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장 원흉(元兇)의 꼬리
흑절신제의 양 팔은 참혹하게 잘려져 있지 않은가?
그는 양 팔을 팔꿈치에서부터 뭉턱 짤린 피를 토하며 꿈틀대고 있었다.
그의 신형은 심하게 비틀거리고 있었다.
[분하다, 천하가 눈앞에 있었건만…]
그의 안면은 참담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반면 단사영의 모습은 굳건하였다.
변한 것이 있다면 안색이 더욱 창백해졌다는 것과
손에 쥐어져 있던 철검이 이 순간 검자루만 남긴 채 산산히 부셔져 땅에 떨어져 있을 뿐이다.
단사영의 승리(勝利)리였다.
그러나,
[우욱!]
단사영은 기혈이 꺼구로 치솟는 것을 느끼며 족히 한사발이 넘을 듯한 검은 피를 토해내고 말았다.
염왕의 무공은 강했다.
혈왕의 무공이 패(覇)라면 염왕의 무공은 무엇이든 파괴해 버리는 멸(滅)!
극강(極强)과 극강이 부딪친 결과였기에 그 역시 온전할 수 없었던 것이다.
단사영은 재차 올라오는 기혈을 억누르며 안색을 냉막하게 굳힌 채 흑절신제를 향해 다가서고 있었다.
그 때였다.
[죽이지 마라.]
투황이 단사영의 발길을 막았다. 그리고 흑절신제를 향해 천천히 다가섰다.
[흑절신제! 한 가지 물어볼 것이 있다.]
[무…무엇이냐?]
[네가 익힌 낙뢰붕천신공을 전수해 준 사람이 흑라제후가 맞느냐?]
순간 흑절신제는 흠칫하더니 곧 공허한 웃음을 날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그의 짧은 대답이 떨어지자 단사영은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이 순간 투황의 말이 이어졌다.
[흑죽령을 지닌 여자 역시 그녀냐?]
[크후후후…투황, 말을 돌리지 마라.
본좌에게 원하는 것이 바로 오 년 전 그 일의 전모가 아니냐?]
[아는군, 말해 줄 수 있느냐? 이 자리에서…]
[크후후후…미안하지만 그럴 수 없다. 하나…]
흑절신제는 말을 끊고는 단사영을 힐끔 바라본 후 다시 이었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 일곱 명 가운데 단 한 명도 타의에 의해 그 날 그 자리에 가지 않았다는 점이다.
검성의 붕괴는 혈왕정 때문만이 아닌 강호인이라면 누구나 갖는 야망 때문이었다.
검성은…우리들에겐 벽이었다.]
투황의 이맛살을 찌푸렸다.
[죽을려고 환장을 했군, 그 말을 꼭 여기서 해야 해!]
투황은 찝찝한 표정으로 단사영의 눈치만 살폈다.
어떻게 해서든 단사영의 마음을 돌려보려고 했다.
흑련을 조종하고, 흑절신제에게 염왕의 무공을 전수해 준 흑라제후가 원흉이니
그녀를 제압하는 길이 우선임을 말해 주고 싶었다.
그리하여 피와 죽음만 부르는 단사영의 발걸음을 흑라제후 쪽으로 돌리려고 했다.
그래서 단사영이 투황 등과 뜻을 같이해 흑라제후를 죽이면 자연 흑련은 와해(瓦解)된다.
그것은 곧 강북 무림에 일어난 혈운을 잠재우는 길이지 않은가?
그런데 오히려 역효과가 날 소지가 다분해졌다.
혈왕정 때문이 아닌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는 말은
단사영의 복수심에 기름을 끼얹는 말이기 때문이다.
이 순간 단사영의 눈엔 복수의 불길이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흑라제후, 그녀가 원흉이란 말인가?)
단사영은 투황의 의도를 눈치챘다. 하나 그런다고 마음이 변할 그는 아니었다.
그는 투황에게 일언반구도 하지 않고 다시금 흑절신제를 향해 걸음을 떼었다.
그가 다가오자 투황은 고개를 저으며 물러섰다.
(틀렸어, 빌어먹을…)
순간 흑절신제는 앙천광소를 터뜨렸다.
[크하하하…]
돌연 광소를 그친 그는 무심한 눈빛으로 단사영을 주시했다.
[본좌를 죽이겠다 이건가?]
말을 끝낸 그는 울컥 한 모금의 선혈을 토해내었다.
흑절신제는 피를 훔치며 허탈한 표정으로 말했다.
[천하제일이라 자부했던 본좌다. 나는 죽는 이 순간 마저도 그 생각을 버리지 않고 있다.
헌데 내가 너같은 놈에게 목숨을 맡길 것 같으냐?]
문득 그의 안색이 검으스름한 흑색으로 변하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순간 투황은 경악성을 터뜨렸다.
[증폭천마공(增幅天魔功)! 조심하라. 놈이 동패구사를 노린다!]
단사영의 안색도 대변했다.
돌연 흑절신제가 하늘을 우러러보며 앙천광소를 터뜨렸다.
[크하하…천하가 눈 앞에 있었는데…]
동시에 흑절신제의 몸이 풍선처럼 부풀어오르더니 일순,
꽝-!
그의 전신이 그대로 박살이 났다
. 스스로 자결을 택하며 황천길에 단사영과 함께 오르려는 무서운 동패구사의 수법,
증폭천마공의 결과였다.
후두두둑…후두둑…
찢긴 살점과 피보라가 자욱하게 단사영을 덮쳤다.
[앗! 공자님!]
[이보게!]
[아미타불…]
중인들의 입에서 경악성이 터졌다. 그러나 그들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투투툭!
흑절신제가 증폭천마공을 펼치려는 것을 안 순간
단사영은 혈염지력을 일으켜 온몸에 호신강기를 쳤다.
그가 친 강막에 살점과 핏물들이 튕겨져 나갔다.
이윽고 비릿한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가운데 단사영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는 다소 피로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냉가려를
무심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공자님, 괜찮으세요?]
바싹 다가와 걱정이 가득한 어조로 입을 여는 냉가려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했다.
단사영은 그녀의 눈물을 보자 갑자기 뭉클한 것이 치솟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 뿐이었다.
어느새 그의 가슴은 싸늘히 식어가고 있었다.
(여기에 오래 있을 것이 못 된다. 흑련 총단으로 가자. 가서 흑라제후란 여인을 만나야 한다.)
그의 마음은 원흉일 가능성이 깊은 흑라제후에게 향해 있었다.
일단 마음을 굳힌 그는 빙글 신형을 돌렸다.
찰라 냉가려의 교구가 파르르 떨렸다.
눈물 젖은 눈 속으로 들어오는 냉정한 단사영의 등!
말을 붙여야 한다고 느꼈지만 입술은 떨어지지 않았다.
그저 그녀가 한 일이라곤
어느새 땅을 박차며 하늘로 치솟는 단사영의 뒷모습만 바라보는 것이 고작이었다.
(갔어…)
그 때였다.
그녀의 어깨에 가만히 손을 올리며 투황이 입을 열었다.
[냉낭자, 지금은 그를 잡을 수 없소이다. 그는 바람일 뿐이오,
하지만 조만간 그는 우리에게 올 것이오,
어떤가? 냄새나는 노인네들 뿐이지만
그래도 몇몇 젊은 친구들도 있으니 우리랑 같이 가는 게?]
[……]
냉가려는 망연히 단사영을 잡아먹은 하늘만 바라볼 뿐이었다.
투황의 시선도 하늘로 향했다.
[잡을 수 없다니까, 아직은…]
문득 냉가려의 입에서 힘없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어디로 가실 건가요?]
[우리? 흘흘흘…우리 같은 늙은이들이 모인 양로원이지,
철검성(鐵劍城)이라고 하네만…같이 가세.]
[철검성.]
냉가려는 조용히 뇌까렸다.
후리릭…
단사영은 제남부 왕리산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하나 왠지 그의 경공술은 예전처럼 뛰어나지 않았다.
더욱이 이마에 송글송글 맺혀 있는 땀방울은 그의 몸이 정상이 아님을 시사해 주었다.
(음, 낙뢰붕천신공의 위력이 그토록 무서울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오히려 염왕의 마공이 혈왕의 마공보다도 더 강한 것 같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위안했다.
아직 자신은 혈왕의 무공을 완전히 익히지 못한 상태이며
강호의 경륜이 흑절신제보다 적기 때문이라 자위했다.
그러나 현재 그는 사나흘 정도 휴식을 취해야 할 정도의 중상을 입고 있는 실정이다.
단사영도 쉬고 싶었다. 계획한 대로 흑절신제도 죽였다.
내상을 치유하면서 다음 목표인 벽력권왕 반장을 죽일 계획도 세워야 한다.
그렇지만 상황이 그를 쉬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다.
(흑라제후라고 했던가? 흑련을 조종하는 여자,
그녀를 잡아 심문하면 오 년 전 사건의 전모를 캘 수 있다.)
마음은 바빴지만 몸이 따르지 않아 조급할 지경인데 쉴 겨를이 있겠는가?
휘리리릭…
그는 내상의 고통을 참으며 경공을 펼쳤다.
단사영이 산봉 하나를 넘었을 때였다.
돌연 그의 앞 봉우리로부터 한 줄기 살기가 뻗쳐오는 것을 그는 느꼈다.
피부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강렬히 뻗어오는 살기(殺氣)!
그것은 분명 자신을 향해 뻗어져 오는 살기였다.
단사영은 절로 긴강하며 내심 중얼거렸다.
(이 살기는 보통이 아니다. 나를 부르고 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산 모퉁이를 돌며 살기가 뻗어오는 곳으로 향했다.
잠시 후, 그는 한 커다란 바위 아래에 당도했다.
그곳에 한 백의여인이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품에 한 송이 국화(菊花)를 안고 있었다.
단사영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키며 여인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일순 백의여인은 그를 향해 몸을 날렸다.
단사영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발했다.
황량한 산중에서 뜻밖에도 절세미인을 발견한 것이다.
나이는 삼십 정도였다.
약간 슬픈 듯 우수가 가득한 인상이었으나 고혹적인 매력을 지닌 여인이었다.
헌데, 백의여인은 그에게 차갑게 묻는 것이 아닌가?
[네가 바로 철검혈랑 단사영이냐?]
단사영은 백의여인의 첫마디에 어이가 없는 느낌이 들었다.
[당신은 누구요?]
그러자 백의여인은 느닷없이 날카로운 교소를 터뜨렸다.
[호호호…]
허나 웃음을 뚝 그치며 그녀는 살기띈 음성으로 말했다.
[나? 나를 모르겠느냐?]
여인은 차가운 서릿발 도는 눈으로 흠칫하는 단사영을 노려보았다.
[하얀 국화 한 송이를 받는 순간
죽음의 꽃향기가 영혼을 흠뻑 취하게 한다는 말을 혹시 들어보았느냐?]
그 말은 단사영을 크게 놀라게 했다.
[국화원주?]
[그렇다.]
백의여인은 화려한 웃음을 입가에 머금었다.
그러자 조금 전까지만 해도 슬픈 듯 우수어린 얼굴이 돌연 화사한 얼굴로 돌변해 버렸다
. 그 돌연한 변화에 단사영은 흠칫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 웃음! 저것은 죽음의 웃음이다.)
그렇다! 백의여인의 웃음은 곧 죽음의 향기였다.
-국화대부인(菊花大婦人) 예추추(芮秋秋)!
절대십천 가운데 유일한 여자이며,
국화원(菊花苑)이란 여인들의 집단을 이끄는 여지존(女至尊),
또한 단사영의 철검 가운데 여섯 번째 철검에 피를 묻힐 여인이기도 하다.
상대의 정체를 알아본 단사영은 내심 신음하지 않을 수 없었다.
(큰일이다. 현재 나의 내공은 평소의 반 정도밖에 사용할 수 없다.
더욱이 내상까지 입은 상태라 혼신을 기울지 못한다.
하필 이럴 때 국화대부인을 만나다니…)
단사영이 국화대부인을 노리듯, 그녀 역시 단사영을 노리고 이 자리에 나타났다.
어차피 둘 사이는 한 하늘 아래 공존할 수 없는 관계!
하나 문제는 단사영의 내상이다.
문득 단사영의 몸이 정상이 아님을 대번에 간파한 국화대부인의 입가에
웃음이 더욱 짙어졌다.
그녀는 살기를 먹을 때마다 환하게 웃는 묘한 버릇이 있다.
평소에는 조용하고, 슬픈 듯 우수가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살기가 일어났다 하면 그 즉시 얼굴 가득 화사함이 피어난다.
그러한 그녀에 대한 소문을 알고 있는 단사영이기에 더욱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 국화대부인이 입을 열었다.
[삼십여 년 전 철혈검제 단천학은 나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원한을 심어주었다.]
순간 단사영은 내심 경악했다.
(삼십여 년 전이라고? 그 당시라면 아버님께서 검성에 칩거해 들 때다.)
백의여인 즉, 국화대부인은 차디차게 이를 갈며 말했다.
[너의 얼굴을 보니 그 잘난 계집의 얼굴이 떠오르는구나.
옥호접(玉蝴蝶) 매설란(梅雪蘭), 그 계집이 없었다면 아마 내가 너의 엄마가 되었을 것이다.
아니지, 네가 태어나지도 못했겠지.]
[으음…]
단사영의 검미가 꿈뜰거렸다.
옥호접 매설란이라면 바로 단사영의 어머니가 아닌가?
비로서 단사영은 눈 앞의 국화대부인이 삼십여 년 전
약관 청년영웅이었던 철헐검제를 사랑한 수많은 강호 미녀 가운데
한 사람이었음을 직감했다.
철혈검제 단천학-
빼어난 용모, 하늘조차 가리는 무공, 거기에 건곤마존을 죽여 강호 평화를 이룩한 대영웅!
이러한 조건은 뭇 강호 여협들의 가슴을 흔들어 놓기엔 충분했다.
어떤 여인들은 맨몸으로 육탄공격을 해와 당시 철혈검제를 당혹하게 한 경우도 허다했다.
그러나 철혈검제는 옥호접 매설란을 만남으로써 사랑에 빠졌고,
강호에 평화가 찾아들자 두 사람은 둘만의 보금자리를 검성에 만든 것이다.
그러했다.
단사영의 생각대로 국화대부인 역시 자신의 아버지인 철혈검제 단천학을 짝사랑한
여러 미녀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것도 그저 가슴앓이만 해온 소녀가 아니라
근 이 년여 동안 함께 행동하며
건곤마존의 마도천하를 종식시키기 위해 힘을 쓴 가까운 사이였다.
젊은 청춘남녀가 이 년여 동안 함께 행동한다는 것
, 뛰어난 미모를 지닌 소녀와 잘생긴 청년이 같은 길을 걸으며
생사고락을 같이 한다는 것은 자연적으로 정(情)이란 감정의 샘을 파게 한다.
하나 그 샘을 판 사람은 국화대부인 혼자뿐이었다.
철혈검제 단천학은 동지로서 그녀를 대할 뿐 이성으로 그녀를 보지 않았다.
그러나 언젠가는 자신의 샘에 빠지리라 생각하며 국화대부인은 끊임없이 유혹해왔다.
헌데 어느날, 그녀 앞에 막강한 호적수가 나타났다.
바로 옥호접 매설란이었다.
옥호접 매설란은 백화맹의 젊은 영재기녀 가운데 한 명이었고 아미파(峨嵋派)를 사문에 두고 있었다.
십 년 동안 폐관한 채 무공을 연마한 관계로 뒤늦게 백화맹에 가입한 그녀의 출현에
많은 청년고수들의 가슴에 불을 지펴주었다. 그만큼 그녀의 미모는 뛰어났다.
철혈검제와 그녀가 처음 만나는 날 국화대부인이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닥쳐왔다.
철혈검제와 옥호접은 서로를 보는 순간 첫눈에 반해 버린 것이다.
그후, 그들은 한시라도 떨어져 있지 않았고,
마침내는 강호가 평화를 되찾게 되자 결혼하여 검성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렇게 가슴 저미는 사랑의 아픔을 맛본 국화대부인은
그 후 국화원 밖으로 나오지 않은 채 국화꽃만 다듬으며 세월을 보내왔다.
[나는 소수겁(素手劫)을 연마하면서 한 가지 결심을 했다.
그것은 기필코 나의 사랑을 외면한 단천학을 응징하고,
내 사랑을 앗아간 매설란을 죽이겠다는 것이다.]
단사영은 분노를 느꼈다.
[그래서 당신이 검성을…!]
그러자 국화대부인은 날카롭게 웃었다.
[호호, 네놈이 어찌 삼십 년 세월을 아픔을 알겠느냐?
네놈을 보니 네놈 에미였던 매설란의 모습이 자구 떠오른다.]
국화대부인은 살기띤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오늘 네놈을 죽여 지난 날의 아픔을 보상받겠다.]
단사영도 지지 않고 냉소했다.
[자신의 힘도 모르고 함부로 날뛰다가는 뼈도 추리지 못할 것이오.]
그 말에 국화대부인의 안색이 변했다.
[애송이 놈, 죽어랏!]
그녀는 대뜸 좌장을 번뜩였다. 그 순간 백광이 번쩍 뻗쳤다.
단사영도 반사적으로 반격했다.
꽝-!
[윽!]
단사영은 기혈이 뒤집히는 것을 느끼며 뒤로 다섯 걸음이나 밀려나갔다.
(이 여인의 내공은 나보다 훨씬 높다.)
[호호호… 제법이다만 소수겁의 참맛을 보여주마.]
국화대부인은 오른손 옥장을 뻗었다.
그녀의 옥장은 전체가 투명한 옥색을 띄고 장심에는 마치 백열과도 같은 환이 영출되었다.
위이이이잉-
공기를 가르는 음향과 함께 하얀 광채가 단사영을 향해 뻗었다.
단사영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혈염지력을 극성으로 일으켜 장력을 뻗었다.
붉고 하얀 두 줄기 장력이 부딪친 순간,
꽝! 꽈아아앙--!
흡사 가죽 북 터지는 듯한 굉음이 터졌다.
[으윽-]
단사영의 입에서 선혈이 주르르 흘러나왔다.
그는 뒤로 연속 일곱 걸음이나 밀려나갔다.
가슴이 터질 듯하고 정신이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크흐흑…내상만 입지 않았어도…)
이때 국화대부인은 다시 장력을 날렸다.
[마지막 일격으로 끝내주겠다.]
위잉- 휘이이잉-
단사영은 급히 우장을 뒤집었다.
[혈마탈천(血魔奪天)!]
콰르릉-
천지가 일시에 무너지는 듯한 폭음이 울렸다.
[아니…!]
국화대부인은 경악성을 발했다.
그녀는 세찬 충격을 느끼며 뒤로 두 걸음이나 밀려났다.
그녀의 얼굴은 경악으로 물들어 있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이놈은 분명 큰 내상을 입은 상태다. 헌데도 이런 위력을 보이다니…!)
그녀는 다시 악독한 마음을 먹었다.
그녀는 소수겁을 일으켜 처음보다 더 강하게 옥장을 날렸다.
콰쾅-
[윽!]
단사영은 또다시 비명과 함께 피를 뿜으며 뒤로 연속 일곱 걸음이나 밀려나갔다.
기혈이 역류하고 가슴이 뽀개질 것 같았다.
그는 어금니를 악물었다.
입안이 피냄새로 비릿했다.
하지만 악문 이가 부서지는 듯한 아픔과 함께 역류하던 피가
목구멍을 타고 도로 넘어가자 혼미해졌던 정신이 어느 정도 맑아졌다.
단사영이 곧 쓰러질 듯 비틀대다가 정신을 차리며 눈빛이 더욱 빛나는 것을 본 국화대부인은
경악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꼈다.
(이놈의 몸은 어떻게 됐길래 저토록 끄덕없단 말인가? 소수겁에 연거푸 당하고도 죽지 않다니…)
이때 문득 그녀는 단사영의 등 뒤를 보았다.
그의 등 뒤 삼 보 거리에는 아득한 절벽이 꺼져 있었던 것이었다.
국화대부인의 차가운 얼굴에는 야릇한 미소가 어렸다.
[애송이 놈, 이번에는 완전히 죽여주마.]
동시에 그녀는 소수겁을 극성으로 끌어올렸다.
위이이잉-- 위잉윙---
그녀의 옥장에서 전보다 더욱 하애 차라리 투명하게 느껴지는 백광이 뻗어졌다.
단사영은 급히 환영묘묘신법(幻影妙妙身法)을 펼쳤다.
그의 신형은 수십 개로 나누어져 흩어졌다.
급격한 내공의 저하로 일장을 뻗어 맞서느니
차라리 신법의 도움을 받아 잠시 진기를 고를 생각이었다.
허나 그런 그를 그냥 둘 국화대부인은 아니었다.
[호호… 철혈검제의 환영묘묘신법이군! 그까짓 신법으로는 나의 손을 벗어나지 못한다.]
파파팟-
국화대부인의 신형은 바람같이 움직였다.
그녀의 신형은 어지럽게 날리는 꽃잎처럼 분분히 흩어지며 단사영을 따라붙었다.
단사영이 지금 펼치고 있는 환영묘묘신법은 석 년 철혈검제 단천학이 익힌 무공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건곤마존을 상대하기 위해 이 년여 동안 한 몸처럼 생활해온 국화대부인이 아닌가?
환영묘묘신법이라면 그녀 역시 그 누구못지 않게 익히 아는 신법인 것이다.
[죽어랏!]
위이이잉--
하얀 백광이 작렬했다.
단사영도 대경하여 혈령대구식 가운데 혈령파천장을 펼쳤다.
콰르릉-
하늘과 땅이 갈라지는 굉음이 울렸다.
그 순간 단사영은 자신의 혈염지력을 산산조각으로 뚫어 버리며
한 줄기 백광이 가슴에 적중되는 것을 느꼈다.
[으아악-!]
그는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
이어 그는 피보라를 뿌리며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
절벽 밖으로 날아간 그의 몸은 이내 끝을 알 수 없는 단애 아래로 추락해 사라졌다.
국화대부인의 안색도 창백해져 있었다.
그녀는 단사영이 절벽 아래로 떨어지자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내심 중얼거렸다.
(무서운 놈, 그 상태로 조금만 더 싸웠더라면 내가 오히려 위험할 뻔했다.)
국화대부인은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쿠으으으으…크으으으…
절벽 아래는 뿌연 운무(雲霧)만이 흐를 뿐 밑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었다.
그 순간 그녀는 정신이 아득해짐을 느끼며 피를 토했다.
[우욱!]
그녀는 땅바닥에 쏟아진 피를 내려보며 아미를 찌푸렸다.
(소수겁을 너무 무리하게 사용했구나.)
국화대부인은 문득 하늘을 바라보며 두 눈에 처절한 증오의 광채를 발산했다.
[호호호! 잘 죽었다 잘 죽었어! 네 아비 단천학이 나의 사랑을 저버린 댓가다! 호호호!]
그녀는 곧 절벽 위에서 사라졌다.
처절한 증오가 가득 찬 웃음을 터뜨리며…!
계 속
첫댓글
잘 읽어 봅니다
고은 밤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