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울산광역시 지정 기념물 제4호 처용암으로 갑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아래와 같이 서술되어 있더군요.
세죽마을 앞바다 가운데에 놓여 있는 바위로, 처용랑(處容郞)과 개운포(開雲浦)의 설화와 관련이 있다.
설화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신라 헌강왕이 개운포에서 놀다 돌아가는 길에 갑자기 구름과 안개가 앞을 가려 볼 수 없게 되었다.
일관(日官:삼국시대에 천문관측과 점성을 담당한 관원)이 아뢰기를 동해 용의 조화이니 좋은 일을 행하여
용의 노여움을 푸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왕이 근처에 용을 위한 절을 세우도록 영을 내리니 곧 구름과 안개가 걷히고 해가 나 이곳을 개운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동해의 용은 크게 기뻐하며 바다에서 일곱 아들을 거느리고 춤을 추었는데 그 아들 중 한명인 처용이 왕을 따라 서울인 경주로 가서
미모의 여자를 아내로 맞고 급간(級干)이란 벼슬을 얻어 정사를 도왔다고 한다.
이 때 처용이 바위 밑에서 나왔다고 하여 그가 나온 바위를 가리켜 ‘처용암’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바다 한가운데 바위로 된 돌섬입니다.
주위는 전부 공업 단지라서 그런지 아름다운 경치라고는...
글쎄요. 좀 아쉬움이 많습니다.
전라남도 여수, 순천을 둘러보고 울산 처용암에 도착했을 때에는 어둑 어둑 해가 기울어갔습니다.
구름이 가늘고 길게 늘어져서 아름다움에 빠져 그런대로 고생한 보람이 있습니다.
오늘은 날씨가 너무나 맑아 하늘의 구름도 푸르고 구름은 더욱 하얗게 피어 사진 찍기에는
아주 좋은 날씨인듯합니다.
앞으로 여행은 계속 진행 될겁니다. 살아서 움직이는 한은....
다음은 "부산 광안대교" 올리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시길 빕니다.
첫댓글 그런 설화가.....이런 노을 만나면 다른 일 접어두고 그냥 하염없이 보고만 있고 싶어지지요.
처용무라는 신화가 동백이 그 섬에 있었다. 섬 사람들의 간절함이 그 곳에 있었다. 하잘 것 없는 현대문명앞에 우리는 잃지 말아야 될 문명 조차 잃어 버렸다. 아! 지금도 떠나간 섬 사람들은 한 번씩 그 섬을 생각할까? 마치 여우가 고향을 그리워하듯, 죽을 때 고향을 향해 머리를 두는 여우처럼. 처용무가 파도에 휩쓸려 넘실거리는, 전설이 전설이 되지 못하고 폐설이 되어 떠도는, 한 맺힌 사연을 이 한 장의 사진에서 본다. 공장에서 밤낮없이 피어오르는 하얀 연기가 마치 처용이 밤낯없이 추는 춤의 날개 짓 같다. 누가 그랬던가 한맺힌 사연을 뼈속 깊이 간직한 사람은 남달리 의지가 강해야 한다고...
세심정님. 집이 이쪽이십니까? 저는 해외에서 15년 있다가 귀국한지 3개월이 되어갑니다. 제가 외국에 있을때 다짐했던것 중 하나가 잊혀져가는 우리의 옛것을 다시 한번 둘러보자 라는것이였습니다. 와서 여기 저기 많이 돌아다녀 보았지만 아쉬운점이 많은 것은 너무나 관리를 하지 않아 점점 유실된다는것입니다. 조금이나마 제 글을 읽고 주위분들에게 우리에 것의 중요함을 일깨워 주셨으면 하는 바램에서 글을 올립니다.
저는 문화재답사를 다닌지 올해로 10여년의 경력(?) 이있답니다.우리나라의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잊혀져가는 옛것들속에서 앞으로 살아가야할 방향을 잡습니다.관리의 부재와 관리보다도 보여주기위한 관리를 하는 것에서 느끼는 안타까움이 많습니다.우리것에의 중요함이라는 단어에 마음이 통합니다.
좋은 귀경 참 잘했씀다... 감사 해유
두비님... 참 좋은일 하시는군요. 그냥 아무런 느낌없이 지나치는 일들이 제게는 너무나 죄스럽고 안타까워서 보고 또 보고 합니다. 옛것이 영원히 간직되는것 그게 후손들에게 크나큰 보물이 아닌가 싶네요. 주로 선진국들의 것들은 잘 보관되고 유지가 되어 자랑스럽게 떳떳히 공개하는데... 좀 아쉬움이 있어서 글을 남김니다.
영상이 아름다워요..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고 고요해지네요.. 잘 보고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