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타 기쓰키2 - 기쓰키성에서 윤봉길 의사의 상해 천장절 폭탄투척 사진을 보다!
11월 6일 오이타현 나카쓰 中津 에서 14시 11분에 출발하는 특급 소닉 23호를 타고
1시간만인 15시 11분에 오이타 남쪽 에 위치한 기쓰키 杵築駅 역에 도착 합니다.
무거은 배낭 을 멘데다가 버스 시간 이 멀었기로 택시를 잡아 시내 상인들의
거리 를 지나 높은 언덕 정상 에 위치한 기쓰키성 천수각 앞에서 내립니다.
500엔을 내고 성의 천수각 으로 들어가 총과 화려한 갑옷이며 투구 와 산수화
에 사냥용 매의 그림 을 구경하는 중에 눈에 번쩍 뜨이는 사진 이 있으니...
“上海 の 天長節 祝賀式場 爆彈 が 投げられる 直前である ”
상해 천장절 축하식장 폭탄을 투척 하기 직전 모습“ 이라!!!
1932년 1월 8일 이봉창 의사가 일본 도쿄에서 일왕(천황)에게 폭탄 을 던져
살해하려다가 실패하자 상하이 일대는 복잡한 정세 에 빠지게 됩니다.
쇼와 일왕(천황) 생일인 天長節(천장절) 기념식이 열리던 소화 7년인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가 김구의 지시 로 상해 홍구공원에서 폭탄을 투척 하게 됩니다.
그 쇼와 일왕(천황)은 64년간이나 재위해서 죽었는데 4월 29일을 휴일에서 빼면 섭섭 하다고
해서.... 일본에서는 지금도 미도리노히(녹색의 날) 이라고 식목일로 기념 하고 있습니다.
왕웅(김홍일) 이 만들어 폭발 시험까지 한 도시락 폭탄을 투척 하여 상하이 파견군
사령관 시라카와 대장 과 상하이 일본 거류 민단장 가와바다 등을 즉사 시키고...
제 3함대 사령관 노무라 중장, 제9사단장 우에다 중장 에다가....
주중 공사 시게미쓰 등에게 중상 을 입혔던 일대 거사 였습니다.
그 직전에 일본군은 "상하이 사변" 을 일으켜서는 일본군 총사령관
시라카와 대장 은 중국과의 전쟁을 승리 로 이끌었습니다.
윤봉길 은 현장에서 붙잡혀 일본 군법 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은후 일본으로 호송
되어 총살되었으니 가네자와의 노다야마 에 암장되었는데, 궂이 멀리 가네자와
에 끌려가서 총살된 것은 중상을 입은 우에다 중장의 9사단 주둔지 였기 때문이라?
장개석 이 " 중국의 100만 대군 도 하지 못했던 일을 한국의 한 의사 가 능히
하다니 장하다" 라고 할 정도로 이 의거는 이봉창 의거와 더불어
중국 측의 한국 독립 운동에 대한 인식 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댓가를 치뤄야 했으니, 윤봉길의사 폭탄 투척후 일본경찰의 추격을 피해 임시정부는
1932년 상하이에서 도주 하는데 5월 항저우 - 가흥 - 전장 - 장사 - 광저우 - 류저우 를
거쳐 7년후 1939년 3월 장개석의 도움으로 중경에 정착해 한숨을 돌리고 이듬해 광복군
을 창설했으나 재정이 열악하니 끝내 일본군과 전투 한번 치르지 못하고 해방을 맞이합니다!
그러고는 그 다음 사진을 보는 데..... 전함 에 줄지어선 미군 앞에 연미복 차림의
동양인들과 일본군 장교들? 저건 틀림없이 1945년 9월 2일 일본군이
미군등 연합군에게 항복 하기 위해서 전함 미조리함 에 도착하는 그 모습 입니다!
항복식 장소 가 육상이 아니고 하필이면 여기 바다에 떠 있는 협소한 미조리 함
상이냐 하면.... 당시 트루먼 대통령의 고향이 미조리주 라마 이고 또
맥아더 원수의 고향 이 아칸소주 리틀록의 미조리 마을 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연합군은 맥아더 원수 외에 영국, 프랑스, 네델란드,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그리고 중국과 소련 대표가 서명했고....
일본 을 대표해서는 외상 시게미쓰 마모루 와 육군참모총장 우메스 미치로
가 항복 문서에 서명함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이 종료 되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모자를 쓰고 연미복 차림에 지팡이 를 짚고 서있는 저 일본 외상
시게미쓰 마모루 (重光葵) 는 다리가 많이 불편한 것 같은 데....
그도 그럴것이! 1932년 4월 29일 상해 홍구공원에서 천장절 행사에 일본 총영사
자격으로 참석했다가...... 윤봉길 의사가 던진 폭탄에 다리 를 잃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윤봉길 의사 상해 폭탄투척 사진과 2차 대전시 미조리함 석상에서 항복하는 사진이
도대체 왜? 여기 기쓰키 성에 걸려 있는가 하는 의문이 곧 풀리는 것이니....
그건 바로 외상 시게미쓰 마모루의 출생지가 이곳 오이타현 기쓰키 이기 때문 입니다!
또 저 시게미쓰 마모루 는 우리나라 굴지의 재벌 롯데그룹 의 신격호 회장 부인의 외삼촌
이라는 말이 있으니... 신격호씨는 도일하여 다케모리 하츠코 竹森初子 와 결혼하는데
그녀의 아버지는 육군대령으로 사이판에서 전사했고 어머니의 오빠 가 시게미쓰 마모루 라?
저 시게미쓰 마모루 는 도쿄 전범재판 에 회부되어 무기징역 을 받았으니....
미인이었던 부인 은 맥아더 원수 를 찾아가 울면서 감형을 호소 합니다.
맥아더가 차가운 반응 을 보이자 그녀는 시게미쓰가 1941년부터 1945년까지 썼던 일기책
5권 을 꺼내 보이며 외상도 태평양전쟁을 반대 했다고 말해 7년형으로 감형 되었던
것이지요? 영국의 속담에 "미인의 미소는 굳게 잠긴 자물쇠도 열리게" 만든다고 했던가요?
그런데 일본외상 시게미쓰 마모루 외에도 여기 오이타현 출신 유명인사 가 있으니 사회당
의원 으로 일본 총리를 지낸 무라야마 도미이치 인데 그는 1995년 총리 시절에
중의원에서 식민지 지배를 사죄하는 결의 를 통과시킨후 총리 자리를 걸고 내각에서
자민당 출신 국회의원들의 동의 를 거쳐 만장일치로 "무라야마 담화문" 을 발표 했습니다.
오이타현의 어촌에서 어부의 자식으로 태어나 도쿄로 상경해 낮에는 일하고 밤에 도쿄상업
학교 야간부 를 나와 메이지대학에 들어가 학도병 으로 징집된 무라야마 는 태평양전쟁후
오이타현에 사회당 출신 시의원을 시작으로 1972년 국회의원에 당선돼 중의원 8선의원을
지냈는데 1990년 버블 붕괴후 혼란속에서 자민당 고노총재와 연립정권으로 총리 가 됩니다!
2013년 아베 내각이 무라야마 담화를 재검토할 움직임을 보이자 무라야마씨는 아베 내각을
신랄하게 비판 했는데 그는 정치생명을 걸고 사죄담화를 추진했기에 "일본의 양심" 이라
불리는데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친필 서명 사죄편지 를 보낸 첫 총리로 아시아여성기금 을
발족시키기도 했으나 한국은 성에 차지 않은 탓에 그를 공격해 일본우익 좋은일만 시킵니다!
그런데 저 시게미쓰의 전임 으로 진주만 폭격으로 태평양전쟁 개전시 와
1945년 초반 종전 협상 을 담당했던 일본 외상은 도고 시게노리 입니다.
임진왜란 때에 남원 에서 끌려간 도공 들의 우두머리인 박평의의 후손 박수승 이 1886년
일본에 귀화 하니..... 그 아들 박무덕이 개명한 이름이 도고 시게노리 라!!!
두명의 외상은 종전후 함께 극동 군사재판에 회부되어 A급 전범으로 유죄 를 받았습니다.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시게미쓰 마모루 는 맥아더 원수를 만난 부인의 청원 덕에 5년후에는
석방되어 정치를 재개하여 일본 우익 자민당의 뿌리 가 되었고, 도고 시게노리 는
5년후 스가모 감옥에서 옥사 했으니.... 정치하는 자, 미인인 부인 을 두어야 하는 걸까요?
그러고는 계단으로 기쓰키성 의 천수각 상층부 에 올라
창밖으로 썰물로 개펄로 변한 바다 를 내려다 봅니다.
다시 천수각을 내려와 기쓰키성 을 나오는데 여긴 높은 언덕이라 수비를 위해
이렇게 언덕에 축성 했겠지만 덕분에 앞이 탁트이는 전망 이 좋네요?
그러고는 내려오는데 정원에는 많은 비석 들이 세워져 있으니....
얼핏 보아도 메이지 백년기념과 경로기념비 에 효자비와 효녀비 등이 보입니다.
세월이 오래되어 죽은 나무에서 새로운 가지 가 나온지 오래된 기이한 모습의 나무며...
法政大學(법정대학) 창립자 현창비 를 지나 성문을 나서는데, 법정 대학
이라면.... 도쿄에 있는 사립 명문 호세이 ほうせい 대학 을 말하는
것일러나? 그림판에서 사진을 확대해보니 성씨가 金丸 이니 가네마루 라?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니..... 이름이 가네마루 데쓰 로 1880년 도쿄에
도쿄법학사를 설립 했다고 하는데.... 도쿄 이치가야에
있는 호세이 대학 은 현재 학생수가 무려 3만명에 달하는 사립 명문 이라?
가네마루등 설립자들은 파리 대학 교수 보아 소나드의 제자 라고 하니 그런 이들이
메이지 유신기 에 "자유와 진보" 라는 프랑스 법정신 을 들여와서는
군부의 군국주의자들에 맞서서 "민권운동" 을 했던 진취적인 사람들 이었나 보네요?
이제 황토로 벽 을 바른 일본식 전통 목조 기와집 이 늘어서 있는........
고색창연한 무사들의 마을 인 부케야시키(무사 거리) 로 찾아 갑니다.
첫댓글
이 외딴 곳의 작은 성에서
윤봉길 의사를 만날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