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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년 4월 즈음.
훈련이 있기전인 한 두달전부터
완전군장으로 절터 내무반에서 펀치볼 현리까지
구보로 예행 연습을 몇번씩 하곤했다.
행군도 아닌 구보라?
절터 고개를 넘어서는 길은 오히려 쉬운길이다.
고갯마루만 넘어서면 내리막길이니 순풍에 돛을 단듯 쉬이 갈수가 있었다.
반환점을 지나고 만대리 개울가를 지난 지점부터는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몇명씩 생겨났고
이윽고 사격장 근처의 오르막길에서는 꽤 많은수가 낙오되어 가고 있었다.
길 우측엔 도라지 밭이있어서 들어가서 몰래 휴식을 취할 수도없고
좌측길 역시 옥수수 밭이나 감자 밭이라
몸을 숨기며 쉴 수있는 공간이 전혀 없어서
산 꼭대기를 향해 죽어라고 뛰어야 했다.
나 또한 이등병이고 자대 생활 두달이 겨우 지난터라
군기만 잔뜩 들었지 잘 뛰진 못했다.
사력을 다해도 그 고갯길은 도저히 뛰어갈수가 없었다.
아마도 중간쯤에 처진듯하다
내뒤에도 몇명씩은 더 있었으니
주로 행정병들은
많이들 뒤쳐졌다.
그래도 잘뛰는측에 속한 통신병들과
탄취병들은 겨우 중간이상을 달려갔으니 ....
문제는 내무반에서였다.
병장이었고 통신병이었던 그가
평소엔 그렇게 자상할수가 없었다
친구 같았고 동네 형처럼 친근한 선임이었는데
그날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돌변해있었다.
이태종 병장이였다.
이등병은 거들떠 보지도않고 열외시키고
많은 수의 일병과 상병들이 낙오 되었으니
내무반에 들어오는 순서대로
세멘바닥에 원산폭격이다.
뒤이어서 침상아래에 폭탄투하
쥐잡기 등등
내겐 보지도 못한 자대에서의
고참들의 얼차려에 눈이 휘둥그레져 있었다.
군기가 무엇인지
이들이 남기고 가는것이 무엇인지 두눈으로 똑똑히 바라보아야만 했다.
불행중 다행 이라 해야하나
이등병들은 건드리지도 않았으니
이태종 병장은
선임으로서 후임에게 남겨준것은 엄격한 규율이었다.
제각기 다른 보직과
맡은 업무의 특성상
따로 흩어질수밖에 없는 본부중대를 너무도 잘 알고있기에
중대의 단합을 위한 고육지책이었던 것이다.
시기는 잘 기억나진 않지만
그런 훈련을 하던 시절
야간행군으로 대암산을 넘어가기도 했었다.
절터위병소를 지나 9부능선길을 따라가다보면 대암산을 향하는 길이있고
탄약고와 야생 다래나무가 우거진 길을 지나가면 나타나는
그 길가에는 코를 찌르는 야생 더덕의 냄새와
그리고 꽃잎만 하얗게 모습을 드러내던 들국화하며 이름모를 풀들이
어두운 밤길에 지천으로 깔려있어서
여기가 대암산 산길인지 꽃길인지 분간이 안갈정도로 아름다운 정취도 있었다.
어슴푸레 비추어주는 달빛에 의지한채 가던 그 행군길은
마치도 꽃동네에 온듯한 착각을 일으키고
환상적인 자연의 풍경앞에 도취된 나는
그 높은 대암산을 힘든줄도 모르고 쉽게 오르기도 했었다.
행군중이 아니었다면 더덕을 캐고 싶었는데
아직 그 꽃들은 남아있을까?
지금은 어찌 되었을까?
아직은 풀 이파리에 서릿기가 남아있는
서늘한 초봄이고 늦 겨울이 진행중인 상태이다.
마른 억샛잎에는 보드랍고 하얀 설탕가루같은 이슬이 묻혀있고
아침 햇살에 반짝였다.
83년 초봄인 어느날.
RCT와 100키로 행군하던 그 당일날은
밤새 걸었다.
지나간 하루가 아닌
뜬눈으로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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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30년전 겪었던일들을 어쩜 그리 잘 기억하시는지요? 대단합니다 옛 생각하며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저는 증평군번으로 65연대15중대에서 있다가 15중대가 교육대로 바뀌어서 다른곳으로 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기억력이 좋은편은 아닙니다.
이렇게라도 써놓지 않으면 잊혀질것 같네요.
오랜시간이 지나 남는건 사진 몇장과 추억이라서
부족한 글이지만 여러사람들이 회상하는데에 도움이되지 않을까합니다.
78년도부터 방산훈련소가 교육 훈련을 시작하였군요. 도움말에 감사드립니다. 건안하십시요.
오랜세월이 지나다보니 기억이 가물거립니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에 같은 연대에서 군생활 했던 탓에 충분이 공감하면서 잘 읽었습니다. 방산훈련소(5기) 8주간 훈련 마치고, 처음으로 절터에 배치받아 투입전 교육을 받은후 10GOP(달령고개) 근무, 다시 동면 팔랑리로 도솔산으로 대암산으로 GP내 사계청소, 삼청교육대 관리로 세월을 보내다 다시 전방(가칠봉)GOP 근무중 제대를 했습니다. 파란만장한 세월이어서 제대후 얼마동안은 그 곳을 생각하기 조차도 싫었답니다. 세월이 지난 지금은 그곳이 그립기도 해서 처음엔 가족이랑, 그 다음엔 전국연구회 모임을 비롯해서 벌써 3번이나 다녀왔습니다. 우린 2BN니까 진한 인연이 될뻔 했네요.
절터대대에서의 마지막 근무가 83년 초겨울 11월입니다.
그 이후론 절터대대라는 말을 쓰지않았지요.
12사단으로 절터가 넘어가버려서
선배님은 절터의 첫 근무자시고 저는 마지막 근무자네요.
203과 대암산까지 거쳤으면 66연대중에 제일 거칠고 험한지역을 다니신건데
왜 아니 추억들이 없으시겠습니까?
방산훈련소가 78년도부터가 아니라 79년부터일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