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글에서 5월2일이 농협에서 정한 ‘오이·오리데이(day)’라 했는데, 울 님들은 오이나 오리를 많이 드셨나요?
무료 시식코너에서 공짜로 즐겼다는 분에, 가족과 저녁식사를 오리고기 전문점에 가서 오리고기에 오이를 찍어 먹었다는 분도 계시던데...
꼭 무슨 날이 아니더라도, 우리 농산물을 많이 드시면 좋겠어요.
그런데, 우리가 많이 먹는 오리고기 중에 중국산 비율이 높다는데,
공산품ㆍ농산품을 막론하고 중국산 때문에 우리 생산자들께서 피해를 많이 보신다죠?
도시에서 사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국내산이든 외국산이든 값싸게 살 수 있으면 좋다고 할 수 있겠지만,
우리 땅에서 우리나라 사람 식성이나 기호에 맞춰 만들어진 우리제품이 최고일 겁니다.
우선은 우리들의 고향이고, 우리 국민의 정서상 “마음의 뿌리”라고 할 만한 농촌을 살리고 발전하게 해야해요.
70년대 새마을운동 같은 근대화 노력 결과로 우리 농촌의 생활여건이 많이 좋아진 건 사실이지만, 아직도 젊은이들의 농촌이탈 현상이 심각하고 상대적인 소외감과 박탈감을 느끼는 게 사실이지요.
오죽하면, 시골에서 농사짓고 부모님(제게는 장인장모님)과 같이 살던 제 막내처남이 농삿일이 힘들고
장가가기 힘들어 도시로 나왔을려나...?
그런데, 35세인 제 막내처남이 작업(?)을 열심히 하고 있겠지만, 원하는 아가씨를 만나기 힘든 모양이니...(쩝~!)
세상사에서 좋은 남녀간의 만남이 어려운 가봐요.
제 주위에서 공개적으로 찾기도 그렇고...
언젠가는 울산에 사시는 40대에 두 따님을 두셨다는 자매님이 낭군님 감을 찾아달라는 부탁을 제게 하셨었는데, 그 문제도 아직 해결을 못하고 있거든요.
제가 전문적인 중매장이도 아니고, 요즘 많아졌다는 커풀메니저도 아니련만... (ㅠㅠㅠ)
수도성소에서 절대자에게 모든 것을 바치고 봉사와 희생하는 마음으로 거룩한 삶을 살아가시는
가톨릭의 신부님ㆍ수사님ㆍ수녀님, 불교의 비구ㆍ비구니 스님, 원불교의 정녀님 같은 분들이 아닌
평범한 선남선녀(善男善女)들에게야 원하는 짝을 만나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는 게 최고의 소망일겁니다.
어제ㆍ오늘은 잘 나간다는 인기 연예인이 결혼한다는 소식이 계속 있던데, 부디 잘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공인(公人)이라는 연예인들의 파경이나 이혼 소식에 민감하게 되는 건 저만의 생각이 아니겠지요?
사실, 유명인이 아닌 보통의 우리들에게도 20~30여년을 넘게 다른 가정에서 살다가 결혼하여 함께 살게 되면, 처음엔 미처 못 느꼈던 불협화음과 의견충돌도 있을 거여요.
그저 사랑으로 극복하길 바라지만, 어려울 때가 많은 세상이죠.
그래서 이혼율이 높아지는데다, 특히 요즘은 20년이상 살아온 분들의 황혼이혼 까지 급증추세라니...
조금씩 양보하고 이해하며 화합하려는 마음은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로 무촌(無寸)촌이라는 “부부지간(夫婦之間)”에도 우선 필요할 겁니다.
아고 오늘 글도 서론이 길어졌어요. 날마다 죄송하게 되니...(헤헤헤)
사실, 저는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마음 한구석에 슬픔이 많아집니다.
지금으로부터 4년전인 2003년 이맘때 있었던 제 어머님의 사망으로 인한 슬픈 사연 때문이죠.
그동안 제 글을 보아주셨던 분들은 알고 계실 텐데...
저는 부모님의 임종을 지켜드리지 못한 불효자입니다.
자식으로서 맡은 직장과 임무에 최선을 다하려다가 어쩔 수 없이 그랬다고도 하지만,
어쨌거나 20분 차이로 아버님의 마지막 순간을 못 지켜드렸었고,
4년전 이때는 어머님을 “요양 시설”에 모셨다가 불의의 사고로 안타까운 죽음을 당하셨기에 저는 큰 자식으로서 죄책감이 많아요.
더군다나, 차디찬 산속 개울에서 처참한 모습으로 외롭게 돌아가신 제 어머님의 시신조차 1주일 동안을 찾지 못하는 한심스런 일도 있었으니...
저는 어머님이 사고로 돌아가신 지 꼭 4년이 지났는데, 슬프게 돌아가신 어머님의 마지막 모습을 현장에서 직접 보았기에 생생히 기억하는데, 아마, 제 평생 동안 그걸 잊지 못하겠어요.
4년전 요양원을 탈출하신 제 어머님이 깊은 산속 어딘가에서 돌아가셨을 거라 생각하며, 당시 근무하던 부서 동료직원과 요양시설이 위치한 충북 보은군청 직원들과 수색작전을 하여서,
5월 1일 성모 성월을 시작하는 첫날에 마침내 어머님의 시신을 동료직원과 함께 찾았었고,
저는 불쌍하게 돌아가신 모습을 사진 찍어야 했었어요.
“변사사건”으로 출동한 경찰서 형사계 직원이 카메라 조차 준비 않고 오다니...(ㅠㅠㅠ)
그 당시 저와 함께 수색작전을 하다 처음으로 제 어머님 시신을 본 직원은 너무 끔찍한 모습이 생각나 여러 날을 밥을 제대로 못 먹고 구토하고 고생했었지요. (훌쩍~!)
그때 저는 두 무릎을 땅에 꿇고 기도드렸습니다.
“어머님 죄송합니다!!! 여기서 누워 처참하게 돌아가시다니... ”
“주 하느님, 제 어머니를 돌봐주세요!”
저희는 시설에 어머님을 유상(有償) 위탁했다 피해를 당한 유족 입장임에도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 않고 오히려 적반하장을 일삼는 시설측과 소송까지 했었어요.
다시는 그런 불행한 일이 없길 바라고, 변사사건의 진상과 책임은 밝혀져야 한다고 생각했었거든요.
그 시설(개신교 교단소속 교회에서 운영)의 목사와 목사부인인 원장, 그들이 선임한 변호사와 맞서서 당당히 임했어요.
오히려 저는 법정에서도 거짓증언 하느라 양심의 가책을 받았는지, 이목사가 몸을 떠는 걸 보며 불쌍하다고 생각했었는데...
2005년 1월 19일 민사소송사건 판결로 사법부의 판단을 받고 끝난 일이지만, 어느덧 어머님이 돌아가신지
4주년이 되니까 새삼 그때의 슬픔이 다시 생각납니다.
물론, 저는 개신교 운영 시설에서의 그 사건으로 저희가 엄청난 시련과 고통을 겪었었지만,
이제는 4년이 지났고,
치매 같은 장기질환을 겪는 어르신들을 위해 시설에서 고생 많으신 걸 알기에
저희는 그쪽에서 반성하는 모습은 그동안 별로 없었지만, 인간으로 할 수 있는 용서를 하였어요.
가슴에 담아 두고 속 끓여야 저희만 손해니까요.
사법부의 법률적 판단이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우리의 하느님께서 위로해 주시겠죠.
제 어머님께서도 지금 천상교회에서 저희를 위해 기도해 주실 겁니다.
저희는 지상교회에서 돌아가신 분들의 천국 영생을 바라며 기도해 드려야죠.
오늘의 제 글이 정통 기독교(개신교) 교단에서 열심히 목회활동하고 사회복지 사업하시는 분들께 불편하게 해 드린 점은 없나 걱정스러워요.
그렇지만 사실, 양심껏 열심히 희생하며 봉사정신으로 임하시는 분들이 훨씬 많을 겁니다.
저는 지금이라도 그 시설 “OOO”의 이△△목사와 목사 부인인 원장께서 주 하느님 앞에 회개하고
다시는 제 모친과 같은 불행한 죽음이 없게 잘 하길 바랍니다.
지난 4년 동안에 아무런 반성과 사과표현이 없었지만, 이젠 그런 건 바라지도 않아요.
저희가 용서하였는데, 앞으로는 어처구니 없고 환자가족에게 슬픔을 주는 사고가 없기만 원하죠.
제 어머님은 2003년 4월말에 우리나이로 67세로 돌아가셨어요.
한동안 시신을 못 찾다 5월1일에 발견하고 그해 5월3일에 장례식을 치뤘으니 오늘로 꼭 4년이 되었죠.
게다가 너무나 억울하고 안타까운 사고로 인한 처참한 변사사건이었으니...(ㅠㅠㅠ)
2003년 4월말에 돌아가셨다고 했는 데, 사실 제 어머님의 임종이 정확히 언제였나는 아무도 몰라요.
다만, 시신검안 결과로 사망일자와 시간을 추정했을 뿐이죠. 그만큼 안타까운 죽음이었습니다.
제 어머님은 2003년 4월 25일 요양시설을 탈출했다가 그날 자정쯤 운명하셨다 해요.
물론, 그때 돌아가셨을 거라는 추정시간이죠.
깊은 산속에서 홀로 돌아가셨기에 정확한 시각은 아무도 몰라요.
오늘은 5월 3일 입니다.
저는 오늘만큼은 4년전 충북 보은의 깊은 산속에서 유명(幽明)을 달리하신 어머님을 생각하며 근신하며 차분히 보내려해요.
돌아가신 분들 모두를 위해 기도 열심히 해야죠.
조상님이 베풀어 주시는 음덕(蔭德)을 바라서라기보다, 그분들이 이승에서 자식과 후손들을
위해 평생을 고생하셨고 천국에서도 잘되길 기원하신다니
저희처럼 성당에서 미사가 되었든, 예배당에서의 추도예배가 되었든, 우리 고유의 전통방식으로 하는 기제사가 되었든, 형식보다 정성을 다해 조상님을 위해 드리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돌아가신 다음의 제사 보다, 살아계신 생전에 잘해드리는 게 더 좋은 건 말할 것도 없겠구요.
우리 님들도 돌아가신 분들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성당에서든, 예배당에서든, 사찰에서든, 모스크에서든, 그냥 댁에서든...
저는 소설가나 어떤 분들처럼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저 대전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하며 가족을 부양하며 열심히 살고자 애쓰는 평범한 서민입니다.
제가 특별한 글재주는 없지만, 직접 겪었던 제 이야기를 그대로 사실에 충실하게 쓰니까 감동을 준다죠.
얼굴을 모르는 분이 대부분이지만, 제 글을 좋아해 주신다는 분이 많다시니 기쁩니다.
저는 누구에게나 진실은 통하고 옳다고 생각되는 일은 언젠가는 잘 되리라며 희망을 가져요.
물론, 세상사가 모두 자기 뜻대로 되는 건 아니지만요.
이 사회가 여러분들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공동체이기에, 남을 배려하고 인내하는 마음도 필요하겠죠.
사람을 인간(人間)이라고 한자(漢字)로 표현하는 데, 한자 모양처럼 사람(人)은 독불장군이 아니듯 서로 의지해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했지요.
물론, 인간이 이성보다 본능에 의지하는 하등동물과는 다른 동물이겠지만요.
오늘 유난히 길었던 글을 읽어주신 님들께 감사드리며,
앞으로는 저희와 힘들고 어려워하는 모든 이웃들에게도 좋은 일이 많아지시길 기원합니다. 넙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