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 마음을 같이하여 모이기를 힘쓰고 말씀/ 사도행전 2:42-47 요절/ 사도행전 2:46 | 2023. 1. 8 | |
신 년 제 2 강 |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오늘 청년학생들이 부른 특송은 ‘교회’라는 제목의 찬양입니다. “사람이 넘치기보다 사랑이 넘치는 교회, 섬김을 원하기보다 섬김의 기쁨 알아가는 교회, 세상이 주목하기보다 주님이 주목하는 교회, 화려한 겉모습보다 중심이 주를 향한 교회, 내 작은 생각보다도 하나 됨의 소중함 아는 교회, 세상에 알려지기보다 서로가 서로를 깊이 아는 교회, 주님이 피로사신 아름다운 교회 서로 사랑함으로 하나 되는 교회 주님이 머리 되신 거룩한 교회 우리 함께 만들어 가요. 우리 함께 만들어 가요!” 이러한 아름다운 교회공동체를 우리는 꿈꾸고 소망합니다. 이 시간 본문을 통해 초대교회의 아름다운 모습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천상의 교회, 건강한 교회공동체를 소망하며 올 한해 우리 함께 만들어 갈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42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여기서 그들은 오순절 명절에 사도 베드로가 전한 메시지를 듣고 회개하여 성령 세례를 받은 사람들입니다.(2:38) 그들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직접 보고 체험함으로 믿음을 갖게 된 자들이 아닙니다. 사도들이 전하는 메시지를 듣고 믿음을 갖게 된 자들입니다. 한마디로 말씀에 기초하여 믿음을 갖게 되었고 신앙생활을 시작한 자들입니다. 이런 그들이 가장 힘써 행한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사도의 가르침을 받는 것 이였습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전 사도들에게 마지막 유언으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20a)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하시며 하나님나라에 관한 복음을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가르치셨고 서로 사랑하라 분부하셨습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그리고 그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에 대해 가르쳤습니다. 초대교회 공동체는 그 근본부터가 주의 말씀에 기초하여 시작된 역사입니다. 성령을 선물로 받은 자들은 다른 것이 아닌 말씀을 사모하는 자들 이였습니다. 주의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고 이를 굳게 붙잡고 순종하는 자들 이였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아름다운 교회공동체를 만들어 가기 위해 가장 집중해야 할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알고 배우는 일임을 믿습니다. 또한 초대교회는 사도들의 리더십 가운데 이뤄진 교회입니다. 우리교회 또한 말씀이 중심이 되고 리더를 중심으로 하나 되는 공동체가 이뤄지길 기도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서로 교제하는 일에도 힘썼습니다. 세상에서도 많은 교제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도들의 교제와 세상 사람들의 교제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세상에서의 교제는 자기 유익을 위한 교제 일 때가 많습니다. 때론 인위적이고 물질적이며 죄 가운데로 인도하기도 하며 허무하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나에게 맞는 사람하고만 교제합니다. 같은 세대끼리만 교제합니다. 같은 팀끼리만 교제합니다. 하지만 성도들의 교제는 어떠합니까? 이들의 교제는 성령 안에서의 교제입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아, 기쁨으로 하는 교제였습니다. 이는 자발적인 교제였으며 무엇보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바탕으로 한 교제였습니다. 교회공동체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구원받은 자들의 모임입니다. 사랑받을 자격 없는 자들을 위해 하나님은 이 땅 가운데 인간의 모습으로 낮아져 오셨습니다.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오셨습니다. 그리곤 자신의 생명을 버리면서 까지 우리를 사랑하사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이 사랑으로 우리는 구원을 받고 생명을 얻고 교회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13:34) 말씀하셨습니다. 성도들의 교제와 세상의 교제가 다른 건 바로 이 사랑으로 교제하는 모임이라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자일지라도 용서하고 용납하며 사랑의 교제가 있다면 그곳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입니다. 자기가 원하고 입에 맞는 사람하고만 교제하고 함께한다면 이는 세상의 교제와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마5:46,47) 예수님은 죄인과 함께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우리 또한 예수님처럼 죄인과 함께해야합니다. 나와 좀 다른 이, 부담이 되는 이, 그들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이는 억지로 내 의지로 되지 않습니다. 나를 내려놓고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을 붙잡아야 합니다. 그리할 때 다가갈 수 있고 교제가 시작됩니다.
저는 교제를 어려워하는 편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목자가 되고 앞에서 섬기는 일을 하게 됨으로 여러 부탁을 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 가운데 실수도 하고 허물을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무엇보다 겸손히 나아가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일 중심적으로 연락을 하고 부탁을 하였습니다. 부탁을 들어주시는 목자님들을 귀히 여기며 감사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섬기는 것이기에 당연시 하곤 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거리감이 갈수록 커 졌습니다. 제 안에 정죄와 판단의 마음이 커지고 마음을 닫게 되는 일이 많았습니다. 연락을 하는 것이 부담이 되어 연락도 적어지고 이로 인해 교제 또한 적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양들을 섬기는 것으로 바쁘다는 핑계를 대었습니다. 혼자 있는 것을 더 좋아하게 되기도 하였고 세상의 잔재미에 빠지기도 하였습니다. 외톨이가 되어가는 것 같기도 하였습니다. 그런 가운데 성탄말씀이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이 땅 가운데 낮아져 함께하고자 오신 예수님이 돋는 해와 같이 따스하게 다가왔습니다. 죄인과 함께하며 교제하고자 모든 것을 버리신 예수님, 결국에는 자신의 생명까지 버리신 예수님의 사랑이 다가 왔습니다. 이 사랑은 이자의 어둠을 몰아내었습니다. 정죄와 판단보다 긍휼의 마음을 주셨습니다. 부담스럽게 느꼈던 이들이 새롭게 보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분들이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분들로 보였습니다. 모두 같은 목적을 가지고 단지 방법이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사랑의 용기로 연락을 드릴 수 있었습니다. 역사로 인해 연락을 드리긴 했지만 이전과 다른 마음과 목소리 톤으로 연락을 드렸습니다. 안부도 묻고 전화상으로나마 사랑의 교제를 하고자 하였습니다. 많이 미숙하고 여전히 부족 하지만 이를 통해 어떻게 교제해야 하는지 알게 되어 감사가 됩니다. 일이 중심이 되어 교제하기보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중심이 되어 교제하는 자 되길 기도합니다. 성령 안에서 교제함으로 아름다운 믿음의 교회공동체를 이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교제하면서 떡을 떼는 일에도 힘썼습니다. ‘떡은 떼는 것’은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성찬식을 말하는데 그들은 이를 모일 때마다 했습니다. 이는 예수께서 마지막 유월절 만찬에서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눅 22:19). 이 말씀을 따라 그들은 예배나 모임 후 다 같이 모여 성만찬을 겸한 식탁 교제를 하였습니다. 그들의 교제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는 일에 힘쓸 뿐 아니라, 오로지 기도하는 일에도 힘썼습니다(42b). 서로에 대해 깊이 알아 가면 알아갈수록 서로의 구체적인 기도 제목을 알게 됩니다. 서로의 아픔과 고통과 어려움을 이해하고 공감이 이루어질 때 절로 긍휼의 마음이 생기고 기도할 마음이 생깁니다. 같은 마음이 되어 주께서 일하시도록 간절히 기도하게 됩니다. 기도의 힘을 체험하고, 더욱 기도하는 믿음의 자리로 나아가게 됩니다. 기도하는 곳에 성령께서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와 기도하는 모임을 귀하게 사용하십니다.
초대 교회는 말씀과 사랑의 교제와 떡을 떼고 기도하는데 힘썼습니다. 그리했을 때 어떤 현상이 일어났습니까? 43절은 말씀합니다.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사람마다 두려워하였습니다. 왜 두려워했습니까? 이는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나타났던 많은 기사와 표적들이, 이제 사도들을 통해서도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기사와 표적은 사도들의 가르침의 권위가 사람으로부터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확실하게 증언해 주었습니다. 이 일로 공동체 안에서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44절을 보면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였습니다. 보통 물질을 공동 소유하고 필요에 따라 나누는 일은 가족 간에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에도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이를 볼 때 그들이 서로가 서로를 가족으로, 모든 것을 함께하는 운명공동체로 인식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주었습니다(45). 어떻게 이런 놀라운 일이 있었을까요?
사도들의 가르침과, 실제 그 삶을 통해 나타나는 표적과 기사를 통해 그들의 물질과 가족에 대한 가치관이 달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생명이 소유의 넉넉한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있는 것을 팔아 가난한 이웃을 돌보고 나누는 데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로 인해 그들의 삶의 중심이 자기 자신에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역사로 옮겨졌습니다. 그 믿음이 이론으로 머물지 않고 삶의 현장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런데 이 같은 일이 초대교회에만 일회성으로만 나타난 사건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함께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동체에서는 어디서나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지금 우리 모임 안에서도 실제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 목자님들은 더 좋은 환경과 더 많은 월급을 받으며 젊음을 자신을 위해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캠퍼스목자로 부르신 주님의 은혜와 사랑에 힘입어 소유의 넉넉함 대신 자신의 젊음을 드려 양들을 먹이고 돌보았습니다. 목자님들의 사랑과 헌신을 통해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이들이 복음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중 어떤 이들은 선교사로 어떤 이들은 목회자로 또 어떤 이들은 예수님의 제자로 또 어떤 이들은 평신도로 하나님나라 확장역사에 쓰임 받고 있습니다. 지난해 많은 선교사님들이 춘천을 방문했습니다. 그랬을 때 목자님들은 많은 물질을 드려 선교사님들을 섬겼습니다. 뿐만 아니라 어떤 분들은 방을 내어주었고 또 어떤 분은 자동차를 내어 주며 선교사님들이 쓸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많은 목자님들이 십일조뿐만 아닌 감사헌금과 선교헌금 더불어 구제헌금까지 드리며 하나님사랑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계십니다. 이 같은 초대 교회와 같은 역사가 지금도 우리 가운데 계속 일어나고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46절은 말씀합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초대교회가 말씀중심으로 성도들간에 사랑하며 헌신과 수고와 나눔의 결과가 어떠합니까? 날마다 성도들이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안식일이나 기타 절기 때만 모이지 않고, 날마다 성전에 모여서 공적인 예배와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들의 삶이 곧 예배가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그들은 마음을 같이하여 모였습니다. 처음부터 이들의 마음이 같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힘쓰고 애쓰고 노력하고 도전하고 교제하며 기도하고 나누고 섬김을 통해 마음을 같이 하게 되었습니다. 마음을 같이 한다는 것은 모두 똑같은 행동을 한다는 건 아닙니다.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서로 다른 위치와 상황에서 공동의 목표를 이루는데 힘쓰는 것을 말한다 할 수 있습니다. 얼마 전 월드컵 때 우리 모든 선수들과 국민들의 마음은 하나가 되었습니다. 16강이라는 분명한 목표가 있었습니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선수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고군분투 하였습니다. 최선을 다해 수비하고 공격하며 동역하였습니다. 그리고 골을 넣었을 때 모든 선수들이 기뻐하였습니다. 골을 넣은 선수는 물론 골에 관여를 하지 않은 선수와 골키퍼 까지 기뻐하였습니다. 대기하고 있던 선수들도, 집에서 누워 TV리모컨 버트만 누르며 지켜보던 국민들도 모두 기뻐하였습니다.
우리 춘천UBF교회공동체 또한 분명한 공동의 목표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캠퍼스개척역사를 위해 부르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캠퍼스만을, 대학생만을 생각하고 그들을 섬기지 못하면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고 정체성을 잃어 버린 거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의 사고와 믿음이 더 커지고 깊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나라 확장 편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나라는 대학 4년만 해당되지 않습니다. 그의 전 인생에 해당됩니다. 그러하기에 어린아이를 섬기는 것도 필요하며 대학생 이후의 사람을 돕는 것도 필요합니다. 올 가을에 만나 교회에 오고 초청된 대부분의 학생들은 어릴 때 잠깐이라도 교회에 다녔던 양들 이였습니다. 또한 대학 때 선교단체에 활동했던 부모들의 자녀들도 있었습니다. 또한 하나님나라 확장 이라는 큰 그림을 생각해 볼 때 각자 감당하고 있는 일과 삶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 나라 확장역사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교회공동체 가운데 하나님나라는 동역과 역할분담을 통해 이뤄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배를 드리기 위해 보이지 않은 수많은 이들의 헌신과 수고가 들어갑니다. 이를 통해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됩니다. 한 사람을 살리는 것 또한 일대일 목자 한 사람을 통해서 이뤄지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일대일목자의 허물로 인해 실족하게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를 공동체가 함께 감싸주고 도와주며 울타리 역할을 잘 함을 통해 생명이 살아나고 자라게 됩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한 것처럼 한 사람을 키우려면 온 교회의 합심동역이 필요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성전에서만 모이지 않고 가정에서도 모였습니다. 집에서는 주로 떡을 떼었습니다. 이를 보면 당시 신앙공동체는 가정교회였습니다. 가정을 오픈한다는 것은 내 실제 삶을 다 드러내는 것이기에 그것 자체가 부담일 수 있습니다. 또 누군가를 초청해서 같이 밥을 먹으려면 더 많은 자기부인과 희생과 섬김과 헌신이 요구됩니다. 이렇게 성전이나 집에서 날마다 모이니 얼마나 피곤했을까요? 그러나 도리어 그들은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또 하나님을 찬미하였습니다(46b). 그 안에 참된 기쁨이 있고, 만족이 있고, 생명이 있었습니다. 이 같은 기쁨과 만족이 있었기에 그들은 더욱 마음을 같이하여 날마다 모이기를 힘쓸 수 있었습니다. 세상 모임은 모이면 모일수록 힘이 빠집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랑의 공동체는 모이면 모일수록 힘이 납니다. 기쁨이 있습니다. 모이는 것이 더 기다려지고 사모가 됩니다. 절로 그 입에서 하나님을 찬미하는 노래가 흘러나옵니다. 그들이 이같이 주 안에서 모이기를 힘쓸 때 어떤 역사가 있었습니까?
47절 후반 절은 말합니다.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주 안에서 하나 되어 서로를 돌아보고 하나님을 찬미하는 그들의 삶이, 믿지 않는 세상가운데 아름다운 향기가 되어 선한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그렇게 했을 때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들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습니다. 오직 그들의 온전한 공동체적인 삶이 전도와 선교로 이어지고 구원의 열매로 나타났습니다.
사람을 살리고 제자로 세우며 마음을 하나 되게 하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일하셔야만 합니다. 성령께서 일하시기 위해선 나와 우리의 것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말씀을 붙잡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교제하며 기도하며 섬기는데 힘써야 합니다. 한 사람은 교회를 위해서, 그 교회는 한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고 합니다. 내가 변하고 새롭게 될 때 교회가 변하게 됩니다. 올 한해 마음을 같이하여 모이기에 힘씀을 통해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아름답게 만들어 갈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