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늪
박정순
얼마 전 재계 서열 10위권인 H그룹
K회장이 자신의 둘째아들을 폭행한 사람들에게 보복폭행을 한 혐의로 구속되어 경찰서 유치장으로 향하는 모습이 톱뉴스로 방송되었다. 세 자녀 중 두
아들이 미국의 명문 대학에 다니고 있으며, 막내아들은 아시안게임 승마 단체전 금메달리스트로 K회장은 자녀 교육에 성공한 아버지로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K회장의 아들 사랑은 일찍부터 소문이 자자했다고 한다. 아들 사랑이 각별했던 K회장은, 아들이 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에
분노하여, 법으로 처리해야 될 문제를 개인적인 감정으로 처리하면서 사람들의 호된 비난과 함께 구속되는 수모까지 당하게 된 것이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K회장이 처음부터 법으로 일을 처리했더라면 명예도 지키고 구속되는 수모도 당하지 않았을 텐데,
재벌 회장의 자존심이 화를 불렀다고 비난을 한다. 그런 비난에 대하여 K회장은 힘있는 부모라면 누구라도 자기처럼 했을 것이라고 합리화 할지
모르지만 변명과는 달리 이번 사건에 가장 큰 원인은 분노를 다스리지 못한데 있다. 자신의 분신처럼 생각하는 아들이 밖에서 폭행을 당했다는 말을
듣고 분노하지 않을 부모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K회장의 분노의 결과는 회사의 이미지와 명예가 실추되었으며, 인신구속의 고통과 사회적인
비난까지도 감수해야하는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 우리도 내 일이 아니기 때문에 K회장이 분노를 다스리지 못한 것을 쉽게 비난하고 욕하지만
그게 자신의 일이었다면 분노를 다스리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대부분 성격이 급한 사람들이 분노를 억제하지 못하여 후회하는
경우가 많다. 급한 성격으로 인해 어떤 일에 대하여 눈에 보이는 현상만을 가지고 판단하고 행동했다가 후회하지만 한 번 타고난 성격은 쉽게
고쳐지지가 않는다. 그런가 하면 원칙과 질서를 잘 지키고 성실히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자신이 부당한 대우를 받았거나 손해를 입었다고
생각하면 분노를 표출하기도 한다. 나는 이웃과 가족들에게 의무를 다했는데 내가 왜 이런 일을 당해야 되느냐 하는 피해의식이 분노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성인 군자라 해도 분노한 상태에서는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가 없기 때문에 분노를 즉시 표출하기보다는 냉정히 다스리고 신중하게
대처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지만 말처럼 쉽지가 않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분노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 이유는 우리가
하루를 보내는 동안 사소한 일에 화를 내기도 하고 크게 분노하는 상황을 경험해야 하기 때문이다. 작은 분노를 절제하던 사람도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하거나 큰 피해를 입게 되었을 때, 아니면 인격의 손상이나 배신 등을 당했을 때는 분노를 절제하지 못하고 폭발시키게 된다. 대부분 나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문제로 분노를 느끼게 되지만 여러 사람들과 관련된 문제로 분노를 느끼는 경우도 많다. 나에게 억울함을 주고 피해를 입힌
사람과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고소하여 법으로 분노를 해소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와 직접 관련이 없는 법을 위반하여 사회와 이웃에게 부당한
피해를 주는 것을 보고 느끼는 의분(義奮)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게 지나친다. 그런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직접적인 피해 당사자가 아닌 사람이 할
수 있는 고발이라는 제도가 있지만 대부분 자신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불평하는 것으로 의분을 표출하고 지나치게 된다.
분노는 나
개인의 이해타산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지극히 주관적이고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의분은 내 주변과 이웃, 사회와 국가를 생각하는 객관성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개인적인 분노와는 그 성격이 다르다. 우리나라가 반만년이라는 유구한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 것은 자기의 분노는 냉정하게 다스리고,
의분은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고 폭발시킨 선조들의 힘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나라를 구하려고 의병과,
독립군, 학도병이라는 이름으로 의분을 폭발시켜 나라를 되찾은 우리 조상들의 정의감과 애국심은 발전을 위한 가치 있는 분노였을 것이다. 개인적인
분노에는 냉정했지만 국가를 위한 의분에는 자신의 목숨까지 바쳤던 우리 조상들의 정의로움이 개인주의가 팽배한 지금 시대와는 많은 차이를 느끼게
한다.
요즘 세대에는 개인적인 분노를 폭발하는 데는 열심이지만 정작 국가와 이웃과 사회를 위해서 필요한 의분에는 무척이나 인색한
편이다. 자신도 법을 위반하고 생활하다가도 포상금이 걸리면 돈을 노리고 신고에 열을 올려 카파라치, 봉파라치란 신조어가 생기기도 했다. 그러다가
포상금을 노리고 직업적으로 하는 사람들을 막기 위하여 포상금제도를 없애면 자신이 고발한 사람들 대열에 합류하여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법을
위반하며 옛생활로 돌아간다. 그러면서 그들은 다른 사람들도 법을 위반하는데 나만 법을 지키면서 손해 볼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하며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 한다. 그런가 하면 굳이 내가 나서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이 신고할 것이라면서, 신고했다가 여러 가지 귀찮은 일을 당할지 모른다는 핑계로
의분을 애써 외면하며 살아가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들과는 달리 선진국 국민들은 작은 것이라도 국가나 사회, 이웃에게 피해를
주거나 법을 위반하면 즉시 의분을 발동시켜 신고를 한다고 한다. 국민성과 역사가 다른 국가의 국민들과 의분을 폭발시키는 방법을 단순비교한다는
것이 무리일 수도 있겠지만, 의분을 사회질서를 바로잡는 데 올바르게 표현하는 국민의식은 본받을 필요가 있을것이다. 이번 K회장의 보복 폭행사건도
개인적인 분노에는 즉시 반응하면서 의분에는 무관심한 우리사회의 현실을 대변해 준 사건이었다. 또한 자기중심적인 모습으로 살아가는 나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에게 순간적인 분노를 억제하지 못하고 분노의 늪에 빠져 후회하는 일이 없는 삶을 살아가라는 교훈을 주는 사건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