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 제일 많이 나오는 이름이 바그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한 러시아 용병 바그너 그룹 때문인데 그들이 왜 바그너라 이름 지은지는 알수 없기도하고 바그너 이름과 같은건지도 알 수는 없다.
확실한건 바그너 처럼 호, 불호가 극명한 사람도 없다.
바그너는 음악도 종합예술중의 하나라고 혁명적인 생각을 하고 그 자신 또한 혁명가 이기도 했다.
그는 남의 돈도 내돈처럼 쓰고 남의 여자도 내것으로 여겼다.
요즘말로 나쁜 남자 .
그때도, 요즘도 나쁜남자가 여인들한테는 잘 통히는 경향이 있다.
오페라를 많이 성공시켜 돈을 많이 벌었어도 남의 빚을 엄청나게 많이썼고, 유부남인 그는 친구의 아내와 바람을피우고 리스트의 제자의 아내 코지마와 불륜으로 아이까지 낳았다. 그 사건으로 스위스로 추방된 후 그녀와 스위스에서 재혼했다.
코지마는 친구인 리스트의 백작부인 불륜녀와의 사생아 딸인데 리스트가 극렬히 반대해서 연을 끊고 살았다. 사생아 딸이 또 사생아 딸을 낳았으니 리스트의 심정이 어땠을까. 리스트는 나중에 신부가 되었다.
나이가 삼십년 정도 차이가 있어도니체는 친구가된 바그너를 너무 좋아해 거의 숭배할 정도였다.
신은 죽었다고 선언한 그는 바그너를 유럽의 문화와 사회를 개혁할 구원자 메시아로 생각할 정도로 디오니시스적인 예술만이 인간을 구원할수 있다고 할 정도였다.
그당시에 오페라는 엄청나게 인기가 있어 로시니는 오페라로 엄청 돈을 벌어 37세 후에는 더이상 작곡도 안하고 그냥 놀고먹고 살았다.
베토벤 조차도 오페라에 기웃거려 피델리오를 작곡 했으나 그냥 체면만 유지했다. 22년 년하의 로시니가 한창 잘 나갈무렵 십년동안은 귀가 안들리는 개인적인 사정도 있었겠지만 거의 작곡을 안할 정도였다. 그런걸 극복하고 다시 시작한 후기작품들은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음악을 열었다.
슈베르트의 꿈이 로시니처럼 오페라 음악을 작곡하여 부자가 되는 꿈을 꾸었으나 실패해서 죽을때까지 가난하게 살다가 사랑도 못해보고 불쌍하게 죽었다.
고호가 생전에 2000여점의 그림중 단 한점밖에는 팔지 못하고(그것도 누가 봐줘서) 죽은 후에 엄청난 화가가 된것과 같다.
그 당시 오페라는 요즘 소설 영화 연속방송극 뮤지컬 오케스트라등을 모두 합친것 처럼 엄청나게 인기가 있었다.바그너는 그런 오페라를 8시간짜리나 몇부작으로 나누어 연속극처럼 공연했다.
니체는 독일의 속물로 변한 바그너와 결별한 후에는 그를 극복하려 발버둥치고 철저하게 비난했다.
바그너는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책 발간후 유행하던 우생학에 빠져 게르만족의 우수성을 강조하고 반 유대주의 활동을 했는데 이는 흙수저인 그가 자기의 음악을 쓰레기라고 비판한 그때 잘 나가던 원수같은 금수저 유대인 멘델스존을 극히 증오해서 인지도 모르겠다.
바그너가 없었으면 히틀러도 없었을거라는 정도로 히틀러는 바그너를 숭배했고, 유대인 학살의 모티브를 제공했다.
지금도 독일 국민들은 베토벤 보다도 바그너를 더 좋아한다고 한다.
유대인 학살을 몇번씩 사죄한게 진심인지 의문이 간다.
이러 저러한 이유로 난 바그너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그의 음악을 들은건 탄호이져 서곡과 히틀러가 12세때 보았다는 로엔그린이 전부다.
로엔그린은 남편을 의심해 남편은 떠나고 부인은 화병으로 죽는 불행으로 끝나는 그 저주의 결혼행진곡으로 유명한 오페라다.
난 뮤지컬 조차도 않좋아 하는 반 바그너파로 음악의 순수한 정통 음악을 좋아하는 브람스파다.
난 브람스를 아주 좋아하고, 그 불쌍한 슈베르트 음악도 매우 좋아한다.
바그너
탄호이져 서곡
https://youtu.be/mSdKgUFvH_g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1번.
https://youtu.be/_hdGzwpt4Qo
브람스 음악중에 제일 좋아하는 곡. 브람스적이기도 하고 그곡의 러브 스토리가 좋아서.
원래는 교향곡으로 만든것을 사랑하는 여인, 슈만의 부인 피아니스트 크라라를 위해 협주곡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크라라가 연상되는 엘렌 그리모의 연주도 좋고. 1악장만. 나머진 각자 찾아서...
첼로소나타.
https://youtu.be/9XiYrzsgW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