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산책을 먼저 하고
이번 주는 연일 한낮 기온이 30도를 웃도는 유월 중순 목요일이다. 어제 이어 우리 지역은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날이다. 폭염주의보는 최고기온이 연속해 32도를 넘길 때 발효한다는데 장마가 오기 이전에 이렇게 대지를 달구는 경우는 드문 예지 싶다. 하루를 마무리 짓는 글을 쓰기 전 인터넷으로 검색한 뉴스에는 오늘 내 고향 의령은 전국에서 가장 높은 36.9도까지 치솟았단다.
하지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북반구 중위도인 우리나라는 일 년 중 한낮의 태양 남중고도가 가장 높아진 때가 하지다. 해가 떠서 지기까지 다른 어느 계절보다 태양이 우리 머리 위를 지나면서 원호를 그려 직사광선이 지상으로 바로 내리쬔다. 대지는 하지로부터 한 달이 더 달구어져 7월 하순부터 더위가 최정점에 이르는데 올해처럼 장마가 오기 이전 찾아온 폭염은 드문 경우다.
한낮은 무더운 날씨로 야외활동에 무리가 있을지라도 이른 아침은 그나마 지낼 만하다. 목요일도 여느 아침과 같은 시간대에 산책을 나섰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난 정류소로 나가니 환경미화원은 그 시간에 벌써 일이 시작되어 봉투에 쓰레기를 제법 채워갔다. 며칠째 아침에 뵙는 분은 여성으로 근무복에 해당하는 조끼와 모자를 쓰고 맡은 바 임무를 묵묵히 수행해 거리가 깨끗했다.
대방동을 출발해 월영동으로 가는 102번 버스를 타서 소답동에 내려 1번 마을버스로 갈아탔다. 미니버스는 좌석이 몇 개 되지 않아 내가 마지막으로 차지하고 이후 승객은 서서 가야 했다. 용강고개를 넘어간 버스는 동읍 행정복지센터 앞을 지나 주남저수지를 비켜 장등에 이르자 한산해졌다. 장등부터 대산 일반산업단지가 시작되는 구역이라 일찍 출근하는 회사원들이 타고 왔다.
가술을 지난 모산에서 비닐하우스 일을 나가는 아주머니가 둘 내렸다. 그녀들은 매일 아침 그 시간대 버스를 이용하였는데 비닐하우스 풋고추나 토마토를 따는 일손을 거드는 듯했다. 비닐하우스 일은 외국인 노동자들도 상당한데 그들은 현지에 숙소를 정해 머물며 식사까지 해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버스가 수산교와 갈전을 거쳐 신전 종점에 닿았을 때 마지막 승객이 되어 내렸다.
마을 안길을 지나니 텃밭 오이는 노란 꽃을 피워 열매가 달리기 시작했다. 호박도 넝쿨이 나가면서 넓은 잎사귀가 그루터기 주변 땅을 덮어 가렸다. 옥수수는 키가 높이 자라 수술이 솟은 꽃대 밑에서 암술의 수염이 나오고 있었다. 대형 축사를 지나자 봄 감자를 심었던 논에는 수확을 끝내고 모내기를 마쳐 놓았다. 벼농사는 기계화되어 추수까지 일손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았다.
창원 시민 식수원을 공급하는 대산 정수장에서 바둑판처럼 반듯한 들녘을 거쳐 옥정을 지났다. 하옥정 뒷산 숲에는 왜가리들이 보였는데 둥지를 틀어 새끼를 치는 듯했다. 새들은 일 년 중 단 한 번 알을 품으려고 둥지를 틀었다. 무슨 새든지 새끼를 키워 나래짓을 펼치면 둥지에는 미련을 두지 않고 떠났다. 상옥정에서 본포를 앞두고 강둑으로 나가 수산 방향 자전거 길을 걸었다.
강변 갯버들은 숲을 이루었고 물억새는 날로 무성해져 성인 키보다 높이 자랐다. 둑에는 이른 아침인데 풀을 자르는 인부들이 땀을 흘렸다. 더위를 피해 아침 일찍 일을 시작해 낮에는 쉬어야 할 듯했다. 길섶에 한 그루 자귀나무는 분홍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장마 이후 칠팔월 한여름 뙤약볕에 피는 자귀꽃을 유월 중순 보기는 드문 경우였다. 강둑 따라 제1 수산교까지 걸었다.
강변으로 나와 아침 산책을 마치고 수산교에서 종점을 출발해 오는 1번 마을버스로 가술로 나갔다. 지역의 작은 마을도서관을 찾아 서가에서 몇 권 책을 골라 뽑았다. 내 나이 또래로 정치학과 경영학을 공부해 나라 밖에서도 일하다가 현역에서 은퇴한 이가 쓴 ‘조선생’을 펼쳤다. 인문학을 공부한 이가 쓴 새 이야기는 조류학자가 쓴 책만큼이나 재미나 속도감 있게 책장을 넘겼다. 24.0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