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의산창야색한 獨倚山窓夜色寒 홀로 산창에 기대니 밤 기운이 차갑다
매초월상정단단 梅梢月上正團團 매화가지 끝에 달은 떠 둥글구나
불수갱환미풍지 不須更喚微風至 봄바람 불러올 일 무어 있겠나?
자유청향만원간 自有淸香滿院間 맑은 향기 저절로 집 안에 가득하네.
이 시는 퇴계 이황이 도산서원에서 달밤에 매화를 보고 읊은 시다. 원제목이 <도산월야영매(陶山月夜詠梅)>라 되어 있다. 차가운 산골의 밤, 달빛마저 차가운데 청빈하고 지조 있게 사는 도학자는 가슴에 천지의 기를 느끼며 달빛 젖은 사색에 몰두한다. 뜰에 심은 매화는 어쩌면 자신의 성품을 상징하는 꽃일 것이다. 그 매화가지 끝에 마침 보름달이 걸려 있다. 인동의 초목이 봄을 기다리며 산자락에 섰는데 매화 일지향이 뜰에 가득하다.
퇴계는 매화를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매화시첩>이란 시집 안에 매화를 읊은 시가 무려 104수나 된다. 정한강(鄭寒岡)은 집 둘레에 백여 그루의 매화를 심어 놓고 자기 집을 백매원(百梅園)이라 불렀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옛날의 선비나 학자들이 매화를 특히 좋아했다는 사실은 매화의 기상이 청아한데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군자에 비유한 것도 그렇고 아무튼 매향이야말로 최고의 향취를 사람에게 선사한다. 사람의 인격에서 풍기는 향기가 있다면 그 역시 매화 향기와 같을 것이다. 맑고 은은한 매화의 이미지가 사람의 마음속에서 기실은 살아나야 할 것이다.
18)풀끝마다 조사의 뜻 분명하고
조의명명백초두 祖意明明百草頭 풀 끝마다 조사의 뜻 분명하고
춘림화발조성유 春林花發鳥聲幽 봄 숲에 꽃피자 새소리 그윽하다.
조래우과산여세 朝來雨過山如洗 아침빗발 스쳐간 산은 세수를 하였나?
홍백지지로미수 紅白枝枝露未收 붉고 흰 가지마다 이슬이 맺혔다.
정법의 눈이 열린 사람에게는 세상 모든 것에서 참된 의미를 발견하는 투철한 직관력이 있다. 풀잎 하나, 꽃 한 송이에서 우주의 신비를 보고 무궁한 진리의 세계에 대한 감동을 느낀다. 조의(祖意)란 조사의 뜻이란 말인데, 이 말은 불법의 단적인 핵심을 가리킨다. 풀 끝마다 무궁한 진리가 분명하게 드러나 하나도 숨김이 없는 이 경지가 도를 통달한 도인의 눈에는 예사로 보여 진다는 것이다. 봄이 오면 만물이 소생하고 숲에는 새가 운다. 이 자연의 섭리 그것이 바로 깨달음의 작용이 아니고 무엇이랴? 이 시는 봄의 풍광을 읊은 것이나 자연을 관조하는 내밀한 여운이 흠씬 풍긴다. 비가 스친 봄 산이 세수를 한 듯 이슬 맺힌 가지가 오히려 해맑다. 맑은 서정이 정말 이슬방울이 떨어지는 것 같다.
이 시의 작자 감산덕청(감山德淸)은 중국 명나라 시대를 대표하는 스님이다. 1546년 남경에서 태어나 열두 살 때 보은사로 출가하였다. 그 후 제방을 다니면서 도업을 닦아 선취를 터득하고 여러 곳에서 무차대회(無遮大會)를 여는 등 많은 활약을 하였다. 여산(廬山)에 오래 머물다 조계로 돌아와 1623년 78세로 입적했다. 어록을 비롯한 몽유전집(夢遊全集)등 많은 저서가 남아 전한다.
[출처] 선시(禪詩), 임종게(臨終偈), 오도송(悟道頌) 200수 모음|작성자 수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