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명순 시인의 첫 시집 출간을 축하하며
고명순 시인은 1958년 8월 그믐날, 전남 구례군 간전면 수평리 347번지에서 5남매 중 장녀로 태어났다. 부잣집 8대손으로 태어난 그녀는 4대가 사는 대가족 속에서 자라났다. 어릴 때는 친척들이 서로 서로 그녀를 안으려 해서 아예 발을 땅에 디뎌보지 못한 채 컸다고 한다.
일곱 살 때 천자문을 떼었다는 아버지, 읍내 향교에서 제사를 모시며 유교사상으로 무장한 아버지 밑에서 고등학교 시절까지 한자와 공자 사상을 배우기도 했다. 그 덕분에 얌전하고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라고 칭찬 받으며 자랐다. 대학 시험을 본 뒤 결과를 기다리던 중에 우연히 양재학원을 들러 석 달 동안 공부했는데, 너무나 재미있고 좋아서, 아예 학원에 살다시피 하며 재단법을 익혔다. 대학은 언제든 갈 수 있다 여겨 저지른 결단이었다. 결혼하자마자 광주 충장로에서 부띠끄를 개업하였는데, 이게 그만 평생 직업이 되어 버려, 지금까지 40년째 옷을 디자인하며 살아가고 있다.
"옷을 디자인하는 일은 시 창작과 같다. 늘 이런 생각을 했어요."
그녀는 시를 쓰고 싶어, 방송통신대학 국어국문학과에 들어가 공부했으며, 졸업 후에는 시낭송 공부를 하였다. 더불어 2008년 1월부터는 [한실문예창작](지도 교수 박덕은)에 등록하여 다니다가 8개월 만에 첫 시 [반달]을 썼고, 이후 수십 편의 시를 창작하게 되었다. "진주 패션"과 "시 창작"을 겸하면서, 지속적인 문학 활동을 하여, 요즘에는 대한민국 예술인으로, 광주문인협회 이사, 광주시인협회 이사로서 바쁘게 여생을 보내고 있다. 내친김에 조선대학교 경영대학원에 들어가 공부했으며, 수료한 뒤에는 광주시 평생교육원 교육나눔강사로 광주 정신과 광주 문화예술을 강의하러 다니고 있다. 또한, 시간 날 때마다 자격증을 땄다. 시낭송 교육사, 효 지도사, 인성교육 지도사, 심리상담사 등등 서른 개가량 자격증을 따는 열정을 보이기도 했다. 성경대학까지 수료한 그녀는 지금도 중앙지 신문과 지방지 신문을 빠짐없이 꾸준히 구독하는 열정을 이어가고 있다.
그동안 수상한 문학상으로는, 빛창 문학상, 이준열사 문학상 등이 있다.
38세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처음 울어 보았다는 고명순 시인!
식구들과 친지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만큼, 항상 밝게 살아가면서, 세상에서 가장 복 많이 받은 여자라는 자부심으로, 늘 감사 기도를 하며 살고 있다고 당당히 말하는 고명순 시인!
자, 지금부터 그녀의 시 세계 속으로 탐색 여행을 떠나보도록 하자.
손님이
문 두드려
함께 놀자 한다
소금으로
혀 닦으랬는데
안 닦았지
자꾸
훌쩍임이
혼낸다
주문 외우며
혀를 닦아 본다
혀가 힘껏 도망친다
늘 그랬듯
제멋대로 살고파
깨끗해지기 싫단다
뱀 혀처럼
낼름거리며
저리 놀려대고 있다.
- [감기]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감기에 걸려 있는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다. 감기에는 몸의 감기와 마음의 감기가 있다. 이 시는 두 감기를 모두 포함하고 있어 신선하다. 몸의 감기는 코나 목구멍, 기관지 등의 호흡기 계통에 생기는 질병을 말한다. 마음의 감기는 우울증을 말한다. 마음의 감기인 우울증에 걸리면 문 두드리며 함께 어울리자는 소리에도 나가지 않는다. 제 마음의 뒷문으로만 들락거리며 적막의 공간 속으로 들어간다. 문밖의 환한 소리가 방안으로 들어오지 않게 덧문까지 걸어 잠근다. 컴컴한 그 안에서만 몸을 웅크리고 있다. 덩치가 큰 우울감이 자신을 짓밟고 깔보고 비아냥거려도 반항하지 못한다. 목구멍까지 차오른 무기력함에 입을 열지 못하고 눈물만 흘린다. 시적 화자는 그 아픈 마음을 '소금으로/ 혀 닦으랬는데/ 안 닦았지// 자꾸/ 훌쩍임이/ 혼낸다'고 말하고 있다. 우울증으로 빠져들지 않게 희망이라는 소금으로 혀와 하루를 닦아야 하는데 닦지 못했다. 희망으로 하루의 혀를 닦고 관계의 혀를 닦고 미래의 혀를 닦아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다. 혀를 닦지 않았으니 훌쩍임이라는 우울증이 시적 화자를 혼내고 있다. 아이러니한 표현 기법으로 다가간 '훌쩍임이/ 혼낸다'라는 말이 재밌다. 한때 우울증으로 고생했지만 우울증에서 벗어나 마음의 감기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내놓은 이 시가 멋지다. 감기를 의인화하여, 재미난 시적 형상화를 이뤄내 놓고 있다. 해학적 관찰이 독자의 눈길을 끈다. 그리하여, 인간의 다채로운 감성, 그 한 면을 포착해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
집모퉁이 숫눈처럼
한 계절 이렇게
외로우면 되는 것을
외발로 선 왜가리처럼
먼 하늘빛 바라보며
기다리면 되는 것을
작은 연못의 붕어처럼
얼음 속에서도 하루 하루
견뎌내면 되는 것을
시린 밤하늘 별처럼
그날 그 사람 추억하며
잠 못 들면 되는 것을.
- [겨울밤]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겨울밤을 내면의 세계와 오버랩시키면서 시적 형상화해 놓고 있다. 가지마다 잎 많던 계절이 툭 잘려나가 겨울밤은 쓸쓸해 잠 못 든다. 꽃잎 같은 눈망울을 지우고 잎사귀 같은 귀도 지운 겨울밤은 외롭기 그지없다. 하지만 시적 화자는 그저 덤덤히 '한 계절 이렇게/ 외로우면 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깊어 가는 겨울밤처럼 시적 화자의 성숙한 모습이 보기 좋다. 슬플 때는 슬프면 되는 것을, 아플 때는 아프면 되는 것을, 우리는 왜 슬플 때 안 슬픈 척, 아플 때 안 아픈 척하느라 애를 썼던 것일까. 슬픔에 빠져 일어나지 못하고 영영 주저앉을까 봐 두려워서 그랬던 것일까. 이 시는 외로우면 겨울밤처럼 외로워하라고 말하고 있다. 맞다. 충분히 외로워하고 아파하면 일어설 수 있다. 겨울밤이 지나면 봄날이 오듯이 아픔의 끝에 생의 봄날이 기다리고 있다.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겨울밤의 선택이 멋지다. 우리는 우리의 감정을 사회가 요구하는 일정한 틀에 맞출 필요가 없다. 외로움 깊어 가는 겨울밤을 수다쟁이 여름밤의 틀에 억지로 끼워 맞출 필요는 없다. 감정의 질감에 따라 내 속도로 내 발걸음을 내디디면 된다. 아파서 질척거린 감정을 매끈하고 나긋나긋한 웃음의 틀에 끼워 맞출 필요는 없다.
집모퉁이 숫눈처럼 외로운 겨울밤, 먼 하늘빛 바라보며 한없이 기다리는 외발로 선 왜가리 같은 겨울밤, 작은 연못의 붕어가 하루 하루 견뎌내는 얼음 속 같은 겨울밤, 그날 그 사람 추억하며 잠 못 드는 시린 밤하늘 별 같은 겨울밤. 그 겨울밤이 피부로 느껴진다. 고독에 휩싸여 있는 겨울밤을 어쩜 이리도 선명히 그려낼 수 있단 말인가. 시의 이미지가 왜 그리 소중한지 알 것 같다. 시의 이미지와 함께하는 시심은 이렇듯 독자들을 촉촉이 감동시킨다.
살아 있어
오늘도
등짐 짊어지고 걷는다
평생 쉬지 않고
걸어 왔지만
짐 부릴 곳 없다
때론
푹신한 풀숲에 앉아
몸 가벼워지기도 했고
여행 중
아름다운 풍경 즐기며
일상을 잊은 적도 있었다
목적지에 거의 다 왔을 때도
짐 내려놓지 못하고
다시 걸었다
그 걸음 멈출 수 없어
오늘도 한 발 한 발
앞만 보며 걷고 있다.
- [달팽이]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달팽이를 의인화시켜 함께하고 있다. 마치 자신의 인생길을 되돌아보고 있는 듯하다. 달팽이는 제 생의 짐 한 보따리를 지고 간다. 휘청거려 쿵쿵거릴 법도 한데 제 발걸음 소리조차 지고 가는지 묵묵히 소리도 없이 제 길을 간다. 여름 한 철을 걸어 개울가에 도착하는 그 느릿느릿한 걸음. 그 느린 걸음으로 세상이라는 그늘을 헤쳐나가며 간다. 바람의 손끝만 닿아도 부서질 듯 여린 것들, 저 여린 몸으로 어제를 걷고 오늘을 걷고 또 내일을 걸어갈 것이다. 무슨 아픔이 그리도 많아 흐느적거리며 걷는 그 걸음 뒤에 울음처럼 끈적이는 것들이 있는 것일까. 생의 끝자락 앞에서도 짐을 내려놓지 못한 저 슬픈 운명이 마치 우리의 인생길 같기도 하다. 사는 동안 늘 등짐 짊어지고 살아가는 달팽이. 평생 쉬지 않고 걷지만, 그 어디에도 짐 부릴 곳이 없다. 간혹 풀숲에 앉아 쉬기도 하지만, 또 아름다운 풍경 즐기며 일상을 잊은 적도 있지만, 목적지에 거의 다 왔는데도, 짐을 내려놓지 못한 채 다시 걸어야 한다. 그 걸음 멈출 수 없다. 그저 한 발 한 발 앞만 보며 걷고 있는 달팽이, 남 같지 않다. 마치 자신의 일생을 보는 것 같아 마음 아파하는 시적 화자, 이를 내려다보는 독자 또한 마음이 아프다. 왜 이토록 우리 인생은 짐만 지고 가는 걸까. 홀가분히 짐 내려놓고, 인생을 즐길 수는 없는 걸까. 여러 생각에 잠기게 하는 시라서, 좋다.
아직 이름 없어
일어서지 못한 당신
수십년 지나면서
여러 번 바뀌었지만
진실된 이름 아직 새기지 못했다
오른손과 왼손
힘센 자와 힘없는 자의 다툼도
꼭두각시가 만들어 놓았지
화 이기지 못해
늘 뭍으로 자해하는 바다처럼
답답한 가슴 억누른 채
몸부림치며 누워 있는 당신
죄 없이 걸어간 길
살고 싶어 걸어간 길
시리게 백골로 누운
그 이름들 죄다 일어나
이제는 외치렴
순백의 가슴에
다시는 아프지 않을 그 이름 새기고
이제는 벌떡 일어나
서로 손 맞잡으렴.
- [백비]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백비에게 속엣말을 내뱉고 있다. 제주 4·3평화기념관에 가면 길이 3m, 폭 90㎝, 높이 50㎝의 하얀 비석 하나가 덩그러니 누워 있다. 비석에 새겨진 글자 하나 없이 누워 있다. 이 비석이 백비(白碑)로 불린다. '백비(白碑)'는 어떤 까닭이 있어 비문을 새기지 못한 비석이라는 뜻이다. 제주 4·3은 여전히 올바른 역사적 이름을 얻지 못하고 있다. 제주 4·3은 어떤 시각과 입장에서 다가가느냐에 따라 사건, 항쟁, 폭동, 봉기, 사태, 학살 등으로 저마다 다른 이름으로 불리워진다. 제주 4·3은 서로의 입장이 좁혀지지 않는 비극적인 현실 때문에 여전히 이름 짓지 못한 역사로 남아 있다. 그 한 많은 아픔이 백비에 서려 있다. 죽어서도 제 이름이 없어 슬픈 백비. 총소리를 뒤로 한 아이의 울음이 달빛을 채워도 죽은 어미는 살아 돌아오지 않았던 제주 4·3의 아픔. 숱한 울음이 파도소리에 터를 잡고 울부짖어도 제주 4·3의 아픔은 치유되지 않아 오늘도 여전히 아프다. 수십 년 동안 진실된 이름 하나 새기지 못한 당신, 답답한 가슴 억누른 채 몸부림치며 누워 있는 당신, 이제는 외치렴, 죄 없이 걸어간 길, 살고 싶어 걸어간 길, 시리게 백골로 누운 그 이름들 모두 일어나 외치렴, 그리고 순백의 가슴에 다시는 아프지 않을 그 이름을 새기렴, 이제는 벌떡 일어나 서로 손 맞잡으렴. 시적 화자의 마음이 제주 4·3의 아픔을 대변하고 있어 가슴이 아프다. 이제는 제주 4·3의 아픔이 치유되어 올바른 역사적 이름을 가져야 한다.
다시 시작하라고 울려 주는
먼 여정을 위한
사랑의 종소리
달음박질한 일상에게
더 오래 가야 한다고
응원하는 깃발
절망이 아니라
열정의 새옷을 입혀 주는
영혼의 울림.
- [빨간 신호등]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빨간 신호등을 새롭게 해석하고 있다. 즉, 낯설게 하기에 도전하여 성공을 거두고 있다. 그렇다, 빨간 신호등이 위험의 의미만이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기도 한다. 먼 여정을 위한 사랑의 종소리일 수도 있다. 빨간 신호등이 켜지면 우리는 가던 길을 멈추어야 한다. 멈춰 서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다시 점검해야 한다. 걸음을 멈추지 않고 횡단보도 같은 그 삶의 길을 건너면 좁고 어두운 바닥에서 날뛰는 속도에 붙잡혀 영영 헤어나오지 못할 수 있다. 아픔의 한복판으로 압송될 수 있으니, 먼 여정을 위해 빨간 신호등이 켜지면 걸음을 멈추고 다시 시작하는 기다림을 노래해야 한다. 시적 화자는 그 노래를 '먼 여정을 위한/사랑의 종소리'라고 말하고 있다. 뚜뚜뚜뚜 은은히 뜨겁게 먼 여정까지 번지는 사랑의 종소리가 빨간 신호등이라고 말하고 있다. 시는 이렇듯 새로운 해석학을 내놓아야 한다. 또, 빨간 신호등은 달음박질 인생, 달음박질 일상, 달음박질 인생관에게 더 오래 가도록 코치하는 응원의 깃발이란다. 멈추지 않고 달리다 보면 삶의 무릎뼈에 금이 가 어느 순간 주저앉을 수 있으니 쉬었다 가라는 뜻이다. 멈춰 서서 잠시 봄의 단추를 채우는 민들레 꽃단추에 눈맞춤을 하라는 뜻이다. 그래야 더 오래 더 멀리 갈 수 있다. 그리고 빨간 신호등은 절망의 멈춤이 아니라, 열정의 새옷을 입혀 주는 영혼의 울림이라고 말한다. 새롭게 해석하기, 낯설게 하기가 빛을 발하고 있어, 멋스럽다. 이렇듯 시는 사물에 대한 새로운 해석, 인생에 대한 낯설게 하기가 생명이다. 특히 유럽에서 사랑 받는 낯설게 하기를 시 속에 다채롭게 펼쳐내는 시인의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먼지투성이 된
하루를 돌린다
철썩철썩
옷자락에 박힌
상처도 돌린다
철썩철썩
어긋나 비뚤어진
교만도 돌린다
철썩철썩
부딪히며 할퀴어진
영혼도 돌린다
철썩철썩
순수가 환히
웃을 때까지
철썩철썩.
- [세탁기]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세탁기를 바라보며 세탁기만의 독특한 세계를 포착하고 있다. 걸어왔던 시간을 몽땅 벗어 세탁기에 넣는다. 시간 속에서 얽힌 갈등 풀기 위해 세탁세제를 넣는다.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다시 손때 묻은 시간 속으로 끌려갈 수 있다며 콸콸콸콸 폭포수 같은 물을 쏟고 있다. 상처가 깊어 거품을 일으키는 하루가 치열하다. 밀어붙이고 치대며 소용돌이치는 세탁기 속의 소리가 시적 화자를 깨우고 있다. 먼지투성이 된 하루를 돌리기 위해 철썩철썩, 옷자락에 박힌 상처 돌리기 위해 철썩철썩, 어긋나 비뚤어진 교만도 돌리기 위해 철썩철썩. 철썩철썩이라는 의성어를 의도적으로 반복 배치한 점이 눈길을 끈다. 그 어떤 깨달음에 이를 때까지 내리치는 죽비 소리 같기도 해 멋지다. 철썩철썩, 그 죽비 소리의 목적 의식이 뚜렷하다. 순수가 환히 웃을 때까지 철썩철썩. 역경의 연속이지만, 시련의 반복이지만, 그게 아무런 의미가 없이 시간만 허비하는 게 아니다. 시간이 지나, 어느 정도 세월이 지나면, 그 역경, 그 시련은 놀랍게도 지나가고, 드디어 순수가 환히 웃는 그날이 다가온다. 수행자의 시간 같기도 한 세탁기의 죽비 소리, 그 철썩철썩이 멋지다.
흙으로 돌아가기 위한 연습이
희나리처럼 꿈틀거리고 있다
말라 비틀어진 추억
살며시 쓰다듬으면
약간의 온기가 입혀지고
실오라기만 한
미소라도 찾을라치면
어느새 몸뚱이가 지쳐 있다
질긴 젖줄기만 남아
불사를 날 기다리는 옛 청춘이여
어디로 가는지나 알면서 걷는지
여기가 어디쯤인 줄 알고나 웃는지
가시려는 발걸음에 꽃 한아름 뿌려 보지만
닿자마자 시들고 마는 마른 땅이 누워 있다.
- [요양원에서]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요양원에서 관찰한 바를 시적 형상화해 놓고 있다. 흙으로 돌아가기 위한 연습, 그 죽음도 연습이 필요한 법일까. 맞다. 연습이 필요하다. 삶을 내려놓는 연습을 해야 죽음을 맞이하는 마음이 무겁지 않을 것이다. 말라 비틀어진 추억을 쓰다듬으면, 약간의 온기가 입혀지며 가장 소중했던 것들이 무엇인지 더 뚜렷해진다. 자신이 떠날 빈집 같은 세상에서 삶을 붙들었던 생의 기원 같은 소중한 것들이 무엇인지 더 뚜렷해진다. 그 소중한 것들이 있기에 서천으로 저물어 가는 그 시간이 아쉽고 소중한 법이다. 가장 소중했던 사랑, 그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 마음을 모았던 이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을 것이다. 당신이 함께해 주지 않았다면 생의 꽃은 피지 못했을 것이라고. 그 마음을 전하면서 삶을 내려놓고 어느새 생을 붙들었던 몸뚱이는 지쳐 흙으로 돌아가는 길에 가까이 다가갈 것이다. 참 많이 쓸쓸하다. 누구나 한 번은 그 길을 가야 하지만 거부하고 싶은 길. 하지만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길. 시적 화자는 이 시를 통해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삶을 내려놓고, 청춘을 내려놓고, 사랑을 내려놓는, 그 길을 언젠가는 가야 하니까 더 뜨겁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일까. 요양원은 그 어떠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곧장 시들고 마는 마른 땅과 같은 곳이다. 거기 요양원에서 지내는 노인들, 그 모습에서 진한 슬픔과 아픔이 느껴진다. 이 땅의 모든 노년들이 겪어야 할 아픔이 아닐까. 이를 절제된 자세로 시심의 세계를 이미지와 상징으로 잘 그려내고 있다.
자르기를
밥 먹듯 하지만
오늘도 자를 수 없는 것들이
줄줄이 줄을 선다
툭 잘라 버리면
다시 이을 수 없을 거 같은 인연
두리뭉실 자르다 보면
뭐가 뭔지 알 수 없고
쓸데없는 근심
다 잘라내지 못해 살이 되어 붙어 있다
확실히 자르지 못해
뒤돌아서면 다시 등 두드려 세우고
순간 싹둑 잘라 버렸던
그 아픈 마음까지
아무리 가위가 잘 들어도
도무지 자를 수 없는 것들이
내게는 너무나 많다.
- [재단사의 고백]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재단사의 일상을 관찰하고 있다. 자르기가 본업이지만, 간혹 자를 수 없는 것들이 줄 서 있다. 툭 잘라 버리면 다시 이을 수 없을 것 같은 인연이어서, 두리뭉실 자른다. 인연을 끊는다는 것은 그만큼 어렵다. 어떤 인연은 비수처럼 꽂히는 아픔으로 가슴 밑바닥이 탁하고 시끄럽다. 인연을 이어 가며 마음 보듬는 일이 어디 쉽겠냐만은 인연을 끊는다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마음의 천들이 너덜너덜해져도 버릴 수 없는 인연이 있다. 부부라는 인연, 부모와 자식간이라는 인연, 형제자매라는 인연,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욱 그렇다. 그 아픈 인연들로 인해 가슴에 박히는 돌덩이가 쌓여 가도 빼낼 수 없어 힘들다. 수천 번 울음에 젖고 젖어도 어느 날 다시 마르면서 뽀송뽀송한 인연으로 탈바꿈하기도 하기에 그 인연을 정리하기란 만만치 않을 것이다. 재단사는 싹둑 잘라 버렸던 아픈 마음까지 떠올리며 도무지 자를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함을 강조하고 있다. 이렇듯 마음의 옷감을 자신의 치수에 맞게 재단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고 고백하고 있다. 가윗날이 스치는 아픔을 견디며 감정의 이음새까지 잘라 버려야 하기에 인간관계를 재단하고 내 마음을 재단하는 일은 도무지 어렵다. 평이한 구조 속에 인생의 의미를 담고 있어, 마음이 쏠린다. 재단사의 시야로 인생을 해석할 수 있어서, 이런 시가 나오지 않았을까. 신선한 해석, 새로운 해석이 가미된 시, 이런 시는 독자의 사랑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눈 속에 피어나
붉은 열정 태우다
못다 이룬 사랑
벼랑에 뛰어내린
정절처럼
통꽃으로 떨어져
지켜보던
시누대가 몸 부비며
울고 있고
바위 보듬은
파도 소리도
목이 쉬고.
- [오동도]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겨울 속의 오동도를 그려놓고 있다. 거기 피어난 동백꽃이 통꽃으로 떨어져 내린다. 못다 이룬 사랑, 정절 등이 느껴져 더욱 서글프다. 작은 섬 오동도 같은 그리움에 갇혀 동백꽃처럼 붉은 사랑 다 이루지 못해 끝내 투신하는 울음. 벼랑까지 올라간 아픔이 비틀거려 통꽃으로 떨어졌나, 뜨겁게 타오르는 붉은 사랑에 제 속이 타들어가는 줄도 모르고 끝내 통꽃으로 떨어졌나, 그리운 님은 어디에도 없는데 울다가 울다가 지쳐 통꽃으로 떨어졌나, 어쩌자고 섬처럼 허허로운 사랑에 몸을 던져 끝내 통꽃으로 떨어졌나. 곁을 지킨 시누대도 몸 부비며 울고 있고, 바위 보듬은 파도 소리도 목이 쉬도록 울고 있다. 텅 비어 버린 겨울의 오동도가 이미지 구현으로 더욱 빛을 발한다. 시의 옷에 이미지와 점층법을 가미시키니, 시가 더욱 생기가 돌고, 활기를 띤다. 이미지와 점층법으로 시의 깊이와 너비를 훨씬 넓힐 수 있음을 여실히 입증해 주고 있다.
오늘도 끼니를 때우려고
사냥을 나간다
시장 구석구석 눈 번뜩여
사냥감을 찾는다
귀퉁이에 숨은 먹잇감에
눈빛 작살을 꽂는다
남의 살을 먹으며
웃음꽃 핀 식탁을 위해
끝없이 갈망하는
허가 받은 사냥꾼.
- [주부]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주부와 사냥꾼을 메타포로 처리하고 있다. 주부를 허가 받은 사냥꾼으로 해석한 새로운 시도가 멋지다. 주부들의 사냥터는 늘 치열해 100원의 가격 차이에도 예민하게 반응한다. 싱싱하고 팔딱거리는 멋잇감을 포획하기 위해 발품을 팔고 시간을 들인다. 누구보다 발 빠른 사냥꾼이기에 알차고 짜릿한 정보에 귀를 연다. 가족을 위해서 건강한 먹거리를 위해서 마음을 모으기에 조준하는 것마다 명중이다. 어쩌면 전생에 진짜 사냥꾼이었을지도 모를 주부들은 파장을 앞둔 시간에 떨이로 나오는 식재료를 결코 놓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지상의 모든 주부들의 사냥은 건강하고 유쾌하다. 그 유쾌한 사냥 덕에 가족의 건강과 웃음은 더욱 커져 간다. 이 시에서 주부는 사냥꾼이 되어 시장 구석 구석을 다니며 눈 번뜩여 사냥감을 찾아 헤맨다. 어느 순간 시장 귀퉁이에 숨어 있는 먹잇감 하나를 찾는다. 거기에 눈빛 작살을 꽂는다. 이 모든 게 웃음꽃 핀 식탁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끝없이 갈망하는 사냥꾼, 그것도 허가 받은 우리 시대의 사냥꾼이 되어, 시장에서 사냥감을 구한다. 낯설게 하기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똑같은 사물도 이렇게 새롭게 해석하면, 신선하고 재미있고 감칠맛이 난다. 시에서 어째서 낯설게 하기, 새로운 해석이 강조되는지 잘 알 것 같다.
천근만근
몸무게가
질질 끌려 간다
살아 있음에 대하여
최소한 예의 지킨 발걸음
돌아보지 않고 걷는다
빨강 신호등이
활활 타는 가슴 열어 보이며
손 맞잡고 안아 준다
종종거리던 하루
잊혀졌던 미소가
살포시 눈뜨면
찬밥 한 술에
처진 어깨 눕힐 곳으로
터덕터덕
파랑 신호등 달려와
등 어루만지며
토닥토닥 밀어 주고
서산에 걸린 초승달
굽은 등의 그림자
살며시 돌아선다.
- [퇴근길]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퇴근길의 모습을 리얼하게 그려놓고 있다. 이 시는 '천근만근/몸무게가/질질 끌려 간'다며 시의 문을 열고 있다. 어떤 무게가 질질 끌려 간다는 것일까. 새벽부터 채찍을 휘두르는 출근을 위해 졸음을 털고 일어난 하루라는 무게, 지하철과 버스를 번갈아 타며 허둥대며 살아낸 서러움의 무게, 사표를 쓰고 싶어도 내일을 위해 참을 수밖에 없는 슬픔의 무게, 폭언과 비난을 뚫고 버텨낸 아픔의 무게일 것이다. 살아 있음에 대하여 최소한의 예의를 지킨 발걸음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걸어간다. 뒤를 돌아보면 너무 아파 내일은 그 길을 갈 수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일까. 얼음과 눈보라로 짜올린 하룻길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걷는 것일까. 우리의 부모님은 그렇게 자식들을 키우기 위해 굴욕의 길을 걸어 춥고 긴 걸음을 걸어 집으로 돌아왔을 것이다. 퇴근길에서 그나마 빨강 신호등이 가슴 열어 보이며 손 맞잡고 안아 주어, 다소 위로를 받는다. 하루 일과 속에서 잊혀졌던 미소가 살아난다. 비록 찬밥 한 술이지만, 그래도 처진 어깨 눕힐 보금자리로 가는 기쁨, 등 어루만지며 토닥여 주는 파랑 신호등, 지켜봐 주는 서산의 초승달 등이 곁에 있어, 행복하다. 퇴근길 정경을 아주 담담한 어조로, 이미지 구현을 해놓고 있다. 이러한 시적 형상화는 은은히 시의 품격을 드높여 주고 있다.
긴긴 겨울밤마다
할머니의 이야기는
몇 고개를 넘는다
그 이야기는
부엉이 우는 한밤중에도
마당 건너 뒷간까지 따라 나온다
빨간 손이 올라와
밑을 닦아 주었어
문 밖에 떨고 서서
그 손 못 나오게 했어
수십 년 전 이야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지금도 할머니는 하얀 손 되어
날마다 다녀간다
보리까시락 같은 그 손
사랑 덧칠해 따스해진 그 손.
- [할머니의 손]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할머니의 손에 눈길을 고정시켜 놓고 있다. 이 시를 읽다 보면 오래된 궤짝에서 꺼낸 옛날 옛적 이야기를 읽는 듯해 마음이 푸근해진다. 긴긴 겨울밤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파뿌리 닮은 흰빛처럼 밤을 하얗게 지새우기도 했다. 호랑이 이야기로 한 고개를 넘고, 봄볕 환한 이야기로 두 고개를 넘고, 장독대 깨진 이야기로 세 고개를 넘고, 문짝귀신 이야기로 네 고개를 넘다 보면 어느새 스르르 잠이 들곤 했다. 할머니의 이야기는 어디서 흘러왔기에 마당 건너 뒷간까지 따라가고 지금도 날마다 다녀갈까. 이 시는 가을볕을 다둑이는 할머니 손길처럼 손주들을 향한 할머니의 깊은 정을 그리고 있어서 정겹다. 긴긴 겨울밤마다 들려준 할머니의 옛날 이야기. 몇 고개 넘어도 그 이야기는 그칠 줄 모른다. 부엉이 우는 한밤중에도 그 이야기는 마당 건너 뒷간까지 따라다닌다. 빨간 손이 올라와 밑을 닦아 주었다는 소리에 오싹 몸을 움츠린다. 지금도 할머니의 하얀 손이 날마다 다녀간다. 거칠어진 그 손, 하지만, 사랑 덧칠해 따스한 그 손이 다녀간다. 가뭄으로 쩍쩍 갈라진 논바닥처럼 할머니의 거친 손이지만 할머니의 손길은 손주들의 터진 양말을 꿰매며 사랑을 깁고 또 기웠다. 할머니에 대한 회상에 젖어, 긴장감을 유지시키면서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낸 솜씨가 아주 세련되어 있다. 시의 특질에 밀착하면서, 이미지 구현과 긴장감까지 어우러진 시에서 우리는 감동을 받게 된다.
시가 우리 인류에게 어떤 역할을 할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건 바로 심성의 방향을 바로잡기 위해서가 아닐까. 가만 놔 두면 자꾸 거칠어진 쪽으로 기울어지는 인간의 감성을 조금이라도 정화시키기 위해, 시가 이 땅에 머물러 있는 건 아닐까. 시는 찰나의 예술이다. 그러므로, 시는 여러 시간대에 걸쳐 있는 것보다 어느 한 순간의 감성, 그 일면을 감동적으로 그려내는 게 더 좋다. 이왕이면, 설명하지 말고, 주제 노출하지 말고, 시적 형상화를 통해, 또는 이미지 구현을 통해 에둘러서 하고픈 말을 해야 한다. 생경하게 하고픈 말을 해버릴수록 시의 맛은 감소되고 밋밋해지고 식상해진다. 되도록 이미지 구현을 하되, 가능하면 입체적 이미저리가 되도록 배려해야 한다. 서술로 가지 말고 시적 형상화를 이뤄내야 한다. 그래서 비유나 상징을 최대한 이용할 필요가 있다. 그런 과정에서, 낯설게 하기, 새로운 해석이 가미 되도록 신경을 써야 한다. 누구나 알고 있는 해석은 재미가 없다. 아하! 감탄사를 연발할 수 있는 착상, 새로운 각도의 시선, 새로운 해석의 묘미를 만날 수 있도록 배치해야 한다. 또한 가급적 리듬을 살려내야 한다. 어미 처리를 통해 각운을, 첫 글자 배치는 두운을, 중간 리듬은 요운을 넣어 배치하면 좋다. 그리고, 시를 다 읽은 뒤에, 감동의 전율이 흐르도록, 인생 이야기가 감동의 터널을 지나도록 신경을 써야 한다. 읽고 나서, 사색의 감동 방울, 전율 방울을 만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더불어, 시는 성장의 디딤돌이 되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방향의 깃발, 어디로 가야할지 은밀히 제시해 주어야 한다. 그게 없다면, 그냥 어둠 속을 헤매는 울부짖음으로 그치고 말 테니까.
고명순 시인의 시들은 이러한 시의 특질을 고루 구비하여, 읽는 독자들의 감탄을 자아내게 만들고 있다. 시들이 전체적으로 고르게 수준작을 유지하고 있고, 이미지 구현을 기반으로 여러 감각 이미지들을 입체적으로 배치해 놓고 있으며, 늘 새로운 각도로 바라보고 새로운 해석을 내놓고 있을 뿐만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읽게 만드는 긴장감도 장착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감동을 주어, 눈시울을 젖게 만드는 점도 독자를 행복하게 해주고 있다.
앞으로 제2, 제3 시집을 펴내어, 지속적으로 독자들에게 행복과 감동을 안겨 주기를 바란다. 여생 동안, 틈나는 대로 창작 시를 모아 시집을 연달아 펴내면서, 지루하고 무료한 세월을 잘 극복해내기를 소망한다. 부디 늘 건강하여, 오래도록 장수하기를 기도한다.
- 짙푸름이 한결 윤기나고 멋스러운 여름 저녁에
한실문예창작 지도 교수 박덕은 작가
(문학박사, 전 전남대 교수, 문학평론가, 시인, 동화작가.
소설가, 사진작가,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