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에 대해 알고 싶은가. ‘티베트 역사산책’을 보라. 중· 남미를 여행할 계획이 있는가. ‘잉카 속으로’를 반드시 참조하 라. 티베트와 남미, 최근들어 부쩍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두 ‘변방 ’지역에 대해 저자의 공력과 정성이 가득 담긴 신간 2권이 나왔 다. 두 책에 대해 한마디로 말하자면 ‘뛰어난 책’이다. 해당분 야를 전공한 학자도 아닌, 어찌보면 ‘아마추어’ 연구가라고 할 수 있는 저자들이 수준 있고 순도 높은 여행서를 펴냈다.
‘티베트 역사산책’은 티베트 대학에서 수인목판화(水印木版畵) 를 수학한 티베트 연구가이자 화가인 김규현 화백의 10여년에 걸 친 노작. 딱딱한 역사서가 아니라 저자의 감상이 곳곳에 배어 있 는, 일종의 역사·기행·수상집이다. 현재와 과거를 자유롭게 넘 나들며 각종 풍속까지 자세히 소개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일반인?湧?접근조차 할 수 없는 사원들을 탐방, 역사적 배경을 소개하 고 개인적 경험담을 풀어놓고 있다. 각 장마다 간단한 여행가이드 포인트로 ‘해동의 나그네들에게’ 라는 코너를 마련, 구체적인 여행 안내서 역할도 하고 있으며 중 요 지방은 저자가 직접 작성한 지도를 첨부하고 있다. 게다가 풍 부한 관련사진들은 그 자체만으로 보는 이들의 가슴을 뛰게 한다 . 하지만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티베트에 대한 저자의 뜨거운 사랑 이다. 티베트 지형의 형성에서 기원설화와 근·현대 티베트에 이 르기까지 티베트 통사를 전혀 지겹지않게 전달하고 있다. 중국 점령이후 티베트 정세분석에다 달라이 라마 사후 티베트의 미래 까지 걱정할 정도니 더 이상 말이 필요없겠다.
저자는 책에서 “지난 93년 가을부터 베이징(北京)의 중앙미술대 학에서 목판화 연수를 하며 틈틈이 티베트에 대한 궁금증을 채워 갔고, 97년 티베트 대학의 초청으로 라싸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며 “이후 티베트 대학에 머물면서 본격적인 만다라 공부를 하며 영혼의 갈증을 채울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을 가졌다”고 티베트 와 인연을 맺게된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작품성★★★★★ 대 중성★★★★★)
■ 잉카 속으로 권병조 지음/풀빛
‘잉카 속으로’ 역시 저자 권병조씨가 1년간 중·남미를 직접 발로 뛴 후 고시원에 파묻혀 작업한 결과물. 400컷 이상의 사진 과 저자가 직접 그린 지도와 유물·유적의 그림들이 돋보인다. 기존의 책들과는 달리 현지에서 직접 수집한 자료들을 가지고 잉 카지역의 역사는 물론 먹을거리, 옷, 집, 종교, 풍습등 각종 문 화전반에 대해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또 유적지와 잉카 이전의 문명에 대해서도 각각 하나의 독립된 장으로 묶어 그림과 사진을 곁들여 생생히 설명하고 있다. 중· 남미를 여행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 지역마다 숙박 가능한 곳 , 필요한 물건을 조달할 가게, 치안 상태, 원주민들과 의사소통 을 위한 간단한 께츄아어(잉카시대 언어)까지 수록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종합판’ 잉카 보고서라 할 만하다. 저자는 책 서문에서 “직접 여행을 하다보니까 우리나라 중·남 미 관련 책에 나와 있는 역사나 기후, 문화에 대한 언급들이 외 국책을 개략적으로 번역해 놓은 것 같은 의심을 갖게 하기에 충 분했다”고 꼬집고 있다. ‘프로’들이여, 부디 분발하시길. (작 품성★★★★★ 대중성★★★★)
■ 역사를 바꾼 이인자들 (송은명)
자신의 운명뿐 아니라 역사의 운명마저도 바꾼 2인자 19명의 드라마 틱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김춘수를 왕위에 올리고 삼국통일의 초석을 닦은 김유신, 왕의 그늘 에서 더 빛난 정승 황희, 2인자 자리에서 오래 머물다 일인자로 올라 선 왕건과 등소평 등 역사에 남은 2인자들의 이야기가 무척 재미있다 .
시아 펴냄.(02)3141-9671
■ 폭격의 역사 = 스벤 린드크비스트 지음. 김남섭 옮김.
화약의 화학방정식이 최초로 알려진 1044년 무렵 폭탄은 전투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1911년 11월 1일 이탈리아의 줄리오 카보티 중위가 비행기 조종석에서 북부 아프리카의 오아시스 타기우라에 수류탄을 투하했다. 인류에게 가장 위협적인 공중폭격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폭격에 의한 대량학살은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이 식민지를 공격할 때 사용하는 일상적인 전투방식이 됐다.
2차대전 당시 영국의 나치 독일 폭격, 미국의 일본 폭격 등 폭격은 엄청난 파괴를 불러왔으며 2차 대전 후에는 한반도와 베트남이 폭격의 희생자가 됐다.
스웨덴의 역사연구가인 저자는 미국을 비롯한 서구 열강이 전쟁에 집착하는 이유가 바로 백인우월주의에 있다고 주장한다.
유색인종을 무가치한 인간 이하의 존재로 보는 사고방식이야말로 가축 도살을 방불케하는 서구인들의 융단폭격의 정신적 기반이었다는 것이다. 한겨레신문사刊. 424쪽. 1만5천원.
■ 커피의 역사
커피는 이슬람인들에게 종교였다. 알라의 창시자인 마호메트에게 천 사가 전해준 음료였기 때문이다. 이 책은 고대에서 근대까지의 역사 에서 커피가 어떻게 세계를 제패하고, 기독교와 아랍문명을 융화시켰 는지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 드라마적인 형태를 빌려 역사를 이야 기하는 저자는 커피의 역사를 예술, 정치, 종교 등의 다양한 측면에 서 접근하고 있다.
(하인리히 에두아르트 야콥 지음 / 박은영 옮김 / 우물이 있는 집 / 1만8,000원)
■ 먹거리의 역사(마귈론 투생 지음)
인류의 기원, 수렵채취생활, 채식에서 육식으로의 전환, 가공기술과 다이어트에 이르기까지 먹을거리에 대한 모든 것을 망라한 책.
인류 최초의 음식이라고 전해지는 꿀에서부터 기호식품에 이르기까지 인류역사와 함께해온 먹을거리의 문화사를 심층적으로 잘 다루고 있 다. 인류는 어떻게 먹을거리를 찾아내 발전시켜 왔는지, 그것이 인류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흥미롭게 다루고 있다. 저자는 작가이자 역 사학자다. 까치 펴냄. (02)736-7768.
■ 환경은 세계사를 어떻게 바꾸었는가이시 히로유키 등 지음경당 발행ㆍ9,800원
원제가 ‘환경과 문명의 세계사’인 이 책은 환경학, 환경고고학, 비교문명사와 경제인류학을 각각 전공한 일본 학자 3인의 대담집이다. 정치사,경제사, 기술사 등 인간을 중심으로 한 기존의 역사 서술에서 벗어나 환경을 역사의 중심에 놓고 세계사를 논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동물의 한 종으로서 인류의 역사, 지구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인류의 역사를 말한다. 인간이 환경에 끼친 영향 뿐 아니라 환경이인간의 역사를 어떻게 바꿨는가에 주목한다.
세계사의 사건들을 환경을 코드로 들여다보면서 많은 사례를 들고 있어흥미롭다. 거대한 석상 군으로 유명한 남태평양 이스터 섬의 고대문화는왜 붕괴했을까. 학자들은 16세기 중반 이 섬의 인구가 급증하면서 먹거리에서 수목까지 모든 자원이 고갈됨에 따라 부족 간 전쟁이 벌어지고, 서로잡아먹는 상황이 벌어진 데서 원인을 찾는다.
개발과 발전을 앞세워 무분별한 환경파괴를 일삼아온 현대 인류에게 이스터 섬의 환경 재앙은 두려운 경고라 하겠다.
책은 기후변동이 민족이동에 미친 영향, 네안데르탈인과 매머드의 절멸원인, 물과 그리스ㆍ로마 문명 흥망성쇠의 상관성, 중세 유럽 페스트의 창궐과 인간 거주유형의 연관성, 유럽의 15세기 대항해 시대의 시작 등 다양한 주제를 환경 코드로 풀어간다.
선사시대부터 오늘에 이르는 환경과 문명의 세계사를 쭉 살핀 다음, 인류의 파국을 막을 환경혁명의 가능성을 진단하는 것으로 마무리하고 있다.
결론은 ‘욕망의 절제’다. 욕망이 인류가 그동안 온갖 위기를 겪으면서도극복할 수 있었던 동력이라는 것도 인정한다. 그런 점에서 환경문제는 곧마음의 문제이기도 하다.
■ 한 권으로 읽는 한국사… 일본에서 보는 한국사 국내번역
일본인 학자 1명과 재일교포 학자 3명,한국인 학자 2명이 재일교포들과 일본인들에게 한국사를 소개하기 위해 1988년에 쓴 책으로 이번에 국내번역됐다.일본에서는 ‘한국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출간돼 올해 8쇄까지 나오는등 꽤 인기를 얻었다.
책은 고대 삼한부터 근현대사까지 다룬다.1권에 수천년 역사를 담은 책이어서 세세한 내용까지는 못 다뤘지만 일본에서 한국사가 어떻게 소개되고 있는지 살피는 데 의의가 있을 것이다.집필진이 역사왜곡이나 민족감정을 배제하자고 합의한만큼 우리의 자존심을 상하게 할만한 서술은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책을 번역한 최재성씨(독립기념관 연구원)는 “고려시대 토지제도인 전시과를 고대(신라이대 이전)의 토지제도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고 폄하한 부분을 제외하고는 문제가 될만한 부분은 없다”고 말했다.이 책에 대해 해설을 붙인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은 “일본내 보수적 역사학자들이 왜곡을 가장 많이 하는 부분인 한국 고대사 기술에서 (이 책에 일본쪽의 왜곡된 고대사 해석을 싣지는 않았지만) 한국쪽 연구성과를 충분히 담지 않은 것은 아쉬웠다”며 “하지만 조선후기 부분에서 기존 한국 역사학계 저술들에서 보인 지배층 중심의 역사서술을 피하고 민중중심적 태도를 견지한 점은 고무적이다”라고 평가했다(휴머니스트·1만4000원).
■ 이덕일의 여인열전 이덕일 지음/김영사
책은 대중역사서의 붐을 일으킨 바 있는 저자가 근대이전 우리 역사속에서 남성위주의 시대 한계를 뚫고 역사속에 뚜렷한 족적 을 남긴 여인 24명을 나열식으로 소개하고 있다. 여성에 대한 관 심, 한국역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 등 최근 한국출판에서 대중적 으로 반향을 일으키는 두 분야가 잘 합성되어 있다. 책은 지금까 지 열녀·효부·현모양처등 여성억압과 남성지배의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채 흥미위주로 취급되거나 남성들의 부산물쯤으로 취급 돼온 여성들에 대한 시각을 바로잡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조선 정조때 제주도의 대상인인 김만덕. 흉년이 들어 굶어죽을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위해 전재산을 희사한 양인(良人) 여성인 김씨의 일화는 이권 챙기기에 급급한 오늘날 기업인들에게 시사 하는 바가 크다. 김씨는 불과 10여세때 천애고아가 돼 친척집에 맡겨진뒤 기녀(妓女)로 전락할 위기에 처한다.
하지만 스스로 기녀를 박차고 자기 운명을 개척한다. 그녀는 18 세기중엽 보부상 중심으로 전국유통망이 갖추어가던 시대변화를 포착, 포구에 객점을 차려 사업을 크게 일으킨다. 그녀의 선행에 감동한 정조가 소원을 묻자 그녀는 “궁궐과 금강산 구경”이라 고 대답한다. 정조는 그녀에게 의녀반수(醫女班首) 벼슬을 내린 다. 인조의 ‘삼전도의 치욕’후 소현세자와 함께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가지만 청나라 수도 선양(瀋陽)에서 국제무역에 나서는 당찬 여성경영인 소현세자빈 강씨 일화도 흥미롭다. 새로운 세계관을 연 천주교를 서슴없이 받아들여 조선천주교 최초의 여회장이 된 선각자 강완숙, 남자 사대부처럼 성인(聖人)이 되고자 독학으로 학문의 경지를 개척한 조선 초유의 여성성리학자 임윤지당 등 알려지지 않은 여성들의 삶은 경이롭게 다가온다. 정난정은 사대부 문화에 대항한 저항자, 장희빈은 여종의 딸로 신분사회에 맞선 승부사, 진덕여왕은 소외세력을 등용한 신라 최 고의 여성경영자, 진성여왕은 음녀(淫女)로 몰린 성군, 어우동은 남성지배사회에 맞선 성해방론자로 새롭게 해석, 인물해석을 둘 러싸고 논란의 소지를 안고 있기도 하다.
여하튼 남성지배구조에 순응하지 않은 적극적 여성상을 최대한 부각한 것이 이 책의 특징. 고대사에 절대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여성들이 사료 부 족등으로 제대로 조명되지 못한 점은 아쉬운 부분. 고구려와 백 제를 세운 숨은 주역으로 소개된 소서노와 같은 중요한 인물에 대해 우리 역사학계에서는 무지할 정도로 알려진 게 없다. 이책 역시 삼국사기등에 한두줄 소개된 글귀와 시대배경, 다양한 학설 등을 간단히 소개할 뿐 인물접근에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작품성 ★★★ 대중성★★★★)
■ 한국사를 바꾼 여인들
선덕여왕이 4번이나 시집을 갔고, 현모양처의 표상인 신사임당도 질투를 했다면?
한국풍류사연구회 회장직을 맡고 있는 저자(57)가 쓴 <한국사를 바꾼 여인들>은 남성 중심의 한국사에서 빛을 발한 여걸들에 관한 책이다. 단군의 어머니 웅녀부터 명성황후까지 한국의 대표적 여걸 22인의 삶을 풍부한 일화를 통해 소개한 이 책은 그들의 숨겨진 면모까지 읽을 수 있게 한다.
김대문의 <화랑세기>에서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미실이라는 신라 여인은 미모와 재능으로 나라를 주물렀던 여걸이다. 진흥왕·진지왕·진평왕 등 세명의 왕이 그녀의 마력에 빠져들었고, 진흥왕의 아들인 동륜태자도 예외가 아니었다. 진흥왕이 병에 걸리자 권력을 장악했으며 자신을 황후로 삼겠다던 진지왕이 약속을 어기자 폐위시켰다.
최초의 여왕이었던 선덕여왕은 독신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네번이나 시집을 갔다. 진지왕의 아들 용춘공에게 시집갔으나 자식이 없자 그 동생인 용수공이 그녀를 모셨다. 이처럼 형제를 번갈아 남편으로 삼은 것은 여왕의 등극을 반대하는 세력에 맞서 친위세력을 구축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왕으로 즉위한 뒤에는 아들이 없을 경우 세번까지 결혼할 수 있다는 삼서제도에 따라 흠반과 을제를 차례로 남편으로 삼았다.
이율곡의 어머니 신사임당은 현모양처의 모범으로 추앙받지만 남편 이원수의 첩 때문에 불화를 겪기도 했다. 이 갈등은 사임당이 금강산에 들어가 불법을 닦은 뒤 풀어졌다고 한다. 또 죽음을 앞두고 남편에게 재혼하지 말라고 부탁한 것을 보면 사임당 역시 질투를 했던 평범한 여자의 면모를 갖고 있었다.
한국 역사상 최초의 국제적 베스트셀러 작가는 허난설헌이었다. <난설헌집>은 동생 허균에 의해 명나라 사신 주지번에게 건네져 중국에서 널리 읽혔고, 1711년 일본에서도 간행돼 지식인층에서 격찬을 받았던 것. 하지만 무능한 남편을 만나 기구한 시집살이를 했던 허난설헌은 27세에 불행했던 삶을 마감했다.
이외에도 고구려 안장왕의 연인으로 '연애전쟁'을 일으킨 백제 미인 한주고국천왕·산상왕 등 두 왕과 결혼한 고구려의 우황후, 바보 온달을 용장으로 만든 평강공주, 공녀 출신으로 원나라 황후가 된 기씨황후, 정난정과 더불어 여인천하를 구가한 문정황후 등 여인열전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황진이와 이매창, 논개 등 기생들도 빼놓지 않았다.
기자 출신인 저자는 "수천년간 남성 중심으로 이어져온 역사 속에서도 남성 못지않게 민족사를 빛낸 걸출한 여인들이 있었음을 되짚어보고, 이들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재조명해 보고자 했다"고 말했다.
■ 한국사를 바꾼 여인들
황원갑 지음/책이있는마을/2만원
우리 민중의 생활사 = 이종하 지음. 책에 앞서 저자(90)에게 우선 관심이 많이 간다. 식민지시대 일본 주오(中央)대 법학부를 졸업한 원로 법학자로 영남대 교수를 역임했고, 서울대 전신인 경성대학교 초빙교수를 지냈다.
머리말에 따르면 북한 역사학계의 태두인 고 김석형(金錫亨)과는 친구 사이이며, 법학도인 그가 한국사에 본격적 관심을 기울이게 된 계기는 1931년 무렵 조선일보에 연재되기 시작한 신채호의 「조선상고사」를 접하게 되면서라고 한다.
그러다가 백남운과 이청원 등의 유물론적 역사서를 읽으면서 마르크시즘에 상당히 기울어졌고, 지금도 "민중이 역사의 주인이라는 관점만은 바뀔 수 없는 진리라고 믿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민중중심 한국사에 대한 저자의 관심은 지난 2001년에 출판한 「우리 민중의 노동사」에서 어느 정도 구현됐으며 이번 저서는 자매편에 해당한다.
지난날 봉건왕조 시대 민중의 생활을 결정한 제도적 요인으로 신분제와 봉건적 토지소유관계, 민중에 부과된 강제노역과 세금 등을 꼽는 저자는 고대국가 시대에서 조선에 이르기까지 위정자와 특권계층 밑에서 삶을 영위한 민중의 역할과 고통을 찾아내려 했다고 말한다. 주류성刊. 463쪽. 1만2천원.
■ 미군정 자료 연구 = 정용욱 지음. 미군정 자체가 아니라 미군정이 생산한 각종 자료에 주력한 연구성과다. 여기서 자료란 예외없이 미국 국립문서관 소장품을 비롯한 현재 미국내 소장 문서를 말한다.
이 책이 겨냥하는 바를 저자 자신은 두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미군정 자료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며 둘째, 미국 사료에 대한 비판 및 성격규명이 그것이다.
이를 위해 미국 국립문서관의 미군정 관련 자료 소장실태와 이용 현황, 접근 방법, 문서군 사이의 관련성, 문서군의 형성 경위와 작성기관, 문서의 성격을 분석했다. 이 과정에서 미군정 조직과 인물들에 대한 소개도 곁들였다.
나아가 미군정이 생산하고 수집한 자료가 어떻게 역사자료로 가공되는지, 또 해당 주제에 나타나는 점령정책 담당자들의 성향 차이는 무엇이며, 그 차이가 어떻게 구체적인 정책으로 나타나는지를 짚고 있다.
주한 미군사령부 군사실 문서철과 하지 장군 문서철에 대해서는 별도의 자리를 마련해 문서목록을 소개하고 해제를 하고 있다. 저자는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로 재직중이다. 선인刊. 534쪽. 2만원.
■ 도산 안창호의 독립운동과 통일노선 = 이명화 지음. 안창호에 대한 기존 연구가 갖는 문제점으로 흥사단을 중심으로 하는 독립운동에 편중돼 있는 점을 들면서 '새로운 안창호 보기'를 제창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안창호는 좌우익 진영의 이념과 노선갈등 속에서 이들이 처한 현실을 각파의 현실에서 수용하려 했다. 이를 위해 좌우합작의 민족통일전선을 구축하고 갈등.분열.분단 상태에서 민족통일을 이룩하고자 했다.
그의 대공주의(大公主義)는 이러한 고민의 산물이자 제3의 길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홍익대 사학과 박사로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책임연구원이자 모교 겸임교수로 재직중인데 이번 단행본은 박사학위 논문을 바탕으로 했다.
이번 책은 한국학 분야 영인본 제작사업에 치중하는 듯하다가 최근 들어 각종 역사기획을 통한 창작물 제작에 주력하기 시작한 출판사가 기획한 '한국인물사학술총서' 제1권이다. 경인문화사刊. 534쪽. 2만7천원.
■ 조선전기 수령제와 지방통치 = 임용한 지음.
조선의 국가체계와 행정기능이 합리적으로 작동했음을 수령제를 통해 입증하려 했다. 국가든 회사든, 그 나름대로 작동방식이 다 있게 마련이다. 따라서 500년이나 지탱한 조선왕조가 그랬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게 들리는데 새삼스럽게 무슨 주장이냐고 할 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궁금증이 이 연구서의 목적성을 어느 정도 엿보게 한다.
일제하 일본인 연구자들에 의한 한국사 연구는 흔히 정체사관으로 요약되는데 그 근거의 하나가 왕권의 미약함이었다. 이에 대한 반박으로 시도된 이 연구는 조선왕조가 강한 통치력을 발휘했음을 증명하려 하고 있다. 수령제를 주목한 까닭은 그 본질이 국가의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이었다. 수령제는 지방통치와 불가분의 관계를 이루는데 조선은 고려말과는 달리 중앙집권제와 수령권 강화, 수령제의 합리적 운영을 요체로 한 지방제도 개혁을 단행했다.
고려말을 시작으로 조선 건국을 거쳐 「경국대전」 편찬기에 이르는 기간을 연구대상으로 삼고 있는데 수령의 역할 중에서 특히 권농(勸農)을 주목한다. 저자는 연세대 사학과 출신으로 충북대 중원문화연구소 전임연구원으로 있다. 혜안刊. 360쪽. 1만9천원.
■ 인도를 읽는 창, 카스트= 이광수 외 지음.
인도 신분제라는 카스트를 소재로 역사학 정치학 인류학 전공자들이 학제간 연구로 기획한 결과물이다. 인도사 전공자인 이옥순 숭실대 강사가 주장했듯이 이 책 또한 '인도에는 우리가 아는 인도가 없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을 통해 인도를 접근할 것인가? 저자들은 명상, 신비, 구도를 던져버리는 대신에 카스트를 보라고 한다.
"카스트란 힌두교를 사회 체계로 표현한 것이고 힌두교는 서양식 개념의 종교가 아닌 가치관과 삶이 유기적으로 통합되어 있는 복합 문화 그 자체다. 따라서 인도인의 카스트는 인도인의 삶의 모든 부분과 관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구조 속에서 정체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한국사 연구자들은 전부 거짓말쟁이가 된다. 흔히 신라 신분제라는 골품제를 카스트와 비교하곤 하는데 , 카스트가 뭔지도 모른 채 요란만 떤 셈이 되기 때문이다. 소나무. 268쪽. 1만6천원.
■ 한민족의 해양활동과 동아지중해 = 윤명철 지음.
동국대 겸임교수로 한국고대사 전공인 저자가 소위 '동아시아 지중해' 모델을 적용해 한반도 중심의 동아시아사를 '해륙사관'이라는 측면에서 고찰한다.
그에 따르면 동아시아는 대륙과 해양이 공존하는 '다국간 지중해'. 동아시아 역사는 이를 무대로 역사를 구축해 왔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고조선사를 해양사 관점에서 조명하고, 해로를 통한 선사시대 한.일 두 지역 문화접촉 가능성을 검토하며, 해양조건을 통해 고대 한.일 관계사를 접근한다.
또 해양교류 측면에서 고대 영산강 유역 문화를 규명하려 하며, 고구려의 남진전략을 해양 시각에서 보려 한다. 고구려-수나라 전쟁도 동아지중해 질서 재편이라는 관점에서 보며 고려 초 서희의 송나라 사행(使行) 항로를 탐구한다. 학연문화사.
이 책은 나온지 8개월이나 된, 그래서 신간이라고 하기도 어려운 책이다. 그런데 내가 다시 이 책을 소개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그건 나중에 밝히기로 하겠다.
■ 수원성, 조선후기 개혁의 상징
책은 돌베개 출판사에서 테마 한국문화사 시리즈로 나온 책 가운데 하나이다. 우리나라 출판 문화의 수준을 한단계 끌어올렸다고 평가받는 시리즈이다. 실제로 책을 읽다보면 이러한 평가에 상당부분 공감하게 된다. 많은 그림과 사진, 풍부한 해설 등은 글만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그리고 실감되지 않는 내용들을 독자들이 소화하는데 큰 기여를 한다.
내용 역시 훌륭하다. 전문적인 주제임에도 내용이 평이하고 이해하기 쉬워 일반독자들에게도 쉽게 다가선다. 일반 국민들의 역사 및 국토에 대한 교양이나 지식을 보완하는데 큰 힘이 되리라 확신한다.
정조가 수원성을 짓게 된 배경에 대해 저자인 김동욱 교수는 단지 정조의 아버지인 사도세자에 대한 효심보다는 조선 후기 왕권 강화와 상공업의 발전이라는 시대적 변화의 흐름, 실학 연구의 축적, 신분제의 변화, 정조의 개혁을 위한 포석 등으로 설명한다. 단선적인 역사 이해가 비과학임을, 그리고 총체적 시각의 역사 인식이 필요함을 일깨워주는 부분이다.
특히 그 당시 기득권 세력이었던 노론과 그들과 결탁한 한양의 시전 상인들을 견제하기 위해 수원에 신도시를 설계하는 정조의 노력은 요즈음의 상황과 비교해 볼 때,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제공해준다.
책의 중반부에는 수원성의 건설 과정과 각 부분들의 특징에 대해 상세한 내용이 담겨 있다. 선명하고 깨끗한 사진을 곁들인 설명은 독자들을 수원성으로 안내하는데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특히 수원성에서 볼 수 있는 건물 하나하나의 특징과 거기에 담겨 있는 의미는 200여년전 우리 조상들의 노력의 흔적을 담아 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후반부에는 정조의 화성 행차와 관계된 이야기들, 그리고 수원성의 최근 변화 및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록된 사연 등을 담고 있다. 특히 한국 전쟁 때 무참히 파괴되었으나 '화성 성역 의궤'라는 기록이 남아 있는 관계로 복원을 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었다는 사실은 기록 문화의 보존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나아가서 문화 유산의 중요성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우리에게 각인시켜주고 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단지 수원성이라는 역사 유적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그 당시의 상황과 건축 배경, 그리고 그 유적에 담겨 있는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아울러, 기득권 세력과 맞서서 조선의 개혁을 위해 노력했고, 탕평책을 통해 분열을 극복하고 왕권을 강화했던 정조라는 한 시대의 국왕을 떠올리게 된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한다. 수원성과 정조를 생각하면서 요즈음 우리 사회와 대선 정국을 떠올리고, 기득권 및 수구 세력, 낡은 지역주의와 정치를 타파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한 후보를 연상하게 되는 것은 나의 지나친 단상일까?
■ 역사학의 역사
= 서울대 국사학과 한영우 교수가 동서양 '역사학의 역사'를흐름 중심, 인물 중심으로 비교적 평이하게 엮었다. 1부는 '동서양 역사학의 전통'을 다루며 2부는 '한국역사학의 전통'에 집중한다.
저자가 한국사 전공자라 그런지 아무래도 한국역사학의 비중이 높다. 근대 이전역사학의 경우 중국은 사마천에서 양계초까지 언급하고 있으며 서양 사학사는 헤로도투스에서 출발해 프랑스 아날학파 및 독일의 사회사와 구조사학까지 요약 서술했다.
한국 역사학은 삼국.고려시대를 한 편으로 묶고 조선시대 역사학을 독립시키고있으며, 이후에는 근대 역사학으로 논의를 옮겨가고 있다. 해방 이후는 분단체제 역사학의 성립과 전개과정에 주력한다. 지식산업사. 480쪽. 2만원.
■ 한국의 고대사 제2판
= 한국고대사 전공인 이화여대 신형식 교수가 지난 99년초판을 낸 같은 제목 단행본을 이번에 손질했다. 저자에 따르면 내용의 큰 수정은가능한 한 피했으며 오자.탈자, 오류의 교정을 중점으로 했다.
하지만 대폭 보강된 곳이 있으니 최치원의 정치개혁 이상을 단테의 '제국론'과비교하는가 하면, 신라사와 관련해 골품제와 화백제도를 새로 썼다.
주목할 만한 변화로는 '화랑세기' 필사본에 대한 저자의 자세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저자는 진위논쟁이 치열한 '화랑세기'에 대해 공식 언급은 자제한 채 사석에서는 가짜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발언을 해 왔다.
이번 책에서도 '화랑세기' 진위에 대해서는 어떤 확정적 평가를 내리지는 않고있으나 화랑도를 논하면서 필사본을 대폭 인용하고 있다. 이는 저자가 '화랑세기'에상당한 신빙성을 두기 시작했다는 반증으로 볼 수도 있어 주목된다. 삼영사. 593쪽.
2만4천원.
■ 한국청동기 연구
= 한국청동기시대 전공인 이영문 목포대 역사문화학부 교수가 1993년 이후 여러 지면을 통해 발표한 논문 10편을 주제별 묶음을 해서 내놓은단행본이다.
청동기시대라는 개념 설정과 시기구분 문제 및 연구동향을 비롯해 저자가 가장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고인돌묘를 다루는 한편, 비파형 동검을 비롯한 청동기시대출토 유물 그 자체 및 이를 통한 청동기시대 사회상 파악에 주력하고 있다.
저자는 특히 고인돌묘 부장품으로 비파형동검과 옥(玉)을 주목하면서 이러한 분묘를 축조한 청동기사회가 종래 관념보다 그 문화가 발달돼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본다.
이와 함께 돌을 갈아 만든 칼(마제석검)을 고인돌묘 출토 대표 유물로 보면서그 기능으로는 무기 외에 신분상징이나 장례 부장용 등을 지목하고 있다.
고인돌묘 분포와 관련해서는 시기에 따른 주거지와 무덤 떼의 변화가 감지되고있는 것으로 보아 사회적인 지배자나 수장층이 등장하고 있으며, 이들이 일정 영역을 확보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주장한다. 주류성. 392쪽. 9천원.
■ 한강역사문화탐사(신정일 지음)〓향토사학자 신정일씨가 16일간 태백 검용소에서 김포 보구곶리까지 한강의 1,300리 물길을 따라 걸으며 써내려간 답사기. 남한강과 북한강으로부터 흘러드는 온갖 줄기와 지류들, 지금은 잊혀진 나루터들, 곳곳에 남아 있는 선사시대부터 고구려·백제·신라의 문화유적 등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저자는 "한발 한발 한강을 걸어가면서 강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들과 모든 사물을 만나고 싶었고, 자연과 사람이 더불어 사는 방법을 터득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생각의 나무·2만원.
■ 빈라덴, 금지된 진실(장 샤를르 브리자르 외 지음)〓미연방수사국(FBI)의 실세였다가 정부의 정치적 의도에 염증을 느껴 사임한 존 오닐은 세계무역센터의 안보 책임자가 된 지 두달도 안돼 9·11 테러의 희생자가 된다. 이 책은 저자가 테러 발생 직전인 지난해 7월 가진 오닐과의 대담을 기초로 작성한 것이다. 빈 라덴을 '이슬람 근본주의의 산물이며 사우디 왕조의 수단'으로 보고 있는 저자는 사우디가 자신들의 세력 확장을 위해 표면적으로는 미국과 협조하면서도 물밑으로는 끊임없이 테러 조직과 연계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문학세계사·7,800원.
■ 세계사 이야기(박경민)=인류 4대 문명에서 고대 그리스,중세 시대,근대 제국주의 침탈,냉전 종결 후 현대 사회까지 세계사를 88가지 장면으로 요약했다. 전 KBS 기술본부 편집위원(가람기획·1만2000원).
■ 세계의 교양을 읽는다(최병권·이정권 편)=‘인류가 한가지 언어만을 사용하는 건 바람직한가.’ ‘유토피아는 꿈일 뿐인가.’ ‘국가는 개인의 적인가.’ 프랑스 수능시험 바칼로레아에 출제된 철학 논술시험의 문제와 답 64개를 인간·인문·예술 등 6개 분야로 나눠 소개했다(휴머니스트·1만2000원).
■ 중국황제 어떻게 살았나(쟝위싱)=진시황을 시작으로 청나라 부의까지 중국 역사 2100년을 거쳐간 황제는 모두 560여명. 재위 기간이 가장 길었던 황제는 61년동안 집정한 청의 강희황제였고,가장 짧았던 이는 금나라의 마지막 황제 완안승린으로 24시간에도 미치지 못했다. 권력의 중심,중국 황제의 삶을 통시적으로 살폈다. 중국 국제상보 기자(지문사·1만원).
■ 조선의 공신들(신명호)=전쟁과 쿠데타,내란 등 변란 속에서 나라를 지켜낸 것은 공신들이다. 조선왕조 개국공신 52명과 세조 즉위에 힘을 쓴 좌익공신 44명 등 조선조 500년의 공신 1000여명을 통해 조선 역사를 들여다봤다.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가람기획·1만2000원).
■ 투탕카멘의 예언(모리스 코트렐)=고대 이집트 제18왕조의 12대 파라오 투탕카멘의 무덤을 처음 발굴했던 하워드 카터의 발자취를 좇아 투탕카멘의 삶과 그의 통치기에 얽힌 비밀을 풀어간다. 고대 마야인의 코드를 해석해 주목받은 세계적 과학자(한국방송출판·1만2000원).
■르네상스(J. 키리스너 엮음/신서원)
‘문예부흥’으로 불리는 르네상스. 각 세기의 역사가들에 의해 새롭게 해석되어 왔지만, 이 운동이 중세사회로부터 현대사회로의 변화를 촉진시키고 그 변화의 기초가 되었음에 틀림없다.
15세기부터 200년에 걸쳐서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학문과 예술을 재발굴하고 재조명한 문예부흥 운동을 담은 ‘르네상스’(J. 키리스너 엮음·김동호 옮김·신서원)가 나왔다. 이 책은 르네상스운동의 주요한 제창자의 글을 담고 있어서 르네상스 본래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편저자들은 르네상스의 의미를 중세와의 차별화에서 찾고 있다. 중세에서 잘 읽히지 않던 많은 고전들이 다시 유통되고, 새로운 지식이 개발·보급되었으며, 예술활동과 발명이 활기를 띠었다. 따라서 중세가 절대적인 가치와 질서 및 원리가 강조되던 시대라면, 르네상스는 변화와 다양성의 시대이자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의지가 존중되던 시대인 것이다.
특히 르네상스는 정치·사회·문화 분야에서 여러 가지 사조가 교차된 복합적인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정치면에서는 중세의 신(神) 중심주의에서 인간 중심주의로, 천문학분야에서는 전통적인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이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로, 문학에서는 고전의 영향을 받아서 인간의 고결함과 위대함을 나타내는 주제가 대거 등장했다.
르네상스의 이러한 변화는 회화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미켈란젤로는 로마의 시스티나성당에 인간조상 아담을 그리면서 아담이 원죄를 초래한 최초의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이기에’ 매우 위엄과 기품이 있는 모습으로 묘사된 것이다.
■ 출산과 육아의 풍속사
도서출판 사람과 사람
카트린 롤레ㆍ마리 프랑스 모렐 지음, 나은주 올김. 1만8,000원.
아프리카와 콜럼버스 이전의 아메리카 여러 지역에서는 산모가 웅크린 자세로 아이를 낳았다. 고대 유럽에서는 사람들이 산모를 붙잡고 산파가 아기를 받았다.
고대 중국에서는 산모가 사람들로부터 마사지를 받는 가운데 종이 위에서거나 반쯤 웅크린 자세로 아기를 낳았다. 지금처럼 누워서 아기를 낳는방식은 인간의 신체구조상 적합한 자세는 아니었다.
의사가 분만실에 들어가면서 처치가 편리하도록 산모에게 누워 출산할 것을 요구한 것이 17세기 이후의 일이니, 그 전까지만 해도 유럽에서조차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아기를 낳는 것은 보기 힘든 모습이었으며 지역에 따라, 민족마다 독특한 출산 방식이 있었다.
‘출산과 육아의 풍속사’(사람과 사람 발행)는 이처럼 다양한 모습으로나타나는 출산과, 그렇게 태어난 아이를 기르는 지구촌의 생활풍속과 문화를 문화인류학적 관점에서 조명한 책이다.
프랑스의 저명한 아동문제 연구가이자 역사학자, 사회학자인 카트린 롤레베르사유-생캉텡대 교수와 인류학자인 마리 프랑스 모렐이 함께 쓴 책으로공간적으로는 프랑스에서 남미의 아마존까지, 시간적으로는 그리스ㆍ로마시대로부터 20세기말까지가 관찰 대상이다.
책은 아이가 태어나고 이름이 지어지며 젖을 먹고 사회화되기까지의 과정을 소상하게 보여준다. 그런 과정 역시 지역에 따라, 민족에 따라, 시기에따라 매우 다양하다.
거기에는 모두 그럴만한 사회적ㆍ문화적 이유가 있으며 따라서 어떤 방식이 더 우등하고, 열등한지를 밝히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라는 게 책의 밑바탕에 깔려 있다.
그러면서도 책은 10여년 전부터 문명이 가장 발달한 유럽에서, 문명이상대적으로 덜 발달한 아시아와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문화권의 육아방식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에 주목한다.
그 결과 유럽과 다른 지역의 육아방식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음을 발견한다.
즉 유럽의 육아법이 아기의 위생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한 나머지 가능한한 아이와 다른 사람의 접촉을 금지하는 반면, 다른 지역은 엄마와 아기가살을 맞대고, 아기가 원할 때마다 젖을 물리며, 엄마가 틈틈이 아이를 만져주고 업거나 안아주는 사실을 확인한다.
이 같은 차이는 아이의 사회화 과정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유럽에서는 아이를 가능한 한 빨리 동물과 구분시키려고 상당히 엄격한 방식으로키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을 배내옷으로 감싼 뒤 서있는 자세에 익숙하도록했고 기지 않도록 했으며, 일찍부터 걸음마나 말문이 트이도록 심혈을 기울였다. 그러나 다른 지역에서는 오히려 아이가 너무 빨리 독자성을 갖지않도록 애썼다.
저자들은 이에 대해 “유럽에서는 육아의 주체가 엄마였지만 다른 사회에서는 엄마의 역할이 아기의 보조자일 뿐”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책은 유럽의 위생중시 육아법이 유아 사망률을 현격히 낮추는데 큰 공헌을 한 사실은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유럽 이외 지역의 육아법이 엄마와 아이의 심리적 정서적 관계를 풍요롭게 만드는 데는 더 효과적이라는 점은 분명히 밝히고 있다.
책에서 한가지 아쉬운 점은 지구촌 여러 민족의 출산과 육아 풍속을 지나치게 병렬식으로 나열함으로써 독자들이 주제를 파악하는데 어려움을 준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서구 문화를 신봉하는 요즘의 젊은 부모들에게 우리전래의 출산, 육아방법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는 충분히 제공한다.
■ 사생활의 역사(전 5권 중 3권)/폴벤 외 편집/주명철 외 번역
각권 800여쪽 각권 4만3000원 새물결
공선사후(公先私後)가 중시된 동양 사회에서 ‘사생활’은 늘 공적 생활보다 뒤처지는 영역이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언제라도 포기돼야 하며 차라리, 음습하고 감춰야 하고 내세우지 못하는 영역이다.
사생활은 또 어쩌면 여자의 영역이다. 현실 세계의 주역인 남자들은 정치를 이야기하고 발전을 이야기해야 마땅하므로 한가한 여자들이 시간을 때우기 위해 떠드는 한낱 ‘수다’의 영역이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프랑스 명문출판사인 ‘쇠유’에서 1985년에 펴낸 역사 시리즈인 ‘사생활의 역사’는 사생활이라는 단어가 주는 비밀스러움, 하찮음이라는 선입견을 무너 뜨린다. 나아가 사생활이야말로 우리 인간의 삶이 솔직히 녹아 든 영역이며 삶을 사생활이라는 영역에서 볼 때야말로 인간과 역사를 새롭게 인식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갖게 해 준다.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인간의 삶이 사생활 아닌 것이 있는가. 살고 죽고 사랑하고 욕망하는 삶의 모든 것이 온전히 사생활의 영역 아닌가.
‘사생활의 역사’는 궁정이나 정치, 왕조 중심의 역사서가 아니다. 제목 그대로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부터 19세기 계몽주의 시대에 이르기까지장삼이사(張三李四) 필부필부(匹夫匹婦)들의 사적인 생활에 대한 기록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역사 서술 방식에 관심이 많은 독자들 중에는 근래들어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는 아날학파류의 미시사(微視史) 서적의 아류를 떠올릴 지도 모르겠다. 주지하다시피 미시사는 왕과 연표 중심의 계량적 연구방식이 아닌 당시 시대를 살았던 인간의 구체적 삶의 모습을 녹이는 역사 연구방식이다. 굳이 예를 든다면 워털루 전쟁 대목에서 나폴레옹 입장이 아닌 졸병들 입장에서 서술하는 것이라고나 할까. 미시사가 역사를 조명하는 부분이 다르다면 ‘사생활의 역사’는 아예 렌즈 자체가 다르다고나 할까.
고대 로마편의 소제목을 한번 보자.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죽을 때까지’ ‘결혼’ ‘일과 여가’ ‘즐거움과 무절제’…. 프랑스혁명에서부터 제1차 세계대전까지를 서술한 4권의 소제목도 ‘부모와 자식’ ‘결혼과 가정’ ‘친척 관계’ ‘잘 사는 동네의 건물’ ‘갈등의 유형과 고리’…. 이런 식이다. 제목만 보면 이것이 과연 어느 시대를 이야기하는 지가늠하지 못한다.
이 책은 어느 시대나 인간이 겪는 생사의 문제, 희로애락의 문제를 중심으로 역사를 서술한 것이다. 각 시대의 남과 여, 그들의 사고와 감정, 몸, 삶의 태도와 관습, 흔적, 기호들을 관찰하면서 양피지 문헌에 남아있는 일기, 메모, 편지, 저택의 돌에 새겨져 있는 사적인 이미지들이 사료(史料)로 등장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어째서, 이런 방식이 나왔을까.
그것은 정치적 혼동을 경험한 70년대 프랑스 지식인들의 고민에서부터 출발한다. 이즘(ism)과 거대 담론에 익숙했던 그들이 겪었던 허무와 지적방황은 결국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내면적 성찰로 나아갔고 과거 역사속에서의 인간에 대한 탐구로 이어졌다. 식민의 시대와 해방과 전쟁을 거치면서 근 현대를 ‘정치’ ‘민족’ ‘국가’라는 키워드 속에서 살았던 우리가 90년대 들어 개인과 나를 고민하기 시작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우리야말로 독재와 민주에 대한 해부는 있었을 지언정, 인간과 삶에 대한 성찰은 부족하지 않았는가. 16년전 프랑스에서 무려 20만질이 팔려 나갔으며 14개 언어로 완역된 초베스트셀러가 2002년 오늘 우리에게도의미가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무엇보다 책을 덮으면서 기자의 뇌리를 스친 단 한마디의 감탄사는 ‘과연, 삶은 이토록 같으면서 다른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그리하여 우리를 붙잡고 있는 고통의 근원은 어쩌면 당대의 시대와 제도가 만들어 낸선입견과 고정관념일지도 모른다는 위험한(?) 의심을 만들어 낸다. 예를들어 이 책에 따르면 고대의 노예는 우리가 생각했던 불행한 인간이 아니었다. 노예에게 잔인하거나 화를 잘 내는 주인은 도덕적으로 나쁜 평가를 받았고 물질적으로도 손해를 입었다고 한다. 노예와 주인은 지배와 피지배 관계가 아니라 양자의 이해관계가 일치한 거래관계였던 것이다. 또 건전한 부르주아 시민만 탄생한 것으로 알려진 19세기는 정작 호모섹슈얼과 보헤미언 댄디같은 불건전한(?) 사람들이 등장한 세기이며 인간 내면의 어두운 세계에 대한 탐색이 시작된 세기다.
그렇다면, 과연 인간의 행복과 역사는 진화하는 것인가. 고대시대 인간은 지금보다 불행했나? 아니다. 오히려 더 행복했다. 그들은 만나는 사람도 적었고 할 일도 적었기 때문에 선택도 적었고 혼란이나 방황도 적었다. 우리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인가? 하는 실존의 고민도 없었다. 이같은 삶의 의문은 근대적 질문이며 기독교적 대답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는 것이 저자들의 설명이다.
제도와 시스템이 지금보다 허술했던 고대 사람들은 오히려 지금 사람들보다 더 자유로왔고 욕망에 더 충실했다. 21세기는 사실, 위선의 세기다.
개인 욕망의 극대화와 사생활 보호를 운운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타인의 모든 욕망을 맘대로 휘두르고 모든 행동을 24시간 들여다 볼 수 있지 않은가. 욕망이 억압당했다고 알려진 고대 사람들이야말로 자유롭고 사생활을 보호받았다.
이런 부러움은 결국 삶에 대한 여유와 오늘을 사는 인간 행동에 대한 무한한 관용을 가져다 준다. 삶을 더욱 풍부하게, 다채롭게, 가볍게 느끼게 한다.
이 책의 편찬 작업을 주도한 필립 아리에스와 조르주 뒤비는 국적과 전공영역을 허물고 프랑스 지성계의 대가 40여명으로 구성된 ‘드림팀’을 만들어 10여년에 걸쳐 완성했다. 이 책을 번역 출판한 국내 출판사도 5년이 걸렸다고 한다. 각권마다 800여쪽에 달하는 방대한 학술서가 속도감 있는 문체와 ‘눈을 위한 화려한 축제’라는 평이 따랐을 정도로 다채롭고 정교한 도판들로 지루함을 잊게 하는 것은 책을 만든 사람들의 이런 공력(功力)때문이리라.
■ 아시모프 바이블 - 성서 속 역사를 찾아서
구약성서 창세기에 나오는 에덴은 어디일까.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하던 당시 이집트 파라오는 누구였을까.
타락과 신성모독의 죄로 멸망한 두 도시 소돔과 고모라는 어디에 있을까. ‘예수그리스도’라는 이름은 어떤 뿌리에서 나왔을까. 동정녀 마리아이야기는 어떻게 해서 형성된 것일까.
성서를 둘러싼 이런 궁금증은 쓸 데 없는 호기심이 아니다. 성서의 기록은 고대근동과 그리스를 중심으로 한 인류 역사를 담고 있으며, 거기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지명, 표현은 충분히 학문적 연구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시모프의 바이블’은 신학자나 고고학자가 다룰 법한 이런 질문을 왕성한 호기심과 박식함으로 풀어간다. ‘오리엔트의 흙으로 빚은 구약’(928쪽) ‘신약, 로마의 바람을 타고 세계로 가다’(792쪽) 두 권으로 이뤄진 이 책이 총1,720쪽의 방대한 분량으로 번역됐다.
‘파운데이션’ ‘로봇’ ‘네메시스’ 등 걸작 SF소설의 대가 아이작아시모프(1920~1992)는 지칠 줄 모르는 왕성한 호기심과 탐구로 무려 477권의 책을 쓴 사람이다.
그런 그가 인류 최고의 고전 중 하나인 성서를 읽는 동안 만나는 궁금증을 그냥 지나치지 않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아시모프는 이 책이 “성서에 대한 전반적 소개서라기보다는 성서의 중요한 배경이 되는 역사와 지리에 대한 설명을 중심으로 이뤄졌다”고 설명한다.
그는 ‘창세기’부터 시작해 각 권의 역사적 배경과 성서에 나오는 인명ㆍ지명ㆍ사건을 어원적ㆍ지리적으로 자세히 설명한다.
성서는 고대 유대인 삶의 기록이기도 하다는 점에 주목해 이집트ㆍ바빌로니아ㆍ아시리아 등 고대 근동의 역사적 맥락에서 성서를 재조명하고 있다. 이를 위해 각 장마다 수많은 지도들, 특히 성서 인물들의 여행 경로, 전쟁 지도를 싣고 있다.
성서를 읽으면서도 모르고 지나쳤던 역사적 사실을 깨닫는 것은 이 책이주는 즐거움 중 하나다. 이를테면 구약 에스더서에 나오는 에스더의 남편, 페르시아 왕 아하스에로스는 현대 역사가들이 흔히 크세르세스로 알고있는 인물이다.
그리스를 침공해 알렉산더 대왕과 격돌했던, 호사의 극치로 유명한 바로그 왕이다. 이런 사실을 알고 나면 성서에 등장하는 낯선 인물과 지명, 사건들이 세월의 머나먼 강을 건너 우리 곁으로 바짝 다가온다.
아시모프는 이 책의 주 대상을 성서에 대해 일반적 상식은 갖고 있으나성서 외의 고대사는 잘 모르는 독자, 말하자면 빈 곳을 채우는 데 관심이있는 독자, 성서의 장소와 인물들을 감싸고 있는 안개가 조금이나마 걷히면 성서를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만한 독자로 설정하고 있다.
성서의 빈 곳을 채우고 안개를 걷어내는 이 작업을 위해 그는 백과사전ㆍ사전ㆍ역사서ㆍ지리서등 온갖 문헌을 참고하고 있다.
아시모프의 바이블
아이작 아시모프 지음ㆍ박웅희 옮김
들녘발행ㆍ전 2권ㆍ구약편 4만 2,000원 신약편 3만 8,000원.
■ 민족이란 무엇인가
등 다섯 권(에른스트 르낭 등)=두껍고 읽기 힘든 고전들을 현재의 스펙트럼으로 핵심적인 내용을 정리해 다시 쓴 ‘책세상문고·고전의 세계’시리즈 첫권.이와 함께 ‘학자의 사명에 관한 몇 차례의 강의’(요한 피히터) ‘인간 정신의 진보에 관한 역사적 개요’(마르퀴 드 콩도르세) ‘순수이성비판 서문’(이마누엘 칸트) ‘사회개혁이냐 혁명이냐’(로자 룩셈부르크) 등 5권이 함께 나왔다(책세상·각권 4900원).
■ 역사에서 도피한 거인들(루츠 니트하머)
=2차세계대전 전후 ‘역사의 종말’을 주장한 지식인들의 사상적 배경을 살펴보며 탈역사의 기원을 탐문하고 비판을 가한다(박종철출판사·1만2000원).
■ 신비의 이집트(엘리자베스 데이비드 등 공저)
=파라오들의 불가사의한 고대 문명의 고장,그리스·기독교·이슬람 문화가 혼합된 동서양 문명의 교류지 이집트가 아름다운 풍광과 이짐트인들의 진솔한 삶이 사진과 함께 소개된다(효형출판·2만9000원).
■ ‘신약성서·구약성서 이야기’…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성서의 지혜’
서양문명의 두 뿌리인 그리스 로마신화와 성서.이중 그리스 로마신화는 2년째 독서계에 붐을 이루고 있는데 우리의 사고 체계에 더 큰 영향을 미친 신·구약 성경이야기는 기독교인들의 영역만으로 제한돼 있는 느낌이다.
성경 자체만 해도 신·구약의 방대한 분량뿐 아니라 다양한 번역이 나와있는 서양의 성경들과 달리 한글번역은 아직도 고수되고 있는 고어투가 비기독교인들의 성서 접근을 힘들게 한다.특히 가족 따라 일요일에만 교회에 가는 ‘선데이 크리스천’이라면 성서를 끝까지 읽은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크리스마스를 즈음해 출간된 이 두 권짜리 성서이야기는 서구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성서적 지식을 원하는 일반인들은 물론,성서를 완독하지 못한 크리스천들에게도 좋은 입문서가 될 것이다.책은 AP통신 기자 출신의 저술가로 철학자·역사학자인 저자가 청소년들을 위해 정리한 성서 이야기다.무엇보다 고대 유물에서 19세기 화가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미술서적을 방불케 하는 아름다운 도판에 사로잡혀 한번 책을 잡은 독자라면 좀처럼 손에서 놓지 못할 듯하다.
첫권 ‘구약성서이야기’는 성서와 달리 ‘창세기’에서 시작하지 않는다.지금 시리아라고 불리는 지역에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신을 믿는 셈족이라 불리는 유랑부족들 얘기로 시작한다.이들은 서로 싸우다가 화해하고,또 다시 전쟁을 벌였다.“이런 전쟁을 너무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전쟁은 고대인들에게 유일한 실외스포츠였고,부상당하는 경우도 미미했다.젊은이들에게는 몸을 잘 다지는 계기도 되었다”고 저자는 해석한다.사실 유대민족이 여호와를 유일신으로 믿기 시작한 것은 출애굽이후 모세로부터 십계명을 받은 후였다.그것은 곧 셈족 내 다른 부족들과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여러 신을 믿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금세기 바로 전까지만 해도 구약성서는 고대 아시아의 유일한 역사서였다.그러다 이집트 상형문자가 해독되는 등 구약의 내용과 다른 기술을 담은 기록들이 발견된다.하지만 여기서 저자는 분명히 선을 긋는다.“이 책은 역사서가 아니다.유대인이라는 민족이 어떤 일이 어떻게 일어났었다고 믿고 있는가를 보여주려는 데 있다”.
책은 2장 ‘창조’에 와서 세상이 7일동안 창조되었다는 이야기를 눈에 보이듯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그려가기 시작한다.작가가 상상력을 가미해 아름답게 재해석한 창조이야기는 비주얼 세대에 맞게 ‘2쪽당 한 장’꼴의 방대한 사진자료와 함께 책의 아름다움을 더한다.
이후의 장들은 창세기,출애굽기…등 구약에 수록된 성서들에 들어 있는 핵심 내용들을 특히 성서를 처음 접하는 독자들을 위해 사건 중심으로 전개하고 있다.즉 모세 5경을 비롯한 역사서,율법서,선지서 등을 구분하지 않고 연대기적으로 기술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마지막 16장 ‘여러 서책들’에는 욥기,시편,잠언,전도서,아가서 등 하나님에 대한 찬양을 담은 5권의 시가(詩歌)집의 성격과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하고 있다.
구약이야기의 3분의 2 분량인 둘째권 ‘신약성서 이야기’ 역시 역시 마태복음에서 책을 시작하지 않는다.제1장 ‘그리스인들의 도래’에서 3장 ‘혁명과 독립’까지는 아테네가 세계 문명의 중심지가 되는 이야기를 기술하고 있다.유대인들의 문명은 독립적으로 존재했고 서로는 서로를 몰랐다.3장에서 로마의 세계 지배와 유대인과의 관계가 기술돼 예수 탄생 사건의 세계사적 좌표를 그린다.4장 ‘예수의 탄생’에 이르러서 비로소 마태 마가 요한 누가 등 네 복음서의 성격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함께 네 복음서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과 활동,십자가 사건이후 사도들의 행적이 감동적으로 기술된다.그리고 “이 우주를 지배하는 강력한 사상이 ‘사랑’이라고 한 예수의 가르침”이 세계의 중심 로마에 정착되고 교회가 승리하는 지점에서 성서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구약이야기와는 달리 특히 당시의 역사와 보다 긴밀하게 맥락짓고 있는데 성서식의 신비적 진술을 피하고 사건들을 비기독교인들도 긍정할 수 있는 범위에서 합리적으로 재구성하려고 노력한 것이 특징이다.
“…자신들만이 성서를 관리해야 한다고 믿었던 어른들 때문에,너희 같은 아이들은 오랫동안 성서를 가까이 할 수 없었단다.하지만 성서를 알지 못하고서는 교육을 제대로 받았다고 할 수가 없단다.게다가 너희들의 생애에서 몇 번은 이 고대 연대기에 숨겨진 지혜가 매우 유용할 거라고 생각한다”라고 저자는 성서의 의미를 말한다.혹시 교계의 경직된 태도 때문에 다양한 성서이야기의 출판이 제한받고 있다면 같은 우(愚)를 범하는 것은 아닐까.이 점을 숙고한다면 성서이야기가 일반출판물에서 그리스·로마 신화의 붐을 뛰어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왜냐하면 성서(특히 구약)에는 그리스·로마신화보다 더 아름다운 사상과 신의,숭고한 사랑 이야기가 충만하므로.
■ 알렉산드로스 - 정복자 세계로…알렉산더의 초대
‘시대가 영웅을 만드는가,영웅이 시대를 만드는가.’
‘위대한 정복자’ ‘대제’ ‘청년 사자왕’ 등의 명칭으로 불리는 알렉산드로스,즉 알렉산더 대왕은 역사의 한 페이지를 기록한 영웅이다. 그가 2,300년이라는 장구한 시간을 넘어 소설로 되살아났다.
알렉산드로스를 다시 흙으로 빚어 숨을 불어넣은 사람은 이탈리아 고고학계의 ‘인디아나존스’로 불리는 발레리오 마시모 만프레디. 최근 번역된 소설 ‘알렉산드로스’(이현경 옮김·전 3권·들녘·각 9,000원·1만원·1만1,000원)는 만프레디가 지난 98년 발표해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등 42개국에서 번역 출판돼 1,000만부 이상 판매됐고 현재 미국에서 ‘글래디에이터’ 제작진이 영화화 중이다.
알렉산드로스는 기원전 4세기 마케도니아의 왕으로서 32세에 페르시아를 정복하고 자신의 이름을 딴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를 70개나 건설한 인물이다. 이집트에서 인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고 33세에 요절한 정복자. 아리스토텔레스에게 학문을 배워 예술과 철학에 정통했던 공부하는 군주이자 그리스 문화와 동양 문화의 융합인 ‘헬레니즘’ 문명을 전파한 사람이다.
소설 ‘알렉산드로스’는 학문적 연구와 취재를 바탕으로 현대적 관점에서 알렉산더 대왕을 형상화했다. 고대 외과용 도구를 ‘메스’라는 현대의학용어로,‘로코스’를 ‘대대’로 쓰는 등 독자들이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썼다. 그라니코스 전투 장면의 경우 흔히 인용하는 칼리스테네스의 작품이 아니라 작가가 소장한 역사 자료를 토대로 했고 이라크,시리아,이란 서쪽 등을 취재하며 군인들에게 체포될 위기를 겪으며 썼다.
제1권 ‘사람의 아들’은 알렉산드로스가 태어날 때부터 마케도니아의 왕위를 계승하기까지를 묘사했다. 알렉산드로스의 아버지 필리포스는 왕위에 오르자마자 왕권을 강화하고 타 국가를 정벌함으로써 마케도니아를 가장 강력한 도시국가로 만든다. 필리포스 왕이 의문의 암살을 당한 이후 알렉산드로스가 동료 장교들과 군인들의 지지 속에 아버지의 왕위를 계승한다. 거대한 제국 페르시아까지 통합하겠다는 꿈을 안고 왕위에 오르는 장면이 그려진다.
제2권 ‘아몬의 해변’은 소아시아 상륙부터 이수스 전투까지를 그렸다. 트로이 전쟁의 신화와 역사를 함께 재현했으며 할리카르나소스 성벽 위 공격이나 이수스 전투 장면에서는 생생한 현장감을 느낄 수 있다.
제3권 ‘세상의 끝’은 알렉산드로스의 인간적 갈등이 잘 묘사된 부분이다. 페르세폴리스 왕궁의 방화 장면,파르메니오 장군과의 대립 등 알렉산드로스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는 부분을 세밀히 표현했다.
■ 블루, 색의 역사
“색(色)은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다. 색의 역사는 무엇보다도 사회의 역사이다.”
‘블루, 색의 역사’는 파란색을 통해 고대 로마부터 20세기까지 서구의문명사를 훑어본 책이다.
인공위성 사진으로 보는 지구는 대기와 바다의 빛깔 때문에 파란색이 주조를 이룬다.
‘파란 행성’이란 표현에 지구에 대한 인간의 애정이 담겨 있다. 이처럼오늘날 파란색은 안정과 평화를 상징한다.
그러나 이전에는 달랐다. 로마인들은 파란색을 미개인의 색으로 경멸했다. 그리스인들도 하늘을 흰색이나 황금색으로 표현했어도 청색으로 표현하는 일은 없었다.
중세까지 파란색은 빨강-하양-검정의 3색 체계에 밀려 홀대됐다. ‘빨간모자’나 ‘백설 공주’ 동화는 이런 인식의 산물이다.
하지만 “새로운 사회질서에는 그에 맞는 새로운 색의 질서가 필요했다.” 저자는 종교개혁은 ‘색과의 전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프로테스탄트의 금욕적인 분위기는 일상생활에서도 엄격한 색의 사용을 가져온다.
흔히 자유와 저항의 상징으로 여기는 청바지, 그것이야말로 청교도적 정신의 산물이다. 단순한 색상과 획일화한 형태가 그렇다.
낭만주의 시대에 파란색은 그 정신을 대표하는 색이 된다. 괴테의 ‘젊은베르테르의 슬픔’의 주인공 베르테르는 샬로테를 처음 만날 때와 같이 청색 연미복을 입고 권총 자살한다.
프랑스혁명을 거치면서 파란색은 혁명의 색이 된다. 물의 색깔이 파란색으로 인식된 것도 그리 오랜 일은 아니다.
초록색으로 여겨지던 물은 15세기에 와서야 파란색으로 대치됐다.
2000년에 출간한 이 책으로 저자 미셸 파스투로는 이처럼 중세의 흑(黑)기사부터 리바이스 청바지까지, 파란색과 그에 대비되는 색의 이야기로흥미진진한 사회ㆍ문화사를 엮어냈다.
그는 프랑스 파리 고등연구실천학교 교수로 중세 문장학(紋章學)과 상징사 연구의 일인자로 꼽히는 학자. 책에 실린 희귀하고 흥미로운 회화, 자료사진들도 생생하다.
■ 고구려 건국사
고구려의 건국신화인 활쏘기의 명수 주몽(朱蒙) 신화는 일본학자들이 허구라고 주장해왔고 이를 반박한 자료가 마땅치 않았던 우리 역사학계는 연구를 방치해 왔다.책은 고구려 초기 건국사 복원과 주몽신화의 역사성 연구에 심혈을 기울여온 김기홍 교수(건국대 사학과)가 자신의 논문들을 종합해서 이야기의 형식을 빌어 생생하게 써내려간 역사책이다.
일본학자들의 실증연구에 따르면 주몽신화는부여의 ‘동명(東明)전설’을 개작한 허구에 불과하다.이들은 주몽에서 유리왕,대무신왕,민중왕,모본왕에 이르는고구려 초기 왕계를 조작된 것이라고 결론지었고 6∼9대왕(태조대왕,차대왕,신대왕,고국천왕)마저 역사성을 의심하면서 제10대 산상왕(197∼227년)부터가 실재한 왕이었다고 주장했다.물론 국내 학자들은 이런 조작설은 믿지 않았지만 주몽신화만큼은 고구려 후반기인 5세기에 완성된 것이라는 일본의 주장에 동조해 왔다.
저자는 3세기 후반에 편찬된 중국측 사서 ‘삼국지’ 동이전 등을 연구한 결과 고구려 관련 기록 속에 주몽신화가 이미 존재하고 있음을 밝혀내고 작년에 이를 논문으로 발표했다.시골에서 옛날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란 마지막 설화세대임을 자처하는 저자는 이같은 연구결과,즉 주몽에서 모본왕에 이르는 고구려 초기 5대왕의 역사를 종합해서 이야기로 들려준다.책은 동부여 왕의 아들이지만 서자였던 주몽이 자신을 죽이려는 이복 형제들을 피해 세 친구와 함께 압록강 지류인 비류수 강가에 정착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저자는 우리 옛 신화가 골격만 전해져 오는 바람에 흥미를 끌지못해 상고사·고대사가 재미없게 느겨지는 주 요인이라고 보고 역사가적 상상력을 더해 그리스신화보다 더 재미있는 민족적 판타지로 복원해 보려고 노력했다고 밝힌다(창작과비평사·9500원).
■ 왼손잡이의 역사
피에르 미셀 베르트랑 지음 푸른미디어
16세기 중반부터 오른손 우위의 관습이 확립돼 19세기 말에야 비로소 사회에서 용납되기 시작한 왼손잡이에 대한 편견과 학대의 역사를 통해 본 유럽의 문화사. 1만5000원.
■ 발칙한 한국학…외국인이 꼬집는 '이상한 한국'
"한국이 정말 이상한 곳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라는 '발칙한'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한 자유분방한 미국인이 쓴 '삐딱한 한국 보고서'라 부를 만하다. 광화문 지하도에 좌판을 깔고 앉아 여러 테마로 한국을 다룬 1인 잡지 <버그>를 팔고 있는 저자 스콧 버거슨은 한국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그는 부산에 사는 러시아 여인들, 대학로에서 만난 필리핀인들, 이태원에서 만난 다양한 외국인들을 만나 그들의 눈에 비친 한국의 이모저모를 취재한다. 또 한국인이 고대 그리스인의 후손이며 원래는 백인이라는 주장을 담은 <한국인은 백인이다> 등 한국을 다룬 진기하고 이상한 책들을 통해 한국을 읽어내기도 한다.
독일인이 쓴 평양 탐방기, 한국 아나키스트들의 역사를 살핀 뉴질랜드인의 에세이 등 그의 외국인 친구들이 독특한 시각으로 한국을 분석한 글들도 실었다.
■ 반지의 문화사 - 반지에 담긴 문화사
오늘날 반지의 목적이나 의미는 '치장' '약속''기념' 등이다. 그러나 한때 반지는 '처녀를 차지했음을 알리는 징표'로 신부에게건네지기도 했다.
「반지의 문화사」(에디터刊)는 반지에 숨겨진 서양의 역사와 문화를 더듬어보는 흥미로운 책이다. 저자는 일본 간사이(關西)대학에서 독일문화론을 가르치는 다카시 하마모토 교수.
유럽에서 반지는 일찍이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데, 신비한 마력을 솟게 하는부적이나 왕권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도장으로도 사용됐다.
고대의 병사들은 무용(武勇)의 표시로 반지를 끼기도 했고, 기독교 문화권에서는 반지를 삼위일체를 상징하고 하나님과의 계약을 나타내는 징표로 삼기도 했다.
반지가 현재처럼 성스러운 약혼이나 결혼의 예물로 애용되는 관습은 여기서 연유했다.
저자는 유럽의 신화, 미술, 문학작품에 나오는 다양한 반지 이야기를 풀어놓으면서 반지가 가진 용도와 상징, 함의를 들려주고 있다. 김지은 옮김. 238족. 1만2천원.
■ 신화를 찾아 떠나는 여행(베로니크 모뤼스)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의 기자가 유럽 신화의 주인공들과 사라진 대륙 아틀란티스의 발자취를 찾는다. 신화 탄생지를 직접 방문하고 현지인들을 인터뷰해 신화의 신비를 해설한다. 엑스칼리버가 버려진 호수와 아서왕의 것으로 추정되는 무덤 등을 방문하는 식(해바라기·9000원).
■ 살육과 문명 - 왜 서구는 전쟁에서 승리할까…‘살육과 문명’
16세기 아즈텍 점령에 나선 에스파니아 원정군의 상황은 비관적이었다. 보급선은 끊겼고,원주민들은 사방에서 공격해 들어왔다. 숫적 열세에 열대지방의 질병,본국 상관들의 체포 명령까지 희망은 없어보였다. 약탈한 금은보화와 몇점 남지 않은 무기가 이들이 가진 전부. 하지만 에스파니아 군대는 100분의1에 불과한 병력으로 수십만명의 원주민을 몰살시켰다.
1521년 에스파니아는 왜,어떻게 성공했는가. 역사의 질문은 이어진다. 개전 직전까지 다투기를 멈추지 않았던 1571년 남유럽의 제독들은 또 어떻게 일사분란하게 움직여 오스만 투르크의 10만 대군을 궤멸시켰을까. 시대를 거슬러 기원전 480년,페르시아 전제 군주 크세르크세스의 침공을 받은 그리스는 파죽지세로 밀고 들어오는 수백척의 페르시아 함대를 어떻게 무찔렀을까.
결국 물음은 ‘서구는 왜 승리했는가’로 귀결된다. 캘리포니아주립대 역사학 교수인 빅터 데이비스 핸슨은 서구 문명의 성공이 철저하게 군사적 우수성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살라미스 해전과 가우가멜라,칸나이,푸아티에 전투 등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9개의 전투를 통해 밝혀낸다.
서구식 전쟁은 적을 몰살시키기 위해 육박전을 벌이는 섬멸전(戰)이 대종이다. 이는 생포하거나 겁을 주는 것에 무게를 뒀던 비서구인의 의전적(儀典的) 전투에 비해 훨씬 격렬하고 잔인했다. 서구의 힘은 이같은 효율적인 학살 능력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저자의 분석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먼저 전제 하나를 받아들여야 한다. “서구인의 입장에서 서구의 승리를 용감하게 인정하는 것”(역자 서문). 16∼17세기 지리상의 발견 이후 제국주의 시대를 거쳐 현대까지 지난 500년의 역사에서 서구의 성공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저자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가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해 로마와 프랑크 왕국,에스파니아,남유럽,북유럽,미국까지 서구식 전쟁의 승리가 일관된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서구인의 군사적 실패는 대부분 아시아,아프리카 등 비서구 지역의 원정전(戰)에서 국지적으로 발생해 빨리 회복됐다는 것이 핸슨 교수의 주장이다.
서구의 군사적 우월은 현대에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인구 10억명이 넘는 이슬람 세계는 석유로 막대한 부를 거머쥐었지만 군사력에선 유럽 한나라에도 미치지 못한다. 로마에서 비롯된 연대,사단 등 편제와 무기 등 서구 군사 문화는 이제 보편적인 것이 됐다.
그렇다면 서구인은 왜 군사적으로 강해졌는가. 저자는 시민적 자유와 합리주의,개인주의 같은 서구적 문화 전통이 군사적 성공의 비결이라고 말한다. ‘자유로웠기 때문에 전쟁에서 잘 싸웠다’는 논리적 비약을 메우기 위해 저자는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살라미스 대전을 책의 시작으로 삼았다. 자유로운 그리스 시민은 페르시아 노예에 비해 지켜야할 권리가 많았다는 것. 저자에게 살라미스 해전은 “거대하고 부유한 제국(페르시아)과 작고 가난하며 탈중심화된 체제(그리스) 사이의 대결”이자 “작고 자율적이며 자유로운 종신 귀족 공동체(그리스)의 승리”였다.
보험,이자,재산에 대한 정부의 공식적 보호 등 서구 자본주의의 정교한 하부구조 역시 전투력 배가에 한 몫을 했다. 덕분에 시민 전사들은 페르시아나 투르크의 귀족들처럼 금은보화를 싣고 전투를 벌이지 않았다. 무기의 대량 생산과 공급 역시 서구 자본주의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저자는 그리스의 승리를 민주주의의 승리로,이어 자본주의의 승리로,다시 서구의 승리로 연결시킨 것이다.
서구적 군사 문화는 이후 비서구권으로 대거 흡수됐다. 일본이 한국과 중국에 비해 군사적으로 성공했다면 이는 일본의 서구화 전략 덕이었다. 하지만 서구의 군사 문화가 개인주의,합의 정치,자유 방임 자본주의 등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라면 이를 함께 받아들이지 않은 일본의 실패는 예정된 것이었다. 저자는 1942년 미드웨이에서 일본 해군이 미군에 참패한 이유가 이중적 서구화 전략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남경태 옮김(빅터 데이비스 핸슨·푸른숲·3만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