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냐? 하느님이냐?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마 16:16)이라고 고백하고 믿는 미국, 중국, 일본의 그리스도인이 만나서 서로 친근해졌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각자의 언어로 기독교 신명(神名)을 부를 때 문제가 생겼습니다. 미국인은 신(神)을 “God”으로, 중국인은 “샹띠”(上帝)로 불렀고, 일본인은 가미사마(かみさま)로 불렀습니다. 이들은 각자의 언어로 기독교의 신명을 불렀습니다. 이들이 부르는 기독교 신명이 다르다고 해서 그들이 믿는 신이 다른 것인가? 미국인이 부르는 “God”와 중국인이 부르는 “샹띠”(上帝)와 일본인 “가미사마”(かみさま)가 발음이 다르다고 해서 다른 신을 지칭하고 있는가? 이들은 동일한 신(神)을 각자의 언어로 “토착화된 이름”을 부를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기독교 신의 명칭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습니다. 개신교와 가톨릭교는 같은 신을 믿으면서도 ‘하나님’ 또는 ‘하느님’으로 이름을 다르게 부르고 있습니다. 또한, 같은 개신교 안에서도 ‘하나님’ 또는 ‘하느님’으로 호칭 문제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적어도 개신교와 가톨릭교회가 신명만은 일치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서로 다른 신명에 대한 배타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그런데 개신교와 가톨릭교 모두 영어로는 ‘God’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기독교 신에 대한 호칭에 대해서 혼란이 있습니다. 신의 이름을 부르는 행위는 매우 중요한데, 이는 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결국 예배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4장 26절에 ‘셋도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라고 말하였고, 13장 4절에서 아브람도 ‘그가 처음으로 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라고 한 사실을 보아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행위는 예배 행위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신의 칭호는 매우 중요한데, 이름이 있다는 것은 그 실체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존재하지 않는 것에는 이름이 없습니다. (전 6:10)
유대인들은 이스라엘 하나님의 이름을 יהוה(YHWH), “신성사문자”(神聖四文子)라고 불렀습니다. 이 명칭은 본래 모음이 없고 자음으로만 이루어져 원래의 발음이 어떠한지 알 길은 없습니다. 대제사장이 지성소 안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때 יהוה(YHWH), “신성사문자”로 발음하여 불렀고 성전에서 강복할 때도 이 이름을 사용하였습니다. (민 6:22-27)
그러나 3세기가 되면서부터 “신성사문자”가 신성시되어 예배소 밖에서 언급하는 것이 금지되었습니다. 그래서 יהוה(YHWH) 대신에 ‘나의 주님’이란 의미를 가진 “아도나이”를 대신하여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아도나이”라는 단어가 지칭하는 יהוה(YHWH)를 표시하기 위해 “아도나이”의 모음을 YHWH에 더하여 ‘여호와’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또는 ‘하느님’ 칭호는 신앙적 · 신학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국어사전에는 ‘하나님’에 대하여 개신교에서 ‘하느님’을 이르는 말이라 하고 있습니다. 대한성서공회 주관으로 개신교 · 가톨릭이 연합하여 1971년 4월 11일 부활절을 기해 공동 번역 성경을 출간하였고, 신구약 합본은 1977년 부활절에 출간하였습니다. 이때 한글 개역 성경이 ‘하나님’이라고 되어 있는 것을 ‘하느님’으로 표기함으로 개신교에서는 이를 거부하고, 1956년의 개역 성경만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한편, 천주교는 1964년에 전국 주교회의에서 기존에 써오던 “천주”라는 말 대신에 ‘하느님’으로 쓰도록 결정하였습니다.
“하님”이 “하느님”으로 쓰임에는 다음과 같은 변화를 담고 있습니다. 1933년 조선어학회의 한글 맞춤법 통일안(案)에서 “·”의 글자는 없어지게 되어 “하님”이란 글자가 하느님으로 되어 애국가에서 하느님으로 쓰입니다. “하님”이란 글자가 애국가에 나타난 바와 같이 “하느님”으로 쓰인 것은 문법적 통일에 따른 것입니다. 한국인은 인간과 세상 만물과 구별되면서도 이들의 존재와 생사화복을 주관하는 초월적 존재인 신을 전통적으로 ‘하느님’이라고 호칭해 왔습니다. ‘하느님’은 “하늘(天)과 님(주)”의 합성어로서 이래 세상 만물을 주재하는 인격적 초월적 실재를 지칭하는 말로서 사용되어 온 순수한 한국어입니다.
초기의 한글판 성경에 쓰인 ‘하ᄂᆞ님’의 ‘하ᄂᆞ’가 수사 ‘하나’(一)의 고어(古語)가 아니었습니다. ‘하나’(一)의 고형은 ‘ᄒᆞ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ᄂᆞ’는 무엇인가? 이것은 ‘하늘’에서 ‘ㄹ’이 탈락한 모습입니다. ‘아들님’이 ‘아드님’이 되고, ‘딸님’이 ‘따님’이 되듯이 ‘님’ 앞에서 받침 ‘ㄹ’이 탈락하는 것은 국어의 한 규칙입니다. 오늘날 ‘하늘님’도 ‘하느님’이 되듯이 당시에도 ‘하ᄂᆞᆯ님’이 ‘하ᄂᆞ님’이 된 것입니다. “유일한 님”의 뜻으로 이름을 지으려 하였다면 ‘하ᄂᆞ님’이 아니라 ‘ᄒᆞ나님’이라 해야 했을 것입니다. 또한, “하나”라는 뜻에는 이 세상을 여신 분이심을 강조하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만물을 만드신 주인을 뜻하는 것으로 만물의 주인은 오직 한 분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느님’ 호칭을 주장하는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하느님’은 “하늘에 계신 님”을 줄여 부르는 말로 보아야 합니다. Heaven은 하늘이므로 “Heaven + 님”을 만든다면 ‘하느님’입니다. ‘하나님’은 신학적으로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단일신”의 신명이 됩니다. 따라서 ‘하나’의 의미로 ‘하나님’을 사용하면 ‘삼위’라고 할 수 없습니다. 성경에 계시 된 ‘신’은 ‘하나’이지만, 동시에 ‘셋’으로 존재합니다. 즉, 기독교의 신은 “삼위일체이신 한 분이신 하느님”입니다. 구약성경은 유일신의 이름을 “엘로힘”이라는 복수형 명사로 표기했는데, 이는 한 분이시지만 성부· 성자·성령 삼위로 존재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에서 ‘하느님’ 호칭을 주장합니다.
또한, ‘하느님’ 호칭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1971년 현재 대한민국이 정한 표준말은 ‘하느님’입니다. 그러므로 표준말이 통용하던 순간부터는 응당 ‘하느님’으로 해야 했으며 또는 착오를 알아차린 순간부터라도 ‘하느님’으로 해야 합니다. 1) ‘하나님’(one)은 언어학적으로 불가능한 형태이고, 2) 유일신 개념을 나타내지도 못하고, 3) 도리어 헬라철학, 중국철학, 대종교, 천도교의 개념과 오해되기 때문에 ‘하느님’이 올바른 호칭이라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하나님’ 호칭을 지지하는 이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1939년에 장로교나 감리교나 기독교 신은 ‘하나님’이지 ‘하느님’은 아니라고 공식적으로 천명하였습니다. 당초 ‘하나님’ 표기는 ‘하님’을 계승한 것이 아님을 밝히고 있습니다. “한글 성서의 신명 표기는 어느 시대 어느 성서본에서도 하님(하나님)으로 표기했을 뿐 당초에 ‘나님’(一神), 개념으로 수용한 예는 성서에 없었던 것으로서 이 구별은 확증됩니다. 따라서 기독교에서 ‘하느님’의 칭호에 부정적인 이유는 이것이 궁극적으로 우상의 칭호로써 “범신론적 신관”을 강조하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양측 주장이 팽팽한 가운데 기독교와 천주교 사이에 하나님의 호칭 논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과 ‘하느님’의 칭호 논쟁은 한국적 상황에서만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이 점에 대해 양면을 다 수용할 수 있는 폭넓은 그리스도인의 아량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도 ‘하느님’도 궁극적으로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에게 돌아가면 이 문제는 해결될 것입니다. (고후 3:13-16) 이처럼 ‘하나님’, ‘하느님’ 논쟁도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돌아가면 풀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동양 종교가 하늘을 의인화하고 천(天)이 세상을 다스리는 주재(主宰)로 생각하여 그 천(天)을 두려워했던 사람들의 의식 속에 잔존해 있는 결과로써 “하늘님”이라는 호칭이 나왔습니다. 실제로 하늘은 “하나님의 거처”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내가 너로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게 하노니’(창 24:3) 여기에서 보듯이 여호와는 하늘과 땅의 모든 신 중의 신이시며 참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신명기 10장 14절은 ‘하늘과 모든 하늘의 하늘과 땅과 그 위의 만물은 본래 네 하나님 여호와께 속한 것이로되’라고 말합니다. 창세기 19장 24절에는 하늘을 여호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에게로서 유황과 불을 비같이 소돔과 고모라에 내리사’ 여기서 하늘 곧 여호와라는 번역을 두고 ‘하늘’과 ‘여호와’를 일치시키고 있으나 실상은 공동 번역도 말했듯이 하늘로부터 유황과 불이 비같이 내렸다는 의미일 뿐 하늘이 곧 여호와임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신약에서도 ‘하늘’이란 말은 “우라노스”로서 아버지에 의해 창조된 것(계 10:6)으로 “하나님의 거처”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마 5:16, 12:50; 계 3:12, 11:13, 16:11, 20:9) 그분은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엡 4:10)이며,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입니다. (히 7:26) 열왕기상 8장 39절에서는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사유하시며’라고 말하고, 역대하 20장 6절에는 ‘가로되 우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하늘에서 하나님이 아니시니이까’라고 말하면서 그가 하늘에 거처를 두고 계심을 지적함으로써 그가 “하늘님”, 곧 ‘하느님’으로 불릴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요 3:13)라고 말하며 자신이 곧 “하늘님”으로, ‘하느님’으로 불릴 수 있음을 자증(自證)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늘 아버지는 하늘에 계시기에 ‘하늘님’, ‘하느님’으로 일컬어지는 것이 타당해 보입니다.
또한, 예수는 마태복음 5장 34~35절에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35 땅으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라고 했습니다. 하늘을 욕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께서 계신 보좌를 향하여 하는 욕입니다. 땅은 하나님의 발등상으로 묘사되어 하나님은 하늘과 땅과 관계가 없으신 분은 아니라 하늘과 땅을 조성하시고 통치하시는 하늘 보좌에 계신 분임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하느님’이라 불리는 것에 대해 개신교와 천주교가 일방적 주장을 내세우는 타당하지 않아 보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과 ‘하느님’, 두 사상을 모두 공유하고 있습니다.
‘하나(one, 一)’라는 말이 담고 있는 “하나 신관”에 대한 의미에 대하여는 오해가 있습니다. 한국에서 신명(神名)의 핵심 쟁점은 ‘하나님’은 ‘하나’의 뜻이 없고, ‘하나’(一) 는 수사(數詞)이기에 신명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언더우드가 사용하기를 기피했던 ‘하나님’이란 용어도 뒷날 언더우드 자신이 생각을 고쳐 수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고대 한국에서 ‘하나님’이라고 불리는 유일신만을 섬겼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새로운 발견을 통한 이 빛 속에서 그 말을 사용하는 것이 완전히 조리에 맞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신’에 해당하는 다른 용어를 대치하려는 생각을 포기하고, 기꺼이 이 ‘하나님’이라는 말을 사용하기로 하였습니다.
기독교에서 ‘하나님’이라는 칭호가 합당하다고 생각하는 이면에는 “일신(一神)” 사상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하나’ 신관은 일신에 대한 강조가 아닙니다. 만일 “일신(一神)”에 대한 강조라고 한다면 예수가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 10:30)라고 한 말씀을 수용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일신(一神)”인데 ‘독생하신 하나님’(요 1:18)이 생겨날 수 있고,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 될 수 있겠는가? 스가랴 14장 9절은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시리니 그날에는 여호와께서 홀로 하나이실 것이요 그 이름이 홀로 하나(에하드)이실 것이며’(And the LORD shall be king over all the earth: in that day shall there be one LORD, and his name one, KJV). 또한, 신명기 6장 4절에도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에하드)인 여호와시니’(“Hear, O Israel: The LORD our God, the LORD is one! NKJV)이라고 함으로, ‘하나’이신 여호와를 일컬어 “하나”에 존칭 어미를 사용해 “하나님”이라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