벙커와 빵카
김상영
싸락눈 내리는 을씨년스러운 겨울 저녁이었다. 곱살한 선배 하사가 전투함 행정실로 나를 찾아왔다. 내가 작전상황실로 발령이 나서 데리러 왔다는 거다. 동해 경비 항해를 마치고 진해로 귀항하자마자 숨 돌릴 겨를도 없이 송아지 코 꿰듯 부임할 수밖에 없었다. 할랑하던 시절은 달랑 1년여 만에 물 건너가고 말았다. 사람 팔자 시간 문제라는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작전상황실이란 지하 벙커(bunker)에 있는 함정지휘소이다. 동해, 부산, 진해, 목포, 인천과 제주에 이르기까지 전 함정의 일거수일투족을 갈무리하는 곳이다. 우리는 그곳을 ‘빵카’라 비하하며 다소 자조적인 푸념을 늘어놓곤 하였다. 서양식 표준발음인 벙커보다는 입에 잘 구르기는 했지만, 근무 환경은 유쾌하지 않았다.
빵카는 사시사철 형광등이 가로등처럼 밝혀져 밤인지 낮인지 흐리멍덩하였다. 여름이면 에어컨 바람, 겨울이면 온풍이 퍼져 봄이 오는지 겨울이 가는지 계절도 없었다. 강제로 순환되는 공기는 무미건조하였으며 그리 상쾌하지 않았다. 쥐나 고양이 사체 냄새가 뒤섞여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햇볕 없는 벙커 속 삶은 따분하고 우울하였다.
그래도 이것저것 따질 군번이 아니었다. 행정장인 중사가 주간 근무를 하고, 나와 선배 하사는 야간 당직을 번갈아 섰다. 함 행동 현황 타자가 주된 임무였다. A3 미농지 사이에 먹지를 끼워 열두 장을 한꺼번에 쳐냈다. 아침이 밝아오면 관련 부서에 배달을 마친 뒤 오전까지 휴식하곤 했는데, 밤낮이 주기적으로 바뀌는 근무라 버거운 생활이었다.
그런 내게 비밀 관리기록부 옮겨 적는 업무가 부과됐다. 행정장이 도맡을 일을 전가한 거였다. 새해가 밝으면 비밀 관리기록부를 새것으로 바꿔야 한다. 지난해에 파기된 문건을 제외한 현존하는 목록을 기재해야 하는데, 건수가 너무 많다는 게 문제였다. 핵심 작전 부서인지라 2급과 3급 그리고 대외비가 무려 1,400여 건이나 되었다. 제목만 기록하면 애당초 애먹는단 말을 꺼내지도 않겠다. ‘관리 번호, 접수 일자, 문서번호, 제목(쪽수), 파기 일자, 비고’ 난을 빽빽이 채워야 한 건이 완료되었다.
야간근무로 엎친 데다, 이기移記 작업이 덮친 격이었다. 의자에 웅크린 채 휴지통을 발판 삼아 즐기던 가수면假睡眠의 여유조차 없게 되었다. 희미한 형광 불빛 아래 틈틈이 옮겨쓰다 보니 눈은 따갑고 온몸이 배배 꼬였다. 연애편지 쓸 짬도 없었다. 이 짓을 왜 해야 하나, 지루한 작업에 지쳐가던 나는 꾀를 냈다. 제목이 길거나 영어가 나오면 슬쩍슬쩍 건너뛰었다. 문건은 있으나 목록을 빼먹는 꼴이니 같잖은 일이었다. 시쳇말로 대강 살던 사회 물이 덜 빠진 탓이었다. 발각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햐~ 이 자슥 봐라.”
신·구 기록부를 대조해 가던 행정장은 중언부언 되뇌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본인이 할 일을 부당하게 시킨 잘못을 알기에 냉가슴만 앓는 듯했다. 행정장은 내가 빼먹은 수십 건을 일일이 써오려 스카치테이프로 붙여 ‘땜빵’ 했다. 붙인 선을 따라 띄엄띄엄 간인間印을 찍자 그런대로 쓸만해졌으며, 검열 때도 별일 없을 것 같았다. 그해 관리기록부는 새것이로되 실은 누더기였다.
행정장은 거제 몽돌 바닷가 출신으로서, 어벙한 나와는 달리 작심하고 입대한 사람이었다. 여느 배꾼처럼 술 좋아하고 인정이 많았다. 땜빵 사건으로 인하여 자신도 참모에게 호된 질책을 당하였으면서도 삭이는 것 같았다. 동병상련이라고, 두메산골 출신 철없는 내 형편을 헤아려 모질게 대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어찌 처리하나, 보는 눈이 많았다.
“박아!”
격실 구석에서 머리가 얼얼하도록 ‘원산폭격’이 집행되었다. 쓰레기통을 냅다 차서 요란을 떨거나 “똑바로 안 해?” 고함쳐서 살벌한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나는 기합을 고되게 주는 듯 위장하는 행정장의 그 속정을 알아채곤 미안해졌다. ‘빳따’를 치더라도 궁둥이를 들이댈 참이었다. 그 주말에 진해 시내로 상륙 나가 두루치기 할매집에서 소주잔 부딪칠 때 우리는 박장대소하며 회포를 풀었다.
빵카를 떠올린 건 벙커에 관한 기사 때문이었다. 골프 경기에서 일컫는 벙커는 버거웠던 빵카와는 달리 관람하는 묘미가 그저 그만인가 보다. 모래 구덩이에 빠질 때의 탄식과 탈출할 때 터지는 탄성은 18홀 코스 중 으뜸이다.
유명한 골퍼가 ‘가족 벙커’에 빠졌단 기사가 떴다. 물가에 빠진 공을 양말 벗고 쳐올린 맨발의 투사이자 투지의 아이콘이 아니더냐. 훌륭한 그녀가 아버지를 위조 사문서 행사 혐의로 고소한 사건인지라 가슴 아프다. 아버지가 딸내미 돈을 쌈짓돈처럼 몰래 많이 빼 쓴 모양이다. 눈물범벅인 그녀를 접할 때 U.S. 여자 오픈에서 우승한 때와는 달리 원샷 탈출이 쉽지 않아 보인다.
그녀는 엄격한 아버지 손에 이끌려 한밤중에 공동묘지를 넘나들며 담력을 키웠다고 한다. 그러한 훈련 덕분에 국민적 스타 반열에 올랐다. 삶의 정점을 찍은 그런 그녀가 아버지와 맞서게 되었으니 참담하려니와, 천상에서 나락으로 떨어진 꼴이 아닐 수 없다.
벙커와 빵카는 같은 뜻이나 사뭇 다르게 다가선다. 그녀가 얼비쳐 그런지, 벙커는 왠지 버터 냄새가 난다. 무게감도 있다. 빵카는 토종이며 어감도 좋다. 십수 년 묵어도 잘 굴러가는 우리 고물 자전거처럼 편하다. 나는 큰 성과를 이루거나 돈을 많이 벌어 본 적이 없다. 큰 부침 없이 어영부영 살고 있는 소시민일 뿐이다. 잃을 게 별로 없는 밑바닥 빵카 출신이니 세상이 어찌 된다한들 겁대가리가 없는가 보다. (2024.6월/14.4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