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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문 매일 미사 집전순서
18일(화) 프란치스칸 가족 정평창보 19일(수) 안동교구 20일(목) 인천교구 21일(금) 예수회 22일(토) 인천교구 등 7/1(월) 안동교구 7/8(월) 마산교구 |
2013_06_17_월 |
+++ 함께 해 주신 사제
주례 : 김준한 신부(부산교구 남밀양성당) 강론 : 김인국 신부(청주교구 옥천성당)
서울교구 : 함세웅, 박동호, 이강서, 이영우, 나승구 신부 전주교구 : 문규현, 송년홍, 김회인 신부 의정부교구 : 김영철, 맹제영 신부 원주교구 : 김한기, 박홍표 신부 부산교구 : 김준한, 김인한 신부 광주교구 : 변찬석, 진병섭 신부 청주교구 : 김인국 신부 인천교구 : 장동훈 신부 마산교구 : 하춘수 신부 안동교구 : 손성문 신부 작은형제회 : 유이규 신부 예수회 : 최영민 신부 |
+++ 함께 해 주신 수도회
성가소비녀회 예수의 까리따스 수녀회 예수수도회 전교 가르멜 수녀회 사랑의 씨튼 수녀회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 노틀담 수녀회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 성 바오로딸 수녀회 예수의 작은 자매들의 우애회 천주 섭리 수녀회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 툿찡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 |
끄레도(credo), 나의 심장을 네게 주나니
강론
김인국 신부(청주구 옥천성당)
성경은 아벨의 피가 땅에서 울부짖는 창세기로 시작해서, 하느님이 모든 눈물을 닦아주시는 요한묵시록으로 끝납니다.
누군가 울부짖고, 다른 누군가가 그것을 듣는 데서 자고로 새로운 하느님의 역사는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서러운 노동자 여러분, 참지 말고 마음껏 울부짖으십시오. 창세기의 아벨도 울부짖었고, 이집트에서 고생하던 히브리인들도, 십자가의 예수님도 엉엉 울며 하느님께 울부짖었습니다. 여러분의 탄식과 호소는 잠든 영혼들을 흔들어 깨웁니다. 그냥 꾹 참고 견디지 말고 “다시는 죽음이 없고, 다시는 슬픔도, 눈물도, 고통도 없는”(묵시 21,4 참조) 세상이 올 때까지 맘껏 통곡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소리를 듣는 자는 즉각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가만히 주저앉아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살던 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울부짖는 자리에서 떨어져 있으면 그 소리가 잘 들리지 않습니다. 되도록 가깝게 있어야 합니다. 특히 하느님을 믿는 자라면 그 어떤 종류의 벽에 갇히지도, 고립되지도 말고 밖으로 뛰쳐나가야 합니다. 우는 사람들 곁으로 달려가는 일은 세상을 구하는 문제 이전에 우선 자기 자신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정말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자원이 있다면/ 권력이 있다면/ 목소리를 낼 여지가 있다면/ 손톱만큼의 영향력이라도 있다면/ 힘이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아무런 힘도 없는 사람,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 아무런 영향력이 없는 사람들을 위한 복으로 바꾸고 싶습니다.”(랍 벨)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우리의 생각과 마음과 힘과 목숨을 너무나 억울해서, 숨이 막히고 가슴이 쿵쾅거리는 여러분의 일용할 양식으로 내 드리고 싶습니다.
예수님의 세상의 잘난 놈, 가진 놈, 배운 놈, 힘센 놈들이 가난하고 무력한 이웃의 “오른뺨을 후려 때리고” 마저 왼쪽 뺨마저 대라고 할 때/ 우리의 불쌍한 친구들에게 “속옷을 빼앗고” 겉옷마저 내놓으라고 할 때/ 우리의 착해빠진 형제들을 “천 걸음에서 다시 이천 걸음씩이나 실컷 부려먹고” 빈손으로 내쫓을 때 그 곁에 있어주라고 하셨습니다. 또 바오로 사도는 이런 삶의 자세를 “하느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 “하느님의 일꾼”의 “직분”이라고 불렀습니다.(2코린 6,1-4 참조)
지금 말로 다할 수 없는 “환난과 재난, 역경을 겪는” 쌍용차 노동자 여러분, 툭하면 “매질과 옥살이를 겪는” 노동운동가 여러분, “수고와 밤샘과 단식” 밥 먹듯 하면서도 “영광과 칭찬은커녕 중상과 모욕을 겪어야 하는”(2코린 6,4-7 참조) 여러분! 그 옛날 여러분과 똑같이 공평과 정의를 위해서 일하다가 목숨을 바친 성경의 어느 일꾼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잘 들어보십시오.
여러분은 “진실합니다. 인정을 받지 못하는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인정을 받습니다. 죽어 가는 자같이 보이지만 이렇게 살아 있습니다. 벌을 받는 자같이 보이지만 죽임을 당하지는 않습니다. 슬퍼하는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늘 기뻐합니다. 가난한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많은 사람을 부유하게 합니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습니다.”(2코린 6,8-10)
강론을 마무리하며 한 가지 덧붙입니다. ‘나는 믿나이다’라는 뜻을 가지니 라틴어 끄레도(Credo)는 꼬르 도, “나의 심장을 바친다”에서 나왔다고 하더군요. 사랑이신 하느님을 찾다가 하느님을 만나서 사랑으로 살다가 우리도 마침내 사랑이 되는 일이 신앙임을 생각하며 지당한 뜻풀이입니다. 올해 신앙의 해에 이 자리를 찾아오시는 교우님들, 수녀님들, 수사님들, 신부님들은 참으로 고마우신 분들입니다. 여러분이야말로 내 심장을 너에게 준다는 믿음의 의미에서 충실한 분들이고, 교회가 목 놓아 외치는 ‘새로운 복음화’의 길에 화답하는 귀한 분들이라는 인사를 꼭 전하고 싶습니다.
행복감을 느끼게 해준 '연대'
쌍용차 해고노동자 이야기
윤충열
반갑습니다.
주례 신부님께서 대한문에서 밀양이야기를 하시기가 그렇다 하셨는데요.
저도 1년 전 대한문에 분향소를 차려서 올라 올 때도 쌍용차 문제만 해결하겠다는 마음만 먹고 왔었습니다.
대한문에서 지내면ㅅ 느낀 것은 이것이 쌍용차만의 문제가 아니구나, 그리고 시민들이 처음에는 반응이 없다가 시간이 가면 갈수록 공감해주는 구나를 느꼈습니다.
처음에 음에는 자신들의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으시더라고요. 그래서 이게 하면서 기분도
이게 하면서 기분도 좋아지고 희망도 생기더라고요.
예전에 집회하면서 선전물 나눠주면 시민들이 막 뭐라 했거든요.
당연히 노동자들도 희생을 해야 하지 않느냐는 말씀을 많이 하셨어요.
대한문 작년 대한문 지킴이처럼 있었으면서 그런 이야기 많이 듣고 이 투쟁이 나 혼자만의 투쟁이 아니구나, 이 투쟁을 정말 잘해야겠구나 하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래서 작년 이 맘때 쯤 저희만 농성했는데요.
그 다음 강정이 들어오고, 용산이 들어오고, 탈핵이 들어오면서 규모가 커진 거예요.
쌍용차 문제만 가지고 하지 왜 강정이 용산이 들어오느냐?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 문제가 우리들만의 문제가 아니더라구요.
여기는 억압받는 사람들이 이야기 할 수 있는 공간이 여기다 그랬어요.
그래서 우리 천막을 계속 없애려고 하는 것 같아요.
천막이 있으면 강정이 와서 발언하고, 밀양이 와서 발언하고, 그렇게 할꺼 아닙니까?
그런 장소를 없애기 위해서 천막을 없애고 분향소를 못 치게 하는 것 같아요.
제 생각에.
안 그렇습니까?
신부님께서 말씀하신 연대, 제가 작년에 대한문 와서 뼈 절이게 느끼고 행복감을 느낀 게 그 연대였습니다.
나도 이제 생각이 180도 바뀌었습니다,
회사생활 때는 대충 갔지만, 반은 끌려가는 것이고 반은 의무감으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당연히 가야한다는 생각으로 갑니다.
해고되고 대한문 있으면서 생각이 바뀌게 되어서 너무 좋습니다.
또 이렇게 많이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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