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들이 기억해야 할 한국교회 위인들 [15]
김영학(金永鶴, 1877-1932)①
김영학은 1877년 황해도 금천에서 태어났습니다. 양반 가문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글을 익혔고 공부를 할 수 있는 환경에서 자랐지만 방탕한 젊은 시절을 보냈습니다. 30세가 되던 어느 장날 낮부터 술에 취해있었던 김영학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적힌 전도지를 나누어주며 복음을 전하는 감리교회 전도인들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기분이 상했는지 험한 욕설을 퍼 부었고, 그것도 모자라 공동우물에 가서 물을 퍼 와서 전도인들을 향해 끼얹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전도인들은 몹시 기분이 상할 상황이었음에도 점잖고 친절하게 김영학을 대하면서 전도를 이어갔습니다. 결국 김영학은 전도지를 빼앗아 찢고 발길로 차버렸습니다. 집에 돌아온 다음 날 그는 평소와는 다른 느낌을 받았고 전도지를 찢은 일에 대해 심경의 변화가 일었습니다. 그는 전도집회가 열리던 곳을 찾아가 집회가 끝나는 시간까지 자리를 지켰습니다. 마치 복음서에 나오는 돌아온 탕자 비유 속 탕자처럼 회개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신자가 된 것입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이 믿지 못할 정도로 기독교 신앙에 빠져들었고, 권서인(勸書人)이 되어 성서공회에서 공급하는 성경을 나눠주는 일이나 판매하는 일을 시작할 정도로 변화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몇 년 후에 그는 전도사로 교회 일을 시작했고, 1915년 감리교 협성신학교를 졸업한 후 1918년에는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황해도, 경기도, 서울, 강원도 등지에서 목사로 섬겼고, 전국적으로 만세운동이 일어났던 1919년에는 강원도 양양에서 만세운동에 앞장섰습니다. 당시 양양에서는 12명이 일본 군경의 총탄을 맞아 사망했고 80여 명이 투옥되었는데, 김영학 목사 역시 서대문 형무소에서 6개월의 수감생활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