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고의 식당 <송추가마골> 김오겸 회장
행운은 승자의 언어, 우연은 패자의 언어
-비즈니스에는 우연이 없다
우연과 행운은 동전의 양면이다. 같은 속성을 지녔다. 그러나 우연과 행운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승자와 패자가 갈린다. 우연과 행운을 가르는 것은 통제의 차이다. 사건의 결과에 통제를 미칠 수 있다면 행운이고, 통제를 할 수없다면 우연이다.
우연은 도박의 핵심이다. 우연에 지배되는 게임의 결과는 거의 통제가 불가능하다. 우리가 결과에 영향을 미칠 방법이 거의 없는 것이다.
행운은 필연의 영역이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 행운의 성격이다. 행운은 통제가 가능하다. 행운은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은 행운을 말하는 것이며, 운이 다했다는 말은 우연을 뜻하는 것이다. 행운은 승자의 언어요, 우연은 패자의 언어다.
-성공한 비즈니스에는 우연이 없다
특히 겨울날 송추에 가면 우리는 하나의 운치 있는 건물을 만나게 된다. 국내에서 최고의 식당으로 꼽히는 <송추가마골> 식당이 개울가를 두고 앞뒤로 서 있다. 도로변에 있는 것이 본관이고, 뒤쪽에 포진한 것이 신관이다. 식당 안에 들어서면 꽃과 그림 그리고 웃음으로 가득 찬 또 하나의 색다른 공간을 만나게 된다.
‘이야기가 흐르는 곳’, 송추가마골에 대한 필자의 연상이다. 이곳이 운치 있는 식당이어서만은 아니다. 송추가마골을 만든 김오겸 회장(54)의 스토리가 오버랩 되기 때문이다.
김 회장의 성공스토리는 동화 그 자체다. 동화 중에서도 겨울동화다. 서정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의 얘기는 겨울 동화다.
동화에는 우연적 요소가 많다. 그러나 성공한 비즈니스에는 우연이 없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 우연으로 치장한 행운만 있다.
김 회장의 스토리는 행운의 연속이다. 위험에 처할 때마다 행운이 귀인처럼 나타나 그를 구해준다. 김 회장의 행운에는 두 가지 버팀목이 있다. 하나는 ‘작은 노력의 법칙’이고 또 하나는 ‘급한 성격’이다. 이 두 가지 요소는 행운을 불러들이는 추진엔진이다. 국내 최고의 식당을 만든 비결이기도 하다. 그 비결을 찾는 여행을 떠나보자.
-돈 냄새 풀풀 나는 곳을 찾아라
서울에 올라온 지 벌써 한달이 다 되간다. 그동안 가보지 않은 곳이 없다. 서울 골목 곳곳을 헤매며 돌아다녔다. 그가 식당자리를 찾아 돌아다닌 것은 한달이 훨씬 넘는다. 서울에 올라오기 이전에도 두어 달 동안 대전, 안양, 부천, 인천 등지를 샅샅이 훑고 다녔다. 저녁이 되면 온몸은 파김치가 됐다. 패잔병 몰골이다.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언제까지 찾아다녀야 하나’ 시내버스 창가에 앉아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성수역 부근을 지나는 버스 차창 밖으로 무심코 눈을 돌렸다. 순간 그의 눈이 빛났다. 수많은 퇴근길 인파가 눈에 띄었다.
“사람들이 콩나물시루 속에 촘촘히 박혀있는 콩나물로 보였습니다. 돈 냄새 풀풀 풍기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돈 냄새 풀풀 풍기는 곳이라니. <응암갈비>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새벽에 얻은 영감, 갈비집을 차리자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돌아온 것은 지난 1980년. 600만원이라는 거금(?)을 손에 쥐었다. 1년여 동안 건설현장에서 번 돈이었다. 그러나 그 돈으로 할 수 있는 사업아이템은 거의 없었다. 딱히 무엇을 할 것인가 정한 것도 없었다.
‘돈을 벌어야 한다. 월급쟁이는 하지 않을 것이다. 사업을 해야 한다.’ 이런 전제하에서 그는 고민을 거듭했다. 돈이 부족한 게 모든 고민의 출발이었다. 돈에 알맞은 사업을 하자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섬광처럼 스치는 생각 때문이다.
“샐러리맨 시절 하루가 멀다 하고 퇴근길에 들르던 갈비집이 떠오르더군요.”
날이 새자마자 <응암갈비>로 달려갔다. 그러나 <응암갈비> 주인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포기할 그가 아니었다. 레시피를 알려줄 때까지 식당을 한 발짝도 나서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지금에야 갈비집이 흔하지만 당시만 해도 보기 힘들었다. 양념 갈비 레시피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 또한 그리 많지 않았다.
식당에 주저앉아 매달리는 그를 보고 주인 내외는 3일 만에 마음을 바꿨다. 서울에서는 식당을 열지 않는 조건으로 레시피를 공개했다.
그는 고향 근처인 대전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아무리 기를 써도 입에 딱 맞는 가게는 구해지지 않았다. 그놈의 돈 때문이었다.
두어 달 동안 돌아다니던 그는 <응암갈비>에 연락해 저간의 사정을 호소했다. 대뜸 전화선을 타고 충격같은 한마디가 흘러 나왔다.
‘돈 냄새가 풀풀 나는 자리를 찾아라.’
선문답(禪門答). 그는 이 격언을 가슴에 안고 응암동과 가까운 곳만 빼고 서울 시내를 한달 넘게 샅샅이 뒤졌다.
-갈색의 시대, 성수동 <마포갈비>
서울 성동구 성수동은 대표적인 공장지대로 공장과 주택이 혼재된 곳이다. 상가가 별로 없다. 특히 예전에는 고단한 일과를 마친 노동자들이 한잔 술에 스트레스를 보낼 수 있는 아기자기한 술집도 부족했다. 바로 이곳이었다.
“한달 여 동안 성수동을 거쳐 숙소로 돌아가곤 했지요. 이전에는 이곳을 지날 때 아무 감흥도 없었어요. 그런데 그날따라 돈 냄새가 나는 거예요. 그것도 아주 강렬하게.”
무엇인가 갈구하는 사람에게는 어떤 식으로든 그 대상이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그 모습을 찾고 못 찾고는 그 사람의 갈구농도에 따라 결정된다.
갈비집을 선정하는 과정도, 식당자리로 성수동을 결정하는 과정도 따지고 보면 절박한 심정에서 나온 것이다. 절박한 심정은 집중으로 이어진다. 집중에서 아이디어는 떠오르게 마련이다.
그날 성수역 인근에 일본식전병(샘비) 과자를 파는 10평 규모의 가게가 매물로 나와 있었다. 보증금 300만 원에 권리금 30만 원, 월세도 30만 원으로 그가 갖고 있는 돈에 딱 어울리는 곳이었다. 즉시 계약했다. 주변상황을 살피고 말고 할 겨를도 없었다. 개업 준비를 하면서 안 일이지만 바로 앞에는 100여 평 규모의 갈비집이 성황을 이루며 장사 중이었다.
성수동 시절은 갈색의 시대다. 실내도 갈색 톤으로 처리했다. 갈색의 계절은 낙엽이 길거리에 뒹구는 가을이다. 갈색은 또한 노동의 상징이다. 가난을 뜻하기도 한다. 땅의 상징이며, 출산을 의미한다. 갈색의 시대를 그는 초라하게 열었다. 초라한 출발은 더 이상 잃을게 없다는 의미다. 비록 시작은 미미할 지라도 그는 화려한 비상의 날개 짓을 할 날을 꿈꾸었다.
그러나 막상 개업 날이 다가오자 돈이 절대 부족했다. 인테리어와 시설비로 다 빠져나간 것이다. 먼 친척에게 염치도 좋게 10만 원을 빌렸다. 그 돈으로 고기 30근을 사고, 소주 한 짝을 들여놨다. 가게명은 <마포갈비>로 정했다.
80년 10월초 오후. 문을 열자마자 들어오는 손님으로 6개의 테이블이 꽉 찼다. 조짐이 좋았다.
다음날, 전날 매출로 60근의 고기와 소주 두 짝을 샀다. 그날도 만원사례였다. 밀려드는 손님으로 어떻게 하루가 가는지 몰랐다. 숨 돌릴 틈 없는 나날들이었다. 그렇게 그곳에서 1년을 보냈다.
“당시 제가 전문가였다면 가게를 얻을 시도조차 하지 않았겠죠. 대형 식당이 바로 앞에 있는데 그곳에 규모가 십 분의 일도 안 되는, 더구나 같은 메뉴를 다루는 식당을 내려는 발상 자체를 무모하다고 판단했을 것입니다.”
무모하다고 했다. 무모한 결정을 이끌어내는 힘과 그 결정을 성공으로 바꾸는 힘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았다. 무모함은 우연의 영역, 그러나 그런 우연을 행운으로 바꾸는 힘이 김 회장에게 있었다. 송추가마골 동화는 여기에서 본격화된다. 동화에서는 무모함도 다이내믹한 추진력의 배경이 된다.
-급한 성격인 차린 <우이동 갈비>
특히 겨울, 해가 서쪽으로 넘어가기도 전에 주변은 짙은 어둠으로 물든다. 눈이 쌓였다하면 인적이 끊기기가 예사다. 발자욱이 도통 보이지 않는다.
가로등도 변변치 않은 곳, 이런 외진 곳까지 와서 데이트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사건일 수밖에 없다. 더욱이 가족 외식장소로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곳이었다. 그런 이곳에서 식당을 기대하다니.
“주말 등산객 외에는 볼 것이 없어.”
주변사람들이 잔뜩 겁을 주었다.
지금에야 제법 흥청거리지만 83년의 서울 우이동 계곡은 적막한 산중이나 마찬가지였다. 이곳에 그는 떡하니 100평 규모의 <우이동 갈비>를 개업했다.
사건은 우이동 계곡으로 놀러오라는 친지의 전화를 받은 데서부터 비롯됐다. 난생 처음으로 우이동 계곡에 들어선 순간 눈에 띄는 새 건물이 있었다.
“이것이다는 느낌이 오더라고요. 바로 주인을 찾아 계약부터 했지요.”
돈 냄새를 맡은 것 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대책이 없었다. 이번에도 개업까지는 돈이 상당히 부족했다.
일을 저질러놓고 보는 것은 그의 특징. 일을 재는 것은 그의 성격에 맞지 않다. 급한 것이 경솔하다고 여겨질 수 있지만 사실 승자들은 하나같이 성질이 급한 사람들이었다.
승자들은 신속한 일처리로 명성을 얻는다. 업무에 절박감을 고취시키고, 기회가 생길 때마다 재빨리 움직인다. 비즈니스는 시간을 사는 것이다. 한달이면 할 수 있는 일을 1,2년 걸려서 하고 있다면 승자의 대열에서 탈락하고 말 것이다. 한 때 GE의 수장이었던 잭 웰치는 자신을 성공으로 이끈 것은 바로 ‘급한 성격’이었다고 술회한 바 있다.
-화이트시대, 우이동에서 보낸 10년
83년 5월 가까스로 식당을 오픈을 했다. 우이동 시절은 화이트 시대다. 화이트는 미완성의 상징. 완성을 향해 발돋움하는 시절이기도 했다.
이제 밀려드는 손님만 받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상황은 정반대로 흘렀다. 손님을 한명도 구경하지 못한 날도 있었다. 한 두 달이 지나면서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손님이 없으니 매출이 없고, 매출이 없으니 돈이 있을 턱이 있나요. 야채 등 물품 대금을 받으러 오면 돌아버리겠더라고요. 더구나 빚을 내 차린 식당인데. 날마다 가슴이 타들어갔지요,”
어떤 타개책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손을 놓고 개선되기를 바랄뿐이었다. 마치 사형수가 형 집행을 기다리는 심정이었다.
사형수라니. 운명은 그러나 그런 그를 내버려두지 않았다. 동화 같은 일이 벌어졌다.
“하루는 성수동의 수원갈비 사장이 놀러왔지요. 텅 빈 가게를 보더니 대뜸 한다는 소리가 “‘너는 여기서 죽은 면 안 된다. 내가 사람을 보낼 테니 그를 한번 만나봐라’ 하시더군요.”
한때 고객을 두고 경쟁을 벌였던 업소의 사장이 그에게 구원의 손을 내민 것이다. 뜻밖의 일이었다.
주방경력이 화려한 조상희 씨. 조씨는 시비(?)부터 걸었다.
“사장님 방식과 제 방식 중 하나를 택하시지요.”
그가 한 양념갈비를 먹어보았다. 달짝지근하면서 톡 쏘는 맛이 일품이었다. 조씨는 또한 반찬을 기가 막히게 잘 만들었다. 손님들의 음식칭찬이 잦아졌다. 처음에는 주말에만 등산객들로 들끓더니만 평일에도 심심치 않게 손님들이 몰려들었다.
그는 조씨를 통해 음식 만드는 법, 손님 유치하는 법 등을 다각도로 배웠다. 소중한 만남이었다.
개업 6개월이 지나자 이제 <우이동 갈비>는 이일대의 유명 음식점으로 탈바꿈했다. 예약이 없으면 주말에 자리를 얻지 못할 정도로 유명세를 탔다.
그 또한 잘된다고 가만히 앉아있지만은 않았다. 우동뿐만 아니라 수유리 상계동 창동 쌍문동 방학동 일대를 훑고 다녔다. <우이동갈비> 홍보를 톡톡히 했다.
우이동 에서만 10년을 보냈다. 화이트 시대를 마감할 시간이 다됐다. 봄이 다가왔음을 직감했다.
-녹색의 시대, 송추 가마골
1990년대 들어 우이동 계곡은 각광받기 시작했다. 하루가 다르게 거주단지와 상업시설이 들어섰다. 그에 맞춰 식당들도 들어섰다. 밤이 돼도 예전처럼 어둡지 않았다. 흥청거릴 정도는 아니지만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덩달아 식당업도 날로 흥행이었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주차단속이 심해진 것이다. 우이동식당은 주차장이 태부족이었다.
“날마다 주차단속과의 전쟁이었어요. 그래서 식당일이 되겠어요.”
이를 묵묵히 지켜보던 김 회장은 이전을 결심했다. 곧바로 경기 의정부시 인근의 송추 유원지에 식당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급한 성격이 여기서도 문제를 일으켰다. 건축비가 모자란 것이다. 1억5000만원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1994년 봄 우역곡절 끝에 330평부지에 지하1층 지상2층 규모의 식당을 열었다. ‘녹색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식당 이름은 <송추가마골>. 역시 지역명을 활용한 이름이다.
“이곳이 숯가마 터였답니다.”
지역 명을 선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처음 시작할 때 <응암갈비>의 영향을 받은 것도 있겠지만 이는 아마도 그의 타고난 성품 때문일 것이다. 친근한 정취를 사랑하고 지역 주민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려 따뜻한 이웃이 되고 싶다는 잠재의식의 발로가 아닐까 짐작해본다.
주민과의 동화는 쉬운 게 아니다. 타지인에 대한 배척을 물리쳐야하고, 토박이들보다 더욱 많은 지역봉사를 해야만 인정받는 법이다.
“동화정도가 아니라 이곳의 유지가 됐습니다. 우이동 시절이나 성수동 시절도 마찬가지고요.”
그에게는 가식이 없다, 필자도 첫 번째 만남에서부터 솔직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친근감 있는 동네아저씨가 첫인상이다. 필자는 이러한 인간미에서 <송추가마골>을 일으킨 동력을 찾고 있다. 각박한 세상에서 정(情)있는 사람이 승리하는 것은 신나는 일이다.
-시행착오의 연속
<송추가마골>의 시작은 그러나 험난했다. 상권이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 교통도 불편한 곳에 사람들이 오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난망이었다. 메뉴를 한정식으로 선정한 것부터가 문제였다. 이 같은 메뉴 컨셉트 설정은 한정식이 새 건물에 어울리는 것 같다는 비 마케팅적인 발상에서 나온 것이다. 흐름을 잘못 잡아도 한참 잘못 잡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초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다 다를까 시간이 지나면서 돈 빌려준 사람의 불손한 의도가 눈에 띄게 드러났다. 평생 걸려 만든 식당을 뺏기는 것은 가당치 않았다. 그러나 달리 방법이 없었다.
“친구에게 혹 내가 잘못되면 가족들을 챙겨달라는 부탁을 했지요. 그만큼 심각했습니다.”
동화의 구성상 귀인(貴人)이 나타날 시기가 됐다. 역시나 친지소개로 은행권 사람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건물을 뺏기는 최악의 결과에서 벗어난 그는 반격의 드라마를 준비했다.
반격의 시발점은 아이템이었다. 소고기 등심, 장어 등 여러 아이템이 시험대에 올랐다. 최종 결정한 것은 당시 포천지역에서 뜨고 있는 이동갈비. <송추가마골> 동화를 만들어낸 아이템이다.
이동갈비의 선정에도 행운이 따랐다.
“하루는 고기업자가 찾아와 포천지역에서 이동갈비가 뜨고 있다며 넌지시 알려줬지요. 서울사람들이 이동갈비를 먹으러 포천으로 밀려든다나요.”
포천으로 달려갔다. 식당마다 사람들로 들끓는 것을 눈여겨보았다 달착지근한 갈비 맛에 사람들의 호응도가 높은 것을 파악했다. 두고 볼 일이 아니었다. 예의 그 급한 성격이 발동했다.
“포천 이외의 지역에서 이동갈비를 최초로 취급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포천 이동갈비를 그대로 도입한 것은 아니었다. 차별화를 시도했다. 포천 이동갈비의 고기는 다소 질겼다. 개선해야만 될 문제점으로 파악했다. 고기 앞뒤로 다이아몬드형식의 칼집을 냈다. 품이 많이 든다는 단점은 있었다. 그러나 고기가 훨씬 부드러워졌다.
양념 갈비 맛에도 신경을 곤두세웠다. 시류에 맞게 알싸한 맛을 좀 더 가미했다. 고기도 큼직한 것을 내놓았다.
포천이동갈비와는 안과 밖이 다른 이동갈비가 탄생한 것이다. 소위 ‘김오겸식 이동갈비’다.
당시 서울에서 붐이 일고 있던 함흥냉면도 동시에 취급했다. 쫄깃한 면발에 담백한 육수의 냉면은 이동갈비와 궁합이 잘 맞아 떨어졌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축제가 될 것인가 아니면 파장이 될 것인가. 그는 조바심을 내며 손님들을 기다렸다.
-동화(童畵)는 극점으로 달려
태풍이 불기 전 파도가 높게 치던가. 일간스포츠 동아일보 스포츠서울 등 중앙일간지에 잇따라 맛집으로 소개가 됐다. 고객들이 몰려들었다. 그의 사업 역정으로 볼 때 계절로는 봄이 왔다. 봄은 축제의 계절이다. 꽃샘추위가 사납다고 해도 견딜 만하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송추가마골을 빗겨갔다.
“IMF 서슬이 퍼럴 때인 1999년 1월 1일 본관 1,2층에 160평 규모를 증축해 열었지요. 남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첫날부터 사람들이 밀고 들어오더군요.”
남들이 움츠릴 때 그는 그 특유의 직감력으로 공격적인 경영을 펼쳤다. 남들이 주저앉았을 때 그는 더 많은 손님들을 유치하는 전략을 세웠다. 남들이 의기소침할 때 그는 더욱 기운을 내 식당을 넓혀나갔다.
‘무모함의 극치인가. 아니면 절묘한 경영의 만개(滿開)인가?’
이는 독자들이 판단할 문제인 것 같다.
결정력은 성공하는 사람의 주요한 자질이다. 인생에서 위대한 도약은 당신이 어떤 종류의 분명한 결정을 한 뒤에 온다. 어떤 분야에서든 지도자가 되려면 빠르고 단호한 결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공격적인 성향은 김치공장 건립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2000년 들어 손님들이 대폭 늘었다. 김치의 양과 질을 동시에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직접 김치공장을 운영해야만 했다. 공장운영의 타당성을 수용한 그날로 공사지시를 내렸다. 설계, 허가, 공사업체 선정, 그리고 공사시공 등이 1주일 새에 이뤄졌다.
위의 사례에서 보듯 그는 항상 경영에 속도를 강조한다. 경쟁자보다 빠르게 가치를 창출하고 보급하려는 노력만이 승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오늘날 널리 쓰이는 경영 개념들 대부분은 속도와 관련되어 있다. 외부결제시스템, 화상회의, 리엔지니어링, 구조조정, 조직개편 등은 모두가 속도경영의 일환이다.
- 단일매장 최대규모의 송추가마골 신관을 열어
2004년 5월은 특별한 달이다. 그의 역작인 <송추가마골> 신관을 건립, 오픈했다. 1100 평대지에 800평 규모로 건립된 이 식당은 깔끔한 인테리어와 최신식 설비를 자랑한다. 단일 식당으로는 국내 최대 규모로 알려졌다.
필자는 이곳에서 잔반냉장고를 처음 봤다. 하루 200~250kg 정도 발생하는 음식찌꺼기 처리를 위해 수천만 원을 들여 잔반냉장고를 갖췄다.
-송추 시대 이후, 다칼라 시대
김 회장은 지난 2006년 봄에 경기 양주시 덕정리에 대형 식당을 오픈했다. 1000평 대지에 200평 규모의 대형 식당이다. 이어 의정부 관내와 남양주 평내에도 송추가마골을 연이어 열었다.
덕정리 시대 이후는 무슨 색깔을 띨까. 다칼라시대, 즉 파스텔 톤이 아닐까. 갈색, 화이트, 녹색의 시대를 거쳐 이제는 화려한 비상을 할 시기라는 점에서 그렇다는 얘기다.
-냉면육수에 물을 붓다
뛰어난 업적은 오랫동안 꾸준한 노력이 쌓인 것이다. 작은 성취 하나하나는 대단치 않지만 하나로 합쳐지면 뛰어난 실적이 된다. 누구나 순식간에 탁월해질 수는 없다. 점진적 개선이야말로 탁월함을 불러일으키는 중요한 행운 유발요인이다.
그는 고품질은 비용이 적게 든다는 믿음, 고품질은 고객만족을 넘어 고정고객을 갖추는 동인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 지속적이고 끊임없는 개선(카이젠)만이 최고의 품질을 보장한다고 믿는다.
이러한 믿음이 <송추가마골>을 국내 최고의 식당으로 자리매김하는데 기여했다고 팔자는 판단한다.
“작은 것이 엄청난 차이를 나게 합니다. 작은 변화가 시간이 흐르면 큰 차이를 만듭니다.”
“성공이 늘 유지된다는 것은 잘못된 견해입니다. <송추가마골>은 최고의 매출을 올리는 식당이지만 세심한 노력을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송추가마골>이 국내 최고라는 평을 받는 데는 이 같은 세심한 노력이 중요한 기여를 했다. 냉면육수에 물을 부은 일은 이를 함축하는 대표적인 사건이다.
2000년 초의 일이다. 주방에 그가 나타났다. 주방장을 비롯한 주방 식구들은 그의 눈치를 살폈다. 조금은 불안해졌다.
그는 말없이 양동이에 가득 물을 담았다. 그리고는 그대로 냉면 육수에 부었다. 주방 사람들은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내 식구가 먹는다고 생각해.”
한마디 호통치고는 그대로 주방을 나갔다. <송추가마골>은 하루에 적어도 냉면을 1000그릇 이상 판다. 주말에는 2000그릇을 훌쩍 넘긴다. 냉면을 내놓을 수 없다면 고객의 원성을 듣는 것은 뻔할 것이고 금액적인 손실 또한 만만치 않을 터였다. 그러나 김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신뢰는 사소한 부문이 쌓여져 이뤄지는 것입니다. 조금의 실수도 용납돼서는 안 됩니다. 잡초가 더 자라기 전에 뽑아야 합니다.”
한 달 후 김 회장은 또 한번 냉면에 물을 부어버렸다. 이후 주방 사람들은 회장이 주방을 방문할라치면 경기에 들릴 정도로 긴장을 한다.
교육은 철저함 그 자체다. 안내 카운터, 영업부, 조리부, 관리부등 팀별로 하루에 오전 오후 두 차례 교육을 실시한다. 한달에 두 번 회장주재하에 간부교육이 있다. 점장교육도 수시로 실시한다. 이를 위해 별관 3층에 번듯한 교육장 시설도 갖추었다.
<송추가마골>의 서비스가 최고라는 평가는 이러한 철저한 교육에서 나온다. 필자는 <송추가마골>을 여러 번 다녀왔다. 그 때마다 종업원을 부르기 위해 종을 눌러본 적이 없다. 필요할 때 종업원이 먼저 왔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서비스는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종업들의 세심한 행동은 <송추가마골>의 힘찬 미래를 보여주고 있었다.
-명품 ‘송추가마골갈비’ 탄생
그는 필자가 만나본 CEO 가운데 가장 인간적인 사람 중 하나였다. 바로 그런 품성이 그의 성공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믿는다. 인간미는 개인과 기업의 성공에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그것이 성공의 비결이다.
김 회장은 사람을 중요시한다. 사업에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다. 성공 비결로 그는 서슴없이 주변 사람을 꼽는다. 백파 홍성유, 월간 식당의 박형희 사장, 조상희 주방장 등의 이름이 쉽사리 튀어나온다. 그는 은원관계가 분명한 사람이다. 은원관계가 뚜렷한 사람은 성공할 자질을 충분히 갖고 있다.
홍성유 선생과 관련된 얘기를 하나만 들어보자.
백설공주 신데렐라 피터팬 등 동화에 나오는 주인공의 이름은 잘 잊혀지지 않는다. 이름이 예뻐서가 아니라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리거 이 때문에 친근감을 갖게 된다.
주 메뉴가 이동갈비였던 1990년대 중반 음식평론가를 유명한 백파 홍성유 선생이 찾아와 쓴 소리를 했다.
“이동갈비가 뭐야. 흔해빠지고 정체도 불분명한 이름을 왜 쓰냐.”
그길로 그는 메뉴판에서 이동갈비를 지워버렸다. 송추가마골갈비가 전격 탄생했다. 분명 어제 판 고기와 오늘 판 고기는 같은데 이름 변경으로 무엇인가 달라보였다. 이름이 내용을 결정지었다.
송추가마골갈비는 ‘고급갈비’, ‘맛있는 갈비’, ‘한번쯤 먹고 싶은 갈비’의 대명사가 됐다. 남들이 함부로 넘볼 수 없는 카리스마 브랜드가 된 것이다.
-가르시아에게 보내는 편지
최고라는 말을 필자는 잘 믿지 않는다. 최고, 최초란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지면에 썼다가 ‘아차’ 한 경우가 여러 번 있었다.
국내 최고의 식당이라는 <송추가마골>. ‘인사치레 말이겠지’ 그날도 필자는 이런 생각을 하고 송추로 향했다.
어느 무덥던 여름 날이었다.
길가의 나무들은 생기를 잃어버렸다. 태양이 내뿜는 열기에 허덕이는 모습이 역력했다. 의정부에서 송추로 접어드는 국도에 들어서자 행락 차량들이 길을 막고 섰다.
“이런 날 놀러가는 짓은 자살행위야.”
식당 안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점시시간에 맞춰 온 것에 대해 스스로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김오겸 회장을 만나고 나온 시간은 오후 3시. 손님들이 줄을 서서 2층 식당으로 올라가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누가 한마디 던졌다.
“계속 손님들이 몰려드는데… 아까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렸어.”
순간 머리가 띵했다. ‘무더위’, ‘오후 3시’, ‘줄을 선다’ ‘만만치 않은 가격대’ 등 여러 그림이 한꺼번에 오버랩 돼 필자의 머리를 어지럽혔다. 특히 지속적인 불황으로 유명 식당들의 매출이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다는 얘기를 바로 얼마 전에 들은 적이 있어 더욱 충격이 컸다.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다. 19세기말 미국과 스페인 전쟁을 종식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로완 중위다.
전쟁 막바지 궁지에 몰리던 미국은 쿠바 반군의 협력이 필요했다. 반군의 지도자 가르시아 장군에 대한 정보는 아무것도 없었고, 누구도 그를 몰랐다. 하지만 미국 대통령은 가르시아 장군에게 협력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내야만 했다. 그 일을 누가 할 것인가. 그때 누군가가 말했다.
“각하, 가르시아 장군에게 편지를 전할 수 있는 사람은 로완 중위뿐입니다.”
임무를 받은 로완은 작은 배에 몸을 싣고 3일 만에 쿠바에 상륙했으며, 3주일 후 가르시아 장군에게 편지를 전달하고 무사히 귀국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로완 중위가 어떻게 해서 가르시아를 만났는가가 아니다. 대통령이 편지를 건넸을 때 로완 중위는 묵묵히 편지를 받았을 뿐 “그가 어디에 있습니까” 라고 묻지 않았다. 편지를 밀봉한 후 곧바로 쿠바로 향했다.
김오겸 회장에게서 로완 중위를 연상한 것은 그 뛰어난 행동력 때문이다. 혼자서 도전할 줄 알고, 자신의 생각을 곧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실천력 때문이다.
10평의 식당에서 출발, 국내 최고의 식당으로 탈바꿈 시킨 김 회장이나 혈혈단신 적진을 뚫고 들어가 무사히 임무를 마친 로완 중위에게 어떤 차이가 있는가. 둘 다 아무런 불평, 아무런 정보도 없이 위대한 업적을 쌓았다는 것 또한 닮은꼴이다.
-우연과 필연, 우연과 행운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프랑스 생화학자 자크 모노. 그는 자신의 저서 ‘우연과 필연’에서 우주안의 모든 현상이 인과법칙에 의해 설명된다고 해도 그러한 인과법칙은 우연의 산물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인과율에 지배되지 않은 우주철학을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자크 모노가 말한 우연이라는 것도 큰 틀 안에서는 필연의 과정일 뿐이다.
<마포갈비>, <우이동갈비>, <송추가마골> 등으로 이어지는 김 회장의 행보에는 우연이 깃들어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우연의 성질이 아니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며 행운일 따름이다. 김회장은 우연을 행운으로 바꾸는 놀라운 힘이 있다. 그 힘은 변덕스런 운명을 거역할 수 있는 자유의지의 배경이다. 김오겸 겨울동화의 완성은 그 힘에서 나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