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05 금요성령집회 / 지장규 목사
말씀 : 마 6:31-34, 빌 4:6-7
제목 : 염려 많은 인생, 이렇게 가시면 됩니다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
사랑하는 주안의 성도 여러분,
늘 하나님과 동행하십시오. 성령 충만하십시오.
하나님의 돌보심을 믿고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는 귀한 이 밤 되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여러분, 지금 여기 앉아있는 분들 중에 염려거리 하나 없는 사람들은 아마 없을 거라고 생각이 됩니다.
나는 걱정거리 염려거리가 없다. 한번 손 들어 보세요. 없지요. 없습니다.
무슨 염려가 되십니까? 자식 걱정, 사업 걱정, 건강 걱정, 미래 걱정.. 이런 거 많이 되지요.
학생들은 이제 방학했는데, 또 공부 어떻게 할까 뭐 이런 걱정될 겁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가장 염려되는 사람은 누군가, 아마 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예.. 오늘 설교의 주제가 '염려하지 말라'라고 설교를 해야 되는데,
굉장히 염려가 되거든요. 끝까지 잘할 수 있을까? 버벅이지 않을까? 염려했고요.
좋은 임팩트가 있는 어떤 설교를 통하여서 강력한 메시지를 증거해야 되는데,
졸고 계시는 분이 계시면 어떡할까, 뭐 이런 염려 하나하나 하게 됐습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가 이 땅을 살아가면서 염려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라는 거예요.
염려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라는 이유는
모든 사람의 이 땅을 살아가면서 염려거리가 한 두 가지씩 다 있다라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지요.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성경은 분명히 염려하지 말 것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염려하지 말라고 하는 이유는 간단하지요. 염려하지 않는 사람이 이 땅 가운데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 그렇다면 사람들이 왜 염려를 할까? 여러분, 왜 염려를 하십니까? 여러분들은 왜 염려를 하세요?
몇 가지 이유를 제가 한번 추려 봤습니다. 염려하는 이유를 제가 세 가지로 말씀드려 볼게요
첫 번째는, 우리는 쉽게 생각하기를 '내가 부족하니까, 내가 염려가 된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느 정도 맞지요? 여러분, 돈이 없으면 염려합니다. 염려가 되지요.
아이를 간절히 원하는데, 아이가 생기지 않으면 염려가 됩니다. 또, 건강하지 않아서 염려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러분, 그런데 보세요. 많이 가진 사람들도 염려를 하며 살더라고요.
돈이 많이 있어도 그 돈을 곳곳에 투자한 돈이 어떻게 될까 봐 사라질까 봐 떨어질까봐 염려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40평에 살아도 방이 좁다고 60평으로 이사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런 분의 입장에서는 또한 많이 있어도 여러 가지 일들 때문에 염려가 된다고 말을 합니다.
또한 자녀가 많은 사람들도 염려를 해요.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라는 말 들어보셨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사람들 입장에서는 무자식이 상팔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라는 겁니다.
건강하지 않아서 염려하는 사람도 있지만 건강함에도 불구하고, 건강에 대한 자신이 없고
어떻게 질병에 걸려서 아플 줄 모르기 때문에 그 미래에 대한 걱정 때문에
건강함에도 불구하고, 건강염려증을 가지고 살아가는 분들도 있다라는 겁니다.
상황과 형편은 우리 모두가 다르지만, 모두들 각자의 상황에 따른 염려의 거리를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다라는 겁니다.
두 번째 염려하는 이유는, 미래가 불투명하기 때문에 염려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여러분, '앞을 볼 수 있다. 내일 일을 할 수 있다. 미래 일을 알 수 있다.'고 한다면,
염려 될까요? 안 될까요? 염려 안 되겠지요.
앞으로의 내 삶이 어떻게 펼쳐질지에 대해서 알고 있으면, 준비할 수 있으니까 염려가 덜 될 겁니다.
내 자녀가 대학에 떨어지면 어떡하나? 취업을 하지 못하면 어떡하나?
좋은 사람 만나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새롭게 시작한 사업이 잘 될까? 뭐 이런 염려가 우리 가운데 있다라는 겁니다.
내 주식이 오를까, 내 집값이 어떻게 될까라는 염려를 다 가지고 산다라는 거예요.
이렇게 살아도 염려가 되고요. 저렇게 살아도 다 염려가 됩니다.
왜요? - 이 길을 선택한다고 하더라도 만약 내가 이 길을 선택하지 않고 저 길을 선택했다면,
이 길로 가지 않았다면 내 인생이 어떻게 펼쳐질까 라는 생각이 내 마음 가운데 들기 때문에 그렇다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특히 자녀를 키우는 부모님들이 드는 생각은, 부모된 입장은 다 똑같지요.
할 수만 있으면 능력이 있으면 좋은 학원 또한 보내주고 싶고, 좋은 과외 선생님 붙여주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이라는 거예요.
왜요? - 내 자녀의 미래가 불확실하니까, 볼 수 없으니까 불안해지고, 염려가 되어서 좋은 학원 좋은 과외 선생님 찾아 보냅니다.
만약 미래가 정해져 있고 미래가 보이면 그럴 필요 없겠지요.
여러분, 여기 앉아있는 아이들에게는 기쁨의 소식을 하나 전해 드릴게요.
인정하고 싶진 않겠지만, 공부는 유전입니다. 운동도 유전이고, 음악적인 재능도 유전 맞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과학적으로 증명된 겁니다. 공부 머리가 유전 비율이 운동과 음악의 재능보다 훨씬 더 높다라는 것입니다.
몇 %인지 아십니까? - 94%.. 이 말씀의 의미가 뭐냐하면, 어떤 학원 보내야 잘하고 좋은 대학 가는 게 아니라
여러분의 자녀가 공부 못 하는 것은 엄마 때문에 아빠 때문에 그렇다는 겁니다.
여러분, 좋은 학원 안 가도 할 애들은 다 합니다. 안 할 애들은 아무리 좋은 학원 다녀도 안 하고 못합니다. 맞지요..
여러분, 좋은 학원 못 보내는 처지라고 염려하지 마십시오.
세 번째 염려하는 이유는, 타고난 습성 때문에 그렇습니다.
쓸데없이 염려를 사서 하는 분들이 많아요.
염려가 걱정거리가 늘 가득 차 있는 것이지요. 남의 남이 해야 할 염려를 대신해 주는 분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제가 요즘 이제 주안 성전에서 목사님들과 점심 먹으러 식당을 가면 너무 비싸요.
김치찌개 하나가 만 원, 만천 원.. 너무 비싸잖아요. 그러니까 목사님들이 많이 좀 싸고 좋은 집을 찾아가게 돼 있어요.
그래서 요즘 유튜브로 인천 맛집 가성비 맛집을 찾아 봅니다.
그래서 찾은 집이 있는데, 주안성전 앞 5층에 있는 상가의 간판도 없는 집에 백반을 파는데요.
무려 반찬이 10가지 가까이가 나오는데 단돈 7천원입니다. 맛도 엄마 손맛이에요. 이런 집이 있어요.
그래서 제가 이 밥집에 가서 먹을 때마다 어떤 생각하는지 아시나요?
'아, 이 사장님 이렇게 퍼주고도 남는 게 있으신가?'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 주변에 잘 보세요.
내 걱정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염려하고, 대신 염려해주는 사람이 있다라는 겁니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는 염려 없이 근심 없이 걱정 없이 살아갈 수가 없다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염려를 가득 안고 살아가는 우리를 향해서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31절)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오늘 본문의 시작은 "그러므로"라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 '그러므로'라고 하는 이 말은, 앞에 다루고 있는 문제에 대한 대답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앞에 다루는 말씀이 뭔지 아십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시거든요.
뭐라고 말씀하시냐면 "이 땅의 보물을 쌓아두지 마. 하늘의 보물을 쌓아둬"라고 말씀하시면서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말을 들은 제자들이 염려가 생기는 거예요.
'아니, 이 땅에 물질을 쌓아두지 않는다면 이 땅의 이 어려운 시기를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돼?'라고 하는 질문이 생길 것입니다.
여러분, 이러한 제자들을 향해서 예수님은 단호하게 한마디로 말씀하십니다..
"염려하지 마, 근심하지 마, 걱정하지 마"
여러분, 그렇다면 무엇에 관해서 염려하지 말라고 하는 거예요?
오늘 말씀은 염려하지 말아야 할 영역에 대해서 말씀해주고 있는데,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에 대해서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필요한 의식주에 관한 부분에서
걱정하고 염려하지 말 것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잘 보면, 우리가 하는 염려 가운데 사실 염려가 다 좋지 못한 것은 아니라는 거예요.
여러분, 염려와 근심과 걱정은, 사실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만드신 인간에게 주시고 주신 고유한 기능 가운데 하나거든요.
여러분, 십자가를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우리 주님 염려하셨거든요. 걱정하셨거든요.
더 나아가 근심과 염려 중에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근심이 있대요.
고린도후서 7장 10절의 말씀을 다 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아멘!
여러분,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가지고 온대요.
그런데 세상적인 근심과 염려는 사망을 이룬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미국의 콜로라도주에 400년 된 나무가 있는데요.
이 400년 된 나무는, 400년을 살 동안 14번의 벼락을 맞았대요.
그런데 이 벼락을 맞고도, 수많은 눈사태를 맞고도, 수많은 폭풍우를 맞고도 불구하고,
매년 봄만 되면 꽃이 피고 푸른 잎을 피워서 고난 중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상징하는 나무였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400년 만에 이 나무가 별안간 아무 이유 없이 쓰러져 버립니다.
이유가 뭘까요? 많은 학자들이 분석해 본 결과 다른 이유가 아니라
바로 작은 딱정벌레 때문에 이 나무가 쓰러졌다 라고 하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여러분, 오랜 시간 동안 벼락을 14번이나 맞고 비바람을 맞고 거센 자연의 흐름에도 이겨냈던 이 고목이
손가락으로 문질러도 죽을 수밖에 없는 작은 벌레 때문에 이 고목이 400년 만에 쓰러졌다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도 비슷하다고 생각됩니다.
염려는 우리의 영혼에 이 딱정벌레 같은 것이거든요.
여러분,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어요. 세상의 근심은 사망을 이룬대요.
내 삶에 다가오는 큰 고통과 시련을 이겨내면서도 염려라고 하는 작은 생각으로 여러분의 영혼을 사망으로 몰고 가지 마십시오.
그런데 우리 주변의 사람들 가운데 이 염려 때문에 내 인생이 내 영혼이 사망까지 이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라는 것을
우리가 보게 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모든 근심과 걱정과 염려 멈추고 하지 말라라는 말씀이 아니라
습관적이고 반복적이고 매일 매일 그냥 하고 있는 염려와 걱정과 근심에 대해서
기본적인 것들에 대해서 하지 말라라고 지금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선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염려가 뭔지를 좀 볼게요
여러분, 이 "염려"라고 하는 단어는 헬라어로 '메림나오'라고 하는 단어인데,
"메리조(나뉜다)"와 "누스(마음)"이라는 단어의 합성어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의 의미는, 염려의 뜻이 "마음이 나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마음이 나뉘는 것"이 염려라는 거예요.
여러분, 위의 본문과 연관되어서 말하자면,
여러분의 관심이, 하나님으로 향해야 하는 우리의 마음이 재물로 가기 때문에
내 마음이 하나님과 재물로 나뉘어진 상태, 이게 바로 염려라고 이야기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염려하지 말라는 것은, 단순히 우리가 먹고사는 문제 같은 일들을 생각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께 집중해야 할 마음이 다른 데 빼앗기지 않도록 조심해라 라고 지금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습관적으로 하는 근심과 염려는 하나님의 능력과 그분의 사랑에 대해 의심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라는 겁니다.
결국 그렇게 되면 우리의 영혼은 사망에 이르게 된다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러한 사실 앞에서 염려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내가 뭔가 부족해서도 아니고, 내 미래가 불투명해서도 아니고,
걱정도 팔자라고 타고나서도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염려의 원인은
우리의 마음이 둘로 지금 나눠 있기 때문에 염려하고 근심하고 있다라는 겁니다.
찢어져 있기 때문에, 분산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 집중해야 할 내 마음이 세상으로 향해있기 때문에,
주님만 바라봐야 할 내 시선이 세상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염려가 찾아온다 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모아 집중해야 할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게 뭘까요?
당연히 하나님이지요. 하나님께 집중하면 염려하지 않게 된다라는 말씀을 오늘 본문에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시간 여러분에게 권면합니다.
세상의 문제 육신의 문제 등으로 분산된 마음 나누어진 마음을 하나로 모아
하나님께 집중하는 밤 되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마음을 온전히 드려야 하는데,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다 드리지 못하고 있다라는 겁니다.
우리의 하나님께 마음을 두다가도 돈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하나님께 집중하다가도 다시 세상에 마음을 둡니다.
하나님께 마음을 두고도 세상적인 성공에 우리의 마음을 빼앗길 때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이럴 때 찾아오는 것이 염려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게 염려가 우리 마음 가운데 찾아오면 나타나는 현상이 두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감사가 사라집니다.
빌립보서 4장 6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여러분, 염려와 감사는 같이 존재할 수 없거든요.
염려가 많은데 감사가 되겠습니까? 여러분 그렇지 않다라는 거예요.
여러분, 그것 뿐입니까? 염려하면 몸도 망가지고 정신도 망가져요
잠이 제대로 옵니까? 입맛이 있습니까? 밥이 잘 넘어갑니까? 정신 분열까지 가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 그런데 더 더욱 중요한 두 번째는 뭔지 아십니까? 이 염려 때문에 믿음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우리 주님은 염려하는 자들을 지적하면서 뭐라고 말씀하고 있냐면
염려하는 자들을 향해서 "믿음이 없는 자들아"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염려를 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
여러분, 그렇다면 우리 안에 가득한 이 염려를 어떻게 해야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첫 번째,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신뢰해야 합니다.]
여러분, 염려는 마음이 나뉘어지는 것이 염려라는 거예요.
염려하지 않으려면 그 마음을 하나님께 집중해야 된다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께 마음을 두고 집중한다라는 것은 그분을 신뢰한다라는 의미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당시 유대 백성들은, 로마의 압제에서 정치 경제 사회 종교적 모든 영역에서
극심한 빈부 차이로 오는 불안과 근심과 염려 등에 그들의 마음이 한시도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루하루 고통 가운데 염려하며 살았지요. 당연히 뭘 해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뭘 먹으면서 살아가야 되지' 그게 그들의 인생 가운데 가장 큰 고민거리였습니다. 염려 거리였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 그들에게 주변의 자연을 보면서 비유를 들어서
"근심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면서 들었던 비유가 "공중의 새를 봐라, 들의 백합화를 봐라" 말씀하고 있어요.
여러분, 공중의 새를 한번 보셨나요? 공중의 새를 한번 보세요.
여러분, 새끼 새 한 마리가 자라나는데 어미새가 하루에 가져다주는 벌레의 양이 수십 마리에서 100마리가 넘는다고 합니다.
세상에 새의 종류가 얼마나 많이 있는데, 그 개체 수가 또 얼마나 많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 새끼 새에게 먹일 벌레가 없어서
어미 새가 가져다주는 그 벌레를 먹지 못해서 죽었다고 보도된 새끼 새를 본 적이 있으십니까? 없지요. 없습니다.
여러분, 들의 꽃도 자라는데, '잘 자랄까', '이런 날씨에 장마가 시작됐는데,
비도 오는데, 바람도 부는데, 햇볕도 쨍쨍한데...' 뭐 이런 걱정해 보셨습니까?
아니지요. 바람 불면 바람 부는 대로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그 바람을 다 맞고서도 들의 꽃은 누가 관리하지 않아도 너무나도 잘 자란다라는 것 아닙니까..
왜요? - 여러분, 아무도 돌보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누가 돌보시는 거예요?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만물의 주인 되신 하나님께서 돌보고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잘 자라고 잘 날아다니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그런데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저와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우리의 인생 가운데 비가 오면 비가 와서 염려를 하고, 날이 좋으면 날이 좋아서 염려를 합니다.
여러분, 들의 백합화와 하늘의 새를 먹이시고 입히시는 하나님께서
하물며 설마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당신의 자녀를 돌보시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그러니까 염려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공중의 새를 먹이시고 입히셨듯이
우리를 동일하게 입히시고 동일하게 먹이실 것이라 약속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요? - 그분은 우리의 하나님이시니까, 우리의 아버지이시니까요.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 자녀 된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믿으십니까?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믿기만 한다면, 우리는 염려하지 않을 수 있게 된다라는 거예요.
반대로 말하면 우리가 걱정하고 염려하는 이유가 뭐예요?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삶을 지키시고 저와 여러분의 삶을 인도하실 것이라고 하는 이 확신이 없기 때문에,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가 염려하고 근심하고 걱정한다라는 겁니다.
여러분, 염려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을 공급해 주십니다.
여러분, 자녀들 때문에 걱정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자녀의 삶도 하나님께서 입히시고 채우시고 먹이시고 살리실 줄 믿습니다.
두 번째, [염려 대신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많이 들어온 것처럼 우리가 염려하는 대부분은,
앞으로 일어나지 않을 일에 대한 염려가 참 많이 있다라는 거예요.
또한, 그 일이 일어나도 내 삶 가운데 타격이 일어나지 않는 그런 일 때문에 염려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여러분, 그런데 도무지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도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일을 만날 때가 있어요.
마태복음 6장 27절에서 뭐라고 표현하고 있느냐면,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라고 표현합니다.
여러분, 어떻게 염려한다고 키를 자라게 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근심한다고 해서 여러분의 생명을 한시라도 더 연장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하지 못한다라는 겁니다.
키든 생명이든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는 절대로 안 되는 문제를 만날 때, 여러분, 우리는 염려가 됩니다.
왜? - 내 힘으로 할 수 없으니까요. 내가 아는 잘 나가는 사람의 힘으로도 할 수 없으니까요.
여러분, 이런 걱정과 염려되는 상황을 만날 때,
정말 우리가 내 힘과 내 능력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 상황에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이 뭔지 아십니까? 염려가 아니라 기도인 줄 믿습니다.
모든 상황을 가능하게 하실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최선의 방법인 줄 믿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의탁하십시오. 하나님께 모든 걸 맡기십시오.
하나님께 맡긴 인생, 의탁한 인생은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실 줄 믿습니다.
여러분, 목욕탕에 가면 이런 팻말 카운터에 써 있잖아요.
'귀중품은 카운터에 맡기십시오. 맡기시지 않은 물건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여러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의 인생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맡기지 않는 인생 책임져 달라고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 우리의 인생을 맡기면, 하나님께서 그때부터 저와 여러분의 인생을 책임져 주실 줄 믿습니다.
맡기지도 않고, 기도하지도 않고, 염려하면서 책임져 달라고요? 그런 게 어디 있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우리의 삶의 모든 것을 맡긴 만큼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의 삶을 능히 책임져 주실 줄 믿습니다.
여러분, 내가 손 쓸 수 없는 상황과 환경 때문에 염려하지 마십시오.
그럴 때마다 모든 것을 가능케 하시고 모든 염려를 기쁨으로 바꿔주실 하나님께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우리 앞에 놓인 수없이 많은 문제를 가지고 여러분은 선택하셔야 됩니다. 염려하든지, 기도하든지...
여러분, 어떤 것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여러분, 여러분의 염려를 기도로 바꾸십시오.
염려 거리를 가지고 나오셨습니까? 여러분, 그 염려 거리가 오늘 이 밤 기도의 제목이 되길 원합니다.
염려의 제목이 오늘 이 밤, 살아계신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기도의 제목이 될 수 있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어요.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염려되는 상황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염려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것
하나님께 내 삶을 맡기는 것, 하나님께 무릎 꿇는 것인 줄 믿습니다.
그래서 이어지는 본문 빌립보서 4장 6절에서도 이렇게 말씀하잖아요.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여러분, 분명 성경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는데, 우리는 모든 일에 염려하고 있지 않습니까..
분명 성경은 모든 일에 기도하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우리는 아무 일에도 기도하지 않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반대로 한다는 것이지요. 걱정과 염려가 밀려올 때, 그래서 내 마음이 나뉠 때,
여러분 걱정하는 것을 멈추십시오. 염려하는 것을 멈추십시오.
문제와 상황을 묵상하면 할수록 마음이 더 불안하게 되지만,
이 문제의 해결자 되신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기도할 때, 염려 앞에서 할 수 있는 우리 최선은
하나님을 붙들고 "하나님, 나를 도와 주십시오"라고 외치는 우리의 소리인 줄 믿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여러분, 근심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하나님이 다 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다 아십니다."
(32절)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여러분, 염려가 될 때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내가 나를 아는 것보다 나를 더 잘 아신다]라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 너무나도 명확해요.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될 것을 아시느니라" 여러분, 하나님께서 아신대요.
그러니까 우리가 염려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아니, 염려할 필요가 없는 진짜 구체적인 이유는 바로 이걸 아는 겁니다.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우리 하늘 아버지께서 "내가 그거 다 알고 있어! 걱정하지 마!"라고 말씀해 주고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나만 아는 것처럼, 우리의 결핍을 보고 부족함을 보고 내가 염려하고 있다 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혹시 내 문제는 내가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고 계십니까? 틀렸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의 문제, 여러분의 남편의 문제, 여러분의 자녀의 문제..
누구보다도 '엄마인 내가, 아내인 내가 가장 잘 알지'라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여러분, 틀렸다라는 겁니다.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아요. "너보다 너를 내가 더 잘 안다"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내가 너를 모르냐, 내가 너를 창조했는데, 내가 너를 지명했는데,
내가 너를 불렀는데 내가 너를 잘 안다"라고 말씀해 주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빌 4:7) "그러므로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냐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이시라는 거예요.
여러분, "모든 지각에 뛰어나다"라는 말은,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보다 우리를 잘 아시는 하나님께 우리의 인생을 맡겨 드립시다.
내 인생이라고 내 멋대로 살려고 하지 말고, 비록 내 인생이지만,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는 인생..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가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만드셨다면 하나님께서 더 좋은 방향으로 우리를 이끄시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뭐가 필요한지 뭐가 불필요한지,
내 삶 가운데 어떠한 상황이 올지라도 우리를 우리보다 잘 아시는 주님께 우리 인생을 맡긴다면,
하나님께서 죽음 앞에 놓인 어떠한 상황이 올지라도
하나님께서 염려하지 않는 귀한 믿음의 인생 살아가게 만들어 주실 줄 믿습니다.
그렇게 주님 붙들고 살아가는 삶 가운데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 삶 가운데 넘치게 될 줄 믿습니다.
우리 이 시간 찬송하면서 기도하겠습니다.
♬ 내 아버지 그 품 안에서 내 영혼은 안전합니다
주 손길로 내 삶을 안으시니 그 평강이 나를 덮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