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女人의 편지
버스 안에서 10원짜리 동전이 떨어지는 소리에는 민감해도 그 창 밖으로 밀려드는 가로수의 합창에는 귀가 먹어버린 현대인들에게 이런 이야기가 통할지는 의문이다.
한 女人으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았다.
어렸을 때였지요. 이른 아침 들길에 나가 하늘을 볼라치면 쌔ㅡ하게 흐르는 세월의 소리가 들렸어요. 그리고 돌아와 우물가에 서면, 달은 또 이미 빛바랜 제 얼굴을 샘물에 헹구고 있는 것을 더러 보았습니다. 창문을 열면 감나무 가지에 구름 스쳐가는 소리가 요란하였고 해질녘 마당가에서는 분꽃 피는 소리가 또 수런수런 했지요.
그런데 30년이 지난 오늘에는 그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지 뭐예요. 달빛 헹구는 소리도, 감이 익는 소리도 통 들을 수가 없으니, 어인 일인지 모르겠어요.....
나는 이 편지를 받고도 돐시가 지나도록 그 답장을 못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가 묻는 '들리지 않는 이유' 를 알아 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에야 답장 쓸 실마리를 얻게 되었다.
며칠 전이다. 어떤 방송국의 해외특파원이 아프리카에 있는 한 미개국을 찾아가 현지의 실정을 녹화해 온 기록영화를 본 일이 있다. 그곳 주민들은 손바닥만한 헝겊으로 바듯이 가릴 곳만 가리고 사는데, 그것도 열댓 살 아래는 천연 그대로였다. 그거야 기후 탓이라 치더라도, 그 국민의 97%가 문맹이라니 그들의 미개함을 가히 짐작할 만하다. 그런데 특파원이 그곳에 사는 한 주민을 붙잡고 왜 자식들에게 공부를 시키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공부를 하면 머리가 복잡해지기 때문' 이라고 대답했다.
얼핏 들을 때, 이 철저한 無知가 우스울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도 나름의 人生을 보는 눈이 있었다. 무엇을 배운다는 것은 머릿속에 이것저것을 끄집어들이는 일이다. 그 좁고 작은 머릿속에 여러 가지를 집어넣고 보면, 그 속이 복잡할 것은 사실이다. 또 배운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보태는 것이다. 무엇을 보탤 때 그 보탬을 받는 본래의 바탕은 그 순수성을 잃기 마련인 것. 그 사람들은 태어난 그대로, 자연 그대로 순수하게 살고 싶었던 것이다. 인간이 순수성을 잃을 때 그 人生은 탁해진다. 그것이 서글픈 일이다.
그 女人이 지금 감 익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것은 순수성을 잃은 때문이다. 그 소리들은 마음이 순수한 사람의 귀에만 들리는 가락이고 리듬이다. 그런데 온갖 仁智로 오히려 무디어버린 청각, 그리고 인간 오염이 터개로 보태어진 마음에 그 맑디 맑은 소리들이 울릴 까닭이 없다.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단 그 이유 하나뿐이었다.
그래, 오늘 아침 출근길에는 우체국에 들려 그 女人에게 오랜만에 답장을 보냈다.
'사람은 하루를 살더라도 순수하게 살아야 한다' 고.
맑은 노래 고운 가락, 순수한 마음으로 귀를 기울여 보면 분명 들리는 게 있을 것이다.
*
자작의 글이 아님을 밝힌다.
글쓴이는 '송금엽' 이다.
월간 <法施>에서 발간한 93인의 名士수필집 《윤회의 강가에서》의 서문으로 쓴 글인데,
감히 부분적으로 조금 각색(脚色)하여 수필수상방에 게시한다.
平山 宋 錦 燁(송금엽)
전북 김제 출생.동국대학교 불교학과 졸업.
월간 <法施> 편집장ᆞ편집인 역임.
월간 <金剛> 주간을 거쳐 <佛敎> <한국불교신문> 편집인을 역임.
한국문인협회, 좋은수필쓰기동호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첫댓글 때묻지 않고 순수하게 사는 삶이 최고의 인간의 가치일듯 싶어요
이기심과 돈에 노예가 되어버린 세상은 누가 만들었을까요
선배님의 글을 읽으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은글 고맙고 감사드립니다..!
인생은 부단한 선택의 과정이며 산다는 것은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겠지요.
우리는 그 선택과 그 결과에 대해서는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하는데, 순수와 가치의 전도는 날이 갈수록 횡포화 되어 가는.....
공자는 일찍이 화위귀(和爲貴)를 부르짖고
맹자는 대타(對他)의 기본 원리를 강조했었는데,
지금 그 말이 유난히도 머리에 떠 오릅니다.
댓글 주심에 감사드리며 고맙습니다.
많이 반갑습니다.
자주 뵙시다요~~
우리가 순수에 귀멀고 눈멀어 지는것은
나 라는 존재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마치 삶이 영원하다는 착각에서 비롯됨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순환하는 우주의 일부분으로 생멸하는 작은 부분 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요 나라는존재.
집착과 아집에서 조금이나마 가벼워질때
감익는소리 달빛행구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공자는 일찍이 인간에게 만물유도(萬物有道)를 가르쳤고 파스칼이 인간을 일컬어 우주의 영광이자 동시에 우주의 쓰레기라고 지적한 것도 야누스적 두 측면을 지적한 명언들이지요. 하지만 인간은 어디까지나 인간이고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답게 살아야 하는데도...
인간답게 살려면 비록 어려운 경지에 놓여도 3불(不感, 不動, 不過) 을 지키며 誠과 勤과 和의 삼덕을 갖춰어 대도를 걸어야 한다는 제 개인적(주관적) 생각입니다.
장황한 답글이라 이만 각설하고,
댓글 주시어 대단히 고맙게 생각합니다.
자주 들러 주시고 좋은 말씀도 남겨 주십사 부탁드려 봅니다.
감사합니다.
사람은 보다 발달되고 편리해진 도구와
기구들에 의존도가 높아 지지요.
현대인은 문명이라는 물질적, 기술적, 사회 구조적인 것과
지식의 축적과 함께 세련되고 미화된 삶의 형태가 정신 문화로
발전을 거듭해 갑니다.
여기서 현대인은 좀더 자극적인 것과 경쟁으로 인한 욕심으로
순수로 부터 멀어지는 것은 아닐까요.
원시, 미개는 삶 자체가 자연 친화적이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글은 잘 읽었고 이해가 되기는 하나,
댓글 쓰기는 어려워 지네요.
불어(佛語)에 무거 무래역 무주(無去 無來亦 無住)란 말이 있지요.
갈 때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않고 올 때 아무 것도 가지고 오지않을 뿐 아니라 이 세상에 살 때도 주거를 가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인간이 무아의 경지에 달하면 무량애(無量愛) 와 무량덕(無量德)을 발견하게 된다는 뜻으로 풀이될 수있겠지요.
인간은 善의 가능성과 惡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무량애는 德과 敬을 얻지만 악의지가 탐욕과 간지(奸智)와 자학심(自虐心)과 결부될 때 악마로 전락되기도..
세상사 운행이 이러함인데도 사람들은 가당찮게 제맘대로 날뛰는,
이기해타(利己害他)를 버려야 하는데......
답글이 길어졌습니다.
감사.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가능하다면~~ㅋ
書로서 댓글 주셨으며 합니다. ㅎ
배우다.
채운다.
그래서 배가 부르다.
아무 생각 없습니다.
자연의 순수함을 느끼지 못합니다.
누군가가 말했었지요~
배부른 돼지 보다는 배고픈 인간이 되어라고...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