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와서 도장을 사용할 일이 있어 물어물어 도장포를 찾아갔는데 길건너편에 구호가 보인다.
어느 아파트 입구에도 뭔 결사반대 한다는 현수막이 걸려있더니 이곳도 다를바 없이 뭔 반대가 그리도 많은 것인지 모르겠다.
공사는 해야하고 그러다보니 길을 한시적으로 막는 것인데 제들 장사 손해난다고 공사를 하지 말라는 떼를 쓰는 것이다. 과거 적은 예산으로 서울에 지하철 만드느라 몇년씩 불편을 감수하던 상인들도 있었는데 작은 길 얼마간의 공사도 못하게 하면 어쩌겠다는 것인지...
곳곳에 너무 심한 반대의 구호가 눈에 심히 거슬리도다.
도장 값은 3'000원인데 오만원 지폐뿐이라서 점심을 먹고 잔돈을 바꾸는게 좋겠다 싶어 근처의 식당에 들어갔다. 가격은 11'000 원, 즉 US 10달러인데 된장찌개/ 황태구이/ 각가지 쌈/ 우렁이/ 등과 반찬은 12가지이니 옛날 나랏님께서 드시던 12첩 반상기에 부족함이 없는 진수성찬이었다.
몰래카메라로 인기를 끌던 이경진인지 아니면 1986년경 뉴욕에서 결혼식을 하고는 그날로 신랑을 팽개치고 한국으로 도망쳐버린 여배우 이경진인지는 모르나 여하간 이경진 브랜드로 체인화 된 식당 같았다.
추억의 골목길이 이곳에 남아있는데 아무래도 이것은 없어질 듯하다. 보기엔 별 것 아닌 이런 것 보존을 하면 좋으련만 땅값이 있으니 재개발 할 것이고 옛모습은 사라져 기억에나 있으려나...
숙녀 오리구이 혹은 암닭 삼계탕이 신을 벗어놓고 육수 끓이는 솥으로 들어가버려 거저생긴 신발인지 모르지만 하여간 전국에서 여자 신발을 제일 싸게파는 집이라고 씌어있어 웃음이 조금 났었다.
도장에 인주를 많이 묻혀 종이에 싸서 돌아오는데 길모퉁이에 웬 커피장사 같은 모습이 보여 사진으 ㄹ하나 찎으려고 뒤돌아 왔다. 장사하는 분은 아닌듯 한데 그것이 궁금했거든... 일산 벧엘교회에서 전도 나오신 분인데 커피/ 사탕/ 전도지/ 초콜릿/ 등을 갖추어 놓고 행인들에게 전도를 하는 친절함이 있었다.
그곳에 앉아 두명의 젊은 여집사와 이런저런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고는 수요일 오전 예배에 참석하라는 권고에 가능하면 가도록 하겠다 했는데 가지는 못했다. 어차피 약속은 아니었거든...
할머니와 할아버지 두분이 격구인지 게이트볼인지 하고 계시는데 금싸라기 땅 한편에 노인을 위한 이런 장소를 마련한 것이 대단히 좋아보였다.
휴대전화기 상점을 지나는데 지나는 사람들이 들어오지 않아서인지 이런 재미있는 문구를 써놓았다. 하여간 뭐든지 약발이 안받으니 글도 점점 극적으로 쓰는듯 하다.
(결사반대/ 공사절대반대/ 전국서 제일싼 숙녀화/ 신발보다 싼 타이어 더싼 곳 있으면 세배로 물어드린다/ 고객을 해치지 않는다/ 에고... 머리가 복잡해진다)
몇달간의 신종독감이 여차하면 수만명 목숨을 앗아갈 수 있다고 언론을 통해 세뇌를 시키는데 아직도 8명 죽었단다. 독감이유 아닌 다른 이유로 죽은 사람이 같은 기간에 벌써 수만명이야.
10 여년전 SAS가 그렇고 시베리아 독감도 그렇게 일없이 지나가고 이번에도 백신만드는 제약회사와 공포감을 심어주던 언론사 등만 배채우게 되고, 독감백신이 다 만들어 지고 나면 사용할 일도 없이 신종독감 문제가 구렁이 담넘어 가듯 슬그머니 사라질 것이니 두고봐라. 이런거 제약회사/ 언론사/ 외에도 다수의 이익집단들이 연계된 세계적인 사기행위거든...
1999년 마지막 날 자정이 되면 컴퓨터 시스템이 2000 이라는 숫자인지를 읽지못해서 문제를 일으켜 비행기가 떨어지고 핵미사일 오발사고가 나서 지구가 멸망한다고 떠벌리고는,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컴퓨터 시스템을 새롭게 구축해야 한다고 지랄들 하면서 세계적으로 수백억 달러 해처먹고는 어땠어? 그날 아무일 없었잖어 ! 틈만나면 세계적인 기업들이 선동해서 인류가 멸망한다는 둥 재앙이 닥쳐 수천만명이 죽는다는 둥, 신종훌루는 중세의 페스트로 죽은 2천만명 보다 더 많이 죽을 것이라는 둥 협박하면서 사기와 구라를 치는거야.
(그들은 인류를 3초의 기억력을 갖고 있다는 붕어로 아는거야 !. 기억력 나쁜 인간을 자주 등쳐먹는데 이골이 난 나쁜놈들이야...)
지역 병원들이야 응급대책에 따른 만반의 준비를 하느라 정해진 진료기관으로 끝나는 것이니 젼혀 죄가 없지만 국제적 제약회사 이것들은 어마어마한 돈을 해먹기 위하여 공포분위기를 만드는거야.
이거봐 ! 거미란 놈은 말이지, 나무와 건물 벽에 줄을 치고는 죄없는 벌레가 날아다니다가 걸려들면 그대로 거미줄로 감아서 잡아먹는거야. 마취를 해서 썪지않게 하고는 두고두고 며칠이건 고통을 가하면서 아주 천천히 잡아먹거든... 신종훌루 사기꾼 제약회사들과 마찬가지로...
아파트를 들어가려는데 야쿠르트 아줌마가 있어 여러가지를 만원어치 샀다. 정해진 구역을 담당하는데 수입은 이거저거 제하고 나면 150 만원 정도 된다는 아줌마의 설명... 개인적인 일이 생겨도 다녀올 수 있고 여자의 수입으로는 괜찮은 편이라시던 아줌마...
난 닥치는대로 물어보거든. 나이는 물어보지 않지만 그외 궁금한건 거의 다 물어보기 때문에 더러 오해를 받을 때 있지만 워낙에 오빠가 싹싹해서 질문하면 대답이 술술술 나오더라구...
먹을 것이 풍부하고 환경이 좋으니까 애들이 대체로 스타일 있게 잘자라더군. 옛날엔 못먹어서 다리는 짧고 머리만 큰 그런 사람 많았거든. 즉 가분수를 말하는거지.
피곤해서 낮잠을 좀 자다가 갑자기 깨어서는 어디인지 갈 곳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튀어나갔어. 얼마전 덕수궁에서 수문장들이 교대하는 의식에 대한 기사를 본적이 있는데 거길 가보기로 하고 컴퓨터를 열어 시간을 확인해보니 오전 11시/ 오후 2시/ 3시 30분/ 이렇게 세번의 의식이 치러지잖어.
버스를 타고 1시간 걸려 시내를 나가서 덕수궁 돌담길을 부지런히 걸어가는데 행사가 시작되는 것이 보였다. 오빠가 아이였을 때 대한문은 지금 내가 서있는 도로에 있었는데 시청앞 도로를 확장한다고 지금 저자리에 옮겨 놓은 것으로 그때의 어린 마음에도 그걸 보면서 안타까웠던 기억들이 많이 난다.
60년대 말에는 당시 한국의 거인 아저씨가 혼자서 수문장을 했었는데 그나마 월급주는 비용조달이 안된다고 수문장 없이 외로웠던 대한문이지만 지금은 사정이 확 달라졌다. 언젠가는 덕수궁의 정문 대한문을 다시 원래의 자리로 옮겨와야 하는데 언제나 될지는 알 수 없다.
2시에 도착하여 숨을 돌리기도 전에 저편 돌담길에서 풍악소리가 들리면서 기수들이 나타난다.
무게있는 옛 풍악에 맞추어 수문장 교대식이 이뤄지는데 너무나 멋들어진 모습이었다.
서양인 관광객이 오늘의 북치는 "고수"가 되었고 그는 커다란 북 앞에 나와 관계자가 가르쳐주는대로 준비를 하고 있다.
관광객들은 일부러 이곳을 찾아 모여들었고 한국인 보다는 일본인이 가장 많았고 / 네팔/ 유럽인/ 미국인/ 들이 많은데 신기하고 아름다운 모습의 사진을 담느라 너도나도 카메라를 겨누고 있었다.
앞으로 매우 많은 관광객들이 모여들만한 행사이며 옛날 전통적인 의식에 마음이 뿌듯하였다.
누구하나 자세와 표정이 흐트러짐 없이 교대식을 진행하고 있는 숙련된 프로들이었다.
우선 복장이 근엄하기도 하였지만 매우 아름다웠고 매우 재현이 잘된 행사로 보였다.
그들은 덕수궁 안으로 들어가서 다시 돌아 나오는데 원래는 두개의 조가 교대식을 해야 하는 것 같았는데 한조가 들어가서 나오는 것이 두가지 역활을 하는듯 하였지만 관광객들은 그걸 모르는듯 하였다.
17명으로 된 취주악대는 참으로 훌륭한 풍악을 연주하면서 관광객들을 사로잡았다.
두 젊은이가 특히 인상적이었는데 이목구비 모습이 옛사람의 모습에 가깝고 북치는 기술이 팔을 묘하게 움직여 손목을 비틀듯이 하는 묘기를 부리는 것이 보통수준이 아니었으며 눈동자 하나 움직이지 않고 표정도 매우 근엄하였다.
한편으로 돌아 행진하는 모습에 매료되는데 일본인 관광객들은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일본말이지만 찬사를 그치지 않는다. 원한맺힌 것들이지만 후손들 때에 이르면 조상님들의 한맺힌 역사에 대하여 뭔 절단을 내도 내게 되겠지...
한시간에 이르는 의식이 펼쳐지는데 모습이 매우 절도있고 위엄있으며 그들의 구호소리 또한 매우 장중하였다.
교대 의식에 맞추어 원래의 "고수"가 북을 치는데 북소리가 이렇게 큰 것인지 전엔 몰랐었다.
사진이 매우 많지만 버리기 아까우니 대충 설명없이 넘어가야 한다.
일본여인들이 무료로 빌려주는 한복을 입고 기념사진을 찎느라 즐거운 표정이다.
장교와 병사들의 복장은 매우 아름답다.
이들이 현역 군인들인줄 알았기에 근처에 있는 질서요원에게 물어봤더니 덕수궁 수문장들은 시청에 소속된 직원들이라고 귀뜸해 준다. 수문장 대원들 키는 평균 175 Cm 정도 되었으며 비용이 들더라도 두배의 인원으로 늘려서 2개조가 정상적으로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행사 중에는 한국어/ 영어/ 일본어/ 중국어/ 설명이 끊이지 않았다. 교대식이 끝나고 수문장들과 사진을 찎을 수 있는 시간이라고 방송이 나오니 관람객들이 줄지어 차례를 기다리면서 너무도 즐거워 한다.
일본여인들이 가장 많다.
곤장 비슷한 막대로 대문을 막아섰는데 저것은 사람을 밀어내는데 쓰인 듯 하고 그래도 안으로 들어가려 하면 뒤에 서있는 청룡도를 든 병사들이 목을 뎅겅 잘라버린 듯 하였다.
그들에겐 매우 뜻있는 기념사진이 될듯하다.
일본여인들.
한국여인.
영국여인.
서로들 사진을 찍어주느라 바쁜 사람들...
병사들은 장군의 모습보다는 위엄이 없어 보였는데 수염이 없어서 그런 것 같았다.
병사는 보기에 하사관쯤 되는거 같았어.
부부의 모습인데 앞으로는 그시절 신발도 갖추어주면 좋겠다.
병사의 사진을 담았다. 이유는 군화의 모습이 너무 현대식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며 이거 박물관에 있는 코버선 모습으로 기억되는 옛모습 그대로의 신으로 교체해야 한다.
한시간동안 진행되는 의식이 전혀 지루하지 않게 꾸며지고 자리를 뜨는 사람들이 없다.
자세히 보면 군화가 너무 어색해, 고증을 좀더 해서 옛모습 그대로 돌아갔으면 좋겠고 병졸들은 집신을 신어야 하는 것 같기도 해...
네팔 관광객인데 영어를 곧잘 하였다.
의식의 끝에 취주악대가 정렬하여 마지막 마무리를 하는 모습이다.
필리핀 아니면 베트남...
오빠도 기념사진 하나는 있어야지.
교대의식을 끝내고 몇명의 문지기들을 남긴채 덕수궁 돌담길을 걸어서 되돌아 가지만 원래는 이들 전체 인원이 수문장 지기로 있어야 하는듯 했다. 저만큼의 인원이 더 필요한 덕수궁 정문 수비대.
입장료 1'000 원을 내고 덕수궁엘 들어갔다. 이거 예전엔 없었던거 같은데 언제 이곳으로 옮겨놓았는지 기억이 없다.
궁궐에 들어오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말에서 내려야 하는 하마비 표석이 있었다.
덕수궁 중화전 (집전실로 해석) 앞마당 바닥은 예전엔 구둘장과 같은 자연석 같았는데 언젠가 화강석을 네모반듯하게 잘라 새롭게 깔아놓은 듯하다. 보수공사 하느라 그랬겠지만 이렇게 다른 모양으로 역사적 유물을 고쳐서는 안되는 것이다.
*** 중화전은 1902년 건립된 덕수궁의 법전(法殿)이다.
1897년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에서 경운궁으로 환궁할 당시에는 이곳 중화전을 짓기 전이었다.
따라서 당시에는 현재의 즉조당(卽祚堂)이 태극전(太極殿)이란 이름으로 법전의 역할을 하였다.
이듬해 2월 태극전은 다시 중화전으로 이름을 바꾸지만, 1902년 현재 중화전의 위치에 중층규모의 중화전을 새롭게 건립했다.
그러나 1904년 함녕전에서 비롯된 대화재로 현재의 덕수궁 영역이 잿더미가 되면서 중화전은 옛모습을 잃고, 지금처럼 단층 팔작지붕으로 1906년 재건된다. 이는 당시의 궁핍한 재정상황과 더불어 나날이 쇠락해 가는 대한제국의 면모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이곳 중화전은 일반적인 궁궐의 법전 용도답게 왕의 즉위식 및 가례식, 외국사신을 맞이하는 의식, 조하례(朝賀禮)의식 등 공식행사가 거행되는 곳이다.
하지만 중화전은 당시의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사실상 법전으로서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비극적인 장소로 남고 만다. (한국의 재발견에서 인용)
덕수궁 이곳을 과거 스무번도 더 드나들었으니 기억에 모두 남아있는데 30 여년만에 오늘와 다시보니 너무나 많이 변해버렸다.
가운데 계단은 임금님과 중전마마 전용 계단이라서 용상으로 새겨져 있는 것이며 중신들은 가장자리 길로만 다녀야 한다.
나랏님이 신하들을 접견하시던 용상이다. (옛 중국의 사신들이 경복궁의 대전을 보고는 중국 도성 안의 "변소"만한 크기라고 씨부렁 대었다던데 그들은 대전이 조선보다 50 배 가량 큰 규모였다고 기억된다)
나랏님이 거하시던 곳일듯 하였다.
(중전보다는 젊고 싱싱한 후궁들이 드나들던 환상적인 곳이었을 듯...)
수백년 세월이 흘러 단청도 지워졌고 보이는 곳마다 낡았으므로 때마다 개보수를 해야 하겠다.
400 년전 광해군께서 즉위식을 하시던 '즉조당' 아래로 뒤뜰이 보인다.
그시절 천하를 호령하던 나랏님은 간곳이 없으나 옛모습은 역사 속에 이렇게 남아있었다.
과거 국립박물관으로도 사용했던 곳인데 이곳에 1972년도 어느날 "밀레" 그림 전시회가 있어 4시간을 줄서서 기다린 끝에 들어와 감상하던 추억이 있는 곳이다. 밀레의 대표작이랄 수 있는 "저녁종"은 당시 없었으나 "양치는 소년" 등등의 역사적 작품들이 지금도 기억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후 국립중앙박물관을 경복궁 안에 신축하여 옮겼다.
(우리 조상님들의 궁궐안에 일본놈들이 제들 마음대로 석조건물을 지었으니 이제 이거 때려부수어 없애든지 아니면 시골 어느 들판에 옮겨서 재조립 해놓던지 해야 할 것이다)
밀레의 그림을 감상하던 같은 날 이곳 석조전에서는 희대의 사기꾼 "피카소" 의 그림이 전시되었었지만 밀레의 그림에 밀려 관객이 전혀 없던 기억도 새롭게 떠오른다. 직업이 조각가인 제임스 오빠가 가장 싫어하는 그림쟁이가 바로 엉터리 그림을 그려 사기친 "피카소" 그 인간이거든...
이 인간 파렴치함을 아는 사람은 안다.
아무 의미 없는 낙서에 입을 놀려 의미를 부여하고 주변의 부자 친구들로 하여금 그림을 사고팔기를 되풀이 하게하여 고가의 그림이 되게 만든 기막힌 사기꾼이라는 것을 말이지...
요즘도 현대의 그림쟁이 세계의 뒤안 길엔 서로가 사고팔면서 짜고치는 고스톱처럼 가격을 올려놓고 되팔기를 연속적으로 하는 편법을 쓰는 흑막이 있지만, 으바리같은 일반인들이야 3초 후에 잊어버린다는 붕어의 기억력이라서 눈치조차 채지 못하거든...
옛추억을 더듬으며 덕수궁 뒷뜰로 가보았다.
뭔가 확실치 않지만 모습이 많이 변했고 이 근처에 있던 작은 동물원이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이곳에 자주오던 오빠를 기억하던 작은 원숭이는 철조망 안에서 만날 때마다 손을 내밀어 반가워 했고, 과자를 건네주며 같이 놀았던 그 원숭이는 아마 죽었을거 같어 30 년도 훨씬 지난 일이고 녀석은 나이가 많아서...
처음 지은 후에도 여러번 고친 덕수궁 건물들은 사진의 보이는 것처럼 많이 낡았다.
문화재 관리국에 비용을 배정하여 점차적으로 원래의 모습으로 고쳤으면 좋겠다는 생각들...
광해군께서 잠시 사용하시던 즉조당 뒷뜰에서 바라본 바다건너 웬수 일본놈들이 지은 건물 석조전. 저거 얼른 때려부숴야 국가의 기운이 되살아 나는거다.
이곳서 놀란 것은 청소부들이 훤칠하고 미인에 젊어서였다.
청소부 같은 모습은 아니었고 뒤태가 아름다워 바라보는데 등에는 "한화 자원봉사단" 뭐 이거 비슷하게 써있었다.
근처에 있는 "한국화약" 회사의 직원들이 정기적으로 청소봉사를 하는듯 했다. 이삼년전 한국화약 김승연 회장이 제아들에게 무례하게 굴었다고 술집 웨이터를 똘마니들을 동원해서, 청계산으로 납치해 회장이 직접 권총으로 위협하고 패대기친 사건으로 세인들의 눈쌀을 찌푸리게 했던거 기억한다.
(그럴땐 말이지 양복선물권 하나 마련해서 웨이터에게 사람을 보내 "내자식이 무례하게 굴어서 애비된 사람으로 송구스러워 사과드린다" 이렇게 했으면 그대는 누가봐도 큰사람이 되는건데 그만 회장의 자리에 잇으면서도 졸장부 소인배가 되었으니 안타깝더라구...)
재벌이라서 "유전무죄" 에 적용된 것인지 잠시 감옥에 들어가더니 어느새 다시 업무에 종사하고 만수무강하게 잘살고 있는데, 불공평한 것은 짜투리돈 그거 좀 횡령해 먹은 사람들은 몇년씩 감옥살이를 하는데, 어째서 대한민국의 정치인들과 재벌들은 대충 어물거리다가 기어나오는지 이해가 안된다. (가난한 놈만 불쌍한거야 별로 먹은 것 없이 징역이나 팍팍 살고말이지...)
하여간 서정화 전 내무장관의 사위에 물려받은 재산 등으로 젊은 나이에 권세를 부리며 기업을 키워나갔던 김회장은 여러모로 지은죄가 있으니 열심히 사회에 봉사하고 살아도 부족한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어차피 가져가지못할 것, 직원들 시켜서 청소만 할것이 아니라 이참에 덕수궁을 새로이 보수하는데 재산을 좀 화끈하게 환원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명예회복, 이거 매우 간단하거야 "쩐"을 화끈하게 풀어 기부하면 국민들은 말이지 그대가 나쁜짓 한거 그것은 "붕어" 기억력들이라서 금새 잊어버리고 칭찬함이 전국 방방곡곡에 퍼지게 되는거야.
덕수궁 복원비용을 김승연 회장이 500 억원 내놨다고 생각해봐 역사적 인물이 되는거잖어, 차기 대통령 해야 한다고 전국 방방곡곡에서 난리법석을 떨거야. 개울 고치고 그걸로 당선되기도 하더만...
일제시대에 그런 것인지는 모르지만 시멘트로 마구잡이로 얼버무려 놓은 곳이 많은데 이거 어디 청소만 해서야 표도 안나고 쫀쫀하다는 소리나 듣느니 이참에 화끈하게 쏘는게 좋을거 같어.
덕수궁 담장 밖 저편에 멀리 보이는 높은 건물이 한화그룹의 본사인듯 보이는데 건물 위에 "한화" 그렇게 써있으니까 한눈에 매우 잘보이더만... 하여간 오빠가 그대 미워서 이런말 한것은 아니라는거 알아야 해. 내게 권총을 들이댄 것도 아니고...
세종대왕님께 문안도 드리고.
나랏님 사시던 덕수궁 안뜰을 바라보면 너무 슬프잖어, 모든 것이 너무 낡았고 이거 수리하려면 엄청난 돈이 들어갈텐데 화약 만들어서 벌어들이는 돈, 그거 이참에 좀 터트리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상님들의 거하시던 궁궐이며 역사의 유물인 이곳 덕수궁을 너무도 오랜만에 찾아와서 살펴보는 시간이 되었다. 국민 모두의 역사유물인 이곳 덕수궁. 숱한 애환이 깃들어 있는 도심 속의 명소 덕수궁의 변한 모습에 문밖에선 기쁨이 있었으나, 문안에 들어서는 너무도 낡아버린 건물로 인하여 조상님들 뵈옵기가 송구스러워 슬픔이 많은 오늘이었다.
내 온 곳으로 되돌아 가기 전 창덕궁을 들러 기억을 더듬으며 옛추억이 새겨진채 떨어지는 낙엽을 주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오늘이다.
나는 언제 이곳에 다시올지 모르는채 덕수궁을 떠나지만 나의 슬픈 마음은 한동안 이곳의 낡아버린 건물들 틈새들마다 끼워두어야 할 듯하다.
첫댓글 ㅎㅎㅎ 누구인겨 수문장하고 계신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