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승의 시세계-서울의 예수>
정호승은 1950년 1월, 경남 하동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1년 때 대구로 이사하여 성장했고, 학창시절도 그곳에서 보냈다.
중1 때 은행에 다니던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여 대구 변두리로 밀려나 가난한 생활을 꾸려가야 했다.
졸업할 때 돈이 없어 졸업앨범도 못 찾았을 정도였다.
대륜고등학교 때 전국고교 문예현상 모집에 <고교문예의 성찰>이라는 평론으로 당선되어 경희대 국문과에 문예장학생으로 입학하였다.
정호승은 작가로서 다면적인 마스크를 지녔다.
1973년 <대한일보>에 시 <첨성대>가 당선되어 시인으로 등단했으나, 1982년 <조선일보>에 단편 <위령제>가 당선되어 소설가가 되기도 하였다.
그밖에 동화, 동시, 평론, 산문집 등을 출간하여 다장르에 걸쳐 문학적 재능을 과시했다.
자신은 이러한 자신의 모습을 ‘탕아’라고 부르기도 했다.
시인으로서 외길을 가지 않고 외도했다는 자평인 셈이다.
하지만 그의 문학적 고향은 역시 시다.
그 동안 첫 시집 <슬픔이 기쁨에게>(1979)로부터 <서울의 예수>(1995), <새벽편지>(1987), <별들은 따뜻하다>(1990), <외로우니까 사람이다>(1998). <수선화에게>(2015),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2017)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시집을 발간하여 왕성한 창작열을 보여주고 있다.
그 덕분에 <소월시 문학상>(1989) <정지용 문학상>(2000), <공초문학상(2011) 등 많은 상을 받기도 하였다.
지금은 현대문학 북스 대표로 출판 사업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가히 다면적인 마스크라 할 수 있다.
이제는 전문시인, 직업시인으로 9시에 사무실에 출근하여 시를 쓰고 5시에 퇴근하는 ‘9 to 5 man’ 곧 ‘시 직업인’으로서 일상을 지켜가고 있다.
그의 시는 쉽고 대중적이며 서정적인 가사가 특징이라 노래로서 많이 불려졌다.
<부치지 않은 편지>(백창우 곡)는 김광석의 유작 앨범에 수록되었으며, <이별노래>(최종혁곡)는 이동원이 불러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이러한 노력은 곧 ‘노래시’라는 새로운 시양식을 정립하는데 기여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노래패 시동인 <나팔꽃>이 우리 시단에 활짝 피어나게 되었다.
<나팔꽃> 동인은 시와 음악의 장르통합을 목적으로 시인 안도현, 도종환, 정호승, 그리고 민중가객 안치환 등이 참여한 노래패 동인이다.
그들은 ‘작게, 낮게, 느리게’라는 기치 하에 ‘크고, 높고, 빠른 것’ 만을 추구하는 현대인의 삶의 질곡에서 벗어나 진정한 인간의 행복과 존재가치의 방향성을 찾고자 하였다.
그 길이 바로 시와 음악이 함께 가는 길이었던 것이다.
그의 초기시는 도시노동자와 빈민들이 주된 시적 대상이었다.
현실적 삶의 현장에서 소외된 군상들, 즉 변두리 인간, 한계인(marginal man) 들이 그가 노래한 시의 주인공들이었다.
<슬픔이 기쁨에게>, <서울의 예수> 등의 초기시들이 이를 대변한다.
그는 이러한 시에서 소외되고 외로운 민중들의 애환과 슬픔을 서정적인 가락으로 빚어 내었다.
그는 이동순, 김명인, 김창완 등과 함께 ‘반시’ 동인에 참여하여 ‘예술을 위한 예술’, 곧 부르조아, 하이칼라 예술을 비판하고 ‘깨어있는 시인’ ‘깨어있는 종’이 되고자 노력하였다.
시가 특수계층의 전유물로 전락하고 상업주의에 물든 통속성에 반기를 든 것이 곧 ‘반시’ 동인의 반(反), 곧 앤티(anti)의 기본 의미였던 것이다.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그는 민중들의 삶 속에서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외침을 널리 세상에 전파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것이 정호승 시인이 가고자 했던 시의 길, 민중의 길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민중시인으로 부르는 것이다.
그는 진정 그의 시집, <서울의 예수> 대로 진정한 ‘서울의 예수’이고자 했다.
‘나는 내 이웃을 위하여 괴로워 하지 않았고, 가난한 자의 별들을 바라보지 않았나니, 가난한 사람의 창에 기대어 소주잔을 마시며 눈물의 빈대떡을 나눠 먹고, 서울의 빵과 사랑과 눈물을 생각하는’ 예수가 되고자 했던 것이다.
곧 초기시의 그의 시적 명제는 ‘시는 곧 삶’ 이었다.
시가 곧 삶이 되는 명제는 윤동주가 그랬고, 이육사가 그랬다.
윤동주에게 시는 자아완성의 길이었고, 이육사에게 시는 행동하는 철학이었다.
초기시에서 정호승의 시는 곧 삶이었던 바, 그의 삶의 대상은 ‘맹인, 고아, 실향민, 신문팔이, 미혼모, 여공, 혼혈아’ 등 사회에서 소외된 한계인으로서 인간군상들이었다.
그들의 비참한 삶과 인간조건,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한 사회현실과 구조적 모순이 정호승이 그려낸 시적 지형도였다.
그런 점에서 정호승은 소외된 이웃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미는 휴머니스트였고, 정치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파헤치고 고발하는 앙가쥬망의 시인이었다.
하지만 구조적 모순에 대한 고발은 아지프로(agipro) 형식의 투쟁적 고발시가 아니라 서정적 시정으로 내재화된 따뜻한 혁명이었다.
분단과 5.18, 군부독재의 폭압성, 빈익빈 부익부의 사회 불평등을 노래하되 거기엔 서정적 페이소스와 도시적 감수성의 온기가 맴돌았다.
그것이 다른 앙가쥬망 시와 구별되는 그만의 독특한 사회적 서정미이다.
사상과 현실을 노래하되 장미꽃의 향훈과 서정성을 잃지 않았던 것이다.
그의 시에 특징적으로 드러나는 비애의 미학, 슬픔의 시학은 이러한 시경(詩境)에서 분비된 것이다.
<그는>
-정호승
그는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 때
조용히 나의 창문을 두드리다 돌아간 사람이었다
그는 아무도 나를 위해 기도하지 않을 때
묵묵히 무릎을 꿇고
나를 위해 기도하던 사람이었다
내가 내 더러운 운명의 길가에 서성대다가
드디어 죽음의 순간을 맞이 했을 때
그는 가만히 내 곁에 누워
나의 죽음이 된 사람이었다
아무도 나의 주검을 씻어 주지 않고
뿔뿔이 흩어져 촛불을 끄고 돌아가 버렸을 때
그는 조용히 바다가 되어 나를 씻어 준 사람이었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나를 사랑하는
기다리기 전에 이미 나를 사랑하고
사랑하기 전에 이미 나를 기다린
ㅡ마로니에 씀
첫댓글 마로니에님, 글이 꼭 작품 같습니다.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새해에도 건강하십시오.
별 말씀을요
과찬이십니다
많이 부족한 글입니다
2022년 14번째 시집
<슬픔이 택배로 왔다>
발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