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호텔 2016년 / 허수경 (1964~2018)
12층 호텔이 숲 옆에 있었다 숲 안에는 거대한 무대가 있고
오늘 저녁엔 유명한 가수가 공연을 한다고 했다 일 층부터
삼 층까지는 난민들의 집이고 사 층부터가 호텔인데
나는 팔 층에 방을 얻었다
밤에 누군가의 울음소리 때문에 잠을 들 수가 없었다
처음엔 울음인 줄 알았는데 욕설이었다가 그러다가
죽은 가수가 먼 고향을 그리워하다 체념하는 노래 같았다
이를 닦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이를 닦으며 흐린 태양도
닦았다
지난해 겨울 난민 청년들은 인근 지하철역에서 칼부림을
했고 지나가는 여자들의 치마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총을 들고 도심을 누비며 사람들을 쏘았던 남자아이는
총에 맞아 죽었다 이렇게 미쳐가도 되나요 장미는 피고
있었다 더 이상 피지 못할 잎 사이로도 꽃이 올라왔고
사람들은 그 주위에서 스파클링 와인을 마시며 치매로
요양원에 들어간 동료에 대해서 말했다 사람들의 잠 속으로
지난해 죽었던 장미 그늘이 들어왔다
전갈 붉은 전갈 사막 누런 사막 전갈같이 기어다니는
검은 전쟁 누군가 총을 쏘면 하늘에서는 투명한 폭탄이
이 모든 풍경을 집어삼켰는데
난민 아이들은 오전에 독일어를 배우러 갔다가 돌아와
호텔 앞에 앉아 핸드폰을 들여다보다가 흰 호텔을 올려다보았다
호텔은 흰 벽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그 흰 벽 한 칸을 얻어
잠을 자다가 뜨지도 지지도 않은 태양을 본 것이다
공항에서 / 허수경 (1964~2018)
기다림만이 내 영혼의 물속을 헤적이는 날
당신이 언젠가 들렀을 것만 같은 공항으로 간다
기차나 배를 타고 오기에도
버스는 더욱더 안 될 어스름한 저편에 서서
기다린다 당신이 오는 발자욱마다 손가락이 돋아나
지그시 누르는 자리마다 멍이 든다
밥 11시 24분 비행기가 도착하고
새벽 02시 55분 비행기가 떠날 때
전광판에는 도착하는 비행기와 떠나는 비행기가
검은 눈빛처럼 반짝인다
모든 길은 거짓이고 또한 그림자 같아서
백 년을 살아도 낯설 고향의 새벽 공항에 앉아
아주 조금 술을 마신다
당신의 얼굴은 떠오르지 않고
목소리도 마치 전생의 무늬 같다
취기만이 당신인 것처럼 곁에 앉았는데
많이 잘해주지 못해서 마음은 비었고
많이 안아주지 못해서 손도 비었다
꼭 내가 당신을 배반한 것같다
우리 모두 다만 기어이 가야 할 곳으로 떠난다
산으로 바다로 항구의 젖은 가슴에게로
그래서 이 지구에는 기다림에 살이 아픈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 있고
마을에는 연인을 지켜주는 방도 있다
그래서 나무들은 조금씩 키가 자라고
잎들은 조금씩 빛을 해에게 내준다
어제는 당신이 나를 더 기다렸고
오늘은 내가 당신을 더 기다린다
그것만이 농담이 아닌 이국의 공항에서
상냥한 벗인 취기에게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아, 당신을 기다리면서 물들면서
나는 이 세상 속, 어떤 예쁜 사람이 되어
사라져간다
베낀 / 허수경 (1964~2018)
구름을 베낀 달
달을 베낀 과일
과일을 베낀 아릿한 태양
태양을 베껴 뜨겁게 저물어가던 저녁의 여린 날개
그 날개를 베끼며 날아가던 새들
어제의 옥수수는 오늘의 옥수수를 베꼈다
초록은 그늘을 베껴 어두운 붉음 속으로 들어갔다
내일의 호박은 작년, 호박잎을 따던 사람의 손을 베꼈다
별은 사랑을 베끼고
별에 대한 이미지는 나의 어린 시절을 베꼈다
어제는 헤어지는 역에서 한없이 흔들던 그의 손이
영원한 이별을 베꼈고
오늘 아침 국 속에서 붉은 혁명의 역사는
인간을 베끼면서 초라해졌다
눈동자를 베낀 깊은 물
물에 뜬 고요를 베낀 밤하늘
밤하늘을 베낀
박쥐는 가을의 잠에 들어와 꿈을 베꼈고
꿈은 빛을 베껴서 가을 장미의 말들을 가둬두었다
그 안에 서서 너를 자꾸 베끼던 사랑은 누구인가
그 안에 서서 나를 자꾸 베끼던 불가능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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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의 경계선과 과잉에 대한 탐색을 한 크리스테바에 의하면
주체는 자신을 밀어낸다. 자신이 자신을 밀어냄으로써
자신을 발견한다. 밀어내진 비체(아브젝션Abjection)는
주체에서 과잉의 존재로 여겨진 거부된 타자성이다.
아브젝션에는 존재의 폭력적이거나 어두운 저항이 있다.
그것은 아주 가까이에는 있지만 동화되지는 않는다.
자아 분열, 자아의 쪼개짐, 갈라짐은 자아의 아브젝션이다.
아브젝션은 위협이 된다. 나는 나 자신을 추방한다,
나는 나 자신을 내뱉는다. 나는 내가 나 자신을 세우려는
움직임 속에서 나 자신을 내밀친다. 아브젝션은 자아와
자아의 정체성을 확인시켜주는 타자 사이의 공간적 경계를
희미하게 흐려버린다. 그러나 크리스테바의 욕망이론과
그녀가 비판한 기존의 페미니즘은 허수경 시인에게서
새로운 양상으로 표현되고 있음을 이 시를 통해 알 수 있다.
시인은 동화될 수 없는 자아, 밀어내야 하는 비체인 자아를,
거울 앞에 서서 처음 자기를 발견한 어린 아이로 돌아가
대상을 동일시하려 하고 그래서 “베끼”려고 한다.
달이나 구름이나 과일이나 바라보고 근접해 있는 대상들도
서로를 서로 “베낀”다. 지금 여성들은 억압에서 벗어나
남성의 독점이었던 권력을 얻은 후, 폭력화되기까지 하는
일부 페미니즘의 한계를 극복하고 여성의 힘, 여성적 글쓰기에
동승한 제2세대로서 집단이 아닌 여성 각자가 개인으로
존재하고 각 개인의 특성을 드러내기를 지향하고 있다.
허수경 시인은 더 나아가 여성 각자의 다양성과 다원적 언어들을
뛰어넘어 “우주, 원자, 세포”가 유동적이고 자유로운 주체성을
요구하는 제3세대에 알맞는 발화를 해야 함을 알고 있는 것이다.
크리스테바 이후 70년대 부터 자극되어 온 에코페미니즘까지
시인은 널리 아우르고 있다. 그러면서도 시인은 개체로서
다시, 그리고 끝없이 질문하고 있다.
“그 안에 서서 너를 자꾸 베끼던 사랑은 누구인가?"
"그 안에 서서 나를 자꾸 베끼던 나는 누구인가?"
실로 질문은 언제나 우리를 영원이라는 장소와 시간으로 우리를
이끌 것이다. 허수경 시인은 “어디 내 사내 뿐이랴”고 했던
20대의 그 발언으로, 남성의 대척점이 아니라 우주라는 유기체
안에서 현존하는 개체인 한 “여성”으로서 우리를 구출한
적이 있다.
/ 나금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