 막기도 했었다. 그래서 한적한 지역이었는데 정조 시절 모민 정책을 펼쳐 동소문 안 여러 곳에 마을이 형성됐다. 혜화동은 동소문인 혜화문에서 따온 지명이다.
마을버스 종로08은 혜화동 지명에서 따온 정류장이 여럿 있다. 그중에서 혜화동로터리는 혜화문의 운명과 관계가 깊다. 1938년 조선총독부는 창경궁과 돈암동을 잇는 도로를 건설하는데 공사 구간에 혜화문이 가로막고 있었다. 그래서 혜화문을 헐어버렸다. 지금의 혜화문은 1994년 원래의 자리보다 북쪽에 복원한 것이다. 원래는 그 아래를 지나는 창경궁로에 자리하고 있었다.
혜화문. 한양 도성의 동소문이었다. 1938년에 헐렸다가 1994년에 원래의 위치보다 북쪽에 복원했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1947년에 혜화동 일대를 촬영한 항공사진. 빨간 원은 혜화동로터리. 그 위로 격자 모양의 구획에 들어선 한옥들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국토지리정보원)
1941년에는 전차 노선이 창경궁에서 돈암동까지로 연장됐다. 그 과정에서 동소문언덕 입구에 로터리가 생겼다. 지금의 혜화동로터리다. 1947년 항공사진에서도 희미하게나마 로터리 윤곽이 보인다. 조선시대에 한적했던 혜화동 일대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번화한 시가지로 변하게 된다.
우선 혜화동 일대에 천주교 타운이 형성되고 상급학교가 대거 설립된다. 1909년에 베네딕도회가 백동수도원을 설립한 게 천주교 타운의 시작이다. 지금도 혜화동로터리 동쪽에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동성 중고등학교, 혜화동성당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동숭동과 연건동에는 경성대학 등이 들어서 훗날 대학로의 유래가 된다.
동숭동과 연건동의 학교촌 주변에는 관사촌이 들어서고, 혜화동과 명륜동에는 조선인들이 모여 사는 신주택지가 들어서게 된다. 그런 혜화동과 명륜동을 ‘문화촌’이라 칭하는 일제 시절의 언론 기사들과 이를 인용한 후세의 연구 문헌들을 볼 수 있다.
1929년 잡지 <별건곤>의 한 기사는 “한간 초옥”에 살고 “팥밭에 된장을 쪄서” 먹더라도 재미있고 화목하게 사는 것을 “문화생활”이라고 정의했다. “서양식 주택”을 지어놓고 “피아노나 레코드판 소리가 흘러나오는 곳”이 아닌 조선의 문화를 최소한으로라도 지키며 사는 동네를 문화촌으로 칭한 것. 그러면서 “동소문 안 근방” 즉 혜화동 일대를 조선인의 문화촌으로 꼽았다.
혜화동의 주택가. 한옥은 물론 여러 시기에 지은 주거 공간을 볼 수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일제강점기의 도성 안 동북부 지역’을 연구한 자료를 종합하면 명륜동과 혜화동에는 학교의 교원, 변호사, 경찰 등의 직업을 가진 조선인들이 많이 살았다. 주택은 당시 흔히 볼 수 있는 도시 한옥, 즉 ㄷ자형 또는 ㅁ자형 구조의 개량한옥이 많았다. 위에 링크한 1947년 항공사진에서 그 윤곽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 명륜동과 혜화동은 해방 후에는 “한집 건너 사장”이라든지 “그룹 회장들의 집이나 장차관, 국회의원들의 집이 많았다”는 서울시 기록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부유층이 많이 살았던 동네이기도 했다. 지금도 필지 넓은 주택들과 빌라들이 그 흔적으로 남았다. 다만 1970년대 이후 부유층들은 강남 등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는 양상이기도 했다.
정류장 이름으로만 남은 시장
1947년에 혜화동 일대를 촬영한 항공사진을 보면 한옥들이 격자 모양의 구획에 들어찬 모습을 볼 수 있다. 1972년 항공사진도 비슷한 모습이다. 다만 1972년 사진에서는 한옥 주택가 외곽의 고지대에 주택들이 늘어난 모습을 볼 수 있다. 반듯한 구획이 아닌 복잡한 모양의 구획인 것으로 보아 도시계획과는 상관없이 들어선 모양인 것을 알 수 있다.
혜화동과 명륜동 일대를 촬영한 최근의 항공사진을 보면 일부 한옥이 남아있기도 하지만 거의 사라지고 현대식 건물이 들어선 모습이다. 여러 필지를 한데 묶어 큰 필지가 된 곳도 있다. 하지만 명륜동 고지대의 오밀조밀한 공간 구조는 여전한 것으로 보인다.
1972년에 촬영한 혜화동과 명륜동 일대 항공사진. 격자 모양의 한옥 주택가 주변으로 구획 모양이 복잡한 주거 공간들이 들어섰다. (사진=국토지리정보원)
한편, 마을버스 종로08의 정류장 중에 ‘명륜시장’이 있다. 하지만 시장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한 주민에게 물어보니 “명륜시장은 오래전에 사라졌다”며 식당들이 나란히 늘어선 좁은 도로를 가리켰다. 그러고 보니 점포 배열이 시장 같기도 하다. 다만 식당과 카페가 들어섰을 뿐.
언덕이 시작하는 곳에 자리한 옛 시장의 위치로 보아 명륜동 고지대 주민들이 이용한 장터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시장이 사라진 지 “30년도 더 됐다”고 기억하는 주민도 있다. 아마도 성균관대학교 후문과 가까운 그 자리에 식당들이 들어서며 시장은 서서히 사라진 것이 아닐까. 동네는 시절 따라 주민 따라 변하기 마련이다.
이렇듯 마을버스 종로08을 타면 우리나라 근대사와 현대사를 거치며 다양한 모습으로 들어선 주거 공간과 생활 공간의 변화를 느껴볼 수 있다.
예전에 명륜시장이 있던 곳. 성균관대 후문 근처이다. 명륜시장은 정류장 이름으로만 남았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