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타 기쓰키3 - 기쓰키성을 내려와 다시 언덕을 올라 무사거리를 구경하다!
11월 6일 오이타현 북쪽에 있는 나카쓰 中津 에서 기차를 타고 남쪽으로 달려서는
온천 도시 벳푸 못미쳐 기쓰키역 杵築駅 에 내려서 기쓰키성 을 찾아갑니다.
층계 를 올라가며 기쓰키성 내부를 둘러보고는 천수각 상층부에
올라 창밖으로 "썰물로 개펄로 변한 바다" 를 내려다 봅니다.
다시 천수각 을 내려와 기쓰키성 을 나오는데 여긴 높은 언덕 이라 수비를 위해
이렇게 언덕에 축성했겠지만...... 덕분에 앞이 탁트이는 전망 이 좋네요?
성을 내려와 청연신사 를 구경한 후에 옛날에는 해자 였을 강에 걸린 다리 를
지나니 가게가 보이고... 오른쪽 언덕으로 올라가는 긴 계단 이 보입니다.
간조바노사카 계단 을 걸어 올라가노라니 양켠으로 1~2층 짜리 일본 전통
목조기와집 이 보이는데.... 바로 전국 각지에 남아 있는 무사 거리 라!
일본에서는 옛 무사들의 저택 을 부케야시키 武家屋敦(무가옥돈) 라고 부르는데....
이 도시엔 두곳에 무사거리 가 있으니 여긴 北台武家邸宅 (북태무가저택) 이라!
일본에는 가마쿠라, 마쓰모토, 다카야마, 가네자와, 야마가타현의 가쿠노다테, 마쓰야마,
구라시키, 야마구치, 모지코, 우스키, 미야자키현의 오비, 비와호수 나가하마,
아이치현의 이누야마, 사사야마, 후쿠이, 시라카베등 많은 도시에 무사 거리 가 있습니다.
오래된 옛 일본 전통의 가옥 부케야시키 武家屋敦(무가옥돈) 는 목조 기와집
으로..... 대나무 못 을 썼으며 집 주위에는 황토로 된 흙담 을 둘렀습니다.
우선 첫 번째 들른 집 은 300엔의 입장료를 받는 이소야 저택 磯矢邸 인 데...
다다미 방이 열 개쯤 되는데 내부는 정갈하면서도 깔끔 하다는 인상을 줍니다.
큰 가구는 없고 단지 무사복과 칼, 몇가지 소품 에 그림과 꽃꽂이 등 소박한
모습을 구경하고는 정원 을 둘러보니.... 소나무등 분재 가 볼만합니다.
이소야 磯矢邸 저택은 오래전 藩政時代(번정시대) 인 1763년에 지어진 집 으로 1 800년에
화재 로 소실된 후에 1824년에 이르러 복구 되었다고 하는데 센고쿠시대는 물론이고
에도막부 260개 번에 번주와 가신에 사무라이는 대대손손 세습제로 번주 를 모셨습니다.
그런데 사무라이 侍(시) さむらい 는 원래 귀족을 가까이서 모시며 경호하던자 들이라고
하는데 헤이안시대에 무사계급이 발달하여 셋칸케(攝關家)와 잉(院) 등에서 경호 를
위해 무사를 채용하게 되자, 점차 사무라이의 명칭이 무사 일반 을 가리키게 되었습니다.
가마쿠라 막부에서는 낭당(郞黨) 을 거느리고 기승(騎乘)의 자격이 있는 무사 를 일컬었고
형벌도 일반 서민과는 구별 되었다는데, 무로마치(室町)시대에서도 상급무사 를 지칭
했는데 에도(江戶)시대에는 사농공상(士農工商) 신분에서 사(士)에 속하는 자 를 말합니다.
그러나 무가 사회 내부에서는 보다 엄격하게 이 명칭을 사용 하였는데 막신(幕臣) 중
에서는 쇼군가 직속으로 만석 이하 무사인 하타모토(旗本) 를 가리켰으며... 그
아래 가치(徒)와 주겐 (中間 무가의 고용인) 등의 하급 무사와는 구별 하였다고 합니다.
에도 막부시대 260개 제번(諸藩) 의 가신 중에서도 주고쇼(中小姓) 이상의 무사 를 말하며
무사 중에서도 비교적 상층계급을 사무라이 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무가(武家) 를
주군(主君)으로 섬기지 않는 특수한 사무라이로 궁가(宮家)에 봉사하는 미야 사무라이,
(宮侍 궁시) 격이 높은 절 몬제키(門跡) 에 봉사하는 데라 사무라이(寺侍) 등이 있었다네요?
저택을 나와 거리를 걸어서 들어간 곳은 옛 번청 학교 인 데..... 정문인 대문 蕃敎の問
(번교노문) 이 덩그렇게 서 있는 모습을 봅니다. 일본도 1603년 에도막부시대는
통일되어 전쟁이 없는 평화시대 이니... 칼 대신에 유학 으로 나라를 다스린 흔적 입니다!
내부를 둘러보고 나와 골목길 을 걷는데 주민이 우릴 보고 손짓하며
무료 라면서 자기 집을 한번 둘러 보라는데..... 能見邸(능견저) 라?
무사 저택 으로 들어서서 집 내부를 구경한 후에 정원 을 보는데
저 나무들은 전형적인 "분재" 라고 보면 좋을라나?
문득 제주 한경면 에 있는 “생각하는 정원” 이란 식물원 에
적혀있는 “분재는 뿌리를 잘라주지 않으면 죽고....
사람은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빨리 늙는다” 는 글귀가 떠오릅니다.
식물은 화분 속에서도 뿌리 생장 을 계속하는데... 화분과 닿는 부분은
갈색으로 변하며 굳어지고 이런 뿌리는 물과 양분 을
빨아들이지 못하므로 그냥 놔두면 나무는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 것이라!
해서 뿌리를 잘라 주고 주기적으로 분갈이 를 해주면
회춘 하여 수명이 길어지니... 오래 사는 것 입니다!
인간도 낡은 생각을 주기적으로 잘라내야 새롭고 창의적인
생각의 뿌리가 새로 돋아...... 젊어지는 것 이지요!
오래된 고정관념과 아집 을 버리지 못하면 설사 나이가 젊다고 하더래도
생각이 늙어 버리니..... 주위에 사람들이 차츰 떠나가는 것이라!
식물의 가지와 잎 은 사람으로 치면 기득권 내지 잘나가던 시절 의 기억 이니..... 세월이
흐르면 새로운 환경이 주는 스트레스를 이겨내야 새 뿌리와 가지 가 돋아나는 것이라!
탈무드 는 인간의 생애를 7단계 로 나누어 설명하니 “한 살은 임금님 모든 사람들이
비위를 맞춘다. 두 살은 돼지, 진흙탕속을 마구 뒹군다. 열 살은 새끼양,
웃고 떠들고 마음껏 뛰어다닌다. 열여덟살은 말, 다 자라서 힘을 자랑하고 싶어한다.
결혼하면 당나귀, 가정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가야 한다,
중년은 개,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사람들의 호의를 개처럼 구걸 한다.
노년은 원숭이, 어린아이와 똑같아 지지만...... 이제 아무도 관심을 가져
주지 않는다. 개처럼 살다가 원숭이 처럼 늙는 것은 서럽다.
그 서러움은 서운함 이 되고 서운함은 노여움 이 되고 소신은 아집 이 된다.
잘나가던 시절의 생각을 잘라내지 못하니.... 마이크 잡아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고, 말이 많아질수록 주위에 사람은 점점
줄어든다. 해서 “나이를 먹을수록 입은 닫고 지갑은 열라” 고 했을라나?
그러고는 능견저 를 나와 골목길을 걸어 오하라 저택 을 지나......
스야노사카 언덕길 을 내려와 저지대 에 있는 "상인들의 거리" 로 내려섭니다.
첫댓글
무사들의 저택은 간소하면서도
절제된 미를 느끼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