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불 뒤쪽으로 돌아 올라서면 부처님 눈높이에서 부처님을 마주보는 형상으로 가깝게 친견할 수 있다.
부여 대조사 원통보전 위쪽에 자리잡은 거대한 미륵부처님. 바위를 뚫고 나온 소나무들이 부처님을 외호하고 있다.
대조사에 들어서면 삼층석탑과 관음보살을 모신 원통보전이 정면에 있다. 정면 4칸 독특한 형식의 원통보전은 조선시대 동헌으로 쓰이던 건물이다.
관음보살이 큰 새로 변해 날아간 자리 대조사 창건
<大鳥>
“낯익은 미륵불…언제 어디서 만났던가”
백마강이 너른 평야를 가로지른다. 호남평야의 경제기반과 진취적인 대외활동을 통해 백제는 부여시대(538~660)에 마지막 전성기를 맞는다.
백마강과 부여가 한눈에 보이는 성흥산이 휘감아 돌아가는 강 한복판에 섰다. 286m 높이의 나지막한 산이지만 평야지대에 우뚝 솟아있다. 산에는 성흥산성이 있고 동쪽 자락에 백제 겸익(謙益)스님이 창건한 대조사(大鳥寺)가 자리잡고 있다. 겸익스님은 인도에서 수학하고 범어에 능통해 역경으로 유명했다. 어느 날 꿈에 관음보살이 손에 광명주를 들고 나타나 역본이 잘 되었다고 칭찬하고 큰 새(大鳥)로 변해 날아가 사라졌다. 스님이 꿈에 깨어 새가 있던 곳을 찾아보니 관음보살이 앉아 있었다고 한다. 그곳에 스님은 백제 성왕 5년(527)부터 5년간 불사를 해서 대조사를 창건했다.
부여에서 금강하구둑으로 향하는 29번 국도를 타고 임천면에 닿아 면사무소쪽으로 좌회전한 뒤 성흥산성으로 향하면 대조사가 나온다. 대조사 원통보전 위쪽에 자리잡은 거대한 미륵부처님이 먼발치서 먼저 인사한다. 굽어져 있는 계단 길을 오르면 삼층석탑과 관음보살을 모신 원통보전이 정면에 있다. 삼층석탑은 고려 초 세워졌고 신라탑 형식이다.
부처님을 모시는 법당은 정면이 보통 홀수 칸으로 만들어지는데, 이곳 원통보전은 정면이 4칸으로 되어 있어 독특하다. 조선시대 동헌으로 쓰이던 건물을 1900년대 초 이전했다고 한다.
도량을 돌아보니 위쪽에 봉안된 미륵불로 시선이 쏠린다. 대조사 석불은 은진미륵이라 불리는 유명한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보물 제218호)과 같은 양식으로 조성됐다. 보물 제217호로 지정된 대조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은 천연 암반으로 조성됐고 머리에 쓰고 있는 보개만 따로 만들어졌다. 귀족 중심의 신라 불교가 고려로 넘어 오면서 민간에 보다 널리 펴져 나간 흔적일까. 신라시대 조성된 부처님이 완벽한 조각미에 감탄사를 자아낸다면 고려 초 미륵부처님은 비대칭에서 오는 어색함이 금세 친근함으로 변해 보는 이의 마음을 평온하게 만든다.
특히 부처님을 감싸듯이 바위를 뚫고 나와 뻗어 있는 소나무도 인상적이다. 부처님 왼편으로 오르는 길이 있다. 뒤쪽으로 돌아 오르면 부처님의 상호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다가온다. 긴 눈과 낮은 코 작은 입술, 부처님의 옆모습은 너무나 한국적이다. 언제 어디선가 꼭 만난 것처럼 훈훈하고 푸근한 얼굴이다. 한참을 바라보면 중생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듯 말없는 미소가 가슴깊이 전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