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식남 여름나기
한 해 절반이 지나는 칠월 첫날을 맞았다. 진행 중인 장마는 아직 초반이라 앞으로 스무날 정도 강수에 대비해야 할 듯하다. 유월부터 여름에 들었다고 보면 칠월은 한여름으로 간주 되지만 장마철이라 그런대로 견딜만하다. 내게는 일상에서 시장보기가 생활화되어 있지만 정작 마트는 물론 오일장 장터도 잘 찾지 않는 편이다. 대개 자연에서 절로 구하는데 임계점에 다다르긴 했다.
봄날은 근교 산자락을 누빈 산채로 식탁을 풍성하게 차렸다. 묵나물로까지 마련해 두지 않아 우리 집을 물론 이웃 지기들과도 아낌없이 나누었다. 내가 한 뼘 텃밭을 소유하지 않아도 봄 한 철은 그 경계가 어디인지 모를 만큼 발품을 팔아 나서면 배낭엔 산나물을 가득 채워 하산했다. 퇴직 직전 근무지였던 거제는 이후에도 해마다 찾는데 지난주에도 국사봉에 올라 곰취를 따 왔다.
산나물 시즌이 끝나면 강가로 나가 무한정으로 자라나는 죽순을 꺾어와 식탁에 올리고 있다. 죽순은 장아찌로도 담가 잘 먹고 있다. 봄에 이어 두 번째 채산을 했던 지난번 곰취 잎은 양이 적어 바닥이 나고 말았다. 그새 장맛비 틈새 순이 조금 보드라워진 들녘의 가시상추를 뜯어와 데쳐 나물로 무쳐 먹고 있다. 이러니 내가 시장을 봐 조달하는 푸성귀는 사지 않고 잘 버텨낸다.
대개 다른 집에서는 주부가 시장을 보나, 우리 집은 언제부터인가 장보기는 내 몫이라 생선도 마찬가지다. 여름이 오도록 여태 푸성귀를 사 온 적 드물어 시중의 시세도 둔감하다. 보름 전 된장국을 끓여 먹으려고 두부를 사면서 콩나물은 한 봉지 사 왔던 적 있었더랬다. 풋고추는 작년 것을 냉동으로 저장해 여태 먹고 있으며, 대파만 두어 차례 사 왔던 기억이 아슴푸레 떠오르는 정도다.
퇴직 첫해였던 재작년은 지기의 소개로 사파동 축구센터 곁 묵혀둔 터에 채소를 가꾸어 봤다. 오랜 세월 시청 공한지를 점유 경작해 오던 한 노인이 힘에 겨워 방치한 묵정밭을 일구어 키운 푸성귀를 이웃과도 나누어 먹었다. 늦은 봄에 시든 검불과 잡초를 제거하고 모종과 씨앗을 심어 부족한 물은 웅덩이에서 길러 퍼 날라다 주었다. 호박잎쌈과 고구마 잎줄기 무침이 기억에 남는다.
일전 고향을 지키는 큰형님 댁에 안부 전화를 넣어봤다. 여든을 바라보는 형수와 통화에서 장마가 끝날 무렵 한 번 찾아뵙겠다고 했다. 고향 걸음에 빈손으로 들리지 않으나 귀로에는 번번이 고향의 흙내음이 물씬한 푸성귀 봉지를 가득 안고 왔다. 이번에 가게 될 걸음에서는 비 틈새라도 호박잎이나 고구마 잎줄기를 손수 따 올 참이다. 나는 영원한 초식남임을 부인하지 않으련다.
칠월이 시작된 월요일 이른 아침 자연학교 등굣길은 창원역 앞으로 나가 1번 마을버스 첫차를 탔다. 근교 회사나 비닐하우스 일을 나가는 부녀들 틈에 섞여 동읍 행정복지센터를 지난 주남저수지를 비켜 대산 일반산업단지를 거쳤다. 가술과 모산을 지나자 승객은 거의 내렸다. 제1 수산교에서는 한 아주머니만 남아 다음 정류장에서 내려 비닐하우스단지 풋고추나 토마토를 따지 싶다.
나는 강둑에서 물길 따라 걸어 수산대교를 거쳐 대산플라워랜드를 지났다. 둔치는 물억새와 갈대가 무성하고 버드나무가 선 강가 아침 풍경은 자연스럽고 평화스러웠다. 시야에는 강 건너 밀양 수산에서 명례로 내려가는 강둑이 건너다 보였다. 대산 문화체육공원 파크골프장에는 이른 시간임에도 자동차를 몰아온 다수의 골퍼가 공을 겨누어 맞추어 굴려 가며 잔디밭을 누벼 다녔다.
북부리에서 들녘을 거쳐 송등마을에서 가술로 향했다. 국도변 초등학교 울타리와 경계인 폐가로 방치한 관사 뜰에 어른 키보다 높이 자란 삼잎국화를 살폈다. 잎사귀가 쇠기는 해도 뽕잎보다야 나을 듯해 잎을 따 봉지에 채워 담았다. 이후 이달부터 일과가 변경되어 오전에 부여된 봉사활동을 했다. 메밀국수로 점심을 때우고 마을도서관에서 지내다가 삼잎국화 잎이 든 봉지를 챙겨 왔다. 24.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