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집을 짓고 계십니까?
(마7:24-27)
<들어가는 말>
순살 아파트에 대해 들어보셨습니까? 아파트 15개 단지 중에 5곳이 이미 입주한 상태입니다. 인천 검단 신축아파트 지하 주차장 붕괴 사건이후 붕괴 원인을 보니 찰근 누락 이 한국토지 주택공사의 다른 아파트 단지에서도 무더기로 확인되었지요. 공법이 달라서 문제없다고 합니다만 참 어이가 없지요. 그곳에 사는 사람들 참 불안하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여러분. 미국이나 유럽의 아파트는 최소 100년 이상 갑니다. 우리나라는 몇 십년도 못 되어 리모델링이나 재건축을 해야 하는 형편입니다. 동경에 있는 임페리얼 호텔에 대하여는 들으셨을 것입니다. 미국의 건축가인 프랭크 라이트라가 건축하였습니다. 그는 호텔의 공사를 맡은 뒤 기초공사를 하는 데만 무려 2년이나 쏟았습니다. 기초공사를 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비용도 두 배 이상 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저렇게 많은 시간과 비용으로 기초공사 하는 것에 대해 낭비라고 비난했습니다. 그는 기초공사에 2년, 나머지 시공에 2년에 걸쳐 이 호텔을 완공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공사는 과잉투자하여 지은 대표적인 경우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호텔이 지어진지 52년이 지난 후 동경에 대지진이(1923년 9월) 발생했습니다. 이 대지진 때 많은 건물과 도로들이 파손되었지만 이 호텔만큼은 하나도 손상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 반석위에 지은 집을 짓는 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1.예수님은 우리의 인생살이를 집을 짓는 것으로 비유하고 계십니다.
두 종류의 집을 짓는 사람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반석위에 인생의 집을 세워가는 사람과 모래위에 인생의 집을 세워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충격적인 것은 겉으로 봐서는 전혀 모릅니다. 하지만 무너지는 집과 무너지지 않는 집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언제 무너지는 것입니까?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올 때 무너지든지 견고하든지 둘 중의 하나의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심리학적 관점에서 “집은 꿈속에서 항상 우리의 의식 상태를 나타내는 하나의 상징입니다. 집이 무너진다는 것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더 이상 지탱하지 못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허무하게 인생을 마치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마태복음 5장 6장 7장의 산상수훈(설교)의 결론에 해당 되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은 산상수훈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적용하고 행하고 나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언급입니다. 그 복음을 듣고서 다만 자신의 지적인 욕구를 만족시키고 순종하지 않는 것에 대한 경고입니다. 그런 모습을 바로 모래 위에 세운 집처럼 크게 무너지는 생생한 묘사를 통해서 교훈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때를 당하여 주님께서 주신 경고를 세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거짓 선지자들의 겉모습에 속아 넘어갈 위험에 대해서 경계를 하기 위해서 주셨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이 겉으로는 양처럼 나오지만 그 속은 이리 같기에 그런 저들을 우리가 잘 분별할 만큼 서있지 못하면 쉽게 속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저들을 외모의 나타난 것을 볼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그 열매로 그들을 알지라’하는 말씀으로 보라는 것입니다. 그들을 판단하는 기준이 그것입니다.
둘째는 ‘주여, 주여’라고 하는 자는 누구든지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에 대한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과 관계없이도 얼마든지 열정을 가지고 행하는 종교적인 활동들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도 자신들이 믿는 바나, 혹은 열정과 열심으로 다른 사람이나 우리 자신을 속이게 되는 위험에 대해서 경고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였나이까 하리니,”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저들에게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나를 떠나가라”라고 단호하게 정죄를 하시고 심판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경고가 바로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지혜로운 사람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믿지 않는 사람에 대한 경고가 아니라 입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는 믿는다고 하는 사람에 대한 경고 입니다.오늘의 셋째 경고는 앞의 두 가지 경고와 서로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거짓 선지자도 참 선지자와 비슷하게 양의 옷을 입고 나타납니다. 둘째의 말씀도 그 사람의 하는 일로 인해서 너무 좋은 신앙을 가진 양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오늘 셋째에도 겉으로 나타난 집의 모양은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비가 오고 홍수가 날 때에 무너지는 것에 의해서 차이가 드러나는데 모래 위에 지은 집은 무너짐이 심하지만, 반석 위에 지은 집은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2 .모래 위에 지은 집과 반석 위에 지은 집의 차이
오늘 본문은 그동안 주님께서 앞서 말씀하신 것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24절에서“그러므로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했습니다. 여기‘그러므로’가 앞에서 하신 말씀을 받고 있습니다. 그 말씀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가지고 살아가느냐 하는 것에 의해서 모래 위에 지은 집과 반석 위에 지은 집의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어리석은 사람의 특성은 26절“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않는 자는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하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모래위에 집을 짓습니다. 모래위에 세우는 집은 금방 지을 수 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하나님의 뜻과는 관계없이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서둘러 쉽게 집을 짓습니다. 집을 지으려고 하신 분의 설계도가 무엇인지 관심이 없습니다. 그는 기초를 어떻게 튼튼하게 세우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빨리 집만을 세우려고 합니다. 그저 자기 생각대로 ‘빨리’지을 뿐입니다.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지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지에 대해서 관심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깊고 바르게 아는 것과 그 말씀을 따라서 살아가는 것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진짜 의와 거룩에 대해서 관심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와 같이 되는데 관심이 없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살아가는데 관심이 없거나 부족합니다.
반면에 지혜로운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진정으로 먼저 지으라고 하신 분의 설계도가 어떻게 지으라고 했는지를 꼼꼼히 살핍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에게 자문도 구하고 예기치 않는 일에도 대비를 합니다. 과연 내가 바르게 집을 짓는지를 다시 점검하고 자기의 느낌이나 감정이나 열정 때문에 일을 그르치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그 사람은 성경에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지 주님께서 무엇이라고 가르치셨는지 어떻게 인도하시는지를 세심하게 살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좀더 깊고 바르게 아는데 그리고 그 말씀을 따라서 살아가는 것, 온통 그것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진짜 의와 거룩에 대해서 관심이 가득합니다. 그는 그리하여 그리스도와 같이 되는데 관심이 많습니다. 산상수훈에서 말씀하신 주님의 뜻대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서 온통 모든 삶을 집중을 합니다. 이런 사람은 참된 그리스도인으로서 자기 자신을 하나님의 말씀 아래로 낮춥니다. 산상수훈에 합당한 사람은 사실 자기 자신을 낮추고 거기에 자신을 굴복시켜 심령이 가난하며 자기의 죄와 이 땅의 불의 때문에 애통하며 자신의 무가치함을 알기에 온유해 지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는 심령이 가난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받습니다. 애통하여 위로를 받습니다. 온유하여 땅을 유업으로 받습니다. 긍휼히 여김을 받습니다. 이 모든 것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일평생 하나님께 구하고 받고 살아 나가는 것입니다. 그는 단지 죄를 용서받고 지옥을 피하여 천국에 가기만을 원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는 거룩을 바라고 애쓰는 사람이며 오로지 관심은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과 영광이 존귀하게 되고 온 세상에 퍼지는 것입니다. 그는 절대로 하나님처럼 완전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완전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실 수 있는 성령을 의지하여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산상수훈의 가르침이요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3. ‘비’와‘ 바람‘ ‘홍수’의 의미
비가 내리고 홍수가 지는 것들이 마지막 날 심판의 때 한번 만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비나 바람은 마지막 때만 오는 것이 아니라 자주 오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여기서 비나 바람은 무엇을 뜻할까요? 또 비나 바람만 오는 것이 아닙니다. 갑자기 홍수도 임하여 집을 무너지게 합니다. 때로는 질병이나 손해, 혹은 삶에서 갑자기 당하는 시련 같은 것일 것입니다. 욥처럼 갑자기 그런 사단의 시험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의지하던 것이 갑자기 무너져 내립니다. 가장 신뢰하는 다른 사람에게 배반의 상처를 입는다든지, 혹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슬픔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이런 시련과 환난과 고통은 우리들 모두에게 여러 가지 형태로 가정이나 우리 개인에게 찾아 올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삶에서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싫든 좋든, 우리가 참된 신자든 거짓 신자든, 세상이 우리의 집을 거칠게 몰아칩니다. 엄청난 홍수와 같이 몰려듭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다 집을 짓고 있다면 세상에 속한 것들이 교묘하게 스며듭니다. 그러므로 반석위에 지은 집이냐? 아니면 모래 위에 지은 집이냐 하는 것은 결국은 예수님의 지금까지 가르치신 말씀을 듣고서 그 말씀에 얼마나 순종을 하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이 산상수훈에서 가르친 복음의 토대 위에 자신의 믿음의 삶을 세우느냐 세우지 않느냐에 따라서 영원히 무너지지 않을 영생의 나라 천국을 유업으로 얻을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잠깐 땅 위에서 살다가 세상과 함께 불타 없어지고 아무것도 남지 않을 허망한 삶을 살것인지가 결정된다는 말씀입니다. 반석 위에 집을 지었다는 것은 주님께서 주신 말씀을 사랑하고 순종하여 감으로 생명이 장성해서 그리스도적인 모양과 행동을 만들어 놓았다는 말입니다.
4. 내가 반석 위에 서 있는가 아닌가를 알 수 있는 기준
첫째, 자기 자신이 어떤 위기에서 흔들리지 않고 서있는 사람인가 아닌가를 보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예수 믿는 진리 때문에 환난이나 핍박이 온다든지, 그런 것이 마치 홍수같이 덤빌 수도 있습니다. 보통으로 오는 것이 아니고 홍수같이 막 덤벼서 어디로 빠져나갈 틈이 없이 덮칠 수 있습니다. 보지 못했고, 들어보지도 못한 아주 괴이한 사상이 바람과 같이 여기서 불고 저기서 불어 닥쳐옵니다. 그래서 나에게 이렇게 속삭이고 저렇게 속삭여서 이것이 살길이라고 할 때 내가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가 반석에 서 있느냐 모래 위에 서 있느냐의 판단 기준입니다. 그런 위기 앞에서도 오히려 더 명확한 판단을 가지고 분별하고 든든히 서서 대처하고 흔들리지 않고 가르침대로 서서 나가면 자신이 반석 위에 서 있는 것입니다.
둘째, 자기가 평소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어떤 태도로 듣느냐도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자기의 머리로만 수긍하는 정도인지 아니면 자기의 전인격적인 생활에 변화를 가져오는지가 중요합니다. 언제 한번에 주님의 뜻을 다 행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생활과 삶 전체의 성격이 늘 주의 말씀을 들으면서 행하고 살아간다는 세계 가운데 들어와 있는가 그렇지 않느냐가 중요한 판단의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다음에 즉 지적으로 안 다음에 그것이 우리의 인격 전체에 미쳐서 생활로 나타나야 합니다. 그럴 때 반석위에 집을 세운 사람같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셋째는, 그리스도의 생명이 자기 안에서 자라서 어떤 현실적인 문제 앞에서 흔들리지 않고 주님만을 의지하는 믿음의 형태를 취합니다. 그것이 반석위에 세워진 집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이 땅에 사는 동안 별스런 일을 다 겪으면서 사는 것입니다. 사업이 망하기도 하고, 사랑하는 가족이 죽기도 하고, 자식들이 반항하고 거역하고 사고를 치기도 하고, 또 실패를 하기도 하고, 때로는 고치지 못할 병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 위기 앞에서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나를 여전히 사랑하심과 주님의 언약을 믿습니다.
산상보훈은 이 세상에서 두 가지 길 밖에 없다는 것을 제시합니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 나라에서 끝나는 길과 멸망에서 끝나는 길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산상수훈의 마지막 결론은 이렇게 말씀합니다.“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반석위에 지은 사람과 같다”고 하므로 자신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반석위에 인생을 세웁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