싼게 비지떡일까요?
연료 연결장치 뚜껑 유실, 유압시스템 결함, 연료 과잉…. 지난달 16일 필리핀 항공당국이 자국 저가항공사(LCC)인 제스트항공에 자격정지와 운항금지 조치를 내리면서 근거로 든 문제점들이다. 하나같이 치명적인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결함들이다. 연료 연결장치 뚜껑이 없어지면 연료가 누수돼 기내 화재 발생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착륙기어나 꼬리날개 등 항공기 이착륙과 관련된 핵심 부품과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는 유압시스템의 고장은 더욱 심각한 문제다. 연료를 정량보다 더 많이 넣을 경우에도 항공기 균형이 무너져 비행 안정성이 떨어질 수 있다.
조사기간이 20일에 불과했지만 무려 다섯 대의 항공기에서 이 같은 결함들이 발견됐다. 놀라운 사실은 이 항공사가 그동안 우리나라와 필리핀을 연결하는 국제 노선을 정상적으로 운항해 왔다는 점이다. 그리고 예정된 수순처럼 지난달 운항금지 조치를 당해 우리 승객 1000여 명이 필리핀 공항에 발이 묶이는 피해를 보았다.
승승장구하던 LCC 업계에 비상등이 켜졌다. 크고 작은 LCC 사고 또는 운항 중단 사태가 잇따르면서 저가 항공업계 전반의 안전성을 한번쯤 짚고 넘어가야 할 때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제스트항공뿐 아니라 최근 들어 국내외 LCC들이 눈총을 받는 일이 줄을 잇고 있다. 지난달 21일 제주공항에서는 착륙 중이던 에어부산 항공기에서 유압액이 흘러나오는 사고가 발생해 활주로가 30분 동안 폐쇄됐다. 지난 7월에는 제주항공이 중국 정부로부터 취항 허가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중국 산야(三亞)행 항공편 모객을 했다가 출발 직전 취항이 취소되는 일이 발생했다. 티웨이항공은 지난해 운송 가능한 최대 중량을 조작해 무리하게 많은 짐을 싣고 운항하다가 두 차례나 적발됐다. 2010~2012년 동안 정비 불량으로 적발된 국내 항공사도 제주항공과 티웨이항공 등 두 곳의 LCC뿐이었다.
이 중 가장 큰 비판의 대상은 역시 일부 해외 LCC다. 항공업계에서는 일부 LCC의 경우 운항 허가 자체가 문제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제스트항공과 역시 필리핀 저가항공사인 세부퍼시픽은 미국과 유럽에서 운항이 금지된 항공사들이다. 필리핀이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안전우려국·미국연방항공청(FAA) 2등급 국가·유럽연합(EU) 블랙리스트 국가에 모두 해당되기 때문이다. 사실 이들 항공사는 우리나라 기준에서도 합격점을 받을 수 없다. 2010년 3월 시행된 '외국항공운송사업자의 국내 운항허가를 위한 안전성 검토지침'에 따르면 이들 3개 기구에 의해 항공안전 위험국으로 지정되거나 블랙리스트 등재 항공사로 분류되면 취항을 불허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제스트항공 등은 이 지침이 시행되기 이전부터 운항을 하고 있었다는 이유로 이 규정의 적용을 받지 않고 있는 상태다.
국내 LCC나 해외 대형 LCC들에도 미비한 구석이 존재한다. 먼저 보험사와 체결한 사고 보상 한도 금액이 대형항공사에 비해 크게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보상 한도 금액이 낮다는 것은 큰 사고를 당했을 경우에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해외 보험중개업계 관계자 등에 따르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이들의 관계사인 진에어와 에어부산은 사고 발생 시 보상 한도 금액이 22억5000만 달러(2조4761억여원)에 달하지만 다른 LCC들은 10억 달러(1조1005억여원) 이하인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항공이 10억 달러 수준이고 티웨이항공·이스타항공·에어아시아·제스트항공·타이거항공 등은 6억(6603억원)~7억5000만 달러(8253억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자체 정비시설이 없다는 점도 불안요인이다. 가벼운 정비는 국내 소규모 업체에서도 가능하지만 중정비는 꼼짝없이 외국에서 받아야 한다. 제주항공은 중국에 있는 '보잉 상하이'와 네덜란드 KLM항공 등에서, 이스타항공은 중국과 싱가포르에서, 티웨이항공은 대만과 싱가포르 등지에서 기체와 엔진 중정비를 받는다. 그때그때 맞춤형 정비를 받기 어려울 수 있다는 얘기다. 항공업계에서는 해외 정비에 의존할 경우 긴급한 상황에서 적시 정비를 받지 못하거나 부품 수급 측면에서 문제점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정비 인력도 많지 않다. 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의 경우 총 정비 인력이 3000명을 넘어서는 데 반해 LCC들은 50~130명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운항승무원과 객실승무원에 대한 교육 부분에서도 아쉬운 대목이 있다. 대한항공의 경우 운항승무원에 지원하려면 1000시간 이상의 비행경력을 보유해야 하지만 대한항공 자회사 진에어(1000시간)를 제외한 LCC들은 대부분 250시간의 비행경력자면 지원이 가능하다. 입사 이후에도 대형항공사들은 9~13개월의 교육기간을 이수해야만 부기장 자격을 주지만 대부분의 LCC들은 4~6개월의 교육만으로 조종간을 잡는다. 아시아나항공의 샌프란시스코 사고 이후 중요성이 더욱 부각된 객실승무원 교육도 마찬가지다. 대형항공사들이 자체 교육시설과 인력, 커리큘럼을 통해 강도 높은 교육을 하는 데 반해 일부 LCC들은 직업전문학교 등에 교육을 위탁하고 있다.
이른바 '전세 판매'나 '하드블록(Hard Block) 판매' 등 '불완전 판매'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전세 판매는 판매망·영업망이 부족한 LCC들이 여행사나 항공대리점 등에 기대 항공권을 파는 것을 말한다. 항공사는 단순히 항공기만 제공할 뿐 마케팅과 가격 산정에는 거의 관여할 수 없다. 하드블록 판매는 해외 LCC들이 아예 여행사나 항공대리점으로부터 돈을 받고 좌석을 팔아버리는 형태를 말한다. 이렇게 넘어간 항공권들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의 가격으로 소비자들에게 판매될 뿐 아니라 출발 직전에는 '땡처리'의 형태로 시장에 풀린다. 장기적으로 보면 항공사 수익을 갉아먹고 항공 시장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LCC 업계가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최근 들어 실적 올리기에만 급급한 나머지 안전의식은 오히려 이전보다 후퇴한 것 같다"며 "정부가 나서서 수준 미달인 해외 LCC들의 운항을 재검토하고 LCC 인허가 요건 강화, 보상 한도 금액의 법제화 등 안전 관련 법규를 대폭 확충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진석 기자 < kailasjoongang.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