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유교문화와 풍수(1)
2011년 풍수 대토론회
2011년 8월 20일 한양대학교 박물관 세미나실
2011년 한양대 풍수대토론회에서 발표된 내용이다.
한양대 풍수대토론회는 BK21사업단과 성익건설의 후원으로 매년 2회개최되고 있는데
이번이 6회차이다. 풍수를 이렇게 제도권에서 연구되고 발표되고 있음이
풍수지리를 연구하고 있는 사람으로서는 매우 환영할 일이다.
오늘 발표내용을 그 첫페이지와 마지막 페이지를 여기에 옮겨둔다.
해를 거듭할수록 진일보된 연구결과가 발표되기를 기대한다.
5명의 발표와 더불어 토론의 시간으로 진행이 되었다.
항상 세미나 참석시 질문과 토론이 있게 되지만 때로는 질문자가 자기의 주장을
하고자 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질문과 토론의 시간이 있음은 당시의 이슈와 풍수지리학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활발하게 질문하고 답변하고 토론하는 문화는 참으로 좋은 것 같다.
1. 조선의 매장문화와 풍수사상
김기덕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매장은 동기감응론에서 출발한다. 주자는 혼백론과 풍수논리를 결합하였다.
사람이 죽으면 혼은 몸 밖으로 분리되어 유행하는 신령이 되고
백은 뼈속에 머물고 있어서 생자와 사자와의 동기감응론이 적용된다.
동기감응론은 무덤속에 묻힌 조상의 유골이 양호하게 환원되면서 발생되는 기는
조상과 가장 동기라고 할 수 있는 후손의 기와 동조하여 좋은 영향을 주고
반대로 조상의 유골이 물과 바람의 영향을 받는 좋지 않은 곳에 있어 썩게 되면
동기인 후손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유교의 제사논리는 역시 조상과 후손의 동기감응으로 성립되는 곳이다.
풍수에서 구체적으로 동기 감응하는 원리는 남자조상일 경우 9,
여자 조상일 경우 3, 즉 9대 3의 비율로 후손에게 동기감응의 영향을 준다.
이렇게 새로운 인과론을 전개함에 그 배경에 관심이 간다.
2. 유학자의 풍수관이 조선왕실에 미친 영향
지종학 지종학풍수지리연구소 소장
유교사상이 조선풍수에 끼친 영향을 한눈에 조망한다면 경복궁과 조선왕릉을
보면 알 수 있다. 두 곳은 모두 전통유학자에 의해 택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경복궁의 입지선정, 건원릉, 헌릉,영릉, 동작릉, 남연군 묘소, 광해군의 교화천도론,
조선후기 실학자의 풍수관 등을 통하여 조선시대 유학자들의 풍수관을 알아 보았다.
그러나 유학자에 의한 조선의 왕실풍수는 초기부터 말기까지
번번히 실패와 좌절을 초래했으며,
그로 인한 파급은 왕실 뿐아니라 조선 전체에 큰 비극을 불러왔다.
실패한 이유를 보면 외적인 웅장함에 치중하였고
산의 실체에 접근하기 보다는 이론적 바탕에 의존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선의 풍수는 유학자에 의한 글 풍수이고 겉치례 풍수이며, 실패한 풍수로 규정한다.
그러므로 앞으로의 풍수는 합리주의, 객관적, 구체적, 이성과 실증으로 바뀌어야 한다.
또한 학문적 위상정립, 풍수의 대중화, 외국으로의 진출, 새로운 터의 물색 등등
미래지향적 풍수로 전환을 모색해야 한다.
3. 조선 유학자들의 동기감응론에 관한 인식
박정해 정통풍수지리학회 이사장, 한양대한교 박사과정
선현들의 동기감응론에 대한 인식을 공자, 정자, 주자사상에서 살펴보았다.
풍수서에 나타난 동기감응론을 금랑경, 청오경, 의룡경, 지리신법, 발미론, 감응론,
명산론, 지리오결 등에서 정리하였다. 조선 유학자들의 동기감응론에 대한 사상과
비판에 대하여도 조사하였다. 동기감응에 대한 문헌고찰, 현장사례를 통하여 확인되고
검증되는 연구결과가 많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4. 유교문화속의 비보풍수
안종선 그린농업대학 강사, 서일풍수학회 학회장
자연적으로 부족한 것을 인공적으로 보완하는 비보풍수로 왕궁의 비보풍수,
숭례문, 흥인지문, 구례 운조루, 명옥헌원림, 하회마을, 무실마을, 안동사찰, 안동의 쑤 ,
안동 존당 조산, 광양의 성복마을의 비보숲, 박문수 묘, 이천의 소일마을,
아산의 외암마을 등의 사례로 설명하였다.
5. 조선왕릉의 천장을 통해서 본 유가의 풍수사상
이덕형 한성대 강사
조선왕릉 천장사례를 통하여 유가의 풍수사상을 조명하였다.
조선시대 천장된 10기의 왕릉 중 풍수적 사유로 천장된 왕릉은
1, 세종 영릉 2.선조 목릉 3,효종 영릉 4.인조 장릉, 5.정조 건릉 등 5개이고
정치적 사유로 천장된 왕릉은 1.태조비 신덕왕후 정릉 2. 중중 비 장경와후 유씨 희릉
3. 중종 정릉 4. 순조 인릉, 5. 고종비 명성왕후 홍릉 등이다.
태조비 신덕왕후 강씨 정릉은 도성 100리 이내, 세종 영릉은 광중에 물이 나서
희릉은 광중 바닥이 암반이라서, 목릉은 광주에 물이 침투하여, 영릉은 석물에 틈과 물고임
장릉은 능침에 뱀전갈 발생, 건릉은 능침에 탈이 발생, 홍릉은 풍수상 길지가 아니어서
천장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