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뷰] 디지털 시대에도 재난은 아날로그로 온다
재난 때 흔한 정전과 통신 장애… 디지털 의존 사회엔 치명적
AI 재앙 걱정도 해야겠지만 ‘스마트폰 끊긴 세상’ 대비도
김신영 국제부장
입력 2024.01.06. 03:00
인공지능(AI)이 불러올 미래와 함께 ‘나쁜 AI’가 인류에게 불러올 재난을 걱정하는 이가 요즘 많다. 연초 세계 곳곳에서 잇따라 발생한 지진·전쟁·테러 같은 재난을 보면서, 인간을 다치고 죽게 하는 재앙은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아날로그 방식으로 온다는 생각을 했다.
1월 4일 강진이 발생한 일본 와지마에서 한 남성이 지진에 따른 화재로 불탄 거리를 지나가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1월 4일 강진이 발생한 일본 와지마에서 한 남성이 지진에 따른 화재로 불탄 거리를 지나가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디지털 기기에 중독된 현대인들은 스마트폰이나 인터넷 같은 첨단 기술이 언제든지 우리를 도와주리라고 확신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재난 현장 모습을 보면 볼수록 이 기기들이 때로는 허무할 정도로 취약해진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디지털 기술에 치명적인 정전과 통신 장애는 자연·인공을 불문한 재해 현장에서 매우 흔히 벌어지기 때문이다.
경기도에 사는 한 지인이 재작년 여름 겪은 일이라며 들려준 얘기다. 홍수가 나고 마을 전체 전기가 끊기는 바람에 휴대폰 배터리는 곧 다 닳았다. 이런 상황이 오자 쓸모없어 보이던 유선 전화를 설치해둔 집이 ‘갑 중의 갑’이 되더란다(유선 전화는 정전일 때도 작동한다). 집 전화가 있는 한국 가구는 셋 중 하나(갤럽 2021년 조사)에 못 미친다. 요즘 늘어나는 젊은 1인 가구는 열에 한 명꼴로만 집에 전화가 있다고 한다. 대다수가 재해 때 스마트폰과 인터넷이 먹통이 되면 가족에게 안부를 알릴 방법이 없다는 뜻이다.
얼마 전에 집에서 TV로 넷플릭스를 보다가 황당한 경험을 했다. 인터넷 공유기가 고장으로 갑자기 꺼지고 동시에 (인터넷으로 작동하던) ‘스마트 TV’도 먹통이 됐다. 지상파 방송 전파를 잡는 방법을 모르니 TV는 고철 덩어리나 다름없었다. 재난이 일어나 정전이 되고 휴대폰에 이어 TV까지 꺼지면, 생존에 필수적인 정보는 어디서 얻어야 할까. 일본 정부의 재난 대비 지침은 이런 비상사태를 대비해 건전지로 작동하는 아날로그 라디오를 갖춰두라고 조언한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2만~3만원 정도면 살 수 있는 제품이 언젠가 생명줄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집에 라디오를 보유한 한국 가구 비율은 11%에 불과하다. 음악과 뉴스를 소비하기 편한 스마트폰에 밀려 멸종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는 전력망을 가장 집중적으로 공격한다. 디지털 시대에 전기와 통신망을 끊으면 사회를 얼마나 큰 혼란에 몰아넣을 수 있는지 알고 벌이는 일이다. 러시아는 같은 목적으로 미국 전력망에 대한 사이버 공격도 종종 벌인다. 한 우크라이나 기자는 “가방에 휴대용 배터리를 대여섯 개씩 넣어 다니는 게 일상이 됐다”고 했다. “전기 끊긴 상태로 며칠 지내 보세요. 세상이 1차 대전 때와 뭐가 달라졌나 하는 생각이 든다니까요. 휴대폰 지도를 못 보니 동서남북도 잘 모르겠더군요.” 재난 상황엔 근사한 자율주행 전기차보다 자전거와 지도 쪼가리가 유용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미국 IT 매체 ‘와이어드’는 태풍 등으로 전기·통신이 끊길 때를 대비해 “주변의 ‘러다이트’를 파악해 두어라”고 조언한다. 18~19세기 공장 기계를 파괴한 영국 노동자들에게서 유래한 ‘러다이트’는 최근 신기술을 싫어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용어로 쓴다. 큰 재난이 터지면 평소엔 고지식해 보이던 아날로그적 생활 방식이 오히려 유용하니, 이런 사람을 찾아가 도움이라도 구하라고 필자는 설명했다.
여러 정부가 재난 대처 가이드에 ‘평소 준비해두라’고 권고하는 비상 대비 용품은 다음과 같다. 물, 통조림 등 썩지 않는 비상식량, 손전등, 건전지로 작동하는 라디오, 응급 약품, 호루라기(갇혔을 때 도움 요청용), 성냥·라이터, 얇은 담요 등등이다. 돈과 시간을 약간만 투자하면 어렵지 않게 갖출 수 있는데도 대부분 흘려듣고 만다. “당신의 과도한 자신감이 당신의 약점입니다.” 우크라이나 정부의 공습경보에서 나오는 문구다. 영화 ‘스타워즈’ 대사이기도 한데, IT 초강국 한국에 하는 소리처럼도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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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영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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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 국제부장.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정확하고 깊이 있게 전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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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좀도
2024.01.06 05:38:00
한국은 재난이나 전쟁의 안전 지대가 아니다. 항시 재난이나 전쟁에 대비해 훈련이 필요하다. 번거로울 정도의 잦은 훈련이 인명과 재산을 보호한다는 진리를 깨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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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이어
2024.01.06 06:43:17
좋은 정보에 감사합니다. 지난 해 11월에 휴대폰으로 문서를 열다가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이틀 동안 작동이 멈춰서 고단했던 일이 생각납니다. 평화로울 때 재난을 염려해 둬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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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0
pgbmy
2024.01.06 16:35:42
100% 공감는 칼럼입니다.평상시엔 주변의 익숙한 환경으로부터 모든 정보들을 얻으면서 불편할 줄 모르고 사는 우리들이지만,갑자기 익숙한 것들이 모두 사라지고,마치 이조시대 처럼 원시적인 삶으로 돌아간다면,심지어는 지하철도,자동차도,비행기도 전기조차 없는 암흑같은 시대에 살아남으려면,이 칼럼의 글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우리삶 자체를 돌아봐야 한다.대한민국의 겨울철 온도가 영하 40도가 되고,여름철 온도가 영상50도가 되지 말란 법은 없다.갖가지 원인으로 모든 통신설비들이 먹통이 되고,당장 먹을 식량이 바닥이 나서 비상식량으로 견뎌야 할 날이 올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많은 상황에 대비할 수만 있다면,그게 바로 나라와 국민 모두가 세계최강의 위치가 되고,축복받을 나라가 된다고 믿는다.정치적인 술수나 다툼을 당장 멈추고,이웃을 사랑하고 도와주는 우리가 될 수 있다면, 이 글을 쓴 강신영씨의 숨겨진 의도도 이해가 된다고 믿는다.진짜 훌륭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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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예안이
2024.01.06 07:23:58
맞다 ㅋㅋㅋㅋ 큰 피해는 아날로그 이지 디지털 도 결국 아날로그 에 있어니까 그러나 어쩌겠냐 사람의 욕심은 전부 없애 버리라는 것을 말이다 ㅋㅋㅋㅋ 나의 사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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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nov8
2024.01.06 22:19:57
재해는 만약이 아니라 언제로 이야기되어야 합니다. 좋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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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0
양사
2024.01.06 16:31:50
아나로그 오디오 소리가 세트 조합과 조정에 따라 미세한 소리 변화를 하고 특히 공중파 클래식 FM은 아나로그의 맛을 느끼게 합니다. 간혹 간섭도 있다는 게 매력.
답글작성
3
0
lonecowboy
2024.01.06 08:36:34
공중파 신호를 수신하는 TV 안테나 구비하고 라디오는 건전지, 쏠라 패널 및 손으로 돌려서 충전하는 방식이 통합된 제품으로..
답글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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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more4more
2024.01.07 11:50:12
말장난으로 재미 좀 보셨어요? 디지탈과 아날로그가 지진 전쟁 화산 홍수 가뭄 폭염 폭한 쓰나미 등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준비하고 대비하자는 것을 유식하게 말씀하시려는 것 같기는 한데. 불쌍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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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리
2024.01.07 09:43:56
산길에는 지게나 배낭이 필요하지 제네시스가 소용없 지요. 원시 생존방법을 준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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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호리
2024.01.07 10:17:01
어째 하는 소리가 전쟁 곧 일어나니 전쟁 비상 물자 갖추라는 말로 들린다. 남북 대결 구도가 그만큼 심각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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