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자정이 넘어도 들어오지 않는 딸을 기다리던 엄마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어제 아침에 엄마한테 얘기했는데 엄마 또 깜박하셨죠?"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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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은 일찍 등교를 해서 신선한 공기를 즐겼다
친구들은 이른 등교를 불평했지만 서영은 아침 공기를 즐기며 학교 교정을 산책했다
활달한 성격과 모든 것에 재능이 많은 서영은 학교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 서영이 요즘 수학여행 때문에 고민하고 있었다
집안 형편으로는 도저히 갈 수가 없었기에 서영은 전혀 표현하지 않고 다녔다
그러다 담임 선생님의 호출로 교무실로 갔다
"강 서영"
"네"
"너 아직 수학여행 경비 안냈던데 무슨 문제 있나?"
"선생님..."
"말해봐 "
"저 수학여행 안 갈래요"
"뭐? 수학여행을 안 간다고?"
"네"
"왜? 이유가 뭐야?"
"그건 말씀 드리기 어렵고요. 전 이번 수학 여행에서 빠지겠습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수학여행도 수업의 연장이야"
"그건 알지만 갈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이유가 뭐냐구 묻자나 어서 말해봐"
".........."
"말하기 곤란하면 나가서 얘기하자"
담임 선생님은 서영을 데리고 교무실를 나왔다
등나무가 있는 벤치로 가서 선생님은 서영의 얼굴을 살폈다
"서영이 집에 무슨 일 있지?"
"아니요"
"아니긴 뭐가 아니야. 너 요즘 얼굴이 어둡던데 말해. 선생님 섭섭해지려고 한다"
"아무 일도 없어요"
"강 서영 거짓말하지 말고 어서 고백해라"
"............."
"서영아"
"네"
"아버지 돌아가시고 집안이 어려워진거지?"
"........."
"말을 해. 선생님 답답하잖아"
"네 실은 집도 이사를 했어요. 그래서 ..."
"많이 안 좋아?"
"......."
"알았다. 네가 말을 못하는걸 보니 많이 힘들구나. 힘내라"
"네"
"그래도 수학여행은 가야한다. 학창시절의 가장 아름다운 추억이 될 꺼야"
"하지만.."
"걱정하지마. 넌 그냥 수학여행 가기만 하면 되니까"
"선생님......."
"강 서영이 안가면 수학여행이 너무 심심하잖아. 그래서 선생님이 널 초대하는 거야.
그러니 아무 걱정 말고 가자. 경비는 신경쓰지 말고 알았지?"
"네..."
선생님의 말씀에 서영은 거절 할 수가 없었다
수학여행을 떠나던 날 엄마는 서영의 손에 구겨진 천원짜리 두 장을 주었다
미안해하는 엄마에게 서영은 환하게 웃었다
수학여행지는 경주였다
기차를 타고 경주로 가는 여고생들은 희망으로 가득했다
차 창 밖의 풍경에 취하는 학생도 있었지만
어떻게 선생님들을 골탕 먹일지를 궁리하는 학생들도 있었으니까...
노래와 게임에 열중하던 아이들이 갑자기 술렁거리지 시작했다
무언가 음모가 꾸며지고 있었다
그 음모는 얼마 안가 현실로 다가왔다
기차가 터널을 지나가자 불이 꺼지고 비명이 들렸다
터널을 빠져 나온 기차 안에 불이 들어오자 객실은 온통 밀가루로 흰 눈을 날리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자신이 한 일이 아니라는 듯 다시 게임과 노래에 열중하고 있었다
각오는 했지만 객실 안이 온통 밀가루니 선생님도 웃음이 터졌다
해마다 수학여행을 따라 가는 선생님들은 수난이었다
그러나 그 시절에만 할 수 있는 것이기에 어느 누구도 야단을 하는 선생님은 없었다
그저 웃음으로 답하는 것이 전부였다
경주에 도착해서 다시 버스를 타고 숙소로 갔다
숙소에 도착한 아이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완전히 독립되어 있는 숙소는 아이들이 꿈꾸었던 남학교와의 연락이 산산이 깨어지고 있었다
한숨소리가 가득한걸 선생님들은 그저 웃고만 있었다
반별로 방이 두 개씩 배정되었다
서영은 2층에 배정을 받았다
2층에 있는 방으로 들어간 아이들은 다시 입을 벌렸다
무슨 군대도 아니고 가운데를 복도로 하고 양옆으로 방이 되어 있었다
이건 완전히 군대 내무반이었다
아이들의 불평이 입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선생님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듯 반응이 없었다
각자 방에서 짐을 풀고 옷을 갈아입었다
항의를 한다고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 않자 아이들은 포기했다
그리고 무언가 계획에 들어갔다
저녁 식사시간을 알리는 소리가 나서 아이들이 마당으로 내려갔다
식당은 지하에 있었다
저녁을 먹으면서 선생님들의 숙소를 살폈다
선생님의 숙소가 바로 지하에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저녁을 먹고 자유시간을 가졌다
내일 일정이 바쁘다고 했지만 아이들은 일찍 잠들지 않았다
9시쯤 되었을 때 2층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다
아래층에서 보면 위험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계속되는 비명에 선생님들이 밖으로 나왔다
아이들이 뭔가 일을 꾸민다고 생각한 선생님들은 웃으며 나왔다
해마다 있는 일이니 놀랄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번엔 뭔가 심상치 않았다
2층 한 방에서 계속되는 비명과 그 방 앞에 갔던 아이들은 기겁을 하고 도망을 갔다
2층 난관이 낮아서 떨어질 것 같았다
밑에서 무슨 일이냐고 아무리 소리쳐도 아이들은 듣지 못했다
서둘러 2층으로 올라간 남자 선생님은 방문을 열었다
"으악"
선생님 자신도 모르게 비명이 나왔다
방에서 아이들의 웃음 소리가 터져 나왔다
"불켜라"
아이들은 불을 켜지 않았다
"어서 불켜"
선생님의 목소리가 변하는걸 느낀 아이들은 불을 켰다
"야! 이녀석들아........."
잠시 할 말을 잃어 선생님은 아이들은 바라 보았다
"내가 수학여행을 많이 다녔는데 이게 뭐야?"
"무슨일이에요?"
2층에 문제가 생긴걸 알고 다른 남자 선생님이 올라 오셨다
그 선생님도 그 광경을 보고는 놀랬다
아이들은 모두 머리를 풀고 있었다
한 아이가 소복을 입고 긴 머리를 풀고 입에는 칼을 물고 빨간색 셀로판지를 랜턴에 대고
자신의 얼굴에 비추고 있었다
그 광경은 그야말로 납량극장의 한 장면이었다
방 전체가 공포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다른 방 아이들도 끌려 들어와 함께 그러고 있었다
그런 광경이 아래층에서는 위험하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이게 뭐야? 준비는 확실하게 했구나. 그래도 너무했다. 사전에 알려나 주고 하지..."
"다들 아래층으로 내려와라. 얼른 정리하고 5분후에 집합이다"
한바탕 귀신놀이가 끝나고 있었다
아래층으로 내려간 아이들은 웅성거리고 있었다
그때 선생님들이 나오셨다
"도저히 이번 일은 그냥 넘어 갈 수가 없다.
잘못했다가는 사고가 날수도 있는 상황 이였으니까
그래서 지금부터 오리걸음으로 마당을 5바퀴 돈다. 실시"
아이들은 오리걸음을 하면서 교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선생님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03
다음 날 일찍 기상을 해서 토함산에 올랐다
힘겹게 토함산에 올라 숨을 돌리고 나니 석굴암이 눈에 들어왔다
옛 선인들의 솜씨에 감탄을 하며 어디에선가 본 수학적 비율을 확인하고 있었다
석굴암과 첨성대에도 정교한 수학적 비가 반영돼 있다.
석굴암 본존불상의 얼굴 너비는 당시 사용한 단위로 2.2자, 가슴 폭은 4.4자, 어깨 폭은 6.6자,
양 무릎의 너비는 8.8자다.
다시 말해 '얼굴 : 가슴 : 어깨 : 무릎'의 비를 내보면 '1 : 2 : 3 : 4'가 나온다.
이때 기준이 된 1.1자는 본존불상 전체 높이의 10분의 1이다.
10분의 1 비율은 기원전 25년 헬레니즘 사상가인 비트루비우스가 주창한 '균제비례
(Symmetry)'와 맞아떨어진다.
그는 "건축미는 건물 각 부의 치수관계가 올바른 '균제비례'를 이룰 때 얻어진다."고 했다.
균제비례는 인체에서 얻어진 것이다.
턱에서 이마 끝까지의 안면을 재보면 신기하게도 전체 키의 10분의 1이다.
또 손목에서 가운데 손가락 아래 선까지 손바닥 길이는 팔 길이의 10분의 1이다.
1천2백년전 신라인들이 비트루비우스의 균제비례를 알았을 까닭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라인들은 비트루비우스가 생각한 안정감과 아름다움의 비율을
자연스럽게 인식하고 있었고, 이를 석굴암에 적용한 것이다.
첨성대에선 '피타고라스의 정리'와 관련된 비도 찾아 볼 수 있다.
'천장석의 대각선 길이 : 기단석의 대각선 길이 : 첨성대 높이'의 비는 '3 : 4 : 5'다.
사실 이는 피타고라스 정리가 나오기 수백 년 전에 나온 고대 중국 수학책인
'주비산경'의 비를 반영한 것이다.
주비산경의 제1편에 '구를 3, 고를 4라고 할 때 현은 5가 된다.'는 말이 나온다.
바로 '구고현(勾股弦)의 정리'다.
옛날에는 직각삼각형에서 직각을 낀 두 변 가운데 짧은 변을 '구', 긴 변을 '고',
그리고 빗변은 '현'이라고 불렀다.
'3 : 4 : 5'는 '(3×3)+(4×4)=5×5'로 직각 삼각형의 세변의 길이의 비가 된다.
따라서 '직각삼각형의 빗변을 한 변으로 하는 정사각형의 넓이는
나머지 두 변을 각각 한 변으로 하는 두 정사각형의 넓이의 합과 같다'는
피타고라스의 정리와 동일한 내용임을 알 수 있다.
그저 무심코 멋있다고만 지나쳤던 석굴암에 그런 사실이 숨어 있는지 몰랐다
수학적 비율을 대입해가며 보니 석굴암의 그 자태는 더 장엄했다
첨성대에 가서도 이 수학적 비율을 대입하며 본다면 그 느낌은 새삼 다르겠지...
서영의 눈은 빛이 나고 있었다
석굴암에서 나온 서영은 친구들과 물통에 물을 담았다
아이들은 더워서인지 약수에 모여 있었다
한모금의 약수는 세상의 모든 시름을 다 날려 주는 것 같이 시원했다
토함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너무도 시원하고 달콤했다
하산을 해서 이동한 곳은 포항제철이었다
용광로의 그 뜨거운 열기가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60년대 농업 중심의 1차 산업에서 중화학공업을 육성하기 위해 제철산업을 일으켜야 했는데
그것이 70년부터 81년까지 영일만에 세워진 270여 만평의 포항제철소다
포항제철소의 특징으로는 열연, 냉연뿐만 아니라
피아노 선이나 못 같은 것을 만들 수 있는 선재,
모터를 만들 수 있는 전기강판,
녹슬지 않는 스텐레스 등의 다양한 제품을 조금씩 생산하는 다품종 소량생산 체제로 되어있다
선진 철강업체와 경쟁할 수 있도록 생산품목이나 규격에 있어서 상호 보완이 되도록 지어진 제철소다
규모와 그 용도의 설명을 들으며 아이들은 높은 열을 품어내는 용광동에 눈길을 보냈다
제철소에서 나온 아이들은 바다로 갔다
바다에서 아이들은 추억을 담고 있었다
시련의 여주인공이 되어서 카메라에 담고 또 담았다
수학여행의 일정이 끝나는 날 아이들에게는 장기자랑의 시간이 주어졌다
각반의 재주꾼들이 나와서 반을 위해 열심히 공연을 했다
노래, 춤, 연극, 판토마임등 아이들의 숨은 재주가 나왔다
서영의 반에서는 신심청전을 열연했다
결승에 오른 두반의 각축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번에 서영은 참여하지 않고 친구들을 응원하고 있었다
마지막 비장의 무기를 보이라는 선생님 말씀에 다른반 친구들이 춤솜씨를 보였다
서영의 반 차례가 되었는데 아이들은 망설이지 않고 서영일 무대위로 올려보냈다
멍하니 있다 무대위로 오른 서영은 반 친구들의 눈길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서영의 입에서 요들송이 나왔다
너무도 아름다운 노래 소리에 다들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언제 들어도 요들송은 너무도 아름답지만 쉽게 따라 부를수 없는 노래다
그래서 그 아름다움이 한층 더한지도 모른다
선생님들도 아이들도 서영의 입에서 요들송이 나올지는 몰랐다
순간 반대항은 서영이의 반으로 우승이 돌아가고 있었다
서영이 무대에서 내려오자 아이들은 서영이의 머리를 때리고 난리가 났다
선생님의 발표는 서영의 반이 우승을 했고 나머지 시간은 아이들이 그렇게 원하는 춤의 향연이 벌어졌다
선생님도 아이들과 함께 음악에 맞춰 춤을 추었다
지금 이 순간에는 선생님도 학생도 없었다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였다
그렇게 수학여행의 마지막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잠자리에 든 아이들은 즐거운 꿈을 꾸었을 것이다
다음날 아이들은 기차가 아닌 버스로 돌아갔다
수학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서영은 기말 고사 공부에 열중했다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공부가 전부였으니까...
엄마는 자신이 이대로 있으면 아무것도 안된다고 생각을 했다
집 주변을 돌아 다녀봤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일자리도 쉽게 나오지 않았다
엄마는 며칠을 그렇게 발 품을 팔고 있었고 날이 더워지워 이마엔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마지막으로 엄마는 시장으로 들어갔다
시장에선 무엇이든 일자리가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매번 거절을 당하고 돌아서야 했다
아무리 일 자리를 찾아도 엄마를 기다리는 건 거절 뿐 이였다
시장의 특성상 낯선 사람이 일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장사를 하고자 해도 엄마는 아무 것도 몰랐다
그것도 자릿세다 뭐다 해서 엄두도 낼 수가 없었다
노상에서 장사를 한다고 해서 자릿세가 없는게 아니었다
시장의 생리를 몰랐던 엄마는 그저 사람들 눈치만 보고 다녔다
무언가 하지 않으면 세 식구가 굶을 판인데 답이 나오질 않았다
누구에게 도움을 청하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아침부터 늦은 시간까지 시장에서 시간을 보냈지만 엄마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시장에 있어보니 사람도 많고 장사의 종류도 많았다
이대로 있다가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엄마는 경비하는 사람들을 찾아갔다
그저 시장의 경비를 보는 사람들이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노점 자리를 만들고 못 만드는 건 이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에 달려 있었다
엄마는 자리를 하나 만들어 달라고 했지만 그들은 아는 척도 하지 않았다
그들이 원하는 건 돈이였다
먹고살기도 힘든데 자릿세는 도저히 만들 수가 없었다
그러나 엄마는 여기서 포기 할 수가 없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살아야 했다
엄마는 매일 경비실로 찾아 갔다
그리고 그들이 머무는 곳을 청소하고 자리를 하나 만들어 달라고 했다
그들은 엄마의 존재가 안 보이는 것처럼 다녔다
그럴수록 엄마는 입술을 깨물고 아이들을 생각했다
그렇게 엄마는 한달 간 경비실을 청소했다
"아줌마 여기 청소한지 얼마나 됐어요?"
"한달 정도 되었는데 왜 그러세요?"
"이제 그만 하세요"
"아니 왜요? "
"아줌마 따라 오세요"
경비 반장이 엄마를 데리고 간 곳에는 사람들이 장사를 하고 있었다
조그맣게 비어 있는 곳이 보였다
"내일부터 여기서 장사하세요"
그 말만 남기고 경비 반장은 휙 가버렸다
엄마는 그 작은 공간이 굉장히 커다랗게 보였다
그런데 도대체 무슨 장사를 해야 할지 몰랐다
옆에 무슨 장사를 하는지 살펴보니 버섯을 팔고 파를 팔고 상추를 팔았다
엄마는 그 주변엔 또 어떤 것들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그 동안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본 것들을 눈여겨보고 다녔다
엄마는 자신이 무엇을 팔 것인지 결정을 하고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