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우유가 지난 수십년간 대리점들에 필요 이상의 물품을 강매해 오다 최근에 와서야 이를 금지 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우유 홈페이지.
ⓒ2004 서울우유 홈페이지
국내 우유업계 1위 기업인 '서울우유'가 지난 수 십년간 관행처럼 대리점들에게 필요 이상의 유제품을 강매하고 물품대금을 받아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사실은 '서울우유' 수도권 지역의 몇몇 대리점 사장들이 본사를 불공정거래 행위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하면서 알려졌다.
경기도 성남시에서 '서울우유' 대리점을 하고 있는 K씨 등 4명은 지난 2월 10일 "서울우유 본사가 대리점들에게 불공정 거래 행위를 하고 있다"며 공정위의 조치를 요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K씨 등의 주장은 본사가 대리점들에게 필요한 주문량 이상의 '판매 할당량'을 내려보내 강매를 일삼고, 이에 대한 물품 대금을 입금 받고 있다는 것. 이들은 '서울우유'가 이른바 '밀어내기' 방식으로 잘 팔리지 않거나 마진이 적은 유제품을 대리점별로 강제 할당해 정신적, 물질적 손해를 입혀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또 공정위에 제소한 이후, 본사가 취하를 요구하며 압력을 행사해 영업을 방해하고 있다고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서울우유'측은 K씨 등이 공정위에 제소하기 직전 이미 '밀어내기' 판매 방식을 금지시켰으며, 대리점에 넣는 압력에 대해서도 "당연한 일"이라고 반박하고 있어 3개월째 대립이 계속되는 중이다.
"필요 이상 상품 강매... 싼값에 팔거나 버릴 수밖에 없었다"
K씨 등이 주장하고 있는 '밀어내기' 판매는 본사가 정한 판매 목표량에 따라 각 대리점에 유제품을 공급하고, 대리점에서 팔리든 팔리지 않든 물품 대금은 회수해 가는 방식을 말한다.
특히 이들은 차가운 우유제품이 잘 팔리지 않는 겨울철(1∼2월) 비수기에 본사가 '100일 작전' 등으로 강압적인 목표를 부여하고, 물건을 강매했다고 주장했다. 또 본사가 이 같은 강매를 수십년 동안 해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공정위에 진정서를 제출한 K씨는 "지난 84년 우유대리점을 시작한 이래 본사는 매년 밀어내기 방식의 상품 강매와 목표 달성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K씨는 또 "팔리지 않는 유제품은 오래 보관할 수 없기 때문에 창고에 따로 보관하다 공장도 이하 가격으로 팔거나, 하수구에 버리는 수밖에 없다"며 물질적 피해를 호소했다.
하지만 회사측은 공정위에 제소하기 직전 이미 '밀어내기'를 금지시켰다고 밝혔다. '서울우유' 본사 박세범 영업담당 상무는 우선 "일부 지점에서 본사 직원들이 목표로 받은 할당량이 있으니까 서로 대화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제품이) 더 나가는 경우가 있었다"며 '밀어내기'가 관행이 돼 왔음을 인정했다.
하지만 박 상무는 "겨울철의 경우 소비가 줄고 각 학교가 방학중이라 원유가 남고, 이를 그냥 버리게 되면 환경문제 등이 발생하므로 대리점 사장들에게 (1∼2월) 두 달 정도만 회사 사정을 봐 달라고 했다"며 "대리점 사장들은 마치 엄청나게 많은 물량을 강제로 받은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통계를 내보면 평소보다 1∼2% 정도 더 많게 나갔을 것이라고 본다"고 주장했다.
박 상무는 또 "본사 직원들은 판매 할당량이 있으니 특히 겨울철에 임의로 신청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에 대한 민원이 계속 들어와서 K씨 등이 공정위에 제소하기 직전인 2월 10일 이미 (본사 직원들이 임의로 제품 신청을 못하도록) 프로그램을 막아버렸다"고 반박했다.
서울우유 본사가 이 같은 조치를 취한 것은 일단 사실로 나타났다. K씨처럼 경기도 성남에서 대리점을 하고 있는 한 사장은 "밀어내기란 용어는 모르지만, 예전처럼 물품이 주문량보다 많게 나오지 않는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서울 은평구에서 대리점을 하고 있는 또 다른 사장도 "2월부터는 회사가 '밀어내기'를 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 성남지역 대리점 사장들이 공정위에 제출한 진정서.
ⓒ2004 오마이뉴스 김영균
대리점 사장들 "영업방해 등 회사 압력"... 서울우유 "어쩔 수 없다"
그러나 K씨 등은 또 다른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K씨에 따르면, '밀어내기'식 판매강요를 공정위에 제소하고 난 뒤부터 본사에서 취하를 요구하며 갖가지 압력을 행사해 영업을 방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본사가 반기를 든 K씨 등에게 '괘씸죄'를 물어 대리점을 그만둘 것을 강요한다는 얘기다.
K씨는 "공정위에 제소하고 난 뒤 이때까지 지급해오던 고정 판촉사원에 대한 인건비 보조금이 중단되고, 1개월에 1번이던 물품 대금 입금 기일을 3번으로 늘려 자금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K씨는 또 "본사가 일반거래보다 싸게 들어가던 학교급식 거래처의 코드 부여도 거부해 막대한 금전적 손실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기존 영업구역 내 경쟁촉진을 이유로 새로운 대리점을 일방적으로 개설해 사실상 '대리점을 그만두라'는 압력을 넣고 있다"고 호소했다.
회사측도 이 같은 압력을 사실상 시인하고 있다. 박세범 상무는 "내가 직접 공정위 제소를 취하하라고 얘기한 적은 없지만, 해당 직원이 소를 취하하라며 회사 재원을 가지고 고정 판촉요원 인건비 보조금 등을 중단하겠다고 이야기 할 수는 있다"고 밝혔다.
박 상무는 같은 영업구역 내 새로운 대리점 개설에 대해서도 "법을 어기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상무는 "서울우유는 1100개의 대리점을 운영하고 있는데, 몇몇 대리점 사장들만 편의를 봐 줄 수는 없는 일"이라며 "K씨 등 해당 대리점 사장들은 자기들 편한 물량만 소화하려고 하는데 본사 직원들은 어차피 회사에서 정한 판매 목표량이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밝혔다.
박 상무는 "본사가 K씨 등에게 대리점을 그만두라고 한 적은 없지만, 새로운 대리점을 개설해 판매 목표량을 채우고 실적을 올리는 것은 회사로서는 타당한 일"이라며 "공정위에 알아본 결과 이는 법률 위반이 아니다"라고 전했다. 또한 "회사측은 그 동안 해당 대리점 사장들을 설득하기 위해 노력을 다 했지만 대리점 사장들이 듣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K씨 등은 새 대리점 개설이 "도의상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아울러 이들은 지난 4월 공정위에 "계속되는 본사의 보복행위가 우려되고 있으니 시정조치 명령시 보복금지 사항을 포함해 달라"는 요청서를 다시 제출했다.
공정위 "아직 위법성 판단 못해... 시장상황 등 고려해야"
현재 K씨 등은 회사가 '밀어내기' 방식을 금지시켰다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시작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K씨는 "지난 20년간의 경험을 볼 때 지금은 본사가 밀어내기를 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언제 다시 시작할지는 알 수 없다"며 "판매강요 금지에 대한 확실한 보장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공정거래위는 K씨 등의 제소를 받고 현재 정확한 상황을 조사중이다. 공정거래위 가맹사업거래과 박국연 조사관은 "조사는 마무리됐지만 아직 결론은 내리지 못했다"고 밝혔다. 박 조사관은 또 "K씨 등의 제소 내용으로 볼 때 그 자체로서는 아직 위법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시장상황 등 여러 요소를 다 고려해야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