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을 가기 위해 선유도에 간다고 할 수도 있었다.
선유도에 간다면, 군산 여행은 빅 뽀너스, 덤이라고나 할까?
군산. 참 좋아하는 도시 중 하나다.
그만의 향기가 있고, 그만의 빛깔도 있고, 개성이 뚜렷한 도시, 군산.
지나간 과거의 추억을 붙안고 있는 많은 항구 도시들이 그렇지만
역사와 삶의 유적이 오롯하게 남아있는, 도시 자체가 박물관인 도시가 군산이었다.
이 도시엔 단골 여관(민박집이 아닌)도 하나 있다.
"이 방 잡고 며칠 틀어박혀 글이나 쓰면 좋겠어!" 라는 생각이 든 방이
이 국토 구석구석에 몇 있는데, 여관방으로는 유일한 곳이 그 여관이었다.
맛난 술집이 주변에 널려 있어, 그냥 술 마시고 들어와 그냥 뻗어도 좋은,
군산의 중심지 월명동, 중앙로 부근에 있다.
그리고 단골(이라 말하면 좀 과하겠지만) 식당이 몇 있다.
전국 3대 짬뽕 중 최고라는 '복성루'와 함께
오래 전 익산 사는 친구가 한달음에 달려와 함께 저녁을 먹고 술을 마신 '경산옥',
그리고 월명동 부근에 흩어져 있는 무슨 '옥'자 들어간 집들은 죄다 맛있었다.
회사일이 쭈욱~ 빠진 수요일(6/26) 아침, 고속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군산으로 향했다.
군산에 도착하니 점심 무렵. 선유도 가는 마지막 배가 2시간 뒤에나 있다고 했다.
딱 좋다. 복성루 가서 허기 채우고 가자.
밥 때 살짝 지났으니 줄을 오래 설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내가 아는 선배 한 분은 오로지 여기 짬뽕을 먹기 위해
서울에서 2, 3시간 차를 몰고 와, 짬뽕 한 그릇 비우고는
"끄억~ 잘 먹었다!"하고는 바로 서울로 올라왔다고 했다.
역시나 뙤약볕 아래서, 줄은 단 10분만 섰다. 재작년엔 1시간 가량 섰는데, 다행이다.
그도그럴 것이 나처럼 혼자 식당을 찾은 사내 넷이 한꺼번에 한 테이블에 서먹하게 나눠 앉았다.
재작년엔 짬뽕을 시켰는데, 이번엔 그때 못 먹어 아쉬웠던,
이 집의 또다른 대표 메뉴인 볶음밥을 시켰다.
한달 전에 본 음식 관련 책에서, 군산과 볶음밥을 연결시킨 구절이 또한
이 볶음밥을 충동질했다. 그 구절은 다음과 같다.
"군산으로 볶음밥을 먹으러 갔다. (중략) 그 집의 볶음밥은 천하일미로 알려져 있는데, 그건 순전히
한 그릇 한 그릇을 일일이 팔뚝에 힘을 주어 볶는다는 전통적 요리법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그건 기름 기운 가득한 중국식 부엌의 순수다. 볶음밥의 원형질인 것이다.
볶음밥의 순수는 불의 기운으로 밥알을 하나하나 감싸듯 익히는 데 있다.
요리사가 웍을 흔들 때마다 밥알이 몇 번씩 천장까지 솟을 듯 키질을 하며,
철판에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뜨거운 기름에 튀겨지듯 익혀져야 맛을 낸다.
- 박찬일,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에서
이 집 볶음밥을 가리키는 지는 알 수 없으나, 이 집 볶음밥도 유명하니 그걸 시켜볼밖에.
낯선 사내 넷이 앉은 테이블에서, 내 건너 자리에 앉은
광주에서 온 사내가 "이 집은 짬뽕이 최고에요" 하며 아는 체를 한다.
"아, 짬뽕은 자주 먹어 봐서요, 오늘은 왠지 볶음밥이 먹고 싶네요" 했더니,
그 뒤로 묵묵히 말없이 짬뽕을 후루룩 털어넣는 사내... 괜한 얘길 했다. ㅋ
그래, 볶음밥에서 '불의 맛'이 났다.
이런 음식을 먹을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그래, 이게 바로 볶음밥 맛이었어!' 라는 생각.
나도 모르는 새, 내 입맛을 교묘히 속여가 변해버린 수많은 맛들.
그 원형에 가까운 옛맛을 불현 듯 만나게 되면 우리가 얼마나
모르는 새 변해버린 국적불명의 맛에 익숙해져 버렸는지 알 만하다.
볶음밥 점심을 먹고도 시간이 좀 남았다.
복성루에서 거리가 좀 있지만, 걸어서 월명동에 있는 유명한 빵집 '이성당'을 찾는다.
1945년부터 영업한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빵집'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데,
늘 빵을 사먹어 볼 기회는 없었다.
섬에 들어가면 먹을 게 아쉬울 지 모르니, 여기서 빵 좀 사가면 맞춤하겠다 싶었다.
한 봉지 가득 빵을 샀다. 이집 대표 빵인 야채빵과 그 비슷한 고로케를 몇.
나중에 섬에 와서 빵을 먹어보니, 소문대로 야채빵은 정말 맛있었다.
'그래, 야채 빵 맛은 이런 거였어!' 하는 느낌이 팍 드는!
그런데, 야채빵과 사촌쯤 되는 고로케는 좀 느끼한 게 별로였다.
새만금이 완공된 탓인지, 중국으로 취항하는 배가 생긴 탓인지,
군산 여객터미널은 이제 시내에서 멀리 달아나 택시를 타고도 한참을 가야 했다.
오래 전, 서울서 느릿한 장항선을 타고 장항(서천)에 와, 기차역서 부둣가로 걸어 갔고
거기서 다시 배삯 1천원 내외 하는 허름한 연락선을 타고 군산으로 넘어오던 기억이 난다.
예전 그 허름하던 군산항에 선유도 가던 배가 있었던 것 같다.
이제 장항-군산 사이에 다리가 놓여 1천원 받던 연락선도 쓸모가 없어졌고
선유도 가는 배도 더 크고 시설 좋은 여객 터미널로 옮겨가 출발하게 되었다.
편해지고 깨끗해졌지만, 그렇게 마냥 좋지만은 않은 까닭은 뭘까?
식민지 시대 풍의 군산세관 건물과 월명동, 해망동이 가까웠던 옛 군산항구가 그리웠다.
군산에서 여객선을 타고 선유도로 넘어왔다.
섬으로 건너가며 바다에 떠 있는 동안, 문자와 전화가 들이닥친다.
첫번째는 회사에서 걸려온 전화. 일이 하나 발생했단다.
젝일! 나, 지금 섬에 들어가거든? 좀 쉬고 싶다규! 일 내일로 미뤄! 내일 통화해 ~.
그리곤 곧 다른 전화. 알바 좀 해주실 수 있나요? 부르는 액수가 짭짤하다.
아하, 지금 밖이긴 합니다만, 일 하는데 전혀 문제 없습니다! 그러문입쇼! 네, 네...
(섬에 들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녁에 일을 해 보내 드리지요! ㅋ
그렇지! 프로는 여행과 일이 따로 노는 것, 아니다!
여행 가서도 일을 할 줄 알아야... 에헴헴...
1시간여만에 배가 선유군도의 섬들 사이로 접어들었다.
선유도에 내리자 친환경 전동차가 길게 늘어서 있다.
석유 연료가 아닌, 전기로 가는 작은 친환경 차라는데, 섬의 왠만한 집들은
이 전동차를 이용하는 듯했다. 길만 묻고 그저 걸어갔다.
선유도의 중심지이자, 우체국, 파출소, 관공서 등이 있는 선유 2구는
선착장에서 500여미터 정도 떨어져 있단다.
지도를 보니, 무녀도, 장자도 등의 섬이 선유도와 다리로 연결되어 아기자기한 모양을 이룬다.
물자도 풍부하고, 볼거리도 많은, 그런 섬일 것 같다.
선유2구에서 바다를 향해 늘어선 민박촌에 일찌감치 숙소를 잡았다.
평일에 여행 오면 방값도 적당하다. 그 적당한 방이 쾌적하고 깨끗하다.
식당을 겸한 민박인데, 밤중에 횟감을 먹을 수 있는지 여쭤본다.
1인분 내주기 어렵지만 주방장님한테 물어봐 어떻게 해주겠다는 아주머니.
보아하니, 주방장님이 남편 분인 것 같은데 ... 뭘.
그래, 민박 옥상인 이 자리에 앉아 밤하늘을 술친구 삼아 대작하면 되겠군, 흠흠.
숙소에 짐을 풀고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샤워를 하고 길을 나섰다.
선유, 무녀, 장자 3도의 중심지인 선유도에선 어디나 저 봉우리가 잘 보였다.
완전 짱짱한 화강암(?)으로 된 봉우리의 이름은 '망주봉'이다.
왠만한 섬에는 보기 힘든 꽤 근사하고 멋진 봉우리였다.
망주봉 외에도 3개의 섬에는 100m 내외의 얕은 산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선유군도의 섬들을 조망하기에 좋다고 했다.
그리고 유난히 개들도 많았다.
착해 보이는 개들이 많았다. 순한 개들이 많았다.
섬 여행을 하려고 지도를 뒤적이다 보면, 우리나라에 섬들은 무지 많다는 걸 알게 된다.
국토해양부가 2010년 1월 공식집계한 섬의 총 수는 3,358개라고 한다.
(이 중 무인도가 2876개로 전체 섬 수의 85.65%한다고 한다.)
그러나 행안부가 지자체를 중심으로 집계한 수는 4,201 개에 달한다고 하니
공공기관조차 섬의 수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애매한 섬들이 많은 것이다.
여기 군산 앞바다의 선유군도(혹은 고군산군도)만 해도,
선유, 장자, 무녀도 외에 야미도, 신시도, 횡경도, 방축도, 명도, 말도, 비응도 등
크고작은 섬들이 흩어져 있고, 섬이라 부르기엔 애매한 '여'의 수도 꽤 된다.
그 가운데 왜 선유도가 유독 사람들 마음에 이름을 새겼는가?
내 생각엔 바로 해변, 그러니까 사람들이 편히 즐길 수 있는 제대로 된
'해수욕장'을 품고 있는가가 그 기준이 아닐까 싶었다.
다리로 연결된 선유, 무녀, 장자도 3도 중 선유도 한가운데에,
선유 8경 중 하나로 꼽는 선유도 해수욕장,
일명 명사십리 해수욕장이 넓게 자리잡고 있다.
망주봉 같은 빼어난 풍광에 근사한 해변 하나를 품고 있으니,
'신선들이 놀던(仙遊) 섬'이란 이름을 받기에 모자람이 없었을 것이다.
곧 머지 않은 날, 저 고운 모래톱에 여름을 즐기러 온 사람들이 북적일 것이다.
그리곤, 또 그 바다, 그 모래톱이 거기 있었는지도 모른 채
가을, 겨울, 봄 동안 이 해변은 또 기나긴 망각 속에 저 홀로 쓸쓸할 것이다.
선유도 해수욕장과 그 뒤에 늠름하게 버티고 선 망주봉.
선유도 소개 팜플릿에서 유독 눈에 띄는 것 중 하나가 이 '초분 공원'이었다.
우리나라 섬이나 서남 해안 지역의 풍습과 깊은 관련이 있는 초분은
저 아랫녘 완도 아래 청산도에 특히 유명했던 기억이 있는데,
이곳 선유도에도 초분공원을 조성해 초분의 풍습을 전하고 있다.
좀 으스스한 공원이기도 하다.
조상이 묻혀 있는 땅에 생(날) 송장을 묻을 수 없다는 믿음 때문에
2~3 년 정도 이와 같은 짚으로 된 가묘에 가매장 했다가
육탈이 다 진행된 뒤에 유골만 수습해 땅에 묻는 이중의 장례 풍습이 초분이다.
듣기로는 무녀도 쪽에 진짜 초분이 한 기 남아 있다고 하며
오래 전 이 선유도 인근 섬들에 초분의 풍습이 널리 전승되었다는 것이다.
티베트에서 새들에게 육신을 먹이는 조장(鳥葬)도 바로 앞에서 보았고,
인도 갠지즈 강에서 장작 위에 타들어가는 시신도 오래 지켜보았지만,
죽음을 직시하는 일은 늘 무겁고 심각해지는 일이다.
그 어느 것 하나 야만적인 것도 아니고 미개한 것도 아니며
모두 터하고 있는 환경과 자연에 의해 생겨난 풍습일 것이리라.
선유도에는 서너 개의 꽤 괜찮은 걷기 코스가 있다.
요즘 지방 자치단체마다 없던 길 닦고 잇고 이름 만들어 무슨무슨 길들이 유행처럼 생겨났는데,
여기 선유도의 걷기 길은 그래도 이름이 괜찮았다. 이름하여 '구불길'.
흔하디 흔해진 '둘레길'이나, 국적불명의 '슬로길' 같은 이름보다 좀 나은 듯했다.
민박집 여주인이 추천해준대로 오늘은 장자도로 이어지는 길을 걷다 올 것이고,
내일은 망주봉과 남악산 부근의 길을 걸으면 되겠다.
무녀도로 이어지는 길? 그건 다음 여행에 와서 걸으면 되지!
천천히 딴짓하며 걷는 사이, 길과 바다 위에 석양이 내린다.
꽤 오래 전에 세워진 낡은 다리, '장자교'를 따라 장자도로 건너왔다.
장자도 끄트머리에 있는 대장봉까지가 목표인데, 이렇게 딴짓하며 걷다가
해지기 전에 맞춰 갈 지 모르겠다.
에잇, 못 가면 말지 뭐! 뭐, 꼭 가봐야, 꼭 올라봐야 제맛이야?
그보다는 이렇게 걷는 길 옆에 고기를 잡고 생선을 씻는 사람들 곁으로 다가가
말을 붙이고 섬과 삶의 살림살이를 듣는 게 더 좋은 일인 게다.
선유 8경 중 '장자어화'란 것이 있다. 오래 전 여기 장자도를 중심으로
조기 잡이가 성행해 밤에 불을 켠 수백 척의 배들이 장관을 이루었다는 걸 이르는 말이었다.
역시나 저녁 찬거리로 이 아저씨들이 씻고 발라내는 생선 역시 조기였다. 과연!
조기 잡이 풍어의 상징으로 전설처럼 떠도는 '칠산어장'이란 것이 있었다는데,
그 '칠산어장'이 어디에 있었는지에 대해 의견들이 분분한 걸로 알고 있다.
대개 조기로 유명한 영광 법성포 인근에 그 어장이 있었다고도 하고
변산 앞바다 위도 부근까지라고도 하는데, 확실한 건 전라북도 앞바다의 어디쯤일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 군산 앞바다에서도 그리 멀지는 않은 곳이었을 테다.
'파시(波市)' 라는 말. 지금은 그 존재가 없으니 말조차 쓰지 않게 된 말.
그 '파시'라는 걸 한 번 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꽤 장관일 텐데...
요즘은 전국 어디고 사람들 떠난 섬들이 모두 쇄락하고 기운 없어보이지만,
섬들의 옛 사진이나 예전에 학생들 넘쳐나던 섬마을 학교에 관한 얘길 들어보면,
쓸쓸한 섬 풍경이 갑자기 시끌벅적한 장터 같은 풍경으로,
괴거로 플래시백 되는 영화처럼 그 시절이 꿈처럼 그려진다.
너무 설렁설렁 걸어온 게다.
게다가 중간쯤, 알바에 관한 전화를 또 받고 이런저런 얘길 하다보니
벌써 오후의 나른하고 게으른 해가 나보다 먼저 수평선께에 당도해 가고 있다.
장자도의 주봉인 대장봉과 반대쪽 할매바위로 가는 갈림길에 작은 해변 상회가 있어,
거기서 더 가지 않기로 하고 맥주 한 캔을 따 먹었다.
바다를 마주하고 앉아 술잔 기울이면, 왜 꼭 바다를 마시는 기분이 드는 걸까?
해변 강아지들, 여행자 무서운 줄도 모르고...
거침없이 짖거나, 의심없이 발랑 나자빠지거나 ... 어쩔 줄을 모른다.
너 뭍에 나가 봤어? 도시 가봤어? 촌놈들이!
촌놈이라 좋겠다. 바다 보며 살아 좋겠다.
누군가의 소설 제목처럼 ...
해질녘, 개들은 어떤 기분일까?
되돌아오는 길에 석양이 짙게 내려 앉는다.
짙은 주황색에서 불타는 빨강으로, 곧 선홍색으로 시시각각 변해가는 바다 빛깔.
성냥불을 그어 던져 넣으면 온 세상이 활활 타버릴 것 같다.
해가 저무니, 그 빈 공간으로 바닷바람이 밀려온다.
당신의 바다, 당신의 바람 ... 내 것이 아닌, 내게 포근하게 안겨오는...
어쭈구리! 인적 끊긴 저녁 길을 틈타 시골길을 활보하는 작고 붉은 게들.
관매도에도 있더니, 어떤 섬에도 있더니, 선유도에도 있구나!
관매도에서도 까불더니, 그 어떤 섬에서도 까불더니, 선유도에서 까부는구나!
흔한 놈!
잠깐 사진 좀 찍자고, 얌전히 좀 있어 ... 거 흉기는 잠시 내려놓고.
언능 한 컷 찍더니 옆걸음질로 재빨리 사라지는 게 공.
선유 2구로 돌아오니, 해가 다 저물었다.
바다의 상회, 전봇대의 불빛이 간신히 간신히 외딴 섬의 어둠을 헤집는다.
아까 섬에 들어와 이성당 야채빵으로 허기만 속였는데,
이제 속이기만 해서는 안 되겠다. 채워야 겠다.
허기진 배가 졸라대어, 흐리멍덩한 뇌가 분석하고 명령하여
지친 발걸음이 민박집을 향해 속력을 내고 있다.
역시나 1인분으로 회를 먹기엔 비쌌다.
다른 섬보다 숙박이 제대로 발달한 선유도에선 회집들이 제법 번듯하게 갖춰져 있어
섬 인심을 기대하고 조르기엔 힘들겠다.
하는 수없이 회는 포기하고, 해산물을 모듬으로 시켰다.
그것도, 그저 섬에 와 맛 안 보기엔 섭섭하니 1인분만 적당히 좀 담아달라고...
이럴 때가 혼자 온 여행에서 제일 싫은 때다.
모양 예쁘게 꾸미느라 보기보단 덜 담겼지만,
그래도 멍게, 해삼, 전복, 소라, 조개 골고루 담겼다. 혼자 먹기 과분할 정도다.
그런데, 옆자리 몇 분들 단체로 온 손님들에게 썰어준 농어회를
주인 아주머니가 슬쩍 빈 접시에 담아다 내 자리에 내준다.
윙크는 안 하셨지만, 마음으로 윙크를 받은 기분이다. 아주머니, 쎈스쟁이!
오홋. 이 정도면 소주 2 병은 더 마시겠다!
이럴 때가 혼자 온 여행에서 제일 좋은 때다!
하지만, 참아야 한다. 일단 조금만 마셔두고 안주를 남겨 두었다가,
알바 해야 할 일 보내주고 다시 숙소로 와 제대로 먹는 거다!
그렇지! 프로는 해야 할 일 제대로 마치고,
그런 뒤에야 술 제대로 즐기는 것! 에헴헴...
낮에 미리 말해 둔 덕에, 파출소 순경 아저씨가 파출소 컴퓨터를 빌려 주셨다.
평화로운 섬에, 아직 휴가철이 닥치지 않은 해변 파출소는 한껏 펑화로웠다.
낮에 서너 분 계시던 순경 아저씨 다 안 보이시고, 한 분만 남아 티브이 드라마를 보고 계신다.
조금 불콰하긴 했지만, 낮에 휴대폰 메모에 잔뜩 적어놨던
광고 카피를 알딸딸한 기분 속에 문서로 작성해 만들고,
광고주가 알려준 메일로... 나이쓰 하게 전송했다! 술이 확 깨는 기분이다.
11시까진 마치셔야 한다는 파출소 순경 아저씨와의 약속도 지켰다!
아... 이 직업 하면서 내가 이리 멋져 보인 건... 참 드문 일이었다. ^^
파출소 밖으로 나서자, 바닷바람이 더 시원해졌다.
민박으로 들어가 밤하늘과 더불어 대작하기 전에, 결고운 모래사장을 홀로 산책했다.
아주 좋은 기분이었다. 아주 좋은 바람이었기에. 아주 좋은 섬이었기에.
그래서, 이 섬 이름이, 신선이 놀았다는, 그, 선유도(仙遊島)인 게다! 하면서...
밤 하늘 아래, 밤 바다 곁에서 망주봉을 바라보면서...
그 밤, 남은 해물 횟감에 술잔을 마저 털어넣고 실컷 잤을 것이다.
신선이 뭐, 일찍 일어나거나 아침밥을 꼭 먹거나
그래야 할 필요는 없는 것 아니겠는가?
시원한 초여름 바닷바람을 이불 삼아 달디 단 잠을 잤으리라.
2013.06.26. 전북 군산 선유도
첫댓글 늘 잘 읽고 있어요^^ 근데 아까 영미 댓글은 어디로 간거야? 잘지내지?
감사합니다 ~ 재미없는 글, 장황하게 늘어놓은 글이라 부끄럽습니다. 선배님 ^
미경아,여기있단다^^ 내 글은 너무 앞뒤없어서 읽는 사람이 당황할까봐ㅋ
요즘도'~옥'하는 간판들과 저런 착한 눈을 가진 황구,백구들과 저런 인심들이 남아 있다는게 먼 나라 얘기같이만 느껴지니...
고딩 아들녀석이 기말시험 이틀째 치르고는 코까지골며 한소금(?) 자는걸 보며 빨리빨리 크거라 엄마 여행좀 다니자 주문겁니다.
제가 아는 분도, 자녀분들 얼만큼(?) 키우시고 틈만 나면 여행 다니시더라구요. 선배님께도 그런 날이 속히 오기를 바랍니다 ~
구례에서 사셨던 일이 좋은 추억으로 많이 남아계실 듯합니다. 행복한 여름날 되세요 ~^^
25년전쯤에 선유도를 간적이 있었는데 신선이 놀았다는 여행책에 반해서....그런데 영~~~섬모기에 엄청 물렸던 기억만...^^
ㅋ 아마, 마침내 세상에 천국이 도래하더라도, 그 놈 모기는 사라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
자전거 타다가 힘들어 자전거 내펭겨치고 싶었던 선유도. 그런 선유도보다 군산이 더 좋았음. 잘 봤어요.
선후배님들 다 다녀오셨을 선유도에 뒤늦게 가보고 이렇게 유난 떨고 있나 봐요 ^^ 군산이란 도시의 분위기, 정말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